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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 70% 보험 안 들었다”

“대리기사 70% 보험 안 들었다”

대리운전업계가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지만 규제할 법도, 제도도 없다.

올 1월 29일 새벽 1시 회식을 마친 회사원 A씨가 대리운전기사(이하 대리기사)를 불렀다. 평소처럼 별생각 없이 대리기사에게 핸들을 맡겼다. 그는 “괜찮겠거니”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일이 터졌다. 대리기사가 주차하면서 자동차의 휠과 하체부를 찌그러뜨린 것이다. A씨는 대리기사에게 물었다. “보험에 가입했죠?” 답은 황당했다. “가입 안 했는데요.”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대리기사가 사고를 내면 차주(車主)가 모든 책임을 물어야 한다. A씨도 그랬다. 그는 “대리기사 전원이 보험에 가입했다는 광고는 거짓말 같다”고 말했다.

“모든 사고 피해를 100% 보장합니다.” 올 6월 회사원 B씨는 자신의 자동차 앞유리에 꽂혀 있는 광고를 보고 대리운전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 대리기사들은 모두 보험처리가 돼 있다”고 안심시켰다. B씨는 “이만하면 됐다”며 대리기사를 콜했다.

B씨의 집은 경기도 이천시. 국도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사고가 났다. 대리기사가 국도를 횡단하는 사람을 친 것이다. 그 사람은 현장에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B씨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믿었다. 대리기사가 보험에 가입한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달랐다. 대리기사의 보험은 대물보험이었다. B씨는 어쩔 수 없이 교통사고 피해자 측에 차주책임보험으로 1억원을 보상했다. 이뿐 아니라 피해자 측이 제기한 1억5000만원의 민사소송 탓에 B씨의 월급과 전세금은 압류됐다. B씨는 “괴로울 뿐”이라고 털어놨다.

물론 미보험 대리기사가 사고를 냈을 때 대책은 있다. 대리기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구상권은 다른 사람 대신 채무를 갚은 이가 그 타인에게 갖는 상환청구권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대리기사는 대부분 재산이 없거나 잠적할 공산이 크다. 구상권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국가권익위 오정택(경제제도개선담당관실) 서기관은 “민사소송을 통해 구상을 청구하더라도 대리운전자의 낮은 경제력 때문에 피해를 구제 받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리운전업체의 도 넘은 과장광고업체 수 7000여 개, 종사자는 16여만 명, 시장규모 3조5000억원…. 대리운전업계는 거대해졌다. 기업형 대리운전업체도 등장했다. 시장이 커진 만큼 대리운전 사고도 많아졌다. 경찰청 집계(2008~2010년)에 따르면 대리운전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1만 건이 넘는다. 24명이 사망했고, 1859명이 다쳤다. 대리운전업체들은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진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면 자동차 주인이 괴로울 때가 많다. 무엇보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대리기사가 생각보다 많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자동차 대리운전 자율규제사업의 평가와 개선방안(2008)’을 보면 대리기사 100명 중 50명은 미보험 상태다. 국가권익위원회는 지난해 “대리기사 중 40%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다.

C보험사는 최근 대리기사의 보험가입 현황을 분석해 미보험 대리기사 숫자를 추정했다. 대외에 알리지 않은 내부자료다. 분석방식은 이렇다. 국내 대리기사 숫자를 15만7600명으로 봤다. 이들이 모두 월 6만원짜리 단체보험에 가입했다면 대리운전보험 시장규모는 1123억원(15만7600명×6만원×12)이다. 대리운전 단체보험의 실제 규모는 300억원에 불과하다. 대리기사 가운데 26%만 보험에 가입했다는 것이다. 15만7000명 중 5만여 명만 보험에 가입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2009년 집계한 숫자보다 훨씬 적다. 금감원은 대리운전업자 특약보험(대리운전 중 발생한 사고로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에 가입한 대리기사 숫자를 7만1852명으로 집계했다. 국가권익위 관계자는 “대리운전업자 특약보험에 7만여 명이 가입했다고 하지만 중복가입을 감안하면 허수일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대리기사가 보험에 가입했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언급했던 B씨 사례처럼 대인피해의 1차 책임은 자동차 주인에게도 있다. 법원은 “차주와 대리운전사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의 운행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오정택 서기관은 “대리운전업체 대부분은 ‘사고가 발생하면 무한배상을 한다’고 거짓 홍보를 한다”며 “이런 유형의 광고에 현혹되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리운전업계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한두 번 나온 게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경향이 짙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리운전업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사업자등록증만 있으면 된다. 대리운전업계에 영세업체가 난립하는 이유다. 뾰족한 규제도 없다. 대리운전업은 ‘자유업’이기 때문에 정부의 관리나 규제를 받지 않는다. 대리기사의 보험가입이 의무도 아니다. 그러니 대리운전업체는 과장광고를 하고 책임은 피하는 일이 반복된다.

대리운전업계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은 뭘까. 먼저 대리운전사업자의 등록제를 도입해야 한다. 유사제도는 있다. 응급환자이송사업체·상조업체는 각각 2억원·3억원 이상의 자본금이 있어야 설립할 수 있다. 대리기사의 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법률도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모든 대리기사는 무조건 보험에 가입한다.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업법’에 따라 보상절차가 진행된다. 대리운전 이용자는 억울하게 손해 보는 일이 없다.

대리기사와 이용자를 위해 ‘건별·일별 보험상품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대리기사가 운전할 때마다(건별) 또는 운전하는 날에만(일별) 보험이 적용되는 상품을 만들어 위험을 막자는 취지다. 대리기사를 위한 1회성 보험상품을 개발해 특허출원한 IT솔루션업체 와이제이 인터와이드의 이종영 팀장은 “대리기사가 1회성 보험에 가입하면 소비자가 안심하고 대리기사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낮잠 자는 대리운전 개선책사실 이런 대책들은 2~3년 전부터 나왔다. 국가권익위는 지난해 12월 말 국토해양부에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대리운전을 정화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촉구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별다른 제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리운전법안(가칭) 제정은 물론 관련법 개정작업도 더디다. 한나라당 권경석 의원은 지난해 9월 대리기사의 대인피해 책임을 규정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2009년 한나라당 손숙미·정의화 의원이 공동 발의한 ‘대리운전업법안’도 처리되지 않았다. 이 법안은 무보험 대리운전에 대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리운전이 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면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막을 제도도, 법도 없다. 더 큰 문제는 개선의지마저 없다는 것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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