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매출 2000억 노리는 상보 김상근 대표

그의 아버지는 영세상인이었다. 시장에서 잡화류를 팔았다. 장사는 제법 잘됐지만 아버지는 노름방을 전전했다. 재산을 탕진했고 뇌출혈로 생을 달리했다.
경주 김씨 장손인 김상근(61) 대표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해 15세였다. 그는 홀어머니와 두 동생을 먹여 살려야 했다. 공부를 접고 권투 글러브를 꼈다. 서울 을지로 명보극장 옆에 있었던 한국체육관에서 땀을 흘렸다. 국내 최초 세계 챔피언 김기수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 그래야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질이 남달랐다. 몸이 빨랐고 주먹이 셌다. 특히 레프트 잽은 일품이었다. 승운은 없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 권투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오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우승 경력이 없는 그에게 세계 챔피언의 꿈은 멀어져 갔다. 권투 글러브를 낀 지 5년이 흘렀다. 김 대표는 청년이 됐다. 권투를 계속하기 힘들었다. 그 정도 실력으론 돈을 벌 수 없었다. 고육책으로 비닐을 가공하는 신영진화학에 입사했다. 생산관리를 맡았고 비닐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배웠다. 이 일이 평생직업이 될 줄은 그도, 주변 사람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에게 창업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1976년 한 지인이 “돈을 댈 테니 비닐가공 기술을 전수해 달라”며 공동창업을 제안했다. 그래도 창업자금이 필요할 것 같아 여기저기서 3000만원을 빌려 공장설립 비용에 보탰다. 그런데 지인이 돌연 말을 바꿨다. “월급쟁이 사장에 만족하라”고 했다. 자존심이 상한 그는 거절했고 졸지에 백수가 됐다. 직장에 들어가야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1977년 그는 단독 창업을 결심했다.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집을 세를 놓아 40만원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서울 신당동 골목에 ‘상보화학공업사’를 세웠다. 말이 공업사지 남의 공장에 세를 주고 입주한 구멍가게 수준의 업체였다. 설비라곤 상품 포장지에 글씨를 새기고 코팅하는 기계밖에 없었다. 월 100만원을 벌기도 힘들었다.
판잣집 수준의 ‘상보화학공업사’가 국내 시장점유율 1위 광학필름 제조사 ‘상보’의 전신이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상보는 강소기업으로 손꼽힌다. 직원 250명에 지난해 매출은 1500억원이다. LG전자를 비롯한 국내 70여 개 업체, 일본 소니·TDK·후지·맥스웰, 대만 AUO·CMO·CPT 등 해외기업과 거래한다. 코스닥 상장(2007년) 1000호 기업이기도 하다.
김상근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창업 초기 직원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월 150만원만 벌어도 삼겹살 파티를 했다. 생각해보면 상보는 괄목성장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누가 뭐래도 기업인이다. 더 성장했어야 하고, 더 성장해야 한다.” 그는 “권투할 때 키웠던 헝그리 정신으로 지금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단돈 40만원으로 창업한 상보가 어떻게 연매출 2000억원을 노리는 기업으로 컸을까. 아이디어가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창업 초기 상보는 비닐을 가공·생산하는 업체였다. 회사를 키우려면 히트상품이 필요하게 마련인데, 김 대표에겐 그게 없었다. 히트상품을 구상하던 중 김 대표의 머리에 문득 선친의 유언이 떠올랐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거라.” 그는 생각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 수출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니까 수입대체 상품을 만들어보자.”
아이템을 찾던 김 대표는 오디오 테이프의 양끝에 들어가는 ‘리더 테이프(필름)’가 100% 일본에서 수입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리더 필름은 테이프 끝에 붙어 있는 흰색 필름을 말한다.
그는 곧바로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 전문지식이 없었던 그로선 발품을 팔아야 했다. 1년 동안 전문가 50여 명을 찾아다녔다. 귀동냥으로 얻은 여러 기술을 조합해 1979년 리더 필름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그는 “스티브 잡스 이후 융·복합이 인기 아닌가”라며 “상보의 리더 필름이야말로 융·복합의 산물”이라고 했다.
리더 필름은 상보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 필름의 생산 직후 새한미디어·코오롱·SKC·SKM 등 대형 오디오·비디오 테이프 제조사에 납품됐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 시장점유율 70%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는 “오디오·비디오 테이프가 전성기를 누릴 때 상보도 동반성장했다”며 “1995년 매출이 400억원에 육박했다”고 전했다.
상보의 성장세는 1990년대 후반 꺾이기 시작했다. 오디오·비디오 테이프가 CD·DVD로 바뀌기 시작하면서다. 리더 필름이 핵심사업이었던 상보는 위기를 맞았다. 숱한 역경을 이겨낸 김 대표도 그땐 당황했다. “솔직히 테이프 시대가 그렇게 빨리 CD·DVD로 넘어갈지 예상하지 못했다. 2000년에 들어서야 새로운 사업구상에 들어갔다. 늦어도 한참 늦은 때였다.”
LCD 디스플레이용 필름 국내 첫 개발김 대표는 새 사업의 아이템을 LCD(액정표시장치)에서 찾아냈다. 2000년 3월 LCD TV를 보고 “아! 이것이다” 싶었다. 그는 CD·DVD 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도래했듯 LCD TV도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더구나 LCD의 필수품은 상보가 생산하는 필름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LCD는 ‘BLU(백라이트유니트·광원)’가 필요하다. 필름은 BLU가 발산하는 빚을 한데 모으거나 골고루 분산하는 역할을 한다.
상보는 3년여 개발 끝에 LCD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개발했다. 첫 제품은 빚 광학·보호시트(필름)였다. 순차적으로 확산·프리즘(집광)시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2006년 상보는 확산·보호·프리즘·반사시트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토털 LCD 디스플레이용 필름업체’로 거듭났다. 당시로선 국내에서 유일했다.
김 대표가 찾은 신성장동력은 또 있었다. 차량 또는 창문에 붙이는 ‘윈도’ 필름이었다. 그는 “한 가지 제품만 생산하면 (상보가 1990년대 후반에 겪었듯) 업계 환경이 바뀔 때 위기에 빠질 공산이 크다”며 “2000년대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말했다.

2003년 윈도 필름을 개발한 상보는 현재 에너지 보호와 방탄이 가능한 두 종류의 ‘안전(윈도) 필름’을 생산한다. 에너지 보호필름은 적외선 95%, 자외선 98%를 차단한다. 세계 최고 기술력이다. 방탄필름의 성능도 좋다. 이 필름을 붙인 유리는 1~2m 앞에서 총알(38구경)을 맞아도 깨지지 않는다.
김 대표의 신사업은 성공했고, 상보의 실적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2년 300억원까지 떨어졌던 매출은 2009년 1030억원으로 증가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테이프·윈도·LCD 디스플레이 필름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러나 그는 긴장의 고삐를 풀지 않고 있다. 업계 환경이 최근 들어 대형 LCD 디스플레이에서 ‘TMD(태블릿PC & 모바일 디스플레이)’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형 디스플레이용 필름을 개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스마트폰·태블릿PC의 터치스크린에 들어가는 필름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CNT(탄소나노튜브) 필름 개발이 핵심이다. 터치스크린용 필름의 원료는 희귀금속 중 하나인 ‘ITO(산화인듐주석)’다. 그런데 ITO를 제조할 수 있는 원천기술은 일본이 갖고 있다. 우리로선 터치스크린용 ITO 필름을 일본에서 전량 수입할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터치스크린용 필름의 주원료를 ITO에서 CNT로 바꾸는 게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CNT는 유연성이 좋고 강철보다 100배 단단하다. 공정 단가도 ITO에 비해 50%가량 저렴하다.
이런 이유로 터치스크린 제조업체 사이에서 CNT는 ‘신(神)의 소재’로 불린다. 많은 글로벌 필름업체도 CNT 제조기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이 가운데 상보의 발걸음이 가장 빠르다. 올해 중순 터치스크린용 CNT 필름을 월 20만~30만 개 생산할 수 있는 양산설비를 갖췄다. 이르면 내년 초 이 필름의 상용화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한 치의 오차까지 없애기 위해 올 10월 미 일리노이 공대 심문섭 교수 연구팀과 ‘CNT 투명전극 기술 공동연구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심 교수는 나노 신소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김 대표의 말이다. “최근 미국 MS(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로운 OS(운영체계)인 ‘윈도8’을 발표했다. 이는 터치 방식의 대형 스마트 기기가 탄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스마트 기기가 대형화될수록 제조사들은 원자재 가격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 결과 ITO 필름이 CNT 필름으로 빠르게 전환될 공산이 크다. 누가 CNT 필름을 먼저 개발하느냐에 따라 시장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상보의 신사업에는 ‘연료감응형’ 태양전지도 있다. 김 대표는 “2012년 모바일 충전용 및 건물내장형 태양전지 시제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2015년 상용화가 목표”라고 말했다.
상보가 새로운 영역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이유는 김 대표의 R&D(연구개발) ‘고집’ 덕분이다. 그는 1985년 사내에 기술연구소를 세웠다. 인원은 20명에 불과하지만 국내 최고의 공학도가 포진해 있다. 신제품이나 신소재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사내연구소를 연구 및 기술개발팀으로 분류한 이도 그다. 특히 김 대표는 ‘신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마음먹으면 R&D자금을 아낌없이 투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방탄필름을 만들 땐 매출의 6%를 R&D에 쏟아 붓기도 했다. 그는 “신제품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면 여유자금을 모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매출 1조 시대 열 것”김 대표는 20세 때 권투 글러브를 벗었다. 이후 필름업계라는 또 다른 사각링에서 사투를 벌여왔다. 그는 “인생이 10라운드 권투경기라면 6라운드까지 뛴 것 같다”며 “남은 4라운드를 잘 싸워야 상보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보의 핵심제품인 LCD 디스플레이용 필름에 CNT 필름이 결합되면 2015년 매출 5000억원 목표를 능히 달성할 것 같다. 여기에 태양전지 사업까지 반석 위에 오르면 2020년 매출 1조원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상보를 세계 최대 필름·전지업체로 키우겠다.” 그는 약관 때 포기했던 세계챔피언의 꿈을 40년 만에 다시 꾸고 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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