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산업 규제를 지키는 힘] 약사 조직 정치력, 일반약 판매 차단
[의약산업 규제를 지키는 힘] 약사 조직 정치력, 일반약 판매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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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 수퍼마켓 판매를 두고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잘 쓰면 약이지만 잘못 쓰면 독’이라는 옛말이 요즘 상황에 딱 맞는 것 같다.
그간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3일 진수희 장관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관료들로부터 2011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일반약 수퍼판매 얘기를 꺼냈다. 예정에 없던 상황이 벌어졌다. 본인의 미국 체류 경험을 들며 “미국에서는 수퍼에서 감기약을 파는데”라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감기약 수퍼 판매를 지시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진 장관은 그렇지 않다고 해석했다.
이 대통령은 그 후 2월 총리 주례 보고에서, 3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4월 진 장관과 독대한 자리에서, 5월 유럽 순방 직전 진영곤 고용복지수석이 보고하는 자리에서 일반약 수퍼 판매를 추진하라고 했다. 6월 3일 복지부가 수퍼 판매를 유보하는 듯한 결론을 내자 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크게 화를 냈다. “사무관이 하는 일처럼 하느냐”는 말까지 했는데 진 장관을 지칭한 건지, 진 수석을 겨냥한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언론이 진 장관을 비판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이 부분이다.
“현행 약사법상 약사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약국 외 판매가 어렵다. 특수 장소를 지정해도 약사회에서 관리하겠다고 동의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3일 복지부 손건익 보건의료정책실장 브리핑)
‘약사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부분에 비판이 쏟아졌다.
약을 두고 갈등을 빚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한의사와 약사의 한약분쟁, 2000년 의사와 약사의 의약분쟁이 나라를 흔들었다. 의사는 전공과목별로, 큰 병원과 작은 병원별로, 개업의사와 월급쟁이 의사 간에, 일반의와 전문의 간에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가 많다. 약사는 기껏해야 대학병원 문전약국과 동네약국, 병원 약사와 개업 약사 정도로 나뉘어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가 드물다.
의사·한의사와 분쟁을 겪으며 약사는 뭉쳤다. 그 중심에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비례대표)이 있다. 서울대 약대 출신인 원 의원은 의약분업을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반대하는 약사를 설득했고 의사와 맞섰다. 열 의사가 한 명의 약사를 못 당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의약분쟁을 거쳐 약사회장이 됐고 18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한나라당에 진출했다. 한나라당을 설득해 수퍼 판매 반대를 이끌어냈다. 여의도에 입성한 뒤 안상수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아 동료 의원들에게 수퍼 판매의 문제점을 설파했다. 민주당에는 전혜숙 의원(비례대표)이 있다.
약사회 조직도 탄탄하다. 의약분쟁 당시 임원이었던 박인춘 부회장 등의 전략가가 여럿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의사협회는 당시 주역들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 회장 직선제 탓인지 내부 갈등을 빚기 일쑤고 집행부 흔들기가 예사다.
약사회는 일반약 수퍼 판매나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활성화,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 등 자신의 이익과 관련한 이슈에 거의 한목소리를 낸다. 선거 때도 일사불란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이 약사들의 눈치를 본다.
진수희 장관이 5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의원들이 나한테 먼저 전화한다, 그거(일반약 수퍼 판매) 하지 말라고. 약사들이 그만큼 결집이 강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복지부 내 약사는 그리 많지 않다. 서기관(4급) 1명, 사무관(5급) 6명, 주무관(6급) 3명이다. 과장이 한 명 있었으나 외부 교육 파견을 간 상태다. 국립의료원이 법인화되면서 거기서 복지부로 옮겨온 사람이 많다. 의사는 11명이다. 지금은 국장이 없지만 최고위직은 거의 국장급이다. 과장이 4명이다. 굳이 따지자면 의사가 더 힘을 쓰는 구조다. 이번 일반약 수퍼 판매 정책 결정엔 약사 출신이 관여하지 않았다. 담당과장-국장-실장 모두 행정고시 출신이다. 복지부 내 약사들은 1999년 식약청이 외청으로 분리되면서 거기로 많이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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