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표 밀가루 ‘그 다음’이 필요
“이 회사들은 무척 우량 기업입니다. 게다가 싸기까지 하죠. 철강이나 시멘트, 밀가루,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물품들을 만드는 회사들입니다.
한국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도 상당히 높고, 이런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는 바뀌지 않을 전망입니다. …(중략) …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여태 투자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이 제분회사를 보십시오. 이 회사가 확보하고 있는 현금은 시장 가치보다 더 많잖아요. 주가수익비율도 3밖에 되지 않습니다. 많이는 살 수 없습니다만, 꽤 샀습니다.”
워런 버핏의 공식 전기인 『스노볼』에 나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분회사가 대한제분이다. 이 회사는 버핏이 2007년 초 주식을 보유 중이라고 밝혀 화제가 됐다. 버핏은 2004년 초 대한제분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버핏이 현재까지 대한제분 주식을 보유 중인지는 알 수 없다).
보유한 자산가치 비해 저평가이 회사는 2007년 소위 ‘워런 버핏 주’로 급등하기 전까지는 무관심 종목이었다. 2000~2003년 사이 주가가 3만~4만원대에서 오르내린 평범한 종목이었다. 주가가 뛰기 시작한 것은 버핏이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2004년부터다. 이후 상승세를 탄 주가는 2007년 20만원대로 올라섰고, 그해 말 최고점인 24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대한제분의 주가는 10만~14만원 사이에서 움직였다. 올 들어서는 소폭 하향 추세다. 2월 25일 종가는 12만6000원. 지난해 증시가 대세 상승장이었고 제분업계가 밀가루 가격을 두세 차례나 인하해도 큰 이익을 낼 만큼 업황이 좋았지만, 주가는 탄력을 받지 못했다. 대한제분의 비즈니스는 간단하다.
원맥(밀)을 수입해 제분해 판다. 따라서 밀 수입 가격과 환율이 회사 실적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우선 2008년 실적을 보자. 당시 국내 제분업체는 고환율과 곡물가격 인상으로 대부분 손실을 봤다. 대한제분도 마찬가지다. 대한제분에 따르면 2008년 원재료 수입 가격은 평균 60만원이었다.
2007년 평균 27만원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지가 악화돼 2008년 영업이익 9억원에 13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정반대였다. 대한제분은 지난 2월 24일 2009년 매출이 전년 대비 6% 증가한 3693억원, 영업이익은 4759% 급증한 456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순이익은 549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회사 측은 “국제 곡물가격 인하에 따른 매출원가 감소와 환율 안정이 이유”라고 밝혔다.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오르고, 주요 밀 수출국의 작황 호조로 국제 밀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전년 대비 이익이 대폭 증가한 것이다. 올해도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곡물 가격이 안정세를 유지하고, 원화가치는 내림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기 때문이다. 국내 제분 업계가 지난 1월 밀가루 판매가를 7~9% 내린 이유 역시 밀 가격 하락과 환율 안정이 바탕이 됐다. 증권가에서는 대한제분을 여전히 “매력적인 자산가치를 지닌 저평가주”로 본다.
SBS의 주요 창업 주주이기도 한 대한제분은 현재 매도 가능한 유가증권만 800억원이 넘는다. 또 자산가치 대비 현재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월 25일 기준으로 0.5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한제분은 CJ제일제당, 동아원과 함께 국내 제분 시장의 ‘빅 3’다.
3개 회사가 각각 시장 점유율 25% 안팎을 차지한다. 제분업계는 저장 창고와 시설에 대한 고정자본 투자가 많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다. 이런 과점 체제는 곡물가격과 환율 변동에 따른 대응에도 유리하다. 2008년에 수입 밀 가격이 월평균 60% 오르자 밀가루의 소비자 물가는 거의 같은 폭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지난해 밀 수입 가격이 30% 가까이 폭락했지만 밀가루 소비자 물가는 9% 정도 떨어지는 데 그쳤다. 안정적인 매출이 가능하고, 시장을 과점하고 있으며, 현금이나 자산이 많으면서 저평가돼 있는 종목이라면 소위 ‘가치투자 종목’으로 제격이다. 그렇다 해도 중장기적으로 대한제분의 미래 가치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우선 사업 포트폴리오가 너무 단순하다. 이 회사 매출의 대부분은 ‘곰표 밀가루’를 판매하는 데서 발생한다. 제분산업은 국내외 사정을 보면 성장에 한계가 있다. 최근 5년간 대한제분의 밀가루 가공량, 생산량, 판매량은 모두 감소 추세를 보였다.
대한제분은 보수적인 경영 기조를 유지해 왔다. 1952년 설립된 대한제분은 그동안 제분 관련 산업 외에는 신사업을 추진한 적이 거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이 신성장동력 발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마당에 대한제분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우물만 너무 팠나?
1960년대 10대 기업에 속했던 대한제분은 현재 계열사 매출을 포함해 7000억원 수준이지만, CJ제일제당은 4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우물이 마를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에는 경영상 변수가 생겼다. 대한제분은 지난해 말 이종각 회장(79)이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회사는 이 회장의 장남인 이건영(44) 부사장이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반을 맡게 됐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이건영 부회장은 대한제분 주식 5.38%를 보유하고 있다. 이종각 전 회장의 지분율은 14.56%로 경영권은 승계됐지만, 지분 증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주식 증여는 주가가 가장 낮다고 판단할 때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증여세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최대주주가 증여를 하는 시점을 잘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건영 부회장의 행보다. 대한제분은 경영진의 언론 노출이 거의 없는 곳이어서 이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업계에서는 “올해 40대 중반인 이 부회장이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 변화를 모색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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