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운용이 만난 명사들 >> 신치용 삼성화재 배구단 감독

신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부산에서 제일제당 배구선수로 뛰고 있을 때였다. 당시 신 감독은 부산 성지상고 배구부 학생이었다. 고향도 가까워 지금까지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시즌 신 감독에게 연락을 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해 챔피언인 삼성화재는 2라운드에서 3승9패 꼴찌로 곤두박질쳤다. 만남은 고사하고 전화를 걸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신 감독은 보란 듯이 팀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13번째 우승이었다. 그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김운용 올해 유난히 어려웠던 시즌 같았습니다.
신치용 챔피언전 우승하고 새벽에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당신, 정말 대단하다’고 해요. 그동안 13번 우승했는데 집사람에게 칭찬 받은 건 처음이었어요(웃음). 그만큼 이번 시즌이 어려웠어요. 선수들 부상도 많았고 분위기도 침체돼 있었죠.
김운용 선수들을 어떻게 독려했습니까?
신치용 일단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였어요. 2라운드에서 꼴찌가 됐을 때 선수들에게 말했죠. ‘지금 난 챔피언 결승전을 꿈꾸는데 너희들은 무엇을 생각하느냐? 난 여태까지 챔피언전에 못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올해도 나갈 거다’라고요. 남은 라운드를 4승2패씩 하면 된다고 했어요. 처음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수들도 해보자는 의지를 보이더라고요.
김운용 그래서인지 3라운드부터는 완전히 바뀐 거 같아요.
신치용 탄력이 붙은 겁니다. 부상 당한 주전들 자리를 후배들이 그렇게 잘 메워줄지 몰랐어요. 경기는 흐름이거든요. 그 흐름이 챔피언전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시즌 중에 그렇게 잘했던 대한항공 보세요. 챔피언 결승전에서 저희에게 맥없이 무너졌죠. 흐름을 놓친 거예요. 이번에 마스터스 경기도 마찬가지입니다. 3라운드 내내 1위를 달리던 로이 맥길로이가 마지막에 갑자기 무너졌잖아요.
김운용 결승전에선 실력만큼 정신력이 중요하지요.
신치용 처음부터 4강이 겨루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게 목표였어요. 4강만 가면 우승할 자신이 있었어요. 결승전은 정신력과 에이스의 싸움이에요. 포기하지 않는 삼성화재만의 팀 컬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운용 가빈이란 용병의 활약이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신치용 가빈의 연습 영상을 봤는데 어설프지만 가능성이 있었어요. 직접 멕시코까지 날아가 경기를 봤는데 괜찮더라고요. 바로 ‘너 나랑 (계약)할래’ 했습니다. LIG와 현대캐피탈에서 테스트를 했고, 거절당했다는 것은 나중에 본인에게 들었어요.
김운용 과거 안젤코도 잘 골랐던 것 같아요. 용병 보는 안목은 어디서 나오나요?
신치용 인품을 중시합니다. 신체조건이나 기량은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잘했다고 폼 잡는 친구는 안 됩니다. 국내에서 실패한 용병들은 대부분 이 때문입니다. 배구는 융화가 중요합니다. 안젤코는 계약금이 10만 달러였어요. 유럽에서 갈 데 없는 친구였어요. 만나보니 힘이 좋고 성실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정도 같이 하니까 애가 이상해지더라고요(웃음). 선수랑 자꾸 부딪치고 오만해지고. 그래서 가라고 했어요.

자기 잘났다 폼 잡는 선수는 안 돼
한국에 프로배구가 등장한 건 2005년이다. 삼성화재 블루팡스(대전), 현대캐피탈 스카이웍스(천안), 대한항공 점보스(인천), LG화재 그레이터스(구미) 등 프로 4개 팀과 한국전력, 상무 등 6개 팀이 참가했다. 대회는 보통 12월 초부터 다음 해 4월 중순까지 치러지며, 정규 시즌 동안 5라운드가 진행된다. 정규리그 1~4위 팀이 포스트 시즌에 출전해 챔피언전을 치른다. 이번 삼성화재의 경우 3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LIG, 현대캐피탈, 대한항공과 총 10경기를 한 후 최종 우승했다. ‘가빈화재’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화제가 된 가빈은, 경기당 평균 48점으로 팀 공격의 70%를 책임지며 2년 연속 MVP를 차지했다.
김운용 가족 모두 운동선수로 유명합니다.
신치용 아내와는 태릉선수촌에서 만나 연애했습니다. 국가대표 감독을 하면 몇 달씩 출장을 가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이해 못했을 거예요.
김운용 가족들도 선수들만큼이나 신경 쓰시나요?
신치용 아내가 ‘당신은 감독으로선 인정하는데, 가정에선 별로야’라고 하더군요(웃음).
신 감독은 농구선수 출신인 아내 전미애씨와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둘째 딸은 얼짱 농구선수로 유명한 신혜인이다. WKBL 여자 프로농구 신세계 쿨캣에서 뛰던 그녀는 건강상 이유로 은퇴했다. 삼성화재 라이트로 뛰는 박철우와 연인 사이다. 박 선수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부터 교제했다고 한다. 라이벌 팀인 현대캐피탈 주전선수와 삼성화재 감독 딸이 연인 사이로 알려지자 배구계에선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다.
김운용 둘째 딸도 운동선수였는데 잘 지내세요?
신치용 선수를 해봤기 때문에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줍니다. ‘아빠, 이럴 땐 영화 한번 보러 가게 하고, 시원하게 외박도 한번 시켜줘’라고 충고해요. 그럼 선수들이 감동해 더 잘할 거라나. 특히 우리 팀에 친구(박철우)가 있다 보니 팀 분위기를 잘 압니다.
김운용 아버지로서 박철우 선수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치용 큰딸 말로는 내가 아무리 반대해도 결혼할 사이라고 해요(웃음). 결혼할 거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기에, 딱 한마디만 해줬어요. 운동선수 그만두면 다 아빠처럼 감독하는 거 아니다(웃음). 난 천운을 타고났다고. 딸이 지금 교육대학원을 준비 중인데, 일단 교사 될 준비나 하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안 되면 자기가 먹여 살려야겠죠.
김운용 지도자 생활 하신 지 꽤 됐는데 얼마나 되셨죠?
신치용 한전에서 12년 코치로 있었고, 삼성화재 창단 코치로 시작해 17년째 접어듭니다. 그러다 보니 제자가 많아요. 이번에 우리와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나머지 3팀 중 현대캐피탈을 제외하고 대한항공과 LIG 감독이 모두 제자였어요.
김운용 결승에서 대한항공과 만났는데, 봐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요?
신치용 4대 0으로 이긴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2게임 정도는 져줬겠죠(웃음). 그런데 이긴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럴 수 없죠.
김운용 김호철 감독(현대캐피탈)과는 선수 시절도 같이 뛰었어요. 라이벌 의식을 느낍니까?
신치용 언론에서 몰고 가서 그렇지, 라이벌 의식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친했던 선후배가 막상 감독이 되면 서로 말을 안 하게 돼요(웃음). 사실 제가 17년 동안 감독을 하면서 상대팀은 적어도 4~5번씩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잘하다 보니 상대팀 감독이 바뀌는 거고, 결국 저 때문에 잘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김운용 삼성은 예전부터 스타군단으로 유명했죠. 스카우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아요.
신치용 사실 스카우트야말로 진짜 게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듯 ‘돈’ 게임이 아니라 ‘정성’ 게임이지요.
김운용 신진식 선수를 두고 벌인 스카우트 전쟁도 유명했지요.
신치용 당시 신진식을 스카우트했을 때 많은 사람이 삼성화재가 돈으로 굴복시켰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신진식에게 1년 내내 공을 들였어요. 신진식 선수가 현대로부터 계약금을 받았지만 계약서에 사인은 안 했어요. 저는 입단서를 내기 며칠 전부터 시내 호텔에 신진식을 데리고 잠수했어요. 마감 5분 전에 가서 원서를 접수했죠.
김운용 말 그대로 스카우트 전쟁입니다.
신치용 당시엔 대학 감독 입김이 대단했어요. 전 대학 감독을 졸졸 따라다녔지요. 어디 출장을 다녀오면 공항에서 기다리다 납치하다시피 술집으로 모실 때도 많았어요. 나중에 집까지 쫓아갔죠. 이제 귀찮으니 그만 가라고 할 때야 집으로 왔습니다.
김운용 삼성화재에도 위기가 있었죠?
신치용 리그 9연패를 하다 현대캐피탈에 두 번 연속 질 때였어요. 삼성화재가 맛이 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죠. 김세진, 신진식 등 주전들의 노화와 부상이 부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감독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김응용 감독 18년 기록 깨고 싶다
김운용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신치용 지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꿨어요.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을 땐 제가 압박해 눌러줘야 했습니다. 삼성 사관학교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이유입니다. 그런데 김세진, 신진식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가고 나니 밑에 있던 선수들이 자신이 없어 불안해하는 겁니다. 전 뒤에서 펌프질하고 부채질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선수들에게 창의력이 생기고 어려울 때 돌파하는 힘이 생겼어요. 스타플레이어에게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으로 하게 되는 거지요.
김운용 곧바로 다음 시즌에 다시 우승하셨죠?
신치용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제가 배구 감독을 한 후 가장 좋았던 일이 세 번 있었는데, 첫 번째가 창단 첫해 우승한 것이고 두 번째가 그때 우승입니다. 세 번째는 이번에 1등 했을 때입니다.
김운용 창의력만으로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까?
신치용 자기 절제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선수가 훈련을 게을리해선 안 됩니다. 비시즌 때도 저희는 항상 오전 6시50분에 출근합니다. 오면 체중 달고 7시10분에 식사하지요. 훈련하다 부족한 게 나오면 그날 저녁에 보충 훈련을 합니다. 이런 건 시켜서 하는 게 아닙니다. 훈련할 때 집중력이 떨어지면 전 훈련을 중단시킵니다. 그러면 선수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불안해합니다.
김운용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건 무엇인가요?
신치용 겸손하고 열정을 가지라는 거예요. 이번 결승전에서도 3연승을 하고 네 번째 게임에 들어갔을 때 선수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오늘 경기로 끝날 것’이라고 했어요. 평소에도 좋은 경구나 이야기가 있으면 아침에 선수들에게 나눠줘요. 요즘 이야기한 건 ‘영웅을 벨 칼은 영웅 속에 있다’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오만하지 말라는 거죠. 골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김운용 골프를 잘 치는 걸로 유명하세요.
신치용 어제 연습장에 갔더니 잘 맞더라고요. 필드에 못 나가고 계속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서 그랬나봐요. 사실 시즌 중에 전혀 못 치니까요. 시즌 끝나고 치면 백돌이로 시작해요. 그러다 90대, 80대로 가죠. 작년에 마지막에 나갔을 때는 81개를 쳤어요. 지금 공식 핸디캡은 12개입니다.
신치용 골프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요?
김운용 골프장에 가면 일단 스트레스가 풀려요. 승부욕도 해결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점을 찾는 게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김운용 시즌도 끝났는데 무엇을 할 예정인가요?
신치용 제가 사실 선수들을 집에 못 오게 합니다. 과거 현대캐피탈에 두 번 지고 다시 우승했을 때 처음 선수들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이번에도 초청해볼까 합니다.
김운용 감독으로서 아직도 꿈이 있으시다면?
신치용 지금까지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오래 한 감독이 김응용 전 해태 야구 감독입니다. 18년을 하셨지요. 제가 올해 17년째인데 그 기록을 깨고 싶어요.
김운용 은퇴 후 계획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신치용 30년 배구 현장에 있었으니 행정 쪽에서 일하고 싶단 생각이 자연스레 듭니다. 유소년 배구 쪽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재목이 불쏘시개가 되는 게 아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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