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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복의 장미 살롱] 친구와 같은 와인,어제, 오늘이 다르면 내일 만나고 싶겠나

[이원복의 장미 살롱] 친구와 같은 와인,어제, 오늘이 다르면 내일 만나고 싶겠나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와이너리로 불리는 피오 체사레는 130년 역사만큼이나 풍미가 깊은 와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피오 체사레가 내놓는 최고급 와인 바롤로는 ‘와인의 왕, 왕의 와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명품 와인이다. 이원복 교수가 피오 체사레의 오너를 만나 바롤로 와인의 세계를 들었다.
7월 6일 서울 정식당 테라스에서 포즈를 취한 피오 보파(오른쪽)와 이원복 교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와인의 오너를 만나게 돼 너무 기쁩니다.”

7월 6일 오전 이원복 교수가 만난 인물은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유명 양조장 피오 체사레의 오너인 피오 보파(Pio Boffa·57). 1881년 설립돼 4대에 걸쳐 피에몬테에서 와인을 생산해온 피오 체사레(Pio Cesare) 가문은 안티노리, 가야 등과 함께 이탈리아 3대 와인 명가로 꼽힌다.

양조장 설립자의 증손자인 보파는 피오 체사레를 세계적 와인 회사로 키운 주역이다.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그는 이 교수를 만나기 위해 공항에 내리자마자 약속 장소로 달려왔다. 보파는 “한국에 올 때마다 우리 와인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며 “일본의 경우 한국보다 와인 시장이 몇 배나 크지만 우리는 한국에서 올리는 매출이 일본과 비슷하다. 그만큼 우리 브랜드를 사랑하는 한국 와인 매니어가 많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가 피오 보파를 만난 곳은 서울 도산공원 근처에 위치한 정식당. 퓨전 한식당으로 잘 알려진 이곳은 ‘압구정 아이돌 셰프’로 불리는 임정식씨가 운영한다. 한국적 재료를 사용하지만 화려한 비주얼과 튀는 조리법으로 입맛 까다로운 요리 전문가부터 대기업 오너까지 단골을 여럿 두고 있다.

보파는 “기존에 먹어 봤던 한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며 “이탈리아 와인과 궁합이 너무 잘 맞는다”고 극찬했다.

바롤로 1년에 6만 병 생산



이원복 당신 와인 중 바롤로를 좋아한다. 하지만 비싼 게 흠이다.



보파 나한테도 비싸다.(웃음) 그래서 매각 제의가 들어와도 팔 수 없다. 포도밭을 판다면 이 비싼 와인을 돈 내고 사 먹어야 되지 않겠느냐.(웃음)



이원복 바롤로의 1년 생산량은 어느 정도인가?



보파 6만 병 정도다.



이원복 정말인가? 생각보다 너무 적다. 생산량을 더 늘릴 계획은 없나?



보파 불가능하다. 바롤로는 네비올로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 때문에 다른 품종과 블렌딩할 수 없다. 따라서 와인 생산량을 늘린다는 것은 와인 생산방식에 변화를 줘야 하고, 이는 와인 맛의 변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건 소비자가 우리 와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와인은 친구와 같다. 어제 만난 친구가 오늘 달라졌다면 내일 만나고 싶겠나?



이원복 포도밭을 추가로 사면 되지 않나?



보파 지금 관리하는 포도밭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바롤로에선 포도밭을 팔려고 내놓는 사람이 없다.

피오 체사레의 와인 중 한국 와인 애호가의 입맛을 사로잡은 와인은 바롤로(Barolo)다. 바롤로는 피에몬테의 마을 이름이자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말한다. 바롤로는 특히 오래 숙성할수록 진가가 나타난다. 바롤로라는 이름을 레이블에 사용하기 위해선 포도를 최소한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시켜야 한다.

바롤로는 네비올로라는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종종 피노 누아로 와인을 만드는 프랑스의 부르고뉴와 비교된다. 부르고뉴처럼 기후조건과 토양이 다양해 같은 바롤로 지역에서도 다양한 맛의 와인이 생산된다. 실제 땅값도 ㏊당 100만 달러로 부르고뉴 포도밭과 비슷하다. 그래서 가격도 비싸다. 대부분의 바롤로는 소비자가격이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원복 130년 동안 꾸준한 와인을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보파 현재 와인 레이블은 증조부가 만들었던 그대로다. 레이블을 한번도 바꾸지 않았다. 포도 수확부터 철학까지 대부분 그대로다.



이원복 세월이 지나면서 바뀐 건 없나?

정식당의 대표 메뉴 ‘오감만족 돼지보쌈’.


보파 와인을 만드는 기술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는 과거보다 좀 더 빨리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만든다. 즉 빨리 숙성되는 와인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 더 젊은 바롤로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이원복 이유가 무엇인가?



보파 선호하는 와인 스타일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건강을 중시하면서 낮은 알코올 도수의 와인을 선호한다. 알코올을 줄이면서도 변함없는 맛을 유지하는 데 우리만의 기술을 적용한다. 특히 바롤로를 처음 마시는 젊은 사람들의 경우 숙성이 덜돼 강한 스타일의 바롤로를 마신 후 “이런 이상한 짐승이 있나”라며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네비올로는 사람으로 비교하면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우리는 네비올로를 사람들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도록 만든다.

바롤로는 인내심이 필요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생산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와인은 제대로 된 맛을 보여주지 않기에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피오 체사레와 같은 혁신적 양조장들이 빨리 마실 수 있도록 와인을 제조하면서 이른 빈티지의 바롤로도 각광 받고 있다. 보파는 “우리 바롤로 중 지금 마시기에 적당한 와인은 2007년산”이라며 “날씨 자체가 더웠기 때문에 더 빨리 숙성됐다”고 설명했다.



이원복 와이너리를 물려받은 계기가 있나?



보파 자동적(automatically)으로 물려받았다.(웃음) 사실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일요일에 14시간씩 일할 순 없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양조장이다. 물론 프랑스처럼 성(城)과 같은 샤토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이원복 양조장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은 무엇인가.



보파 1899년산 바롤로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마셔 본 것은 1902년산이 가장 오래됐다. 1991년 아버지의 80세 생일 때 마셔봤다. 맛이 훌륭했다. 우리 바롤로는 지금 마셔도 좋지만 몇십 년을 두고 마셔도 환상적이다. 나는 이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원복 130년 전통을 잇는다는 중압감은 없나?



보파 없다. 우리는 역사가 400년 넘는 안티노리 같은 곳과 비교하면 아직 아기에 불과하다.(웃음) 지금은 조카가 양조장에서 일하고 있다. 내 딸은 아직 열네 살이라 와인에 관심이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이원복 과거 미국 와인 양조장에서도 일한 것으로 안다.



보파 1971년 캘리포니아 로버트 몬다비 양조장에서 일했다. 아버지와 몬다비가 친구였다.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선 현지 양조장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탈리아에 돌아와선 캘리포니아에서 느낀 것들을 접목하려 노력했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소비자에게 외면 받지 않는 개방적 마인드가 대표적이다.



이원복 소비자는 합리적 가격에 좋은 와인을 마시고 싶어 한다.



보파 당연하다. 와인은 즐거움이다. 와인에 돈을 쓸 때는 그 와인이 자신에게 얼마나 즐거움을 줄지 고려해야 한다. 5유로를 줘도 나에게 행복을 주는 와인이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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