- 너무 튀는 메릴 스트립 영화는 ‘기우뚱’
보수적인 아카데미상 투표단의 눈에 메릴 스트립은 예나 지금이나 위대한 여배우다. 스트립은 유쾌한 코미디 영화 ‘줄리 앤 줄리아(Julie &Julia)’의 줄리아 차일드 역으로 2010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이로써 그녀는 16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되는 기록을 세웠다. 스트립은 이 영화로 이미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고, 3월 초에 열리는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세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게 될지 모른다(아카데미상 최다 수상 기록은 네 번을 받은 캐서린 햅번에 있다).
게다가 ‘줄리 앤 줄리아’는 요즘도 미국 극장가에서 2009년 제작된 스트립의 또 다른 영화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와 함께 나이 든 여성 관객들을 꾸준히 끌어모은다[한편 스트립의 또 다른 작품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Fantastic Mr. Fox)’는 좀더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이런 기세로 간다면 스트립은 앞으로도 꾸준히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결국 캐서린 햅번처럼 네 번째 아카데미상을 받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스트립이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던 1979년 이후 태어난 젊은 관객들은 스트립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풍자 뉴스 사이트인 ‘어니언(The Onion)’에는 최근 가상의 ‘스트립’이 자신을 두고 쓴 논평 한 편이 실렸다.
그 논평의 결론은 이렇다. “(내가 출연했던) 영화들은 괜찮은 편이었고, (나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다.” ‘스트립’은 또 이렇게 썼다. “최근 ‘소피의 선택’을 본 적이 있나? 세월이 흐를수록 퇴색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말하고 싶은가? 동정은 필요 없다.”
NBC TV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20대 미국인에겐 스트립의 어떤 영화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프로다)에서는 ‘사랑은 너무 복잡해’에서 보여준 스트립의 연기를 신랄하게 패러디했다. 특대형 와인잔과 낄낄거리는 웃음소리, 샐리 필드가 울고 갈 내숭.
스트립이 배우로서 걸어온 긴 여정 동안 찬란히 빛났던 순간들을 잘 모르는 관객들은 이런 이미지를 그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스트립의 연기에 내려진 혹평은 초창기부터, 아니면 적어도 그녀가 ‘소피의 선택’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이후로 늘 똑같았다.
특이한 억양과 말투로 눈길을 끌 뿐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는 평이었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억양과 말투가 아니다. 스트립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특성은 절제다. ‘줄리 앤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은 스트립의 과장된 연기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겐 확실히 그녀의 약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모든 역할을 철저하게 소화한다. 하지만 종종 역할 설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늘 때가 있다. ‘다우트’의 원장 수녀 역을 생각해 보라. 원장 수녀는 주인공 신부가 소년을 성추행했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그가 죄를 저질렀는지 아닌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섬세한 감정의 변화가 요구되는 역할이다.
하지만 스트립은 섬세한 감정 표현 대신 브롱크스(빈곤층과 이민자가 많이 사는 뉴욕의 대표적인 낙후지역) 억양에 의존했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향해 소리치는 과장된 연기를 보여준다. 우디 앨런 감독의 ‘맨해턴’(1972)에서 보여준 분노나 ‘소피의 선택’(1982)에서 보여준 섬세한 고통의 감정과는 대조적이다.
그 시절의 스트립은 그 후 수십 년 동안과 비교해 훨씬 더 섬세한 감정 표현을 보여줬었다. 스트립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서 한 가지 특성을 선택해 그것을 위주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듯하다. ‘맘마미아’의 노래하는 모텔 주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괴팍한 잡지 편집장, ‘다우트’의 성격이 애매한 원장 수녀.
만약 스트립의 영화에서 이 셋 중 단 한 편만 본 관객이라면 그녀에게 따라다니는 훌륭한 평판을 어떻게 생각할까? 스트립은 줄리아 차일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하지만 스트립의 과장된 연기는 이 영화의 흠이 됐다. 그녀는 차일드의 기이한 성격과 습성에 지나치게 몰입해 거의 끊임없이 낄낄거리고 혀를 찼다.
그것도 손이나 입 안에 음식이 가득 든 채로(손과 입 안에 동시에 음식이 들었을 때도 있다). 스트립이 배우로서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스트립과 감독들은 그녀의 명성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녀의 거물다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영화속에서 하는 행동은 어느 것 하나 사소하거나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앤 해서웨이(‘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에이미 애덤스(‘다우트’ ‘줄리 앤 줄리아’), 그리고 ‘맘마미아’에서 스트립과 공연한 다른 배우들은 기억에 남을 만한 대사 한 줄 없을 정도다. 메릴(스트립의 열성 팬들은 한결같이 그녀를 이렇게 부른다)이 스크린에 등장하면 다른 배우들은 보이지도 않는다.
스트립의 팬들은 이 말을 대단한 칭찬으로 여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돌아가던 영화가 그녀 때문에 갑자기 중단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난해 흥행과 작품성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영화들은 감정 표현이 섬세한 작품들이었다. ‘아바타’에서 시고니 위버가 맡았던 까탈스러운 과학자 역을 스트립이 맡았다고 생각해 보자.
조병(躁病) 환자처럼 낄낄거리다가 신경질적으로 우는 연기를 번갈아 가며 반복하지 않았을까? 고요한 시간이라곤 단 한 순간도 없었을 듯하다. 어떤 영화든 그런 순간이 있어야 볼 맛이 나는데 말이다. 우리 세대는 지난해 가장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여배우로 캐리 멀리건(‘언 에듀케이션’)과 가보리 시디베(‘프레셔스’)를 꼽는다.
이 20대 여배우들은 긴 침묵을 통해 고통과 부끄러운 감정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스트립의 최근 영화에선 ‘언 에듀케이션’에서 신인이나 다름없는 멀리건(제니)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학교로 돌아가는 장면이나 ‘프레셔스’에서 시디베(프레셔스)가 닭튀김을 훔치는 장면처럼 매혹적인 순간이 거의 없다.
이들은 영화 속에서 정말로 제니와 프레셔스가 된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니 그러기가 더 쉽지 않았겠느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스트립은 언제나 스트립이 먼저고 캐릭터는 그 다음이다. 어쩌면 그게 그녀가 원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연기는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게 아니다.
다르게 보이는 것에서 유사성을 찾고, 그 안에서 내 자신을 찾는 일이다.” 하지만 1990년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1980년대 최고의 여배우인 스트립의 연기가 천편일률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영화마다 캐릭터의 한두 가지 단순한 특성이 두드러져 보일 뿐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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