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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들은 아직도 고대 신화 속에서 산다

그리스인들은 아직도 고대 신화 속에서 산다

“그리스는 험난한 코스, 새로운 오디세이(장기간의 모험여행)에 들어섰습니다.”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언젠가 나라의 경제난을 두고 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타카(오디세우스의 고향)로 가는 길을 압니다. 그리고 해도도 있습니다.” 파판드레우가 신화 속의 오디세우스를 인용했다고 나무랄 건 없다. 그리스는 원래부터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역사를 편리하게 이용해 왔다.

We are on a difficult course, on a new Odyssey for Greece,” former prime minister George Papandreou once observed of his country’s economic malady. “But we know the road to Ithaca and we have charted the waters.” The man could be forgiven for falling back on the iconic Odysseus—Greece has always looked on the classical age as a usable past.

그러나 고전 ‘오디세이’는 그리스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는 길잡이가 되지 못한다. 오디세이는 모험과 복수 그리고 고향에의 향수를 그렸기 때문이다. 그 여행에서 이익은 거의 비중이 없다. 딱 한번 오디세우스가 표류하다 도착한 파에아키아에서 그에게 운동능력을 과시해 보라고 놀릴 때 언급된다. “아, 알았다.” 한 주민이 이죽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게임을 잘할 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아(never took you for someone skilled in games). 전혀. 빠른 배를 타고 바다를 돌아다니는 장사꾼들의 선장이지(some skipper of profiteers). 머리 속으로는 확보한 물건을 셈하며 눈에 불을 켜고 싣고 돌아갈 물건을 찾다가 황금을 쓸어 담을 뿐이야.” 오디세우스는 그 미끼를 덥석 문다. 어쨌든 명예와 영광은 중요한 문제다. 그는 파에아키아인들의 게임에 도전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상업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플라톤(Plato)은 국가론(The Republic)에서 그것을 경시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상업은 도시(polis)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으며 외국인 거주자(metics)에게 맡겨두는 편이 상책이라고 여겼다. 그리스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열렬히 주장하는 이런 고대 그리스의 전통(classical tradition)에선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한다. 그리스인들이 그런 서사시와 고대 그리스 영웅들을 자랑할 때 독일 은행가들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그리고 최근의) 과거는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했을 때 그리스인들이 장사꾼과 해상무역상으로 보여준 사업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영웅담은 아니다. 금융과 상업은 전설의 소재가 아니다. 오스만 제국(The Ottoman Empire)은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40개에 가까운 국가와 공동체가 그 허술한 제국을 구성했다. 관료체제와 군대는 투르크인의 영역이었지만(the preserve of the Turks) 그리스인들은 스스로 틈새를 찾아 상인과 중개상으로 번창했다.

술탄(황제)의 영지에는 어디에나 그들이 있었다. 그리스 반도, 아나톨리아, 그리고 오스만 병사들이 정복한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그리스어는 레반트 지방(Levant, 지중해 동쪽 연안국 키프러스, 이집트,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터키 등)의 공용어(lingua franca)였으며 장소에 따라서는 오스만 투르크어와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변덕의 진수인 바다를 차지했다(So they always had the sea, the very essence of caprice)”고 제이슨 굿윈이 오스만 세계를 아름답게 재구성한 ‘지평선의 지배자들(Lords of the Horizons)’에서 그리스인들을 가리켜 말했다.

그리스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해안을 지배했다. 아나톨리아 해안지대(Anatolian seaboard)의 스미르나(오늘날의 터키 이즈미르)는 그리스 상인들의 탁월함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자리잡았다. 1600년대 이 도시는 황금기를 맞았다. 상인들만의 힘으로 일궈낸 업적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오스만족 관료들과 술탄의 각료들보다 생각이 앞서나갔다. 그들의 세계는 진정으로 세계주의적(cosmopolitan)이었다. 도시의 은행가, 변호사, 상인, 의사가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리스 상인들은 알렉산드리아까지 장악했으며 이집트의 시골 벽지까지 파고들어 물건을 팔았다. 그들은 수완이 뛰어났으며 레반트 시장을 개척하던 프랑스인과 영국인들은 그리스인들을 기민하고 명석한 경쟁자로 여겼다.

하지만 투르크 세력과의 이같은 타협은 민족주의의 매력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this accommodation with Turkish power could not withstand the appeals of nationalism). 그리스인들은 그들 자신의 세계를 원했다. 그들은 오스만 지배체제에서 현실적으로 대처했지만 갈수록 비현실적으로 바뀌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와 오래 유리됐던 그들이 19세기 들어 그 시절을 찬양하게 됐다.

이들을 우러러보는 외국인들도 자신들은 특별하다는 그들의 인식, 여타 민족과는 다르다는 인식을 부채질했다. 정교회(Orthodoxy)와 헬레니즘(Hellenism)이 제멋대로 꽃을 피워 이 새로운 그리스의 형성을 두고 대국들이 세력다툼을 벌였다. 그리스인들은 외국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 저의를 의심하곤 했다. 그런 양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그들의 땅에 음모론이 횡행했다(Conspiracies stalked their homeland). 그리스 민족주의자들은 그리스를 시샘하는 나라들이 과거 그들의 영토였던 땅을 강탈하려 한다고 믿었다. ‘대그리스’의 역사적인 소명의식(The calling of “Greater Greece”)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오스만의 멸망으로 되찾은 조그만 왕국에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스 정치세계에 안정은 없다. 그들의 꿈은 항상 극단을 달린다(the dreams always deadly). 자신들이 달성 가능한 수준보다 훨씬 더 크다. 정교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교회는 이런 거창한 구상을 부채질했다. 포퓰리즘과 공산주의가 남은 자리를 채우며 이런 불행한 역사적 순환고리를 완성했다(closed the circle of this unhappy history). 서부 라틴어권(Latin West)은 그들이 항상 필요로 하면서도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었다. 이런 분열의 뿌리는 깊었다. 비잔티움과 로마 후손들 간의 갈등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역사가 리처드 클로그의 ‘간추린 그리스 역사(A Concise History of Greece)’에서 1980년 한 외무장관이 그리스의 EC(유럽공동체) 가입은 “유럽 전체가 3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그리스 유산에 졌던 문화·정치적 부채에 상응하는 적절한 상환(a fitting repayment by the Europe of today of the cultural and political debt that we all owe to a Greek heritage almost three thousand years old)”으로 간주되리라고 평했다. 그리스인들은 이런 권리의식과 특별함(sense of entitlement and specialness)을 받아들여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2010년까지 그리스를 짓눌렀던 부채위기는 이런 책임회피(sense of abdication)에서 비롯됐다. 그리스의 저변 깊은 곳에 사회주의 전통이 흘렀다. 유럽연합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가입은 유럽에 그리스라는 짐만 떠안길 뿐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는 시장의 규율이 통하지 않았다. 독일인들의 저축으로 그리스의 방종(indulgencies)을 떠받치게 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유럽 이사회에서 그리스인들은 그들 정치의 호전성을 최대한 활용했다(made the most of the truculence of their politics).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현대국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내고, 능력 이상으로 흥청망청하는 경제의 구조적 조정을 받아들이는 책임을 거부하는 그리스 국민들의 배짱 말이다.

2010년 심판의 날(Reckoning)이 왔다. 그리스의 대금 결제일이 다가왔지만 금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과 협약을 맺고 320억 유로의 예산을 삭감하는 조건으로 구제금융을 확보했다. 그러나 비대해진 공공부문은 필요한 삭감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the bloated public sector wanted nothing to do with the needed cutbacks). 5월 4~5일 48시간 동안 벌어진 파업은 비극으로 끝났다. 은행 직원 3명이 살해되고 은행이 불탔다. 파판드레우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싸움을 벌였다. 그는 외국 채권단의 요구와 국민의 생활방식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이 총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총리였다는 사실도 의미하는 바가 컸다. 아랍의 정치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왕조주의다). 그리스의 권력자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의 한복판(no man’s land)에 있었다.

시장은 그리스인들이 제안했던 긴축조치(austerity measures)에서 거의 위안을 얻지 못했다. 6월 중순 그리스의 신용도는 세계 최저로 떨어졌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푸어스(S&P)가 그리스의 신용등급(credit rating)을 B에서 CCC로 세 단계나 강등시켰다. 파판드레우는 안간힘을 다해 싸웠다. 인기 없는 재산세(property tax)의 의회통과를 약속받고 고액 연금의 20% 삭감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개혁조치를 이행하지 못했으며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재무장관에게 뭇매를 맞았다. 베니젤로스는 상당한 독자적 지지기반을 가진 정치 전략가다.

파판드레우는 2011년 11월 9일 물러났다(bowed out). 이번에는 실무형정치(technocracy)에 차례가 돌아왔다. 어쩌면 정치가 실패한 일을 해낼지도 모른다. 2002~2010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를 지낸 루카스 파파데모스가 자리를 물려받았다.

11월 18일 ‘그리스 태스크 포스(Task Force for Greece)’라는 유럽위원회가 상세하고 논리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그리스 경제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무미건조한 행정용어(antiseptic bureaucratese)로 쓰였지만 경종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개혁과제의 규모가 엄청나다”고 그 보고서는 밝혔다. 그리스는 “전례 없는 재정·경제 조정(unprecedented fiscal and economic adjustment)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경기위축이 예상보다 심하고 고통스럽다. 실업 특히 청년실업이 꾸준히 증가한다. 소기업들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liquidity constraints)에 직면했다.” 위원회가 밝힌 그리스인들의 습관에 새로운 비밀은 없었다. 탈세가 만연하고(걷히지 않은 세금 규모가 600억 유로에 달했다) 저축을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리는 행위가 국가적인 전통이었으며 관료체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었다. 정부의 공공계약을 따내는 데 230일이 소요된다. EU 평균의 배가 넘는 기간이다. 유럽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진 부채를 상환하며, 그리스의 자긍심 값도 지불하고 있었다.

“그리스는 서방문명에 속하지 않지만 서방문명의 중요한 원천이었던 고대 그리스 문명의 본산이었다(the home of classical civilization which was an important source of Western civilization)”고 고(故) 새뮤얼 P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에서 평했다. “그리스는 예외적으로 서방 조직에서 정교회 비주류였다.” 그리스인들의 자화상(self-image)은 서방세계의 가장자리, 이슬람이 시작되는 곳에서 경비를 서는 파수꾼 이미지다. 그러나 헌팅턴이 그렇게 뾰족한 연필로 그린 문명간의 경계선은 그리스를 러시아나 발칸 국가들과 한 부류인 정교회 세계로 분류했다.

헌팅턴은 1990년대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 세계화로 문화적 차이가 사라졌다는 기대 섞인 주장이 대세였다. 그리스는 자신들이 서방세계에 속하지 않는다는 헌팅턴의 주장을 입증할 듯하다.

그리스의 정치와 문화에는 사나운 반미주의가 깔려 있다. 그리스 악마학(demology)에서 미국은 사탄이며 미국 자본주의는 위협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반미주의의 구실은 무한했다. 미국이 보스니아인들과 코소보인들을 구하러 나서 세계에 죄를 지었다든가, 미국은 터키와 이슬람의 공범이며 그들의 힘은 “진정한 믿음(True Faith)”에 대한 위협이었다는 식이다.

거기에는 일관성이 없었으며 그럴 필요도 없었다. 2003년 그리스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분노한 척했다(feigned offense). 그해 세계적으로 실시된 퓨 설문조사에서 미국은 이란이나 북한보다 더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됐다. 유럽인들의 태도를 조사하는 리서치 컨소시엄 TNS 오피니언&소셜이 2005년 실시한 또 다른 조사에서 그리스의 반미주의는 가혹할 정도였다. 85%가 세계 평화정착에서 미국의 역할에 부정적이었으며 76%가 세계 빈곤퇴치 노력(the fight against world poverty)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스의 정치문화는 아직 현대화되지 않았으며 파멸적인 감정을 벗어 던져야 한다. 위에 인용한 2005년 조사에서 그리스인 10명 중 7명은 문화적 차이가 너무 커서 터키가 EU에 가입하지(allow Turkey’s accession) 못한다고 믿었다. 그리스인들은 터키의 이질성을 확신한 나머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스에 큰 피해를 가져다 준 반현대적, 반자본주의 여론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장벽이다(a mighty barrier all its own).

영국 시인 바이런과 그리스 애호가(philhellenes)들이 그들의 자부심을 키워준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 나라는 정치·경제적 규율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살았다(it is exempt from the demands of political and economic discipline). 구제금융을 얼마나 제공하든 중요하지 않다. 그런 특권의식(sense of entitlement)으로 인해 모든 호의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정치가들이 실패한 일을 이제 실무전문가들이 넘겨받았지만 냉혹한 경제현실 앞에서 표출된 분노는 그리스가 터무니 없는 꿈과 기대를 버렸다는 위안을 주지 못한다. 유럽국가들도 나름대로 고통을 받지만 그리스가 빠진 수렁은 다른 나라보다 더 깊고 고통스럽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이 확 깨는 메시지(a final sobering note)가 그리스인들을 심란하게 만들 듯하다. 한때 무역과 상업을 경멸하며 그런 문제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유대들에게 떠넘기고 군인과 관료로만 일했던 터키인들이 지금은 경제부흥에 한창 열을 올린다(in the throes of an economic renaissance). 근대 터키는 상거래를 하는 소수민족들을 말살하거나 추방했다. 이즈미르는 내륙의 삭막한 앙카라에도 뒤처졌다. 터키인들은 보호무역주의에 의존해 수입품을 대체하고 통제경제를 실시해 경제 문제보다 정치를 우선했다. 그런 정책의 결과는 뻔했다. 생활이 갈수록 궁핍해지자 터키 국민은 조국을 떠나 독일의 노동시장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다가 경제혁명으로 일대 전기가 찾아왔다. 시장의 빗장이 열리고 민영화가 마법을 발휘했다(privatization worked its magic). 칙칙한 아나톨리아의 고지에 번영이 찾아왔다. 따라서 문화는 중요하지만 뜯어고칠 수 있다. 쇠퇴는 선택이지만 정해진 운명은 아니다(not a fated destiny).

[필자는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후버 간행물 ‘결정적인 아이디어(Defining Ideas)’를 요약했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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