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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원하는 인재육성이 취업률 100%의 비결

기업이 원하는 인재육성이 취업률 100%의 비결

곱게 빗은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 부드러운 목소리와 표정 사이로 이따금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6월 10일 부산 사하구 부산자동차고등학교에서 만난 이승희 교장은 학생에 대한 애정이 넘쳤다.

신이 나서 학생들이 기능사 자격 시험에 합격한 것을 자랑했다. 결손가정에서 온 학생이 여럿 있다며 가슴 아파했다. 그는 학교가 이들의 가정이 되고, 교사는 부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을 잘 키워 반드시 좋은 회사에 취업시키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가 이 학교에 교장으로 취임한 것은 2010년 초다. 그 전에는 줄곧 기업에 몸담았다. 교육자로서는 아직 초보인 셈이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이 그를 믿는 것은 남다른 열정 때문이다.

그는 1977년 삼성건설에 입사해 삼성전자 수출관리부장·인사부장을 거쳐 르노삼성에서 일했다. 2009년 르노삼성 부사장 시절 부산교육청으로부터 “자동차고교를 마이스터고로 승격시켜 집중 육성할 계획인데 적당한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누구를 추천할지 고민하다 아예 자신이 직접 나서 학생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동차 회사에서 일했고, 삼성에서 인사 담당을 하며 채용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5만 명 가까운 사람이 관계사에 배치되는 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지, 자동차 산업 현장에 필요한 인재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기업에서 환영 받는 학생을 키워낼 자신이 있었기에 공모에 참여했습니다.”

부산 교육계에선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그를 통해 이사급 인사를 추천 받을 생각이었는데 예상외의 ‘거물’이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개방형 공모제 평가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 교직 경력이 없음에도 학교장이 됐다.

“직접 교육계에 몸담은 일은 없지만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좋은 교사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학생을 아낀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에 제가 가진 노하우를 더하면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가 부임한 다음부터 학교 분위기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부산교육청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기숙사와 실습관을 건설하고 교육기자재도 구입했다. 학교 시설을 전국 최고 수준으로 바꿔 나갔다.

교장 취임 후 그가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은 역시 친정인 르노삼성이다. 이 회사에서 자동차 부품, 실습용 차량을 기증 받았다. 르노삼성 자동차 장인을 초빙해 매주 강의도 진행했다.

이와 함께 기업체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학교 운영자금 지원과 채용을 위해서다. 그러나 특정 학교만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이 교장은 교육청에서 실시 중인 마이스터 고교 졸업생 채용 제도에 눈을 돌렸다. 기업이 신규 채용 때 일부를 마이스터고 출신 중에서 뽑는 제도다.

“삼성전자 자동화 생산 라인을 관리하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젊은이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키워서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학교 주요 과목 중 하나가 바로 생산 자동화 공정입니다.” 삼성전자를 찾아가 필요한 자격을 꼼꼼히 체크했다. 그러곤 거기에 맞게 교육 프로그램을 짰다. 열성 덕에 올해 초 자동차고 학생 6명이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1999년 개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같은 방식으로 현대자동차에도 입사하는 학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교장은 앞으로도 마이스터고 채용 제도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그는 “올해 안에 국내 주요 대기업에 채용되는 학생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에 무조건 채용을 부탁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입사는 시작일 뿐이다. 실력이 있어야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계속 성장할 수 있다. 또 처음 들어간 학생이 잘해야 후배도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가 교육 현장에서만큼은 인정을 접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기업에서 만족할 수준의 학생만 추천합니다. 그게 기업과 학교, 학생 자신을 위해서 좋습니다. 안면으로 입사한다 해도 실력이 없고 인성이 갖춰지지 않은 학생은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건 제가 인사 담당을 해봐서 잘 압니다.”

자동차고는 1~2학년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학급당 교사는 4~5명으로 과학고와 맞먹는 수준이다. 1학년은 공통과정이고, 2학년부터 자동차정비·부품가공·생산자동화 과정 등 세부 전공에 들어간다. 1학년은 반당 20명이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 전공이 세분화돼 반당 10명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담임을 맡지 않는 교사들이 학생 특기에 따라 멘토로 나선다.

정규 교과 외에 하루 3시간씩 방과 후 교육을 한다. 글로벌화의 일환으로 해외 직업전문학교 연수도 계획돼 있다. 기능인력의 국제화 추세에 맞춰 졸업 때까지 전원 토익 600점 이상 취득을 목표로 영어 학습에 열중하고 있다. 원어민 영어교사를 활용한 교육을 강화하고, 틈틈이 일본어 교육도 한다. 자동차 공장 중엔 일본 기계를 사용하는 곳이 많다. 현장 매뉴얼이 주로 일본어로 돼 있어 공장장들이 일본어 해독 능력자를 선호한다. 체력도 이승희 교장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이곳 학생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운동장을 5~7바퀴 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려면 하루 10시간가량 서 있어야 한다. 체력을 길러야 끄떡없이 일할 수 있다. 이 교장은 학생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4월 서울모터쇼에 학생들을 보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공장을 견학시키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교육 성과는 높다. 지난해 7월 실시된 자동차 정비 및 검사기능사 자격증 1차 필기시험에서 1학년의 97%가 합격했다. 이들은 기능경진대회에서도 주요 부문 금상을 휩쓸고 있다. 학교에 대한 입소문이 나며 학생이 몰리기 시작했다. 올해 신입생 입학 경쟁률은 지난해의 두 배인 4.8대1을 기록했다. 부산지역 실업고 최고 수준이다. “학생들에게 웬만한 대학 나오는 것보다 우리 학교가 훨씬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취업 100%에 보수도 잘 받기 때문이지요. 이들이 마이스터로 성장해 한국 제조업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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