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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탄소 감축 모델 제시

자발적 탄소 감축 모델 제시

미국은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면서 교토의정서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해 비판을 받았다. 그랬던 미국이 변하고 있다. 연방 의회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법안을 마련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단일 탄소배출권 시장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거래가 일어난다. 지금은 변방으로 취급받는 시카고기후거래소의 위상도 크게 높아진다. 변화를 눈앞에 둔 미국의 탄소배출권 거래소를 찾았다.
▎지난해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코펜하겐 시내의 한 건물 외벽에 `당장 기후변화를 막으라고 쓰여 있는 대형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코펜하겐 시내의 한 건물 외벽에 `당장 기후변화를 막으라고 쓰여 있는 대형 포스터를 붙이고 있다.

미국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40분. 시카고상품거래소 등 각종 금융기관이 밀집한 그랜드 파크 인근 금융중심지에 있는 한 작은 사무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탄소배출권 거래소인 시카고기후거래소(CCX)가 있는 곳이다.

한시바삐 거래소를 설치하려는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달 배출권 거래제 시범 실시를 앞두고 협력관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뒤 CCX는 관심의 대상이 됐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CCX와의 협력을 통해 한국형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에너지 소비구조와 산업의 국제경쟁력 등을 감안하겠다는 것이다.

CCX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소로 2003년 개장했다. 회원들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회원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법적 의무가 따르는 배출허용량을 설정해 그에 따른 배출권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민간 기업뿐 아니라 대학, 지방자치단체 등 350개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이 주도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은 아직 이산화탄소 배출과 관련된 통일된 법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탄소배출에 대한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다는 얘기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로, 리처드 샌더 CCX의 설립자 겸 회장이 설립 당시 “거래소가 뿌리를 내리려면 5~6년이 지나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이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법안 미비 걸림돌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연방 의회 차원에서 관련 법안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의료개혁, 이민법 등에 밀려 아직까지는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코펜하겐 회의가 별 소득 없이 끝난 이후 CCX는 크게 위축됐다. 2003년 출범 당시 t당 1달러에서 시작된 거래는 한때 8달러까지 올라갔었지만 2010년 3월 현재 t당 거래액은 15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초 2달러 선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에 반해 유럽에서는 14유로 수준을 보여 미국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리처드 산돌 CCX 사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의 제정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CCX는 자발적인 시장이기 때문에 거래액이 낮다”며 “유럽처럼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거래액과 거래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탄소배출 시장 상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연방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 미비하다는 사실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CCX는 전적으로 기업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설립 당시 23개 기업이 이산화탄소 t당 1달러로 시작된 이 시장은 지금도 여전히 기업들 스스로의 참여로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말 코펜하겐 회의에서 선진국-개도국 간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CCX처럼 자발적 탄소시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코펜하겐 회의는 추가적인 의무 감축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의무감축 국가 대상을 확대하는 것에도 실패했다. 이로 인해 코펜하겐 회의 후 탄소배출권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라졌다. 결국 탄소 감축은 기업 스스로의 자발적인 시장 참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시장은 연평균 50%씩 성장해 세계은행은 2020년 미국에서만 1조 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시기가 언제가 됐든 탄소배출권 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면 일찍 진입해 시장을 선도하자는 입장이다. 또 이러한 선도적인 입장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자발적 시장 참여 ‘강점’?코펜하겐 회의는 각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각국 산업 및 금융자본들이 탄소시장을 새로운 시장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경우 세계 최대의 탄소배출 국가이지만 공화당인 부시 정부 시절에는 교토의정서 체제에 소극적이었다.

민주당인 오바마 정부는 2020년까지 2005년 기준으로 온실가스를 17%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연방 의회에서도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두 개의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하원의 청정에너지안보법(ACESA)은 작년 6월 하원을 통과했고 상원도 별도의 법안(CEJAPA)을 발의해 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미국도 곧 정부가 규제하는 탄소배출권 시장을 갖는 날이 멀지 않았다. 아울러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중국 역시 주요 당사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미국은 탄소를 감축하려는 세계적 트렌드에서 끝까지 벗어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CCX의 미래를 밝게 본다. 미국도 결국은 세계적 추세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국가 차원에서 탄소 감축에 참여하기만 한다면 기술이나 잠재력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CCX는 순식간에 탄소 감축의 주역으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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