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과자 봉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Business] 과자 봉지는 쓰레기가 아니다
서울 가락동 대림아파트는 매주 수요일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한다. 일주일간 모은 과자·라면 봉지 등 비닐을 자루에 넣던 주부 최명숙(54)씨는 “분리해 버리고 있지만 솔직히 어떻게 재활용되는지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에 따르면 2009년 과자·라면 봉지 등 필름형 포장재 출고량은 12만1961t. 이는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에 포함된 품목만이다. 2010년부터 품목에 포함된 1회용 봉투, 셔츠 등 옷을 싸고 있는 비닐, 전자제품이나 컴퓨터를 싸고 있는 비닐 등은 제외됐다.
협회는 회원 가입된 재활용 사업자에게 이 분담금을 나눠주면서 재활용 처리를 의뢰한다. 과자봉지·라면봉지 등 필름류를 포장재로 사용하는 생산자가 협회에 내는 분담금은 170억6896만원 정도다.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에 가입된 생산 회원사는 2000 곳 정도. 이 중 80% 이상이 필름류를 배출한다. 협회에 가입해 필름을 재활용해 처리하는 업체는 60곳 이상이다.
이렇게 배출되는 포장재는 크게 세 갈래로 활용된다. 재생플라스틱이나 RPF(Refuse Plastic Fuel·고형 연료), 또는 재생유류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재생유류 제조는 아직 수율이 낮고 사업성이 떨어져 본격적으로 하는 업체가 없다.
어디서 제품을 볼 수 있느냐는 물음에 중부산업자원 허태영(45) 대표는 “도로 옆에 놓는 큰 화분”을 꼽았다. 충북 괴산에 있는 이 회사는 전남 여수시 도로, 지자체 축제 때, 경기도 광명시 공영주차장 등에 화분을 납품했다.
이 밖에 아파트 배관 보호 설비, 방음벽 위 기와 모양 장식물 등을 생산한다. 하지만 이 회사 최대 고객은 골프장. 정식 명칭이 ‘산마루측구’라고 하는 배수로관이다. 산을 깎아 짓는 것이 대부분인 골프장에 콘크리트로 배수로를 만들려면 운반하기도 힘들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이 배수로관은 신축 공장이나 아파트, 가정집을 지을 때도 쓰인다. 허 대표는 “배수로관을 가끔 소 여물통으로 쓰겠다며 개별적으로 사가는 사람도 있다”고 웃었다.
과자 봉지 등 복합필름은 알루미늄,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등 여러 소재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이 회사가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와 계약한 물량은 연간 1200t. 이 중 200t 정도는 고무장갑 등 재활용되지 않는 재질이 섞여 있거나 물 등이 묻어 있어 손실돼 1000t 정도가 제품화된다. 연 매출은 6억6000만원 정도.
이 회사는 하반기 중 복합필름을 활용한 기와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미 3주 전부터 시생산해 여러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열에 잘 견디는지, 강도는 충분한지 등을 꼼꼼히 체크한다.
현재 농촌에서는 지붕 개량이 진행 중이다. 석면이 섞인 소재로 되어 있는 지붕을 교체하는데 지자체에서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는 개발 중인 제품이 “구운 기와에 비해 10분의 1 가격”이라고 말했다. 시공은 하루면 끝난다.
허 대표는 1998년 재활용 사업을 시작했다. 폐필름류를 재활용해 물건을 생산한 것은 2005년. 당시 원료인 필름 확보에 애를 먹기도 했다. 과자·라면 봉지를 분리배출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비닐하우스, 천막, 산업폐기물에서 나오는 비닐을 사용했다.
하지만 양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비닐하우스나 산업폐기물은 흙이나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어 세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2007년 폐필름류가 EPR 품목에 들어가면서 따로 분리배출할 수 있게 되자 이런 ‘원자재난’은 해소됐다. 허 대표는 “원자재난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이물질이 많이 섞여 있다”며 분리배출을 당부했다.
폐필름 중 일부는 재가공해 연료로 사용한다. 이를 RPF라 한다. 푸름리사이클 김경억(52) 대표는 “부지가 좁기도 했지만 민원 때문에 공장을 포천시 설운면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처음엔 폐필름을 연료로 만들려면 이를 녹여야 했다. 이 때문에 가스와 분진이 많이 발생해 인근 주민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공장을 옮기고 맷돌 같은 설비로 폐필름을 분쇄·압축해 만든다.
처음에는 시멘트 업체에서만 RPF를 연료로 사용했다. RPF를 사용하려면 전용 보일러로 바꿔야 했다. 당시 비닐 처리비만 협회 등에서 받고 가공된 원료는 무상으로 시멘트 업체에 지급했다. 따지고 보면 RPF를 시멘트 공장까지 배달해줬으니 물류비용까지 주면서 연료로 제공했던 셈이다.
김 대표는 다른 곳에도 RPF를 사용하길 바랐다. 무상으로 주지 않고 다만 얼마라도 받고 팔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하지만 보일러를 바꾸려면 작은 규모의 공장에서도 10억원 정도 비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석유를 연료로 쓰던 업체, 특히 영세한 곳에서는 선뜻 바꾸지 못했다. 김 대표는 발품을 팔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김 대표는 업계 최초로 시멘트 회사가 아닌 곳에 RPF를 공급하게 됐다. 현재 염색공장에서 RPF를 연료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유가가 많이 오르자 염색공장 사장들이 김 대표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RPF는 ㎏당 7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석유 대비 20~30%밖에 연료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제 시멘트 업체에서도 비용을 지불하고 RPF를 가져간다.
현재 이 업체는 연간 8억~9억원 정도 번다. 이 중 50% 정도는 협회에서 받는 재활용 처리비용이다.
그는 “열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RPF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며 “이르면 6개월, 길면 1년 내 설비비를 다 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EPR제도는 ■
재활용 주체를 사용자에서 생산자로 바꾼 제도다. 재활용 의무 대상 제품이나 포장재를 제조 또는 수입하는 사업자에게 제품 생산량에 비례해 포장재 재활용에 대해 일정량 의무를 부여했다. 매년 환경부는 분야별 다음해 재활용 의무량을 고시한다. 2003년 시행돼 점차 대상 품목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플라스틱자원순환협회 김영각 차장은 “재질이 같은 포장재라도 EPR 대상 품목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같은 플라스틱 재질이라도 세제 통은 EPR 대상 품목이지만, 방향제 통은 대상 품목이 아니다. 이는 재질별로 분류한 것이 아니라 포장재가 감싸고 있는 내용물의 용도에 따라 EPR 품목을 정했기 때문이다. 실제 일반인은 세제 통과 방향제 통을 구분해 분리배출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EPR 의무 대상 품목을 수거할 때 대상이 아닌 품목도 섞이게 된다. 의무량 이상으로 폐필름이 수거되기도 한다. 이를 일일이 분리해 폐기할 수 없기 때문에 의무량 외의 비용도 협회에서 지원한다. 2009년 기준 복합재질 및 필름, 시트형 포장재의 경우 의무량은 5만8053t이었지만 이를 초과한 10만6681t에 대한 처리비용이 협회에서 지급됐다. 초과분 처리비용의 일부는 회원으로 등록한 생산회사가 지게 된다.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박혜정 주무관은 이에 대해 “재활용이 더 활발해지도록 EPR 대상 품목을 단계적으로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수정 기자 palindro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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