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준엽의 그림읽기>> 담배를 문 고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서양화가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드라마틱한 자살로 예술을 위해 순교한 화가상을 보여줬다. 또 자신의 예술혼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화가의 로망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불꽃같은 고흐의 짧은 삶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향기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불꽃처럼 타올랐던 그런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또 향기에는 무슨 냄새가 배어 있을까. 지독히도 운이 없었던 무명 화가의 비참한 삶의 냄새가 아닐까.
그러나 고흐가 진가를 인정받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가가 됐고 그런 만큼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고흐의 부가가치는 세월의 더께만큼 두꺼워질 것이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은 왜 그토록 고흐의 그림에 열광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창적 기법으로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고흐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유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기법인데, 유화의 물질적인 맛을 살려 생동감을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인 기법이었던 것이다.
고흐에게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은 내부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영감을 순식간에 그리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그의 그림은 가까이에서 보면 사물의 형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물감 덩어리가 거칠게 엉겨 있는 추상화같이 보인다. 그런데 그림에서 멀어지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밭과 나무, 흘러가는 구름과 쏟아지는 별빛 그리고 강물에 흔들리는 불빛이 나타난다. 그래서 고흐 하면 금방 그려낸 것 같은 생생한 물감의 맛과 화면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그림은 낯설다. 이게 고흐 그림일까 하는 의구심까지 든다. 소재가 생경하고 색채나 붓질에서도 고흐의 냄새를 찾기가 어렵다.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5년이 지난 뒤(1885년 작) 그린 것이니까. 화가의 삶으로만 치면 중기에 해당되는 작품이다(고흐는 1880년 화가로 출발해 1890년 생을 마쳤다).
앤트워프에서 그렸는데, 해부학 교실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해골을 보고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대도시였던 앤트워프에서 새로운 창작의 길을 모색해 보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미술 아카데미에 다녔지만 워낙 독창적 방법으로 그렸기 때문에 초보자 과정에서 낙제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 그림은 그런 시절의 비참한 심정을 담은 그림인 셈이다. 당시 고흐는 건강까지 심하게 악화돼 있었다고 한다. 매독과 충치 그리고 영양부족으로 위장병까지 앓고 있었다. 현실적안 절망에다 몸까지 그 지경이었으니 죽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해골이 보여주는 죽음의 이미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기에 담배까지 피우고 있으니 금연 홍보용 이미지로 쓰면 딱 좋을 그림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앤트워프 시절 심정을 절절히 담은 탓인지 고흐가 꽤나 아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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