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EVISION CRIME] 마피아의 여자들
[TELEVISION CRIME] 마피아의 여자들
우리는 마피아의 여자들을 잘 알거니 생각한다. 시끄럽고 투박하고 장신구를 좋아하며 가족의 천박한 졸부 취향을 떠받치는 범죄에 무관심하다고 말이다. 남편이 감방에 있거나 피소됐을 때 마피아 부인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교외주택에 틀어박혀 프랑스제 매니큐어, 표범무늬 뾰족구두,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으로 빅토리아 고티(감비노 가문 보스의 딸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출연) 흉내를 낸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특히 쇠퇴기를 맞은 마피아와의 결혼 생활은 종종 훨씬 더 현실적인 문제다. 외롭고 위험하고 궁상맞다. 악명 높은 콜롬보 갱단의 두목이자 킬러인 그레그 스카파의 미망인 린다 스키로가 그 산 증인이다. 스키로(65)와 그녀의 딸 린다 스카파(42)의 얼굴에는 마피아 가족으로 살아온 피폐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딸이 작은 린다로 불리는 데 반해 큰 린다로 알려진 스키로는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삶과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녀가 사는 곳은 스태튼 섬의 임대 아파트다. 가구가 별로 없이 썰렁한 이 집 주방 카운터가 그녀의 주 생활공간이다. 이곳에서 딸과 손주 넷 중 셋과 함께 산다. 연회장용의 길다란 만찬 식탁에 장물 다이아몬드와 금이 잔뜩 쌓여 있기는커녕 스카파와 지낸 30년 동안 숱한 밤을 그랬듯이 스키로는 수북이 쌓인 치즈잇 크래커 상자와 오레오 과자 봉지를 한쪽으로 치운 뒤 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양 손에 묻는다. 요크셔테리어 강아지 한 쌍이 그녀의 발치에서 쉬지 않고 왈왈거린다. “사는 게 지옥이요.”
딸의 검은 눈초리가 아버지처럼 날카로워지며 경멸하듯 엄마를 쏘아본다. 작은 린다가 도매업체의 영업사원으로 음식점을 돌며 맥주를 팔아 받는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집세를 낸다. 아무도, 심지어 1992년 그레그 스카파를 살인과 공갈 죄로 체포한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조차 그의 수백만 달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아이들의 자전거가 거실에 있고 반쯤 빈 아이스티 플라스틱 컵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이 석고보드 임대 아파트가 그들이 가진 전 재산이다. 브루클린 미드우드 지구의 화려하게 장식된 3층집, 플로리다주의 저택, 그리고 스카파가 사용하던 고급 주택가 서튼 플레이스의 아파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세상이다. 스포츠카도 없어지고 응접실에서 서성거리며 훔친 신용카드로 중국 음식을 시켜먹던 잘 생긴 부하들도 떠나갔다. 아파트 앞 콘크리트 현관계단에서 손주 녀석들이 햄버거 사먹을 돈을 달라고 소리친다. 미닫이 문 앞으로 아스팔트 길이 나 있다.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경력이 있는 큰 린다는 달리 갈 곳도 없다. “저는 엄마가 길바닥에 나앉지 않도록 뼈 빠지게 일해요”라고 작은 린다가 말했다. “이제 그만 입 좀 다무세요.”
그레그 스카파는 평범한 마피아 단원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저승사자(the Grim Reaper)’라는 별명이 있었다. 킬러에게 일을 맡기는 대신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십 년 동안의 길거리 생활에도 전혀 물리지 않는 듯했다. 뉴욕의 가장 난폭하고 비정상적인 마피아 가문의 가장 잔인한 단원으로 악명을 떨쳤다. 1990년대 초 콜롬보 전쟁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 전쟁은 브루클린에 있는 스카파의 집 앞 진입차도에서 시작됐다. 경쟁 조직원들이 그가 탄 링컨 승용차에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작은 린다가 젖먹이 아들을 자신의 벤츠 승용차에 태울 때 스카파가 그녀에게 작별 키스를 하고 몇 걸음을 옮겨 자기 차에 올라탄 뒤였다. 그는 자동차에서 멀쩡하게 살아 나왔지만 1년 뒤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카파는 부하들을 이끌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범인들을 찾기 시작했다. 한번은 크리스마스 조명을 달던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린 게 폭탄의 뇌관을 건드린 셈이었다”고 작은 린다가 말하며 20세의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대학생 아들은 TV 볼륨을 크게 키워 놓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최악의 순간은 7개월에 걸친 그 전쟁이 끝날 무렵이었다. 누군가 작은 린다의 오빠 조이를 위협했다는 말을 듣고 스카파는 그를 찾아 나섰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총을 맞아 한쪽 눈동자가 없어진 상태였다. “그는 총을 맞았는지도 몰랐다”고 큰 린다가 돌이켰다. “그는 계속 ‘난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머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조이의 친구 한 명도 총을 한 방 맞았다. 작은 린다는 차 뒷좌석에서 아빠 곁에 앉아 뇌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손으로 막고는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 “아버지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스카파가 마피아 역사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의 무자비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피아로 살아가는 거의 내내 FBI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붙잡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대단히 비중 있는 정보원이었다. FBI는 그가 귀띔해주는 정보를 이용해 그의 라이벌 수십 명을 잡아들였다. 1964년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은 살해된 프리덤 라이더스(Freedom Riders, 인종차별에 항의해 버스를 타고 남부를 돌며 시위를 벌인 민권 운동가들) 세 명 제임스 체이니, 앤드루 굿먼, 마이클 슈어너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자 스카파를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으로 보내 정보를 알아내도록 했다. 그는 그들을 힘으로 윽박질러 정보를 캐냈다. FBI에서 오랫동안 그의 연락책 역할을 했던 린들리 드베키오가 지난 5월 CBS의 시사프로그램 ‘60분(60 Minutes)’에서 그 내용을 증언했다. 드베키오는 자신과 갱단의 관계, 그리고 그 여파를 다룬 책을 홍보하며 스카파와 가까운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로 아주 매력적인 친구였다.”
큰 린다는 스카파와 미시시피로 여행을 떠났을 때를 절정기로 기억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봤다”고 그녀가 돌이켰다. “그이는 내게 새 옷을 세트로 한 벌 사줬다.”
작은 린다는 엄마가 그 시절이 그리운 듯 감회에 젖을 때마다 질겁한다. “엄마, 아빠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그것도 많은 사람을 죽였잖아요.” 그녀가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응석받이로 자란 전형적인 마피아 공주였던 그녀는 십대 중반께 뭔가 아주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레그 스카파의 딸이라서 얻는 특혜도 있었다. 예약하지 않아도 음식점 테이블이 마련됐으며 종종 음식값을 내지 않아도 됐다. 그녀가 지나갈 때는 거리의 아이들이 입을 다물었고 상점 주인들은 “그냥 물건을 집어줬다.” 하지만 누구와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남자친구, 클럽의 웨이터) 상대방이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거나 흠씬 두들겨 맞아 곤죽이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일이 두려워졌다.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내 전부였죠. 하지만 그런 생활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엄마는 그런 가책이 없었다. 그녀는 하루하루 끼니를 연명하며 가족과 살아가던 17세 때 스카파를 만났다. 그는 이미 정식 마피아 단원이 돼 네 자녀를 둔 기혼자였다(그의 아들 그레그 주니어는 훗날 마피아에 입단해 지금은 40년 형을 선고 받아 복역 중이다). 몇 년에 걸쳐 그는 강도, 살인,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FBI가 왜 모른 척해줬는지 등 모든 일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1973년 그는 부인 곁을 떠나 그녀와 작은 린다, 그리고 조이와 살림을 합쳤다. 스카파는 집에선 온화하고 자상했다고 한다. 가족에겐 한없이 약하지만 가족에 위협이 닥치면 죽음을 불사하는 전형적인 아버지였다. “그레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무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건 감방의 사제 칼도 킬러의 총알도 아니었다. 에이즈였다. 스카파는 1980년대 후반 출혈성 궤양을 앓은 뒤 수혈을 통해 그 병에 걸렸다. 하늘이 내린 천벌이구나 싶었다. 그는 병원 혈액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있을지 모른다며 부하의 피를 받겠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헌혈자 중 스테로이드 주사바늘을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된 보디빌더가 있었다. 스카파는 1994년 미네소타주 로체스터의 연방 교도소에서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90kg의 건장한 체격이 그 절반 이하로 줄었다. “눈을 감기 전에 바깥 공기를 쐬게 하려고 그를 휠체어에 태워 운동장으로 나가면 간수들이 우리 주위를 에워싸곤 했다”고 큰 린다가 회상했다. “나는 그들에게 ‘그가 지금 이런 몸으로 무얼 하겠느냐’고 묻곤 했다. 그래도 그들은 그를 위험인물로 여겼다.”
11개월 뒤 조이가 마약거래 중 총을 맞아 숨졌다. 마피아 전쟁에서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친구들이 떠나고, 재산을 잃고, 그레그 스카파의 고통스런 종말을 겪으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텨왔지만 조이의 죽음에 두 린다는 모두 좌절했다. “내 인생 최악의 사건이었다”고 작은 린다가 말했다. “오빠의 얼굴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모든 걸 포기하겠어요.”
그레그 스카파의 죽음과 때를 같이해 미국의 마피아도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약밀매에 빠져든 게 구세대 범죄 조직에 치명타였다. 그때부터 오메르타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피아는 그 ‘침묵의 약속’ 덕분에 조직을 지켜 왔다. 갈취 죄로 5년 형을 받을 때는 의리를 지킬 만했지만 록펠러 마약법(RICO)으로 25년~종신형을 받게 된다면 완전히 얘기가 달라진다. 살바토레 ‘황소 새미’ 그라바노가 가장 먼저 감비노 가문 전체를 밀고했다. 그러자 조무래기나 정식 단원 모두가 너나할것없이 형량을 낮추려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비중 있는 마피아는 거의 모두 철창 안에 갇혀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콜롬보 가문의 보스인 소니 프란제시(93)다. 그는 2011년 8년 형을 선고 받았다. 마피아가 아직 완전히 허물어지지는 않았지만 크게 흔들리는 건 분명하다. 지난 1월 당국은 대대적인 마피아 소탕작전을 벌여 미국 전역에서 125명의 조직원을 검거했다. 이번 단속에 걸려든 우두머리 여섯 명의 평균 연령이 72세였다. 인기 드라마 ‘소프라노스’의 보스 토니 소프라노가 그렇게 우울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대부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범죄의 전성기는 분명 끝났다”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신문의 마피아 전문가이자 ‘피와 명예(Blood and Honor)’의 저자 조지 아나스타샤가 말했다. “이 여자들만 봐도 파멸의 흔적이 역력하다. 마피아들은 가족의 가치를 거론하지만 정말 웃기는 소리다. 이들은 가장 비극적인 드라마 같은 삶을 산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도 작은 린다와 엄마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카파는 모녀를 “불독과 뒷골목의 고양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들은 스태튼 섬의 조립식 건물에서 어쩌면 영원히 한 지붕 아래서 붙어 살게 됐다. 1980년대 브루클린이 크랙 마약에 점령당한 뒤 많은 마피아 조직원이 가족을 이곳으로 이주시켰지만 마피아 왕족에겐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곳이다.
수십 년 동안 인터뷰를 거절했던 작은 린다는 아직도 과거의 고통을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 “우리 아버지의 손에 자식을 잃은 사람들을 떠올리면 어떻게 내 자신을 피해자라고 부르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큰 린다는 낡은 데스크톱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 조이와 함께 찍은 스냅 사진을 잔뜩 올린 웹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살해당한 자녀의 부모들이 모이는 지원그룹에서 온라인 채팅을 하는 게 소일거리다. 작은 린다가 맨해튼의 식당을 돌며 맥주를 판매할 동안 그녀는 손주들을 무심하게 지켜본다. 개들은 바닥에서 오레오와 칩 부스러기들을 핥아 먹는다.
5년 전 브루클린 지방검사는 살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는 정보를 스카파에게 제공한 혐의로 FBI 요원 드베키오를 잡아넣으려 했다. 오랫동안 드베키오의 방식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FBI 동료들이 그 재판을 지원했다. 큰 린다는 드베키오가 비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여러 해 동안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왔다고 애초부터 검사들에게 분명하게 밝혔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그녀를 핵심 증인으로 채택했다. 재판은 그녀에게 하나의 일거리, 일종의 목적의식을 줬으며 그녀는 자신에게 다시 역할이 주어진 걸 기뻐했다. 하지만 2008년 한 인터뷰에서 그녀가 그 요원은 어떤 불법적인 행위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 오래된 녹음 테이프가 등장하면서 재판은 사실상 끝이 났다. 각종 매체가 그녀의 사진으로 도배됐다. “마피아의 부인, 증언대에서 거짓말하다.” 평생 모욕으로 얼룩진 그녀의 삶에서 그것은 한강의 배 지나간 자리에 불과했다. 그보다 전화벨이 더는 울리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녀에겐 웹사이트와 추억만 남게 됐다.
작은 린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날까 날마다 고민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다. 마피아 공주들이 변변한 직업교육을 받지 못한 탓도 있다. 가끔씩 새 TV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 ‘마피아의 부인들(Mob Wives)’을 시청한다. 출연자 중 일부는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며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다. 극중에서 그들은 고양이처럼 서로 아옹다옹하고 피냐 콜라다 칵테일을 마시고 번쩍이는 자동차에 올라타면서 마피아 부인의 삶을 과장되게 연기한다. 하지만 한밤중이 되어 촬영팀이 맨해튼으로 돌아간 뒤로 그들이 자신들의 남자가 저지른 범죄, 거리에 나도는 마약, 그리고 주방의 화강암 카운터 설치 공사에 들어간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들을 잃은 엄마들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이나 할지 작은 린다는 궁금해진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들이 살 진짜 집뿐”이라고 며칠 뒤 자신이 선택한 약속장소 스파크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맥주 영업을 다니는 노선 상에 위치한 이곳은 1985년 마피아 폴 카스텔라노가 보도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장소로도 유명하다. 어린 자녀 셋은 그녀의 아빠와 오빠가 죽은 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들이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주먹을 휘둘러 수십 차례 연행됐다. 그가 자신을 때릴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아빠가 살아 있다면 그를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도 그 생각은 또 다른 발길질, 분노의 비수, 이어 죄의식의 홍수가 되어 그녀를 덮친다.
“집마다 독특한 냄새가 있다는 걸 아세요?” 그녀가 물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이 그랬죠. 그곳에서 온갖 끔찍한 일을 당했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에게 그런 냄새를 맡게 해주고 싶어요.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지만요.”
번역 차진우
카포네 부인으로부터 콜리오네 부인까지
■ 실재 마피아의 여자
■ 가공 인물
메이 카포네알 카포네의 부인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 외아들에게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빠 때문에 속이 새까맣게 탔다.”
캐서린 그레이그FBI는 화이티 벌저의 여자친구를 집중적으로 탐문해 16년에 걸친 그 보스턴 마피아 검거작전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버지니아 힐벅시 시걸의 정부이며 ‘플라밍고’라는 별명을 가졌다. 시걸은 자신의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그녀의 이름을 붙였다.
주디스 캠벨 엑스너시카고 마피아 샘 지앙카나와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양 다리를 걸쳤다.
캐런 힐유명한 밀고자 헨리 힐의 부인. ‘좋은 친구들’에서 로레인 브라코가 연기했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간다.
카멜라 소프라노‘소프라노 가족’에서 에디 팰코가 연기했다. 마피아 부인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교외 주거지의 성실하게 살아가는 주부의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빅토리아 고티존 고티 주니어의 딸. 감비노 가문의 부하 카미네 아넬로와 결혼했다.
케이 콜레오네다이앤 키튼이 연기했다. ‘대부’의 끈끈한 가족관계에서 어울리지 않게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백인 지배계급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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