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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기억하는 세상 히든 챔피언을 더 많이 키우자

1등만 기억하는 세상 히든 챔피언을 더 많이 키우자

밴쿠버 겨울올림픽은 감동과 기쁨의 축제였다. 우리나라 성적이 역대 최고일 뿐 아니라 그동안 아시아 선수의 체격으론 안 된다고 여겼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메달을 여러 개 일구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림픽정신은 스포츠를 통한 인간의 완성과 세계평화 증진이다. 그래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들 한다. 우리는 여러 장면에서 올림픽정신이 살아 있음을 발견했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만m 결승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 선수 이승훈이 함께 뛴 네덜란드 선수 반 데 키에프트를 한 바퀴 따돌리자 얼마 전까지 자국 선수를 응원하던 네덜란드 관중이 기립 박수를 쳤다. 경기가 끝난 뒤 꽃다발 증정 세리머니에선 동메달리스트인 34세 노장 밥 데용(네덜란드)이 제안해 은메달리스트 이반 스코브레프(러시아)와 함께 금메달리스트 이승훈을 목말을 태워 축하하며 활짝 웃었다.

“넘어진 순간 스케이트 날이 호석이 얼굴을 향하고 있어 놀랐어요. 급히 발을 틀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에요.”

“괜찮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이야기는 무시해라.”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반 바퀴를 남겨두고 이호석 선수에게 걸려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메달을 놓친 성시백 선수와 그 어머니가 이호석 선수에게 한 말이다. 최근 올림픽이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변하면서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거나 상업화한다는 지적을 받는 가운데 언론도 과정보다 결과에 치중하고 메달 집계에 바쁜 모습이다.

특히 우리는 유달리 금메달, 1등에 집착한다. 올림픽조직위원회나 CNN 등 외국 방송들은 금메달에 특별한 가중치를 두지 않고 전체 메달 수로 순위를 집계하는데도 말이다. 입으로는 금메달만이 아니라 메달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 방송과 신문이 따지는 국가별 순위는 금메달이 절대적이다.

은메달을 따면 중계방송 진행자와 해설자가 계속 안타까워하고, 당사자인 선수도 괜히 풀이 죽는다. 아무리 은메달이나 동메달이 많아도 금메달이 없으면 순위가 한참 내려간다. 개그맨 박성광이 KBS-2TV 개그 콘서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 코너에서 외쳐 유행어가 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같다고 할까.

하지만 국가대표 선수단을 금메달리스트와 1등 후보만으로 구성할 수는 없다. 경제 현장과 산업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금메달 브랜드에는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한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의 부품이 함께 한다.

또 메이드 인 코리아가 메달 행진을 이어가며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더욱 많은 중견·중소 기업을 히든 챔피언(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으로 키워야 한다. 한 달도 넘게 불어대는 도요타 리콜 후폭풍은 부품산업의 가치 및 대기업과 중소 협력업체 간 상생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한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딴 피겨여왕 김연아의 연기가 완벽했지만 24명이 겨룬 경기에서 13위를 차지한 여고생 곽민정의 연기도 돋보였다. 곽민정은 외국 유명 코치가 아닌 한국인의 지도를 받으며 연습했고, 올 1월 전주에서 열린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유망주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이승훈과 모태범, 이상화 선수가 하나같이 존경한다며 칭찬한 선배 선수가 이규혁이다. 올림픽에 다섯 번째 도전했으나 메달을 따지 못한 이규혁이지만, 후배들은 함께 땀 흘리며 많은 점을 일깨워준 ‘영원한 국가대표’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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