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쇠붙이의 따뜻함’을 닮은 철물장이
[Collector] ‘쇠붙이의 따뜻함’을 닮은 철물장이
2010년 6월 국보 1호 숭례문 복원공사 현장에 전통 대장간이 생겼다. 숭례문 복원에 필요한 철물을 전통방식으로 제작해 사용하기 위해서다. 시뻘건 쇳덩이를 받치는 모루, 쇳덩이를 메질할 때 쓰는 쇠메, 화로의 재를 긁어내는 쇠자루 등 대장간 도구들은 모두 쇳대박물관이 제공했다. 2011년 9월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선 쇳대박물관이 기획한 대장간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들쇠, 농기구, 사냥도구 등 대장간에서 만든 철물을 전시한다.
대장간.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최홍규(54) 쇳대박물관장은 쇠붙이 컬렉터다. 그는 박물관맨이고 수집가지만 원래 철물장이다. 그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그가 철물장이가 된 사연은 이제 많이 알려졌다. 1970년대 중반 그는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다. 재수하면서 용돈을 벌고 싶어 서울 을지로의 순평금속이란 철물점에서 임시직으로 아르바이트하듯 일을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철물 가공에 재미를 붙였다. 재미가 붙자 순평금속의 사장님이 닮고 싶어졌다. 철물을 만들어 팔고 인사동·황학동 곳곳을 돌며 철물을 수집했다. 쇠붙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 관장은 아예 이 길로 접어들었다. 건축물이나 가구 등에 필요한 철물을 디자인해 제품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공급했다. 수요가 점점 늘었다. 최 관장은 1989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철물점을 세웠다. 자신의 성을 따 ‘최가 철물’이라 이름 붙였다. 흔히 보아온 단순한 철물이 아니라 새롭고 세련된 디자인의 철물을 만들었다. 물론 전통방식의 대장간도 운영했다.
대학 떨어지고 철물점에서 아르바이트그와 교유하는 연극인 박정자씨는 최가 철물이란 상호에 매료됐다고 한다. “ 최가, 그 말이 딱 맘에 들더라고요. 이가, 박가 같은 건 옛날 표현이지 요즘은 안 쓰잖아요. 이 사람 뭔가 멋을 아는군 싶었죠.” 최 관장에게 쇠붙이의 멋은 무얼까. 그는 늘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쇠가 차갑고 단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쇠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어요.”
쇠를 만지면서 그는 전통 자물쇠를 만나게 됐다. 자물쇠는 자그마한 실용품이다. 모양도 갖가지인 데다 디자인도 참 예쁘다. 그의 철물 디자인에도 적잖은 도움이 됐다. 점점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자물쇠 컬렉터가 됐다. 그렇게 30여 년. 지금까지 그가 수집한 것은 전통 자물쇠 4000점, 대장간 용품 3000점 등 모두 1만여 점.
대표 수집품은 역시 자물쇠다. 전통 자물쇠는 요즘 것과 모양이 많이 다르다. 가로, 세로 1㎝ 정도의 작은 것부터 폭이 30㎝에 이르는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ㄷ자 모양, 원통 모양, 붙박이 모양, 함박 모양, 물고기 모양, 용 모양, 거북 모양 등 그 생김새도 갖가지다.
모양에 담긴 사연도 흥미롭다. 물고기 모양은 잠잘 때도 눈을 뜨는 물고기처럼 물건을 잘 지켜달라는 뜻이 담겼다. 또한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다산에 대한 기원도 들어 있다. 거북 모양 자물쇠는 두껍고 딱딱한 거북등처럼 귀중한 것을 잘 보호해 달라는 기원을 담았다. 박쥐 모양 자물쇠는 박쥐가 한꺼번에 5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하여 오복을 상징한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자물쇠 하나를 만들면서도 낭만적이고 인간적이었다.
고려 왕실에서 사용했던 은입사(銀入絲) 자물쇠도 있고 조선시대 혼수품으로 즐겨 사용했던 열쇠패도 있다. 빗장과 대장간 도구도 매력적이다. 최 관장이 가장 아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열쇠패다.
“열쇠패는 동양에서도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물입니다. 그것도 숙종에서 고종 때 사이에 만들어진 것만 전해오고 있지요. 주로 혼수품이었는데 금속공예, 매듭, 천연염색, 자수 등 모든 공예기법이 가미된 종합공예품입니다. 일본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해외로 많이 반출되고 국내에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상당히 귀한 유물이지요.”
자물쇠는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용품이다. 거기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미감이 전해온다. 때론 검박하고 때론 화려한 모습. 그것은 오롯이 옛사람들의 삶이다. 최 관장은 “그런데도 우리가 소홀이 다루고 무심히 넘겼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갔고 더더욱 수집에 열정을 기울이게 됐다”고 말한다.
박물관 세워 철물문화 이끌어수집을 하다 보면 사명감을 느끼고 체계적인 수집욕구가 생기게 된다. 최 관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2003년 서울 대학로에 쇳대박물관을 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소장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박물관을 거점으로 금속공예 예술가, 건축가, 대학로 문화계 인사들과 어울리면서 철물문화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이제 그의 컬렉션은 박물관이란 공간을 통해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나아간 것이다.
최근엔 해외 전시에도 관심이 많다. 2008년 일본 도쿄 민예관, 2009년 미국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갤러리, 2010년 일본 오사카 한국문화원 전시에 이어 지금은 미국 와이오밍주립대 미술관에서 자물쇠, 열쇠패, 쇳대 등을 선보이고 있다.
최 관장은 또 하나의 꿈이 있다. 경기도 양평에 새로운 박물관을 짓는 것이다.
“지역주민은 물론이고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철물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전통 대장간도 체험하고 거기서 디자인한 작품도 만들어보고 또 방짜그릇에 음식을 담아 소반에 내놓기도 하는 그런 공간입니다. 철물문화를 통해 한국문화 전체를 느끼고 알리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컬렉션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주저 없이 “백과사전”이라고 답했다. “제대로 컬렉션을 하려면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컬렉션의 매력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컬렉션은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고, 과거를 넘나들면서 현재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그가 없었다면, 그의 컬렉션이 없었다면 우리는 우리 자물쇠, 우리 쇠붙이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느끼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그의 말대로 소통인 셈이다. 쇠는 단단한 것 같지만 불에 달구면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모양을 낼 수 있다. 자신을 한없이 뜨겁게 달궈 무수한 메질과 담금질 끝에 하나의 모양을 갖추는 쇠, 그러고 나선 굳건히 그 모양을 지키는 쇠. 그의 말대로 쇠는 강하면서 부드럽다.
지난해 딸아이를 데리고 쇳대박물관에 갔다 선물을 받아 왔다. 귀엽고 앙증맞은 망치 목걸이, 엿장수 가위…. 요즘도 자그마한 엿장수 가위를 만지작거리며 추억의 쇳소리를 내보곤 한다. 절로 미소가 나온다. 투박하지만 부드럽고 인간적인 쇳소리. 철물장이 최 관장도, 컬렉터 최 관장도 꼭 쇠붙이를 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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