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ICIDE 어느 수퍼모델의 죽음
SUICIDE 어느 수퍼모델의 죽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동차가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한 여자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목격자 증언)
2008년 6월 28일 오후 두 시 반.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모퉁이 워터 스트리트.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무더운 뉴욕의 한여름 토요일. 은행원들은 떠나고 거리는 텅 비었다. 도로 한복판에 소녀의 시체만 덩그러니 누웠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자는 러시아 수퍼모델 루슬라나 코르슈노바. “사인은 추락사. 자신이 사는 9층짜리 아파트 옆 건설현장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추정된다. 몸싸움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혈액이나 소변에서 알코올이나 약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메모는 남기지 않았다. 연령 20세. 건물로부터 8.5m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
8.5m라고? 그건 추락이 아니다. 거의 비상에 가까운 도약이다. 그 수퍼모델이 건물 난간에 서서 허공으로 가만히 한 발을 내딛지 않았다. 도움닫기를 해서 날아 올랐다.
모델이라고 모두 똑같지는 않다. 대개는 호리호리하고 중성적인 판박이 인형 같다. 패션쇼 콜렉션을 걸치고 무대를 활보하기에 안성맞춤인 옷걸이다. 그러나 루슬라나처럼 특이한 부류도 있다. 이들은 몸매 비율이 완벽하지 않고 패션쇼 무대 걸음걸이도 어딘가 아쉽다. 하지만 한 제품의 특성을 상징하는 얼굴로 나선다. 루슬라나는 니나 리치가 선보인 “마법적이고 매혹적인 향수”의 얼굴로 이름을 날렸다. 동화 같은 분위기의 그 광고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찰랑거리는 곱슬머리와 경이로움으로 가득한 눈의 루슬라나가 핑크색 무도회 드레스 차림으로 왕궁의 방에 들어선다. 십대 소녀처럼 흥분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녀 앞에 마법의 나무가 있고 나무 꼭대기에 반짝이는 핑크색 사과가 달려 있다. 나무에 기어올라 사과를 향해 손을 뻗는다….
루슬라나는 전부 가진 듯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을까? 그 답을 찾으러 3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 화려하지만 외로운 세계 일류 모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의 자료조사차 뉴욕·런던·밀라노·키에프 그리고 모스크바를 누볐다. 도중에 루슬라나의 친구들 사이에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자살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옛 악의 제국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종착점에 도착했다.
워터 스트리트는 금융지구의 끝자락, 업무 단지와 이스트 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이곳은 저녁이 오면 정적에 휩싸인다. 검은 정장 차림의 은행원들이 귀가의 발길을 재촉할 뿐이다. 루슬라나의 아파트는 이 거리에 보기 드문 주거용 건물이다. 가족은 거의 없고 세계화의 전쟁터에서 싸우는 지친 보병뿐이다. 중앙아시아의 양털 상인, 말레이시아 출신 박사과정 학생, 품삯을 받는 모델들이 아파트를 후배에게 물려준다. 루슬라나가 마지막이었다. 그녀가 세낸 아파트에 몇 가지 개인 소지품이 있었다. 이집트인 짐꾼은 그녀가 항상 여행을 다녔으며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기억한다.
루슬라나의 여행은 이곳에서 끝났다. 출발점은 어디였을까?
타티아나는 모델 스카우트다. 한 해에 수천 명의 후보를 만난다. 그 중 세 명가량이 정상에 오른다. 그녀의 주 활동무대는 옛 소련이다. 세계 일류 모델의 절반 이상이 이 지역 출신이다. 많은 여성이 모델이라는 직업을 풍요로운 삶으로 가는 티켓으로 여긴다. 2005년 타티아나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미인대회에 참석한 뒤 귀가하는 길이었다. 눈에 띄는 재목이 없었다. 공친 여행이었다. 기내잡지를 집어 들어 책장을 넘기다가 아마존을 다룬 기사에서 눈길이 멈췄다. 한 소녀의 사진. 놀라웠다. 사진 자체는 메시지가 불확실했다. 부족 의상을 걸친 반라의 떠돌이 소녀. 하지만 플래스틱 나무의 정글에서 조숙한 소녀 롤리타와 늑대소년 모글리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의 모델은 탄성을 자아냈다. 사물을 응시하는 그녀의 푸른 눈빛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호수 같았다. 대단히 강렬하고 깊어서 타티아나, 비행기, 구름이 모두 그 안에 사로잡힌 듯했다. 이 소녀의 눈동자 속에 모든 사물이 대롱대롱 매달렸다. 타이가 숲지대, 바이칼 호수, 눈 덮인 황무지 등 자신의 시베리아 혈통을 과시하며 세상을 응시하는 늑대 같았다.
타티아나는 알마티에 있는 모델 에이전시는 안 들른 곳이 없었다. 어떻게 이 아이를 못 봤을까? 알고 보니 루슬라나는 모델이 아니라 잡지 편집자 친구의 친구였다. 재미 삼아 사진을 촬영했다. 17세의 루슬라나는 알마티의 명문 학교를 다녔으며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고 유럽 유학을 꿈꿨다. 런던의 모델 에이전시가 그녀를 캐스팅에 초청했다. 화장품 회사 관리자인 그녀의 엄마는 딸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루슬라나는 고집을 부렸다. “런던! 마침내 런던에 가게 됐다고요!”
루슬라나의 첫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그녀의 런던 여행을 담은 동영상을 찾았다. 런던에 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 후드티 차림의 십대, 아니 어린아이가 타워 브리지의 사진을 찍으며 장난스럽게 미소 짓거나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치열교정장치를 감추려 애썼다. 그녀가 후드 티를 벗자 뭔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릎까지 닿는 묵직한 황금빛 머리다발이었다. 모델 업계에선 그녀에게 러시안 라푼젤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런던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루슬라나는 제 손으로 머리를 감은 적이 없었다. 항상 엄마가 감겨줬다. 이젠 파리와 밀라노의 비좁은 모델 숙소에 묵으면서 캐스팅 심사를 받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삶은 몸매 치수(32-23-33), 그리고 상대방의 다리·엉덩이·가슴을 곁눈질하는 십대 소녀들로 북적대는 방이 전부였다. 모두 심사위원의 눈에 들려고 필사적이었다. 네 몸은 틀렸다, 너는 틀렸다는 심사평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루슬라나는 그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친구들은 기억했다. 그녀는 탈락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기며 집을 그리워했다. 그녀 주변에 코카인, 샴페인, 환락이 회오리쳤다. 많은 여성이 휩쓸려 들어갔다. 루슬라나는 달랐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시를 써서 위안을 삼았다. 그 시를 친구 네트워킹 사이트에 올렸다.
“가시에 찔려 신음하는 대신/ 그 속에서 자라는 장미를 보며 기뻐한다.”
그때 니나 리치 광고가 들어왔다.
마법의 나무. 핑크빛 사과. 스타덤.
그 광고로 루슬라나는 모델 지망생의 신분을 벗어났다. 뉴욕 상류층의 파티에 참석하고, 소아성애 전과가 있는 금융가 제프리 엡스타인의 사유지 섬을 방문하고, 러시아 대부호들이 광고 속의 미녀를 만나고 싶어하는 모스크바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도시의 최고 멋쟁이 갑부 중 하나와 꿈 같은, 그리고 너무나도 순진한 사랑에 빠졌다.
모스크바에서 루슬라나의 친구이자 동료인 루바를 찾았다. 그때를 전후해 모스크바에서 루슬라나와 가깝게 지낸 친구다. 루바의 아파트에는 수백 점의 귀여운 완구가 가득했다. 잡지에서 보는 모델의 이미지와 딴판이었다. 작고 겁 많고 불면 날아갈 듯 연약했다. 카메라가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자신을 이끌어줄 손길을 찾으면서도 불신으로 가득한 그들의 상처받은 눈길이 포착된다. 루바는 루슬라나의 연인을 뚜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매력이 넘쳤다. 여자들이 그의 발 앞에 무너졌다. 내 친구 중 다수가 그와 사귀었다. 그들 모두 빠질 데 없이 완벽했다.” 루바처럼 더 경험 많은 친구들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루슬라나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그녀는 진짜 사랑이라고 확신했다. 결혼, 자녀, 안정된 가정을 원했다. “그게 루슬라나의 문제였다. 어린애처럼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정말로 믿었다.”
그 갑부에게 버림을 받은 뒤 루슬라나는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답변을 기대했다. 자신의 네트워킹 사이트에 짝사랑의 심정을 담은 시를 올렸다.
“당신은 다시 떠났나요/ 내게 남은 건/ 핑크빛 꿈의 성과 무너져 내린 성벽들… 마치 누군가 내 심장을 도려내 마구 짓밟은 듯한 기분.”
친구들에 따르면 그 갑부의 개인비서가 루슬라나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는 그를 괴롭히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애인에게 갑자기 버림받았듯이 그녀의 모델 경력도 돌연 장벽에 부닥쳤다. “그녀는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루바가 말했다. “갑자기 수천 명의 여성 중 하나, 수백만 명 중의 하나가 됐다. 아니, 존재 가치가 없어졌다.”
그게 다였을까? 그저 자신의 감정에 희생된 소녀였던가? 또는 비정한 업계에서 단물만 빨리고 버려졌을까? 이는 많은 모델이 맞닥뜨리는 시나리오다. 엘레나 오부코바는 밀라노에서 2년간 활동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 지금은 심리학자로 변신해 모스크바에서 모델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모델은 허상뿐인 세상에서 산다. 항상 쇼를 하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남자들이 잠자리를 함께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사진 속의 여자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은 진실하다. 어느 시점에 가선 무엇이 자신의 진짜 모습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나인가 내가 보여주는 이미지인가. 그리고 기이하게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는 길은 자살밖에 없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루슬라나의 친구와 가족은 모두 그녀가 사랑과 직업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모델활동은 언제나 목적을 이루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녀는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었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는 그 갑부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다른 남성들과의 만남을 시작했다. 지인들은 미심쩍은 점이 있다고 의심한다. 사건을 너무 빨리 덮어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녀가 어떻게 8.5m나 뛰었을까? 틈만 나면 글을 썼는데 왜 아무런 메모도 남기지 않았을까? 돈을 둘러싼 갈등을 암시했지만 상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자신이 원치 않은 뭔가를 강요 받았을까?
루슬라나의 사체 표본이 비커에 담겨 뉴욕 검시국 지하 저장실에 보관됐다. 유족이 혈액과 조직의 표본을 주문했다. 독극물 분석과 조직 검사에서 새로운 단서가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에서다.
루슬라나의 사후 1년이 흘렀다. 전화가 걸려왔다. 또 다른 모델이 자살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였다. 루슬라나의 친구였다.
모스크바에서 지낼 때 루슬라나와 가까웠던 루바는 두 사람 다 잘 알았다. 그녀는 모스크바 패션 위크 때 무대 뒤편에서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패션업계의 화려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척했다. 그리고 촬영을 허용해 달라고 주최측을 설득했다. 대화는 어려웠다. 그녀가 무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틈틈이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카메라 플래시와 패셔니스타의 뜨거운 시선 속으로 걸어 나가기 전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처음에는 루슬라나, 이번에는 아나스타샤. 내 친구 중 누가 다음 차례가 될지 모르겠어요.”
아나스타샤의 엄마 올가와 키에프의 한 카페에 마주 앉았다. 가녀린 몸매의 발레리나 출신 여성이었다. 몸을 떨었다. 슬픔이 그녀의 몸속을 바람처럼 휘젓고 다니는 듯했다. 여종업원이 주문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주문조차 고문인 듯했다. 방금 딸을 잃었는데 크림을 더 넣을지 말지가 중요할까?
“늦게 귀가했어요. 딸이 집에 없더군요. 메모가 눈에 띄었어요. ‘모두 용서해 주세요. 화장해주세요.’ 경찰서로 달려갔죠. 경찰관이 태평스럽게 말하더군요. ‘당신이 아파트 건물에서 뛰어내린 여자애 엄마요?’ 말문이 막혔죠. 내게 운동화가 든 봉투를 보여주더군요. 딸아이 거였어요. 아니길 바랐지만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어요.”
아나스타샤 드로즈도바는 어린 시절 지방을 돌며 발레를 하는 엄마와 함께 원룸 아파트에서 살았다. 올가는 딸이 자신을 따라 발레리나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고전 발레의 정확하고 빠른 동작을 따라하기에는 팔다리가 너무 길었다. 그녀가 무용강습을 받는 홈비디오가 있었다. 화질이 떨어지는 그 동영상에서 아나스타샤는 항상 제 발에 걸려 넘어지며 자신의 몸에 절망했다. 그러나 모델로선 완벽한 몸매였다. ‘엘리트 모델 룩’이 유럽에서 주최한 경연대회에서 14위를 차지했다. 옛 소련 전체에서 3위였다. 그녀는 전 세계의 무대를 누비며 엄마에게 근사한 아파트를 장만해줬다. 아나스타샤는 귀청이 떨어질 듯 큰 소리로 웃었다(식당 손님들이 놀라 돌아보곤 했다). 어느 파티에서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 그러나 죽기 한 달 전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모델로 활동하던 모스크바에서 키에프로 돌아온 뒤 방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섭씨 40도의 무더위 속에서도 오리털 이불을 덮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올가로선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단서를 찾으려고 아이 방을 뒤졌죠. ‘세계의 장미’라는 곳에서 보낸 서류가 있더군요. 이상한 말들이 적혀 있었어요. ‘아나스타샤, 겨울의 끝이 네 자장가다. 이제 네 길을 가라.’ 그게 무슨 뜻이죠? ‘세계의 장미’가 뭔가요? 루슬라나와 함께 거기를 다닌 건 알아요.”
‘세계의 장미(이하 장미)’가 하는 일은 자칭 ‘인성개발 훈련’이다. “우리의 세미나는 목표를 실현하고 물질적 부를 달성하는 방법을 교육한다”고 그 웹사이트는 설명했다. 밝게 웃는 행복한 표정의 사람들 사진이 사이트를 장식했다. 모스크바의 한 친구가 아나스타샤와 루슬라나에게 이곳을 추천했다. 두 모델은 사랑에 ㅇ실패하고 일도 여의치 않자 자신감을 잃었다. 그들은 3일 과정에 1000달러에 가까운 돈을 내고 참가했다. 이 교육이 그들의 운명에 어떤 역할을 했을까?
‘장미’는 모스크바 북부 전러시아전시센터(VDNH)의 고딕풍 궁전에서 교육을 실시한다. VDNH는 스탈린이 국가의 위업을 기념하려 설립했다. 지금은 싸구려 기념품에서 귀한 꽃까지 온갖 물건을 판매하는 잡상인들에게 임대됐다. 집 잃은 개들이 먹이를 찾아 거대한 집단농장의 여성 조각상들 사이를 무리 지어 몰려다닌다. 교육이 실시되는 대형 건물은 옛 소련 시절 공산청년동맹 콤소몰이 집회를 갖고 지도자 찬가를 불렀던 곳이다. 교육과정을 담은 몰래 카메라와 녹음을 입수했다. 교육장에 들어서면 어둠과 고함소리뿐이다. 모두 혼을 빼놓아 비판적 사고기능을 정지시키려는 의도다. 이어 ‘라이프 트레이너’가 등장한다. 그의 말이 너무 빨라 누구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머리 높이에 설치된 스피커가 고통을 안겨주기 시작한다.
“앞으로 며칠 동안 불편함, 공포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의 장벽을 허무는 유익한 과정입니다.”
실내의 인원은 40명 안팎. 트레이너는 수강자들에게 자신이 겪은 최악의 경험을 털어놓으라고 독려한다. 강간당한 이야기, 부모의 학대. 이 동영상을 통해 루슬라나가 이 과정에서 가장 열성적이었음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죽음, 실패한 연애담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고 정신 나간 듯이 웃었다. 3일간의 외침, 억눌렸던 기억의 회상, 명상에 이은 춤, 눈물 뒤에 몰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일찍이 품었던 온갖 강렬한 감정을 3일 동안 쏟아내며 인생이 바뀌었다.
두 모델은 추가 교육을 신청했다. 모두 처음보다 약간 더 비싸고 더 집중적인 과정이었다. 친구들에 따르면 루슬라나와 아나스타샤는 마침내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 남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내적인 혼란을 치유하는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때 그들이 가장 잔인한 환상에 빠져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장미’는 그들의 교육방식이 한때 미국에서 유행했던 라이프스프링이라는 훈련법에 기초했다고 웹사이트에서 밝혔다. 하지만 미국의 옛 추종자들이 정신적 손상을 입었다며 라이프스프링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 소송의 영향으로 그 단체의 미국 지부가 1980년 문을 닫았다. 러시아에선 라이프스프링이 옛 소련 해체 이후의 정신적 공백을 메우며 인기를 끈다. 기존의 종교적 도덕규범을 따라야 하는 불편함 없이 ‘인생이 바뀌고’ ‘새로 태어나는’ 체험을 제공한다. 러시아의 주요 TV 방송에는 라이프스프링의 방식을 본뜬 프로그램도 있다.
‘장미’를 몇 개월 다닌 뒤 루슬라나와 아나스타샤의 행동에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소란을 피우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모델 캐스팅에 불참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히는 일이 잦아졌다. 루슬라나는 공격적으로 변했다. 난생 처음 상소리를 하고 욕설을 해댔다. 둘 다 체중이 빠졌다. ‘장미’에서 조교로 일하는 볼로디야는 이 단체의 철저한 신봉자다. 그녀는 그것이 정상이라고 주장한다. “루슬라나가 보인 반응은 이른바 ‘퇴행’이었다. 약간 묘한 감정이 생긴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거리를 배회하곤 한다. 어쩌면 한밤중에 울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했을 리는 없다. 그녀에게 있을 법한 문제는 모두 치료했다. 아나스타샤는? 그녀는 이미 망가져 있었다. 우리는 그녀를 도우려 애썼다. 정말 노력했다. 하지만 탈바꿈을 거부했다. 모델 일, 어쩌면 약물 탓이지 우리 잘못은 아니다.”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뉴저지에서 사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비영리단체 컬트 교육 포럼의 릭 로스 원장을 찾아갔다. “이런 단체는 절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피해자 탓’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마약과 같다. 절정의 체험을 제공하면 추종자들은 항상 더 많은 걸 바라고 다시 찾아온다. 사람들이 떠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 훈련이 그들의 삶이 됐다. 공허감만 남는다. 민감한 사람은 그 체험 없이는 견디지 못한다.”
옛 소련 진영의 젊은 여성들이 특히 취약하다.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높은 세계 7대 국가 중 6개국이 옛 소련 공화국이다. 러시아가 6위, 카자흐스탄이 2위다. 부모가 자녀에게 전수할 전통이나 가치관이 없는 문명의 공백에 자살 바이러스가 파고든다고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주장한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버팀목이 돼줄 깊이 있는 철학이 없다. 루슬라나와 아나스타샤의 부모는 옛 소련에서 성장했지만 그들의 자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았다.
아나스타샤는 1년 가까이 ‘장미’에서 교육을 받았다. 마지막 교육과정을 마친 몇 달 뒤 그녀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루슬라나는 3개월 동안 교육을 받았다. 그 뒤 뉴욕으로 돌아가 일자리를 찾았다. 당시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인생의 좌표를 잃었다. 다시 내 자신을 찾게 될까?” 삶을 마감하기 2~3개월 전이었다.
2008년 6월 27일 사망 하루 전 루슬라나는 맨해튼 중부의 한 건물 옥상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유별난 날씨였다. 처음에는 비가 내리더니 이어 카메라를 태울 듯이 태양이 불타올랐다. 사진가의 이름은 에릭 헤크. 그는 루슬라나의 마지막 날 촬영한 선명하지 않은 8mm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 동영상 속의 루슬라나는 그녀의 예전 작품과 완전히 달랐다. 동화 속의 공주가 아니라 성숙한 여인이었다. 처음으로 진짜 인간다운 체취가 느껴졌다. “그녀는 항상 다른 역할, 명랑한 십대 역할을 요구받았다. 나는 그녀에게서 그것을 뛰어넘는,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봤다”고 헤크가 말했다. “그녀가 보지 않을 때, 포즈를 취할 틈을 주지 않고 촬영했다. 그때 최고의 작품이 나온다. 그녀는 자유로웠다.”
다음날 그녀는 생을 마감했다. 스물한 번째 생일 사흘 전이었다. 루슬라나의 친구와 친척들은 지금도 타살이라고 믿는다. 각종 병리검사 결과 새로운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모든 보고서에 추측의 여지는 남아 있다.
그녀의 사후 2년여가 흘렀지만 루슬라나를 내세운 니나 리치 광고는 아직도 러시아에서 건재했다. 그녀의 얼굴이 “매혹의 약속”과 함께 모스크바에 내걸렸다. 그 향수는 십대들에게 인기만점이다. 성인의 매혹적인 머스크향과 소녀의 사과 토피 사탕, 바닐라 향이 섞인 냄새다.
[필자는 TV 프로듀서이자 논픽션 작가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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