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째깍째깍 시한폭탄이 다가온다

영화 007시리즈, 다이하드 같은 액션영화나 아테나·아이리스같은 첩보 드라마를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품 중 하나가 시한폭탄이다. 미리 정한 폭파 시각을 향해 째깍째깍 흘러가는 시간이 긴장을 고조시킨다. 시한폭탄을 제거해야 하는 주인공의 얼굴에는 땀이 맺힌다.
결정의 순간. 가위를 손에 쥔 주인공은 빨간 선과 파란 선 중 어떤 선을 잘라야 할지 고민한다. 긴장을 고조하는 음악이 흐르고 결국 주인공은 잘라야 하는 선을 결정한다. 그 선을 자르려는 순간 영화에 깔려 있던 복선을 기억해내고는 선택을 바꾼다. 깊은 숨을 몰아 쉰 다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른 색 선을 자른다. 그리고 째깍거리는 시계는 멈춘다.
시한폭탄은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 폭발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시계를 이용하는 전통적 폭탄, 약품이 일정한 시간에 반응하도록 만든 화학적 장치가 설치된 폭탄, 멀리서 조종해 폭발하도록 하는 전자파 장치로 만든 폭탄 등 다양하다.
국민연금의 뇌관은 노령화종류도, 폭발력도 다양하지만 시한폭탄은 다른 폭탄과 다른 특징이 있다. 일정한 시간이 흘러 정해진 시각이 돼야 폭발한다는 것이다. 폭발이 예정된 시각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터지기 전에 위험을 제거한다면 어떤 피해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 때문에 시한폭탄은 폭발시간이 임박하기 전에는 아무런 긴장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시한폭탄이 나오는 장면은 항상 폭발 몇 분, 몇 초 전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객은 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한폭탄이 존재한다. 세대 간 갈등, 빈부격차 심화, 지나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해체돼 가는 가정의 모습 등 시한폭탄 같은 수많은 문제와 이슈가 있다. 터지기 전에 빨리 뇌관을 제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큰 피해를 주게 될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자산운용 수익률이 아니라 인구 구조의 문제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출산율이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 끝이 보이는 시한폭탄이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보험금을 수령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가는 흐름 속에서 정확한 폭발 시각을 모를 뿐이지 점점 폭파 시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수많은 전문가가 위험을 경고하고 국민연금 개정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를 긴장시키지 않고 지금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영화 속에서 파란 선과 빨간 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관객이 느끼는 긴장을 우리 사회가 갈등과 우려 속에서 느끼게 될지 모른다.
자산시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한폭탄은 부동산 버블과 대출의 증가다.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여력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올라만 가는 주택가격은 언젠가는 터질 시한폭탄이다. 그런 시한폭탄이 글로벌하게 터진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다. 사람들은 저금리로 대출해서 집을 샀고, 집을 사고 나면 주택가격은 또 올라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탐욕에 물든 금융회사는 대출자의 신용과 상관없이 대출해주면서 이자 챙기기에 바빴다. 어느 순간 집값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고 대출이자를 갚을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나면서 폭탄은 터지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여러 규제 장치 덕분에 내부 충격이 크지 않았지만 미국·아이슬란드 등 수많은 나라가 겪은 고통은 매우 심각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가정경제에도 시한폭탄이 존재한다.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에 집중돼 있고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100%가 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은 변동금리 대출이다. 금리가 오르면 더 이상 버티기 힘든 가정이 많다. 그런데 금리는 꾸준히 오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은 이자만 갚는 거치기간이 끝나는 다른 은행 고객을 유치하려는 경쟁에 몰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은행의 추천상품은 변동금리 대출상품이다. 말 그대로 폭탄 돌리기다.
거치식 시한폭탄, 변동금리 시한폭탄이라고 표현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고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은 아슬아슬하다. 원금은 전혀 갚지 못하고 이자만 갚아나가는 상황에서 금리가 오르거나 직장을 퇴직하거나, 집안에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면 여지없이 터져버릴 수 있다.
가계의 시한폭탄은 한계에 처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보통 사람에게도 폭발 시각이 혹 그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점이 있다. 대학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느라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1000만원이 넘는 대학 등록금을 납입해야 할 때, 준비 없이 회사를 퇴직하고 은퇴자로서 살아가야 할 길고 긴 삶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런 날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시점이다. 그리고 자산이 많은 부자 가운데도 미리 상속·증여 계획을 수립해 놓지 않은 사람들은 곧 상속세라는 시한폭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시간 제대로 활용하면 폭발 막아우리가 안고 있는 시한폭탄의 피해가 얼마나 클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미리 준비한 경우에는 미미한 폭발 사고로 그칠 수 있고, 대피 장소로 대피해 피해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나 개인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대규모 폭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시한폭탄에 대비하는 방법은 먼저 시한폭탄의 존재를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서 째깍거리며 돌아가는 시한폭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가정이 안고 있는 재정적 문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다가올 위험이 무엇인지 조금만 노력하면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에는 도망가든지 직접 해체하든지, 폭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다가오는 위험에 대처하는 수단을 찾아야 한다. 대출을 줄이기 위해 집을 팔 수도 있고, 자녀 사교육비를 줄일 수도 있고, 맞벌이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활용해 꾸준히 저축하고 투자할 수도 있다. 평생 현역으로 사는 방법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시한폭탄의 유일한 해결책은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한폭탄의 특징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 준비하고 대비해 나갈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시한폭탄의 위험은 점점 커져간다. 더 늦기 전에 시한폭탄 제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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