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쇼보다 뜨거운 대기업들의 패션전쟁
▎sk 네트윅스가 한섬 이전에 인수한 국내 브랜드 ‘오브제’.
SK네트웍스가 최근 6대 성장축의 하나로 패션사업을 지목하고 중견 패션기업 ‘한섬’ 인수를 추진 중이라고 공시했다. 한섬도 같은 날 조회공시 답변에 ‘당사의 최대주주는 지분매각과 관련해 검토 중에 있으나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다’고 공시했다. 두 회사가 인수합병(M&A) 협상 사실을 공식 인정한 셈이다.
한섬은 최대주주 지분의 3분의 1인 34.64%를 매각하고 경영권도 함께 넘길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한섬은 SK네트웍스의 프레스티지 마케팅 라인에 편입된다. SK네트웍스 관계자는 “한섬을 4000억원 정도에 인수하는 것으로 합의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며 “이미 고용·승계 등을 위해 인사 분류작업을 마쳤고, 최종 실사만 남아 있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는 이미 스마트 학생복, 타미힐피거, DKNY, 클럽모나코, 리플레이 등 패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2007년중견 여성복 업체 ‘오브제’를 인수하고 여성복 부문도 강화해 왔다. 지난해 3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섬을 인수할 경우 매출이 7500억원으로 늘어나 단번에 국내 패션 업계 5위권, 여성복 1위로 도약하게 된다.1987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된 한섬은 여성복 1위 브랜드인 타임·마인을 비롯해 시스템·SJSJ·랑방 컬렉션과 남성복 브랜드 타임옴므·시스템옴므를 보유하고 있다. 브랜드 파괴력과 실적 모두 좋고 재무구조도 탄탄한 편이다. 지난해 매출3869억원에 영업이익 772억원이며 부채비율은 -5.6%에 불과한 알짜 패션 기업이다.
잘나가던 한섬에 무슨 일이?그렇다면 왜, 이 알짜 회사를 팔려고 하는 걸까? 창업주인 정재봉 사장은 칠순 고령으로 일선에서 경영을 하기 힘들고 마땅한 후계자도 없어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고령인 정 사장과 패션사업을 육성하려는 SK네트웍스 간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섬은 그동안 정 사장이 경영을 맡고, 부인인 문미숙 이사가 디자인과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투톱 시스템으로 운영됐다. 때문에 누가 경영권을 물려받느냐를 놓고 패션 업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경영과 디자인이 철저히 분리된 상황에서 두 사람의 공백을 동시에 메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전망이다.
때문에 한섬은 2006년 이후 끊임없이 후계구도와 관련해 매각설에 시달려 왔다. 정 사장은 딸 정수진 실장과 아들 정형진이사를 경영에 참여시켰지만 매각설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던 중 편집매장 ‘무이’를 통해 해외 유명 브랜드인 끌로에, 발렌시아가, 지방시를 들여온 정수진 실장이 지난해 갑작스레 사표를 내고 남미로 훌쩍 떠나버렸다. 정 사장은 이때 회사 정리를 결심한 듯하다.
정 사장은 패션 부문을 정리하고 부동산업에 주력할 전망이다. 한섬은 부동산 전문 개발업체 한섬피앤디를 통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섬 본사 건물과 쌤소나이트 건물, 압구정동 BMW건물과 기흥 물류센터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과 현금 부자인 한섬이 굳이 성장성이 더딘 패션 부문을 끌고 갈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SK의 ‘진짜’ 인수 의도는?사실 한섬 매각설은 3년여 전부터 업계에 나돌아 LG패션, 이랜드, 롯데쇼핑 등 대형 패션·유통 업체들이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 SK네트웍스의 한섬 인수는 SK그룹 고위층이 움직여 급물살을 탄 것이라고 한다. 지난 4월 대리인을 통해 첫 접촉한 정재봉 사장과 SK그룹 측은 의견을 좁혀오다 7월 말께 정 사장이 최종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8월 초 SK네트웍스 이창규 사장과 조준행 상무 등 SK네트웍스 임원들이 휴가에 들어가기 전 최종 결론이 난 것으로 전해진다.SK네트웍스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임 CEO인 이창규 대표가 B2C에 관심이 높다. 8월 초 ‘패션사업본부’를 통한 패션사업군 중점 육성 방안이 담긴 2~3년치 사업전략 보도자료를 발표했고, 구체화 방안의 하나가 한섬 인수였다. 이번 인수는 글로벌 패션 시장, 즉 글로벌 B2C를 확대한다는 의미가 크다.
‘글로벌 명품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추자’는 오랜 비전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SK네트웍스는 그동안 패션사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규모나 적극성 면에서 대형 의류 업체에 밀리는 실정이었다. 회사 전체 매출 21조1904억원, 그중 패션사업 분야는 3500억원대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패션 부문을 전략사업으로 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2008년 뉴욕에 패션 법인 ‘오브제 뉴욕 디자인센터’를 마련해 세계 패션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R&D 전초기지로 삼은 것도 그 일환이다.
▎한섬의 자체 브랜드 타임옴므
하이엔드 편집숍 ‘무이’와 영컨셉트의 편집숍 ‘톰그레이하운드 다운스테어즈’도 흡수한다. 이로써 여성복, 남성복, 캐주얼,아동복, 패션잡화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친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되는 것. 이번 M&A는 국내 패션업계 재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 패션전문 애널리스트는 “SK네트웍스는 한섬 인수 후, 중장기적으로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면서 규모 있는 회사로 키워 나갈 것이다. SK네트웍스가 예전부터 패션사업에 관심이 컸지만 업계 경쟁구도를 고려해 사업 확대를 주저한 면이 있다. 하지만 한섬 인수로 판도가 달라졌다.
의류사업 부문을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섬의 자체 브랜드는 고객 충성도가 높고 수익성도 좋아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패션계는 지각변동 중?최근 대기업들이 잇따라 패션사업을 강화하는 이유는 뭘까.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패션 부문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기 때문.
실제 지식경제부가 분석한 지난 6월 백화점 매출성장률에 따르면 명품 16.4%, 잡화12.2%, 여성캐주얼 9.8%, 남성의류 8.4%등 패션 분야 대부분이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쌈지’와 ‘톰보이’가 최종 부도처리되는 등 중소기업 토종 패션 브랜드는고전하고 있다. 대 ‘자라’ ‘유니클로’ 등 글로벌 SPA(기획부터 유통까지 한곳에서 이뤄지는 전문 소매점) 브랜드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SK네트웍스는 오브제에 이어 한섬을 인수하면 제일모직을 제치고 여성복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번 M&A는 패션업계 경쟁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제일모직, LG패션, 캠브리지코오롱 등이 주도하던 패션업계에 SK네트웍스라는 신흥 강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랜드+이랜드월드(1조3000억), 제일모직(1조2300억), 코오롱+캠브리지코오롱(1조원), LG패션(9222억원)에 이어 SK네트웍스가 랭킹 5위 패션기업으로 올라서게 된다.
SK네트웍스의 한섬 인수를 경쟁사들은 어떻게 보고 어떤 대응 전략을 세우고 있는가.
▎이랜드의 SPA브랜드
이랜드그룹 올해 매출 1조4000억원으로 업계 1위다. SK의 한섬 인수에 대해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매출 등 전체 볼륨에서 차이가 커 경쟁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이랜드는 중가 캐주얼의 절대 강자이면서 시장이 많이 다른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한섬은 여성복만 1위고 SK가 한섬을 인수하더라도 이랜드가 부동의 1위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중국 시장도 선점했다. 백화점에만 총 3300개 매장이 있다. 2위인 베이직하우스가 1000억원이니, 매출 1조원 규모의 이랜드와 10배 차이다.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랜드도 속으론 긴장하는 눈치다. 막강 마케팅력과자본력을 가동해 패션사업에 역량을 모을 경우 벅찬 상대가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제일모직 업계 2위로 이번 인수가 패션업계 전체를 위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번 인수가 원래 있던 회사의 주인이 바뀐 정도며, 서로 매출이나 군이 달라 특별히 경쟁구도는 못 느끼고 큰 대책을 세울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다. SK가 여성복 1위로 부상하는 것에 대해서도 제일모직의 대표 여성복 브랜드인 구호가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때문에 브랜드 컨셉트를 바꾸는 등의 대응책은 아직 세우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제일모직의 경우 여성복보다는 신사복 매출이 크기 때문에 아직은 여유를 부리는 듯하다.
LG패션 한때 한섬 인수를 검토했지만 브랜드 구색이나 포트폴리오가 겹쳐 포기했다. 제일모직과 마찬가지로 신규 브랜드가 생긴 게 아니라 회사 주인만 바뀐 것이라서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SK가 패션에 적극 투자한다면 숙녀복 업계가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해외 네트워크가 좋은 SK가 중국 시장 등을 선점할 경우 자칫 후발주자로 해외시장 개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FNC코오롱 코오롱은 쿠아, 산드로 외에는 여성복이 별로 없다. 그래서 한섬과도 경쟁관계에 있지 않았다. SK가 한섬을 인수했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섬 인수를 계기로 SK가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설 경우 곳곳에서 부딪칠 수도 있기 때문에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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