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으로 마라톤 인생 뛸래요`

3월 20일에 열린 서울 국제마라톤대회 마스터스 부분에서 버징고 도나티엔씨(34)가 2시간 27분 33초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브룬디 출신의 난민으로 불과 두 달 전에 한국인으로 귀화했다.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김창원이란 한국 이름이 또렷하다. “귀화 후 처음으로 마라톤대회에 참가했는데 1등을 했다”며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밝은 웃음 뒤에는 지난 날의 그늘이 있다. 두 번의 응시 끝에 결국 귀화시험에 합격했지만 국적법상 자국대사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국적포기 절차 때문에 애를 먹었다(당시 국적법으론 주민등록증 발급에 앞서 본국 대사관이나 정부를 통해 원 국적포기 절차를 거쳐 증명서를 내야 한다).
한국에는 브룬디 대사관이 없을뿐더러 브룬디가 오랜 내전을 치러 증명서 발급을 기약할 수 없었다. 더욱이 귀화 허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어렵게 취득한 한국 국적이 상실되기 때문에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천만다행으로 올해 초 이중국적 허용으로 국적법이 개정된 덕분에 그는 외국에 있는 브룬디 대사관을 찾아가는 등 복잡한 절차 없이 주민증을 발급받게 됐다. 김씨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마라톤을 뛰면서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인생을 설계하면서 늘 한국인이 되길 꿈꿔 왔어요. 하지만 귀화는 신청만 하면 쉽게 되리라 생각했지만 시험이 녹록하지 않더라고요. 공부하면서 밤을 새우기 일쑤였죠.”
김씨는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육상경기대회 참가자격으로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난민신청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서울행을 결심했다. 1993년 브룬디 내전 중 부모님을 여의고 생활도 궁핍해졌기 때문이다. 수도 부줌부라에 있는 국립 부룬디 대학을 다니던 중 난민신청을 결심했다. 평소 알고 지낸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에서 난민신청이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출입국관리소에서 난민신청을 하고 난 뒤 을지로의 한 인쇄소에서 직장을 얻었어요. 80만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주말마다 외국인상담센터를 찾아가 틈틈이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고요.”
마라톤 선수 출신이라 마라톤동호회에 가입해 일요일마다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새벽에 운동하고 오전 10시에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가 오후에 한국어 공부를 계속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고 그가 말했다.
도나티엔은 마라톤 마스터즈 부문에서 국내 최고기록 2시간 18분 17초를 내기도 했다. 한국에 온 뒤로 현재까지 30여 차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2005년~2007년 서울 중앙마라톤 마스터즈 부분에서 세 차례 우승하는 등 웬만한 대회는 다 휩쓸었다. 그런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마라톤 기업’이라고 불리는 자동차 부품업체 (주)현대위아의 김평기 회장의 눈에 띄어 2005년부터 경남 창원의 현대 위아에서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동차 엔진부품을 중국, 인도 등으로 수출하는데 필요한 통관서류를 작성하고 확인하는 업무를 본다.
요즘 김씨는 회사 다니랴 운동하랴 대학에서 공부하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경남대 경영학부에 3학년으로 편입해 야간대학을 다닌다. 브룬디 대학의 학력을 인정받아 장학금도 받는다.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정말 신나게 살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잖아요. 브룬디에선 학생들이 시험과 상관없이 꾸준히 공부하는데 한국 학생들이 실컷 놀다가 밤샘 공부를 하는게 신기해요.” 그는 대학원에 진학해 무역학을 공부할 작정이다.
그는 최근 중동에 불기 시작한 민주화 혁명에도 관심이 많은 듯하다. “내전 후유증이 사라진 평화로운 브룬디를 언젠가 방문해 보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난민 자격을 얻기까지 고생 좀 했어요. 하지만 귀화는 더 어렵더군요. 은행잔고와 토지나 아파트 소유 등을 증명해야 하는데 수입이 적으면 귀화가 쉽지 않아요.” 그는 “난민 신청자를 돕는 교육프로그램도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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