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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 혁명’에 오일쇼크 닥치나?

‘재스민 혁명’에 오일쇼크 닥치나?


중동·아프리카 전문가 15명 중 13명 “오일쇼크 가능성 희박” 사우디·이란, 리비아 전철 밟지 않을 듯 리비아 유혈사태 마무리되면 유가 하락 확실 대중동 의존도 줄여 중동 리스크 스스로 탈피해야
리비아 반정부 시위 모습.



중동·아프리카 정세가 불안하다. 아프리카 튀니지·이집트 독재정권은 시민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42년 동안 철권통치를 거듭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도 벼랑에 몰렸다. 튀니지에서 출발한 ‘민주화 혁명’은 어느새 중동으로 옮겨붙었다. 예멘·오만·바레인에선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이란에도 민주화 바람이 솔솔 분다. 당연히 원유 가격이 오른다. 3월 2일엔 심리적 저지선인 ‘배럴당 100달러(WTI·서부텍사스유)’가 무너졌다. 2008년 9월 이후 29개월 만이다. 여기에 사우디·이란의 정치 지형까지 급변하면 유가는 더 가파르게 오를 게 뻔하다. 벌써 3차 오일쇼크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나온다. 과연 그럴까. 이코노미스트가 국내 중동·아프리카 전문가 15명에게 오일쇼크 가능성을 물었다. 응답자의 86%는 “오일쇼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답했다.“시한폭탄의 초침이 돌아간다.” 중동·아프리카 정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출발한 ‘민주화 바람’이 이집트·리비아를 넘어 중동으로 확산된다. 이 지역의 불안은 국제유가 급등을 부르게 마련이다.

WTI(서부텍사스유) 현물가격은 1월 4일 배럴당 89달러에서 3월 2일 102달러로 15%가량 올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동·아프리카는 세계 최대 에너지 자원 보유 지역이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61%, 생산량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 수급과 국제유가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치는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12개국) 중 10개국이 중동·아프리카(사우디아라비아·UAE·이란·이라크·쿠웨이트·카타르·알제리·리비아·나이지리아·앙골라)에 있다. 나머지 2개국은 베네수엘라·에콰도르다.

문제는 중동·아프리카의 불안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오만·예멘·바레인에선 반정부 시위가 계속된다. 사우디에선 3월 11일 ‘분노의 날’ 시위가 개최된다. 중동·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이 주요 산유국으로 번지는 셈이다.

국제유가는 더 오를 게 뻔하다. 리비아의 예를 보면 그렇다. 리비아는 OPEC 회원국이지만 원유 매장량은 440억 배럴에 불과하다. 세계 원유 매장량의 3%다. 하루 생산량은 165만 배럴로, 비중은 2%다. 그런데도 리비아 사태가 터진 후 유가는 껑충 뛰었다. 리비아 민주화 혁명이 시작된 2월 15일 배럴당 84달러였던 WTI 유가는 보름여 만에 100달러를 돌파했다.



사우디·이란에도 민주화 바람 “분다”중동의 주요 산유국인 사우디·이란의 원유 매장량, 하루 생산량은 리비아보다 훨씬 많다. 사우디의 원유 매장량은 2460억 배럴(세계 매장량의 20%)로 리비아의 5.6배다. 하루 생산량은 1000만 배럴(세계 하루 생산량의 12%)에 육박한다. 이란의 매장량과 하루 생산량은 1376억 배럴(10%)·421만 배럴(5%)이다. 사우디·이란 등 주요 산유국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는 수치다.

한편에선 3차 오일쇼크 가능성을 점친다. 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는 “리비아 사태가 사우디 등 다른 중동국의 원유 생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국제유가는 배럴당 150달러까지 상승할 전망”이라고 경고했다. ‘미스터 둠’ 누비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중동문제가 사우디 등 다른 국가로 전이되면 유가는 배럴당 140~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했다. 유가가 150달러까지 오른다는 건 이번 위기의 파급력이 2008년 석유파동을 능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2008년 7월 중순 WTI 유가는 145달러, 브렌트·두바이유 가격은 144달러·140달러까지 치솟았다).

관건은 골드먼삭스와 루비니 교수가 지적한 대로 ‘중동·아프리카 민주화 운동이 사우디·이란 등 주요 산유국에 확산되느냐’다. 이코노미스트가 중동·아프리카 전문가 15명에게 질문해 얻은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100%가 “민주화 분위기는 사우디·이란에 전이될 것”이라고 밝혔다.



1·2차 오일쇼크와 지금은 달라근거는 뭘까. 왕정국가인 사우디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만4776달러, 물가상승률은 4%로 안정적이다. 하지만 10%가 넘는 실업률이 문제다. 20~29세 청년실업률은 더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철형(세계지역연구센터 아중동팀) 전임연구원은 “사우디의 청년실업은 사회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더구나 사우디는 민주화 운동이 불붙은 예멘·오만·바레인과 붙어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인남식 교수는 “바레인과 예멘에서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점은 사우디 왕정으로선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제인 이란의 1인당 GDP는 5550달러에 불과하다. 실업률은 13%,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에 달한다. 중산층의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최영철 연구위원은 “2009년 6월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의 대도시 투표율은 20~30%에 그쳤다”며 “그만큼 젊은 층의 불만이 내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불만이 많으면 시위 가능성이 큰 법. 실제 2월 중순께 테헤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홍미정 연구교수는 “이란의 시민의식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변화가 온다면 파급력이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 비춰 보면 사우디·이란은 안전지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선 따져 봐야 할 게 있다. 민주화 바람이 혁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튀니지·이집트처럼 사우디·이란의 반정부 세력이 독재자를 물리치고 정권을 무너뜨리느냐는 거다. 만약 그렇다면 3차 오일쇼크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1·3위 산유국인 사우디·이란 정권이 무너지면 지정학적 불안감은 더 커지고, 유가는 급등할 게 뻔하다. 반대로 민주화 바람이 체제전환 봉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오일쇼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1·2차 오일쇼크도 이란 등 주요 산유국의 정세가 급변하면서 터졌다. 1973년 1차 오일쇼크의 이유는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제4차 중동전쟁이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의 상황도 비슷하다. 회교혁명에 성공한 이란은 1978년 12월 27일 석유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여기에 OPEC가 자원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국제유가를 끌어올렸다. 비슷한 시기에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도 이유였다. 1·2차 오일쇼크의 배경은 급변하는 정세였던 셈이다.

중동·아프리카 전문가 15명 중 13명은 “사우디·이란에서 민주화 운동이 시작돼도 튀니지·이라크·리비아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일쇼크는 기우”라고 답했다. 사우디·이란의 정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오일쇼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한국외대 유달승(이란어과) 교수는 “사우디의 민주화 운동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정상률 연구원도 “시위나 개혁 요구는 잇따르겠지만 왕정 자체를 부정하거나 왕정을 교체하는 수준까지 발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김정명 연구원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슈라위원회(사우디 의회)의 직선제 관철, 여성의 정치 참여 등을 촉구하는 정치개혁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라며 “이런 운동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이란도 사우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부 정세 변화는 미미할 전망이다. 이란은 어찌 됐든 공화정이다. 여야가 파워게임을 하면서 균형을 맞춰 왔다. 반정부 세력의 계층도 혁명을 일으키기에 적당하지 않다. 인남식 교수는 “이란은 계층 구분이 확실하다”며 말을 이었다. “저소득층은 현 정권을 신뢰하고 있다. 이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은 못사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대폭 나눠주는 전략을 쓴다. 저소득층의 불만은 크지 않다. 이란의 반정부 세력은 지식층이다. 이들은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반서방 전략을 쓰는 탓에 이란이 성장하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 민주화 운동은 아래로부터 불붙어야 성공한다. 이란의 반정부 세력 계급은 혁명 주체가 되기 어렵다.”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수만 명의 시위대가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금상문 연구교수는 “이란에서도 시위가 발생하겠지만 혁명으로 이어지긴 불가능하다”며 “이란에선 장기독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이란의 정세를 보면 민주화 바람이 혁명으로 바뀌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중동 전문가가 오일쇼크 가능성을 낮게 평가한 까닭이다.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사우디·이란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는 세력은 1·2차 오일쇼크 때처럼 석유 무기화를 꾀하지 않는다. 중동의 경제적 이익만 추구하는 아랍민족주의 세력은 더더욱 아니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최창모 소장은 “중동·아프리카 민주혁명의 취지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합리적으로 찾으면서 잘살아 보자는 것”이라며 “오일쇼크가 산유국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점은 그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건국대 중동연구소 최영철 연구위원은 “최근 등장한 반정부주의자는 유가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고, 과격한 세력도 아니다”며 “트위터 등 SNS를 활용하는 젊고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송유관 및 주요 석유 생산시설 파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카다피 리비아 최고지도자는 예외다. 카다피는 원유를 이용해 벼랑 끝 탈출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철형 전임연구원은 “카다피의 송유관 파괴 협박은 ‘살기 위한 전략’이지 ‘석유 무기화’를 추진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사우디·이란 흔들리면 세계 경제 긴장모드유가를 결정하는 변수는 많다. 원유 수급, 지정학적 불확실성, 기후에 따른 에너지 소비량 변화, 달러가치 등이다. 올 들어 유가가 상승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중동·아프리카의 불확실한 정세 때문만으로 볼 순 없다. 무엇보다 이상저온으로 에너지 소비량이 늘었다. 유가는 상승 압력을 받았을 거다. 약(弱)달러가 계속되면서 투기자금이 원유 등 원자재에 몰린 것도 이유다.

하나대투증권 조용형 연구원은 “2011년 유가가 오를 거라는 전망은 중동·아프리카 민주화 혁명이 터지기 전부터 있었다”며 “중동·아프리카를 둘러싼 불안한 심리가 유가를 빠르게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맞다”고 말했다. 박철형 전임연구원은 “리비아 사태가 해결되면 유가가 빠르게 내려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인남식 교수는 “지금의 유가 상승은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 시나리오가 펼쳐졌기 때문”이라며 “물리적으로 원유시장의 기초체력이 나빠진 건 아니다”고 말했다.

국제 원유시장은 사실 안정적이다. 원유수급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올 1월 국제석유재고량은 71억 배럴을 넘어섰다. 2007년 1월보다 5억 배럴 많은데, 한국이 200여 일 사용할 수 있는 원료량과 비슷하다. 이 중 전략비축유는 올 1월 17억6600배럴로, 2007년 1월보다 1억 배럴가량 늘었다. 유가가 급등하면 적절하게 방출할 수 있는 재고량을 갖춘 셈이다. 재고량이 증가한 반면 원유소비량은 크게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에너지전문리포트 OIM에 따르면 올 1월 세계 원유소비량은 8712만 배럴로 추정된다. 1년 전인 2010년 1월보다 불과 2% 늘었다. 하이투자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선진국의 원유 재고 수준과 OPEC의 유휴 원유 생산능력을 고려할 때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은 작다”며 “특히 올해 원유 소비 규모가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돼 수급은 안정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오일쇼크에 대비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중동·아프리카 정세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오일쇼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 전문가도 있었다.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서정민(중동아프리카학과) 교수는 “사우디·이란의 민주화 운동이 빠르게 전개되지 않을진 몰라도 언젠가는 튀니지·이집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지만 고유가가 지속되면 오일쇼크가 터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오일쇼크 대비책 갖춰건국대 중동연구소 송경근 연구위원은 “사우디·이란이 흔들리면 세계경제는 긴장 모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물론 1973, 79년 오일쇼크 때만큼 충격파가 크진 않겠지만 오일쇼크에 대비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유가 변수에 대응할 힘이 없다. 대중동 원유 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 중동·아프리카 정세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일본처럼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검토하는 등 수급의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 최창모 소장은 “유가가 오르면 한강 다리에 불을 끄는 식의 전략은 미봉책일 뿐”이라며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원유 대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유가가 오르면 경제는 역동성을 잃는다. 소비자가 석유 관련 제품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당연히 다른 소비가 위축된다. 기업은 생산비용이 늘어나고 이익이 감소해 투자 의지를 잃는다. 유가 상승은 또 제품 가격을 올려 물가상승과 금리상승을 유도한다. 소비자는 다시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오일쇼크가 터지지 않아도 우리는 원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유(油)비무환’이 절실한 때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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