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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vs 금감원 10년 힘겨루기

금융위 vs 금감원 10년 힘겨루기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건물. 금융위원회는 2009년 이곳으로 이사오면서 두 기관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지내고 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에는 ‘두 가족’이 산다. 건물주는 금감원이고 세입자는 금융위원회다. 전체 20층 중에서 금감원이 17개 층을, 금융위는 3개 층을 쓴다. 금감원 직원 수는 1600명, 금융위는 250명이다. 상전은 인원이 적은 세입자 금융위다. 세입자는 건물주의 인사권과 돈줄(예산)을 쥐고 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건물주지만 이를 가지고 인허가를 결정하는 쪽은 세입자다. 건물주로서는 그런 세입자가 편할 리 없다. 세입자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이지만 이웃집이 간섭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한데 묶어 ‘금융당국’ 형제가 된다. 이웃집 한국은행이 금융감독 밥상에 ‘나도 나눠 먹자’며 숟가락을 슬며시 들이밀었다. 형제들은 언제 싸웠느냐는 듯 합심해서 한은을 물리쳤다. 동네 큰형인 기획재정부까지 끌어들였다. 동네 민심을 앞세워 밥 한술 뺏으려 했던 한국은행은 금융당국 형제들의 반격에 머쓱해졌다.

금융위와 금감원. 일반인들이 보기에 같은 조직처럼 보이지만 실은 차이가 크다. 금융위 직원은 공무원이고 금감원은 민간인이다. 금융위는 과거 금융감독위원회와 재정경제부의 국내 금융부분을 합쳐 이명박 정부가 만든 정부 부처 중 하나다. 금감원은 은행·증권·보험감독원 등을 통합해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특수법인이다. 금융위는 금융정책 기능과 인허가권을 갖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사 검사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다. 당초 금감원은 관료조직에서 독립돼 금융감독 기능을 해보라는 취지로 설립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료들은 관료조직을 키웠고, 현 정부 들어 금감원은 금융위 산하기구로 전락했다. 지난 10년간 금융감독 독립성을 위한 전쟁은 금융관료의 승리로 돌아갔다. 금융위와 금감원 조직 내 흐르는 미묘한 대립구조는 이런 배경이 뒤에 있다.



금감원 혁신 TF 금융위 제동에 삐걱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는 애증(愛憎) 구도다. 현실적으로 금감원 없이 금융위가 돌아가기 어렵고, 금융위 없이 금감원이 외풍을 막기 어렵다. 대표적 사례가 8월로 연기된 금감원에 대한 개혁방안 발표다. 지난 5월 출범한 국무총리실 산하 금융감독혁신 TF(태스크포스)는 6월 말까지 금융감독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TF는 금감원의 조직분리,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한국은행과 예금보험공사에 단독조사권 부여 등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TF는 결과물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하지만 더 강도 높은 결과를 요구하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무엇이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던 금감원 개혁을 막아선 것은 금융관료였다. 이들은 TF 논의에서 금감원의 단독검사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버텼다.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은 “조사권을 ‘아무데’나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금감원을 만들었다”며 깊은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금융감독권과 검사권은 금융관료의 존재이유다. 금융사를 검사하는 것은 오직 금감원이며, 금감원은 금융위의 지휘를 받아 검사에 나설 수 있다. 공동조사권을 받아들여 행여 자신들의 밥그릇을 깰 이유는 없다는 거다.

이런 분위기 속에 6월 국회에서 한은법 개정안은 결국 상정이 보류됐다. 개정안은 한은의 공동검사권을 법으로 보장하고 조사대상을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은 한은이 요구한 단독조사권이 제외됐지만 이마저도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금융관료의 반발은 그만큼 거셌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두고서는 양측의 입장이 다르다. 금융위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산하에 두는 것에 찬성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소비자원을 산하에 두었듯 금융소비자 보호는 금융정책부서가 담당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또 금융기관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 금감원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금융소비자 문제까지 떠맡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금융소비자기구의 특성상 계속해서 금융소비자 업무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사는 검사권을 가진 금감원이 있어야 겁을 내고 소비자 분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논리도 편다.

둘의 싸움은 결국 ‘밥그릇’이다. 변변찮은 산하기관이 없는 금융위로서는 하나라도 자리를 더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금감원은 금융소비자기구를 떼내면 조직 축소가 불가피하다. 금융위는 TF에 포함된 신제윤 부위원장을 통해, 금감원은 별도의 메신저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TF에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와 금감원이 멀지만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인사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금융감독위원장이 금감원장을 겸임해 두 조직을 공동 통솔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이 분리됐다. 하지만 금감원장과 부위원장은 모두 금융관료 출신으로 채워졌다. 현 금감원장과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직전까지 금융위에서 일했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직전 금융위 부위원장이었다. 금감원 최수현 수석부원장은 금융위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장이었다. 권 원장은 행시 23회, 최 수석부원장은 행시 25회다. 이들은 금융위원장·부위원장과 형님 동생 사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전 재정경제부 차관으로 행시 23회다. 신제윤 부위원장은 직전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으로 행시 24회다.

금감원은 금융관료가 금융위원장이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요직이기도 하다. 1600명의 조직을 통솔하며 금융실무를 현장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경제부 이헌재 전 장관, 기획재정부 윤증현 전 장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관료로서는 자신의 리더십을 증명할 기회가 된다. 어떻든 금감원 조직을 잘 다독거려 가면서 이끄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정권교체에 따른 인사에 조직 흔들금융위와 금감원의 불완전한 동거는 당장 다음 정권 인수위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총리실 산하 TF에서 금감원 개혁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1년밖에 남지 않은 정권에서 금융감독체계를 건드리기는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설사 TF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더라도 ‘참고사항’이 될 뿐 다음 정권에서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축은행 정책 실패로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것도 배경이다. 학계에서는 금감원을 한국은행 수준의 독립적인 감독기구로 되돌려 놔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금융위도 지금 현 상태로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획재정부에 다시 흡수될 수도 있고, 기재부의 국제금융부문을 가지고 와야 더 큰 조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2012년 이후 기재부가 세종시로 이전하게 되는 것도 변수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초 기재부와 재통합설도 나왔지만 금융위는 서울에 남는다는 것 때문에 독립부서로 확대·존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안다”며 “현 정권이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금감원과의 관계가 재정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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