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9구단 어디로 >> 첫 단추는 잘 끼웠다
프로야구 제9구단 어디로 >> 첫 단추는 잘 끼웠다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이하 엔씨)가 4월 1일 창단 깃발을 올렸다. 엔씨는 축포를 터뜨렸지만 주변 반응은 달랐다. ‘게임업체가 왜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이 의문은 엔씨를 몰라서 나온 것이다. 아니 게임업계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옳다.
프로야구와 게임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국내 유력 게임업체 넥슨은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단 지바 마린스(롯데)를 후원했다. 마린스의 4번 타자는 한화 이글스 출신 김태균이다. NHN 한게임은 시뮬레이션 게임 ‘야구9단’을 서비스하고 있다.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의 초상사용권(퍼블리시티권)을 재판매한다. CJ E&M과 네오위즈게임즈는 각각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와 ‘슬러거’로 인기를 얻고 있다. 국내만 그런 게 아니다.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는 미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를 소유하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일본 최고의 안타 제조기 스즈키 이치로가 소속된 구단이다.
1년 순이익의 20% 쏟아부어야이런 맥락에 비춰볼 때 엔씨가 프로야구판에 뛰어든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엔씨의 목표는 그만큼 뚜렷하다. 엔씨 윤진원(홍보팀) 팀장은 자신들이 프로야구단을 창단하는 이유를 회사 이니셜까지 예로 들며 자세히 설명했다. “엔씨는 ‘Next Cinema’의 약자다. 영화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리니지(엔씨의 대표적 온라인 게임) 등으로 온라인에선 나름 역할을 했으니 이젠 영화보다 즐거운 프로야구로 승부를 걸겠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영역에서도 엔씨의 위력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윤 팀장은 “게임회사답게 IT 기술력을 프로야구단에 접목하겠다”고 말했다.
엔씨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파르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먼저 KBO(한국야구위원회)에 창단 가입금을 납부해야 한다. 최소 100억원 이상 들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재창단한 SK와이번즈는 250억원, 2008년 창단한 넥센히어로즈는 120억원을 냈다. 선수·코칭스태프·프런트 직원의 연봉, 홈구장 대여료, 마케팅 비용 등 구단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매년 200억~3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춰 보면 엔씨는 한 해 남긴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을 프로야구단에 쏟아부어야 한다. 지난해 엔씨의 당기순이익은 1738억원이었다.
한맥투자증권 김유은 연구원은 “엔씨의 실적을 감안할 때 프로야구단을 창단해도 기초체력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의 재무제표를 보면 맞는 말이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프로야구단 창단으로 엔씨의 이익이 감소하면 자연스럽게 재투자 실탄(돈)도 떨어진다. 해마다 수많은 새 게임이 쏟아지는 게임업계에서 재투자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투자 실탄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엔씨의 행보에 불안한 시각이 쏟아지는 이유다. 엔씨 관계자는 “장기적 안목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김유은 연구원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에 대해 게임 중독 등 부정적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인식을 프로야구단 창단을 통해 쇄신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프로야구 인기가 날로 높아지면서 기존 구단 수익성이 개선된다는 점도 엔씨로선 긍정적이다.” 프로야구단을 잘 운영하면 엔씨의 승부수는 통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엔씨 구단의 성적이 좋으면 모든 우려를 없앨 수 있다. 엔씨가 연고지로 발표한 경남 창원의 분위기도 좋다. 창원이 고향인 대기업 관계자는 “제9구단 창단을 반대하고 지난해 7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이대호를 홀대한 롯데에 등을 돌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창원의 야구 열기는 부산보다 뜨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제9구단 창단으로 2000여억원의 지역 경제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엔씨 구단이 야구를 잘할지 의문이다. 벌써 선수 수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프로야구 규약에 따르면 신생 구단은 기존 8개 구단이 지정한 보호선수(20명)를 제외한 선수 중 1명을 영입할 수 있다. 2년 동안 신인 드래프트에서 2명을 우선 지명할 수 있다. 외국인 선수는 기존 2명에서 1명이 늘어난 3명을 1년간 등록 가능하다.
선수 수급에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크게 다르다. 이런 조치로는 기껏해야 20명 정도만 모을 수 있다. 기존 8개 구단의 선수 규모는 1·2군을 합쳐 60명에 달한다. 엔씨는 2012년 2군에서 팀 전력을 정비한 다음 2013년 1군에 입성할 계획이지만 현재로선 좋은 성적을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신생 구단의 팬 충성도는 낮다. 처음엔 열광할지 몰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곧바로 이탈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게임업계 승부사 프로야구에서는…제9구단 구단주이자 엔씨의 수장인 김택진 대표가 기존 8개 구단에 낮은 자세를 취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월 31일 창원에서 열린 제9구단 승인식에서 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가급적 빨리 1군에서 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를 위해선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엔씨가 1군에 들어가 야구가 재미없어졌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기존 8개 구단의 협조와 대승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게임업계에서 승부사로 통한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개념조차 흐릿하던 온라인 게임에 몸을 던져 벤처기업의 신화로 떠올랐다.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도 엔씨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엔씨의 매출은 2008년 2402억원에서 2010년 5147억원으로 114% 늘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5.5배(2008년 456억원→2507억원)가 됐다. 엔씨의 시가총액은 5조5719억원으로, 유가증권시장 52위(4월 8일 현재)다.
이런 김 대표가 생애 둘째 승부수를 던졌다. 무대는 프로야구다. 만화 『거인의 별』을 보고 야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는 그는 신명 나는 프로야구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론 어렵다. 야구는 구단주의 머리와 아이디어로 하는 게 아니다. 선수가 한다. 구단주의 아이디어가 제아무리 좋아도 선수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은 차원이 다르다. 김 대표와 엔씨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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