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France] 파리는 겨울이 더 낭만적이다
[Travel France] 파리는 겨울이 더 낭만적이다
우중충한 겨울 아침 난 파리의 플라자 아테네 호텔 로비에 서 있었다. 파리 여행은 아내가 내 40회 생일을 축하하려고 계획한 이벤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난 자축할 기분이 아니었다. 건강이 문제였다. 파리에 오기 일주일 전 당뇨병 발병 조짐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I was standing in the lobby of the Hotel Plaza Athenee. It was winter, a gray morning. I was in Paris as part of a series of celebrations my wife had arranged for my 40th birthday. I did not feel like celebrating, though. I had been having health problems, including learning a week before I arrived that I was probably going to develop diabetes.
파리는 마치 포르노 같다. 원하지 않아도 저절로 반응하게 만든다. 길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또 다른 거리 풍경은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붙인다(You turn a corner and see a vista, and your imagination bolts away). 우리는 갑자기 파리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보지 않은 다양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은 오늘 하루 얼마나 즐거운 일이 많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른다. 그럴 때면 파리에 와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느껴진다.
플라자 아테네 호텔의 로비는 붉은색과 금색의 환상곡처럼 느껴진다. 물랭루즈(캉캉춤으로 명성을 날렸던 파리의 극장식 식당)처럼 퇴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It gives off a whiff of Moulin Rouge decadence). 이 호텔은 파리의 어느 호텔 못지 않게 요염한 매력을 내뿜는다. 난 회전문과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호텔 진입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니 스커트와 검정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모는 두카티 오토바이 한 대가 호텔 문 앞에 멈춰섰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그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난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여자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상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 서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기운 좀 내. 넌 지금 파리에 와 있어.”
여러 면에서 파리 여행에 가장 좋은 계절은 겨울이다. 우선 관광객이 적어서 도핀가의 좁은 보도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The tourist crowds are at a minimum, and one is not being jammed off the narrow sidewalks along the Rue Dauphine). 하지만 그보다도 파리는 유럽의 다른 많은 도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문화행사들을 늦가을에 시작한다는 점이 큰 이점이다. 추운 겨울이 되면 파리의 대다수 문화기관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예를 들면 루브르 박물관에서 지난 9월 말 개막된 중국 자금성(紫禁城)에 관한 전시회는 내년 1월 초까지 계속된다. 또 뤽상부르 미술관은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세잔과 파리’라는 제목의 멋진 전시회를 연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안다고 생각했던 미술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줘 주목을 끌어 온 그랑 팔레 미술관에서는 마티스와 세잔, 피카소의 작품들을 스타인가(1900년대 초 미국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후 유럽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후원자 겸 수집가로 알려진 가문)의 수집 취향에 비춰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연다.
파리 여행엔 봄이나 가을보다 겨울이 훨씬 더 좋다고 말하는 데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8월 말 여름 휴가가 끝나고 멋쟁이 파리지엔들이 파렵이면 이들 레스토랑 대다수가 미비한 점을 보완한다. 또 떠들썩한 홍보 열기가 가라앉고 나면 어떤 레스토랑이 정말 괜찮은지, 또 어떤 곳이 소란스럽고 사람들만 북적이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이번 겨울엔 ‘샤토마(Chatomat)’라는 레스토랑이 특히 주목 받는다. 요즘 파리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스트로(작은 레스토랑) 중 하나다. 이런 스타일의 새 레스토랑 대다수가 그렇듯이 샤토마도 파리에서 비교적 허름한 지역에 자리잡았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샤토마는 파리의 화교 밀집지역인 벨빌에 있다). 파리 샹그릴라 호텔에 문을 연 중국식 레스토랑 ‘샹 팰리스(Shang Palace)’ 역시 큰 관심을 모은다. 물론 여행객이 파리에서 하게 될 몇 끼 안 되는 식사 중 한 끼로 중국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The decision to spend one of a limited number of Paris meals eating Chinese food is, of course, an individual decision). 하지만 보나파르트 가문이 소유했던 오래된 저택을 개조해 문을 연 샹그릴라 호텔은 한번 가볼 만하다. 그 호텔에서 식사를 원한다면 좀 더 캐주얼한 ‘라보이냐(La Bauhinia)’를 추천한다.
난 클럽에 잘 가지 않지만 올 가을 문을 연 ‘실렌시오(Silencio)’는 클럽이라기보다 살롱이나 금주법 시행 당시의 주류밀매점 같은 분위기를 풍겨서 흥미로웠다(I am not a clubgoer. The club Silencio, though, which opened this fall feels not so much like a typical club as a salon or speak-easy).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디자인했고 이름도 그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나오는 작은 나이트클럽의 이름을 그대로 썼다. 이 클럽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고, 콘서트가 열리며, 인기 DJ들의 공연이 열린다. 이 모두가 올 겨울 파리 여행을 특히 더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아내와 나는 호텔 프런트에서 체크인 한 뒤 방으로 올라갔다. 늦은 아침의 가느다란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바깥 날씨가 쌀쌀하니 침대에 드러누워 포근한 이불 속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의사는 내게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고 일어나면 짧은 겨울 낮을 허비했다는 생각에 상실감이 들 게 분명했다(I knew also that if I slept and woke, I would feel lost in the short winter day). 난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뒤 가방에서 러닝화를 꺼내 신고 호텔을 나섰다.
링컨은 “사람은 자신이 마음 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Most people are about as happy as they set their mind to being, Lincoln said). 파리에서는 행복해지는 데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밖으로 나가니 하늘이 높고 맑았다. 센강까지 몇 블록을 걸은 뒤 청록색 강물을 따라 에펠탑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테라스(경사면의 계단식 대지) 옆으로 난 자갈길을 따라 뛰다 보니 트로카데로 공원이 나왔다. 멀리서 본 에펠탑은 시커맸다. 그리고 창조의 기쁨에 중점을 두고 세워진 건축물 대다수가 그렇듯이 이상하게 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And it felt strange and beautiful the way that many things built for the joy of building do). 에펠탑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격자 모양의 구조 때문인지 섬세하고 약해 보였다. 바라볼수록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 기분이 바뀌었다. 내가 파리에 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공원 여러 개를 지났다. 발 밑에서 자박자박 자갈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가지를 너무 짧게 자른 플라타너스 나무들도 지났다. 윗 부분이 뚝 잘려나간 그 나무들은 마치 웨이터의 손목과 손으로 받쳐진 쟁반처럼 보였다. 시멘트 보도 위도 달렸다. 십대 딸들과 함께 산책하는 파리지엔들을 지나쳤다. 딸들의 옷차림이 어머니들과 비슷했다. 다른 많은 나라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무조건 젊어보이려 하기보다는 멋과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Because, in France, there is not the same fetish for youth as there is in many countries. Instead, the emphasis is on chicness and on personality). 황금빛 돔 형태의 지붕이 눈길을 끄는 앵발리드도 지났다. 17세기에 지어진 보훈병원인데 이기적인 생각이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나치에 항복해 파리가 폭격을 당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난 계속 달렸다. 건강이 의심스럽던 내 몸이 아름다운 파리를 달리고 싶은 내 욕망을 채워주고 있었다(I kept running and the body that I had begun to feel distrust for, kept responding to my desire to carry me through beautiful Paris). 당뇨병 발병 가능성 경고로 마음에 큰 실망을 안겨줬던 이 몸이 말이다.
겨울 밤 광륜(光輪: 강한 빛 주위에 나타나는 동그란 고리 모양의 후광)에 둘러싸인 파리의 가로등들은 민들레 꽃을 연상케 한다. 겨울에 파리 거리를 걷다가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빛과 온도가 갑자기 확 달라진다. 그러면서 비밀스러운 뭔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든다. 겨울엔 낮이 짧아 여행객들은 행선지 결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오늘은 루브르 박물관에 갈까, 아니면 자크마르-앙드레 미술관에 갈까?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기보다는 미리 계획해서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인생은 짧으니 중요한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There is the sense that life is short and so let us decide on what matters).
이번 여행은 내 40회 생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호텔 숙박비로 거금을 썼다(Because it was a milestone birthday, my wife and I were splashing out for our hotel rooms). 우리는 파리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는데 그중 절반은 플라자 아테네 호텔에, 나머지 절반은 르 뫼리스 호텔에 묵었다. 르 뫼리스는 아내가 선택했다. 아내는 나더러 호텔 두 곳을 다 정하라고 했지만 그런 거금을 내 취향에만 맞춰 쓰는 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염한 매력을 풍기는 플라자 아테네와 달리 르 뫼리스는 은밀하고 조용하며 우아했다.
아내와 나는 취향이 아주 다르다. 우리는 파리에 있는 동안 어떤 레스토랑에서 식사할지, 또 어떤 미술관을 구경할지를 서로 번갈아가며 결정했다(Through the week, she and I alternated which restaurants we would eat at and which museums we would visit). 나는 매번 새로 생긴 레스토랑과 미술관을 택했다. 반면 아내는 소위 ‘오랜 친구들’을 선택했다. 센강 좌안(左岸)의 작은 레스토랑들과 루브르 박물관의 ‘승리의 여신상’ 같은 조각들을 말한다. 난 내가 늘 새롭고 참신한 것을 경험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와 나의 취향을 번갈아 반영하면서 나 자신을 곰곰이 되돌아보니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내 습성이 시대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집착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우리는 파리에서 마지막 식사를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유명한 프랑스 요리사 알랭 뒤카스가 운영한다)에서 하기로 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등급인 별 세 개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시대에 맞게 새로워진 프랑스 요리를 맛보게 되리라 기대했다. 이 레스토랑은 프랑스 요리의 범주에 속한다고 여겨지는 요소에 새로운 요소들을 첨가하는 뒤카스의 방식 덕분에 최첨단으로 인정 받고 있다(What makes the restaurant cutting-edge is how he adds to what counts as belonging in the category of French cooking). 프랑스의 특정 지역에만 자라는 버섯에 인도가 원산지인 레몬그라스와 마살라(카레 등에 쓰이는 인도식 혼합 양념)를 곁들이는 식이다.
레스토랑 안은 조용하고 널찍했다. 그리고 세련된 색상으로 꾸며져 매우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니 최근 뒤카스가 세련됨보다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듯했다. 우리는 쪄서 차갑게 식힌 새우 요리와 뜨거운 메추라기 파이 등을 선택했다. 각각의 요리가 순수하게 그 자체의 맛으로 다가오는 동시에 그것을 고안해 낸 요리사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법한 온갖 기억이 함께 느껴지는 듯도 했다(Each dish that we ordered seemed both only itself and also all the memories that the man who had devised them must have experienced). 새우 요리를 먹으면서 해변을 걷는 듯한 즐거움이 느껴졌고 메추라기 파이를 맛보니 숲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나는 호텔에 가서 짐을 찾은 다음 센 강변을 손잡고 걸었다. 강물이 고딕 양식의 교회들을 지나 돌다리와 나무다리 아래로 빠르게 흘렀다. 강물은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도 지났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렇게 흘렀고, 앞으로도 수천 년 동안 그렇게 흐를 것이다(It had been racing like this for thousands of years and would be doing so for thousands more).
[필자는 인도계 미국인 작가로 저서로는 ‘순종하는 아버지(An Obedient Father)’와 ‘다른 하늘의 별(Stars From Another Sky: 내년 출간 예정)’이 있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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