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일 간 40년 뱃길을 양국 우정의 지름길로”
“한ㆍ일 간 40년 뱃길을 양국 우정의 지름길로”
부관항로(부산과 시모노세키항을 잇는 항로)는 105년 전에 열렸다. 1905년 9월 12일 일제는 관부 연락선 ‘이키마루’(1680t)를 처음으로 취항시켜 1945년까지 모두 11척의 연락선이 양국을 오갔다.해방 후에도 한동안 미국 통제하에 한ㆍ일 양국의 귀환자를 수송하다가 40년 역사를 뒤안길로 하고 운항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25년여가 흐른 1970년 6월 19일,이 역사적인 뱃길을 ‘부관페리’가 다시 이었다. 이 회사는 국내 최초의 정기국제여객선사로 현해탄 항로의 선구자로 꼽힌다. 재일교포인 고(故) 정건영씨가 “한ㆍ일 양국의 우호를 증진할 가교 역할”을 하겠다며 부관페리호를 다시 띄웠다.
“1905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관부연락선’에는 식민지 수탈과 강제 징용의 어두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부산~시모노세키 항로는 조선시대 조선통신사의 뱃길이자 소설‘관부연락선’에서 잘 나타나 있듯 애환이 서린 수백년간의 한ㆍ일 교류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부친인 정 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에 나선 사토 유지(佐藤雄司) 대표의 감회는 남다른 듯하다.“올해로 부관페리가 취항한 지 4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부관페리를 통해 양국 간에 수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오늘날 시모노세키가 한류(韓流)의 관문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해탄의 거친 물살만큼이나 부관페리가 지나온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운항 초창기 10여 년간은 적자 경영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선대 회장으로부터 지켜온 ‘사람중심 경영’이 뿌리내려서인지 회사는 위기의 순간에도 뱃길을 꿋꿋이 지켜왔다. 사토 유지 대표는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종플루 등으로 한때 경영이 어려웠지만 다시 불기 시작한 한류열풍을 타고 순조로운 항해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사토 유지 대표는 지난 2005년 부관페리를 이어받았다. 취임 이후 상속세 320억원을 한국에 납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던 그는 “부산과 한국음식,한국을 사랑하라”는 부친의 유지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듯하다. 부친이 도쿄에 설립한 결혼식장과 연회장 등 임대와 행사 컨설팅 회사인 (주)TSK. CCC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면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뒤 부관페리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그는 지난 2007년 회사의 제2 도약을 선언했었다.
현재 부관페리는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한 1만 6000t급 성희호(아래 사진)와 일본 관부페리 소속 하마유호를 공동운항하면서 주7회 취항 중이다. 김태영 객원기자가 8월 25일 서울 그랜드인터컨티 넨탈호텔에서 사토 유지 대표를 만나 부관페리 취항 40년의 의미를 물었다.
한ㆍ일 교류의 상징의 하나인 부관페리가 올해 취항 40년을 맞았다. 현해탄 항로의 선구자로서 지난 40년을 평가한다면?선친께서 한ㆍ일 우호관계의 이념으로 시작한 부관항로가 취항 40년을 맞아 무엇보다도 감회가 새롭다. 취항 당시에는 부관항로가 일본 거주 한국인의 귀국 거점으로 활용되었지만 40년이 흐른 지금은 한ㆍ일 우호관계를 토대로 문화교류의 거점, 물류중심지로서 그 의미가 더 확대됐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한ㆍ일 양국을 잇는 시모노세키와 부산에 부관페리가 미친 영향도 적지 않을 텐데.부관페리는 양 도시 발전과 국제관계의 기반이 됐다. 부산시는 시모노세키시와 자매도시로서 양국 우호에 기여한다. 역사적으로 시모노세키는 조선시대의 조선통신사 등이 거쳐간 의미가 깊은 도시이기도 하다. 부관항로는 일본과 한국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의 동선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부관페리는 한ㆍ일 양국의 우호 증진에 어떤 역할을 해왔나?
부관페리의 창립이념인 한ㆍ일 우호증진은 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독도 영유권 문제, 역사왜곡 등 해결돼야 할 과제가 많지만 한ㆍ일 우호증진은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전적으로 한국인들의 관대한 마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화교류가 활발한 지금 일본의 대다수 청소년이 한일병합 100년조차 모른다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선대의 유지를 이어 역사의 진실을 알리려 노력해 왔다. 진정한 우호는 양국의 상호이해 아래 성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320억원 상속세 납부 등 많은 도전을 이겨냈다. 부관페리의 성공비결을 꼽는다면?
“임직원 모두가 현장을 최우선으로 고객의 요구에 최선을 다한 결과다. 고객에게 먼저 다가가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펼쳐 왔다. 거기에는 고용 안정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한ㆍ일 항로에서도 경쟁이 사뭇 뜨거워졌다. 부관페리의 마케팅과 서비스 전략은?
글로벌화에 힘입어 대한해협에도 많은 항로가 열렸다. 이는 한국이 경제 대국의 대열에 섰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경쟁은 독점시대부터 예견됐던 일이기도 하다. 타 선사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이어온 신뢰를 바탕으로 정기선의 특성을 살려 일반 화물선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이다. 특수화물 즉 렉서스 같은 차량과 반도체 장비, 신속성이 요구되는 농수산물의 물류에 대응하도록 AIR-SUS 운송을 활용한다. 여객수송의 경우도 40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식사, 이벤트 등 부대서비스를 전문화하고자 별도 자회사를 설립했다.
창업주 고(故) 정건영 회장은 어떤 분이셨나?선대 회장님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세 가지 사업을 제안 받았다고 한다. ‘그 중 두 가지는 어느 누가 해도 성공할 만한 사업이었지만 여객선 사업만은 적자가 예상된다’ 고 말씀하셨다.
평소 마음속에 간직하는 경영철학이 있다면?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엔고 현상부터 최근의 그리스 쇼크까지 많은 난관이 산재해 있지만, 위기를 통해 회사는 더욱 강한 기업이 되고 성장의 기반을 쌓게 된다. 위기가 곧 기회이다. 불황 시기에 오히려 차별화할 기회가 더욱 많은 법이다. 고객에게 이익이 되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린 시절 선친께서도 회사가 부도가 날 만큼 여러 차례 위기를 경험하셨으나 이를 극복하셨다.
부관페리가 추진하는 신사업은 무엇인가?
여객과 화물운송이 지금까지 회사의 주된 업무였다면 부산신항 이전에 맞춰 물류, 벌크선, 부대서비스 관련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
부관페리를 이끌면서 느끼는 자부심이 있다면?
선친이 돌아가신 얼마 뒤 일본에서 한류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한류바람을 선친께서 생전에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생각하면 감정이 북받쳐 온다. 선대의 유지를 받들어 개인의 이익보다는 임직원 모두가 자긍심을 가질 만한 좋은 회사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려 한다. 또한 한ㆍ일 양국의 우호증진을 위해 협력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힘을 아끼지 않겠다. 지금의 한류가 붐으로 끝나지 않고 참된 한ㆍ일 우호로 이어지도록 계속 노력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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