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탄비’의 위력
‘양자탄비’의 위력
폭력과 유머, 섹스가 뒤범벅된 한 편의 중국 영화가 흥행의 역사를 다시 쓴다. 청 왕조가 무너지고 군벌들이 갈기갈기 찢긴 제국의 영토를 한 토막이라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던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양자탄비(Let the Bullets Fly)’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 변방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에서 이곳의 패권을 둘러싼 군벌과 토착 세력간의 다툼을 잔혹한 유머로 구성했다.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개봉했는데도 빠르게 관객 몰이에 성공해 영화 ‘아바타’와 근소한 차이로 역대 흥행 수입 2위를 차지했다.
솔직함과 위트,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미덕에 힘입어 ‘양자탄비’는 자국 영화라면 늘 2류 취급하던 중국 시장에서 이례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감독을 맡은 장원(姜文)은 영화에서 육형제단 두목 ‘장’을 맡아 거위 마을(Goose Town)로 부임하는 주지사의 열차를 강탈하고 부자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나 마을의 토착세력인 아편 밀수업자 ‘후앙 실랑(홍콩 액션배우 저우룬파 분)’은 계속 ‘장’을 죽이고 마을을 되찾으려 한다. 마을의 선임 주지사였던 ‘마스터 탱(중국 인기 배우 거요우 분)’은 둘의 싸움을 중재하면서 제 몫을 얻어내려 애쓴다. “목숨 귀한 줄 알아”라고 영화 속에서 마스터 탱이 장에게 경고한다. “목숨을 함부로 내놨다간 돈도 못 벌잖아?”
평단의 찬사를 받긴 했지만, ‘양자탄비’는 영화 제작에 서툰 중국이 거둔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좋은 영화다. 다른 좋은 영화가 별로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고 베이징의 영화·문화 평론가 젱 지아신이 말했다. 2010년 중국 영화의 총 흥행수입은 전년보다 64% 증가한 15억5000만 달러였다. 그러나 미국 영화 수입에 비하면 여전히 15%나 적다.
많은 관객이 장원 감독의 영화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읽어낸다. 베이징에서 아동교육사업을 운영하는 에코 리는 로빈 후드와 흡사한 ‘장’의 캐릭터에서 “마오쩌둥의 느낌을 받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오쩌둥은 집권에 성공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결국 정권을 잡은 마오쩌둥과 달리, 장은 반란에만 성공하고 정치엔 실패한다. 결말 부분에서 장 형제들은 “그와 함께 혁명을 계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후 자본주의라는 실험에서 가장 먼저 성공한 상하이 푸둥으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장원 감독은 영화에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중국에서 가장 다재다능한 배우이자 감독으로 손꼽히는 그는 집권 세력을 비판하는 위험이 무엇인지 잘 안다. 그가 2000년 감독했던 영화 ‘귀신이 온다(鬼子來了)’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농부들이 비겁하게 일본과 거래하는 장면이 검열에 걸려 상영이 금지됐다. 장원 감독은 ‘귀신이 온다’로 2000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지만, 중국에선 7년 동안 영화 제작이 금지됐다. 2007년 개봉한 차기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太陽照常升起)’는 마을 주민과 대학생, 사냥꾼이 한데 얽힌 마술적 사실주의를 표방했지만,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거의 아무런 의미도 전달하지 못했다.
‘양자탄비’로 장원 감독은 당국이 공식적으로 수용 가능하면서도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영리하게도 영화에서 정치적 전복의 메시지는 그것을 찾아내는 사람에게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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