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옥에서 온 영화감독’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다
▎톰 맥길 감독은“내가 예술교육으로 변화했듯이 다른 재소자들에게도 변화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 출신 톰 맥길(54)은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찍는 영화감독이다. 그것도 수감자를 배우로 쓰고 교도소 안에서 찍는다. 2003년에 처음 찍은 단편영화 ‘Inside Job’은 교도소 안에서 조직된 은행강도단 이야기이고, 2005년에 찍은 ‘The Big Question’이란 다큐멘터리는 감옥에 갇힌 재소자가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기록했다. 이 영화들은 재소자 교화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2006년에 찍은 ‘미키 비(Mickey B)’는 다르다. 처음부터 대중을 상대로 상영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컸다. 재소자 교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정됐던 BBC상영은 취소됐다. 사회적 파문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미키 비’의 등장인물은 물론 스태프로 참여한 42명 모두 실제 수감 중인 재소자였다. 촬영장소 역시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매하베리 교도소다. 강력범만 수용되기로 악명 높은 교도소에서 1급 죄수들과 함께 영화를 찍은 이 ‘간 큰’ 감독 역시 수감자 출신이다. 그 맥길 감독을 11월 18일 서울 이화여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만났다.
맥길 감독의 방한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감옥으로부터의 영화’ 워크숍에서는 ‘미키 비’ 상영과 함께 재소자 교정 교육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인문학적 토론도 벌어졌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매년 서너 차례씩 예술교육분야의 해외 전문가를 불러 워크숍을 해왔다. 홍보국제협력팀 관계자는 “진흥원에서도 2006년부터 교정시설의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해왔다”며 “맥길 감독의 사례를 공유하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맥길 감독은 4박 5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법무부를 찾아 재소자 대상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알리고, 직접 수감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맥길 감독은 ESC(Educational Shakespeare Company) 대표이기도 하다. ESC는 연극과 영화를 통해 재소자와 전과자에게 예술문화교육을 제공하는 NGO로, 1999년에 그가 설립했다. 단체 이름에 셰익스피어가 포함된 까닭은 그의 영화 대부분이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상영된 ‘미키 비’도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셰익스피어만큼이나 인간 행위의 동기를 잘 표현하는 작가가 없다. 특히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려고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이해하게 해준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재소자들의 예술교육에 활용한다.”
맥길 감독이 대학에 들어가 셰익스피어를 만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맥길이 태어난 아일랜드 벨파스트 지역에선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합병 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맥길의 가족은 그가 13살 때 분쟁을 피해 잉글랜드로 이주했다. 그러나 어린 그에게 타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담임교사까지 아일랜드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괴롭히고 따돌렸다. 결국 그는 15살 때 중학교를 자퇴해 갱단에 들어갔고 그동안 쌓인 증오와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했다. “폭력을 쏟아낼 때 쾌감도 있었지만 죄책감이 더 컸다. 그러나 그 죄책감이 어디서 오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열아홉 살의 맥길은 폭력 혐의로 3년형을 선고 받고 영국 베드퍼드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분노심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강압적인 교도소 내 체제가 오히려 그를 더 거칠게 만들었다. 그런 그를 변화시킨 건 옆방 수감자의 충고였다. “내게 교육을 더 받고, 자긍심을 가지라는 말을 해 준 건 그가 처음이었다.” 그 길로 지하 3층에 있는 교도소 도서관을 찾아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를 읽었다. 책 속에 묘사된 내면의 인간애를 처음으로 발견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 후 교도소에서 공부를 계속했고 출소 후 연극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진학했다.
연극을 공부하면서 그는 “내가 예술교육으로 변화했듯이 다른 재소자들에게도 변화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브라질 출신의 대중교육가이자 ‘억압받는 자들의 무대(Theatre of the Oppressed)’를 창단한 아우구스토 보알과 함께 ESC를 창립했다. 맥길 감독이 재소자들의 예술교육 수단으로 영화를 택한 이유는 강제된 교화가 아니라 범죄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구를 통해 재소자들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게 목표였다. 영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자신의 범죄를 돌이켜볼 기회를 갖는다. 영화를 찍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모두 생각해 보고, 자신이 인생에서 저질렀던 실수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의 영화작업은 “심리 치료법의 하나인 심리극, 즉 사이코드라마와는 다르다”고 했다. 심리치료사는 타인의 행동을 정정하고 수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자신은 “그저 감독으로서 재소자들이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그가 말했다.
“재소자들은 일반적으로 순응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물리적으로 강제하면 오히려 저항한다. ‘미키 비’ 출연자 중 한 명인 샘 핸리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는 1급 치사죄로 8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26년이나 복역했다. 교도관을 폭행하고, 체제에 저항하면서 형량이 늘어났다. 이렇듯 행동을 강제할수록 저항하는 재소자의 특성을 현재의 교정 체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맥길은 재소자들을 변화시키는 데 전과자라는 경험을 활용했다. 그들을 존경과 믿음으로 대하고, 선택을 내리고 결정하는 주체로 대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했다. “재소자들이 자신을 믿게 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그들은 감옥에서 오랜 시간 쓸모없는 놈, 낙오자라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교정공무원들의 냉담한 태도였다. “범죄자들에게 왜 특혜를 주느냐”는 비난도 들었다. 예산확보도 쉽지 않아 ‘미키 비’를 제작하는 데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러나 촬영은 단 4주 만에 끝났다. 그동안 빈번했던 교도소 내 폭력이나 절도 소동도 영화제작 기간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는 “출연자 중 15명은 촬영 후 교육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비행청소년들의 멘토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교도소 내 무법자였던 샘 핸리는 출소 후 현재 1주일에 네 번 ESC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미키 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샘 매클린(60)도 4년 전 출소해 북아일랜드 철도청에서 기차를 청소하는 일을 하며 바쁜 일상을 보낸다.
가장 바빠진 사람은 맥길 감독 자신이다. 그는 “다음주에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EPOS 국제 영화제에 초청돼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The Tempest)’를 각색한 작품을 벨파스트 교도소에서 촬영 중이다. 출연자의 범위도 넓어져 이번엔 아일랜드의 여러 교도소에 수감됐던 전과자들을 모았다. 그의 최종목표는 영화로 변화한 재소자나 전과자들을 예술교육자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전과자들이 비행청소년들의 역할모델이 되게 함으로써 자긍심을 키우고,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잠재적인 범행을 막는 효과도 기대한다”고 그가 말했다.
“사실 누군들 감옥에 들어가고 싶겠나? 죗값을 치르려고 수감됐지만 누구보다도 스스로의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은 바로 재소자, 그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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