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ng the Dots] 소련 붕괴 20주년의 교훈
- [Connecting the Dots] 소련 붕괴 20주년의 교훈

1991년 12월 3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소련 깃발이 내려졌다. 현대 역사상 강대국들이 전쟁 없이 갈등을 종식시킨(major powers ended their struggles without war) 최초의 순간이었다. 미국의 가치관과 국익을 국내외에서 위협하던 소련과 냉전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위험한 경쟁은 막을 내렸지만 냉전 종식과 관련된 잘못된 통념이 지속되면서 갈수록 확산됐다(a dangerous myth lived and thrived).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이 막대한 군사지출과(with unmatchable hikes in military spending) 타협을 모르는 강경 정책으로(by being tough and uncompromising)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통념이다. 이 통념은 오늘날 이란과 북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등 문제 지역의 정책 결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군사력과 강경한 정책만 있으면 만사해결이라는 이 통념은 모든 분쟁을 양측의 의지력 시합으로 국한시킨다(locks every major dispute into a test of wills). 이런 경향 탓에 레이건과 그의 후임인 조지 H W 부시(부시 1세) 대통령이 구사한 세련된 외교는 공정하게 평가 받지 못했다(it does no justice to the sophisticated diplomacy). 무엇보다 이 통념은 오늘날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이 냉전의 승리 요인과 21세기 세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미국의 경제력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물론 미국의 우세한 군사력과 확고한 결의는 소련을 굴복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하지만 적어도 소련의 종말이 임박했을 당시, 냉전이 조용히 끝나지 않고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던 바로 그 시점에는(when the Cold War could have concluded not with a whimper, but a bang) 외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시점과 뒤이은 중대한 시기에 레이건과 부시 1세는 외교를 이용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외교를 통해 고르바초프가 원하던 일(소련 자체는 구하면서 소비에트 제국을 해체하고, 소련의 경제체제를 개혁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궁지에 몰렸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패퇴한 데다(limped out of Afghanistan) 소련의 경제는 엉망이었다(was in tatters).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미국과 미국의 우방에 가하는 위협을 줄이고 싶어 했다. 미국으로서는 그가 그 일을 하도록 돕는 게 중요했다. 레이건과 부시는 그 일을 해냈다. 섬세한 외교 없이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구사했다면(pure toughness without sensitive diplomacy) 소련 정부 내에서 고르바초프의 힘이 약해졌을 테고, 냉전 구도가 더 지속되거나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could have led to more Cold War standoffs, or to war). 미국은 외교 협상과 강경한 정책을 병행해 전쟁 없이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의 원동력은 소련보다 월등한 경제력이었다. 소련 경제는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공산당의 부패(communist corruption)와 엄청난 군사지출(gross military spending), 무리한 계획(over-planning)으로 무너지고 있었던 반면 미국 경제는 여전히 활기찼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전 상원의원과 중앙정보국(CIA)의 일부 분석가들, 그리고 레이건을 빼놓곤 1980년대 초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파악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놀랍게도 당시 소련군 참모총장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는 소련에 다가올 재앙의 조짐(the writing on the wall)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감지했다. 레이건의 군비증강이 소련을 굴복시켰다는 주장이 나오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1983년 3월 오가르코프는 소련군 사단기가 늘어선 소련 국방부 회의실의 커다란 회의탁자에 앉아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당시 우리가 나눈 대화는 대부분이 비공식적이었다). “냉전은 끝났고 미국이 이겼네(The Cold War is over, and you have won).”
내가 유럽 내 소련 미사일 배치 증강 문제를 따지고 들자 공격적이기로 유명한(famed for his hawkishness) 그가 이런 놀라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바보 같은 소리 그만두게(Stop the baloney), 레슬리. 미국의 군사력이 소련보다 월등할 뿐 아니라 그 힘이 나날이 커져간다는 사실을 자네도 알지 않나?”
“현대의 군사력은 경제 혁신과 테크놀로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군사 테크놀로지는 컴퓨터를 기본으로 하지. 컴퓨터라면 미국이 소련보다 훨씬 앞서 있지 않나? 내가 자네에게 국방부 청사 안을 구경시켜 주겠네. 대다수 사무실에 컴퓨터가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걸세. 미국에선 다섯 살짜리 아이도 자기 컴퓨터를 갖고 있는데 말일세.”
“소련이 미국에 비해 컴퓨터 쪽이 이렇게 뒤지는 이유는 정치 지도부가 컴퓨터를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그들은 컴퓨터의 자유로운 사용이 정보와 권력 관리에 치명적이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오늘날 소련이 이렇게 뒤지게 됐고 앞으로는 더 뒤쳐질 걸세.”
오가르코프는 소련 정치국 동료들에게도 자신의 이런 혁명적인 견해를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의 대화가 있었던 이듬해에 파면돼 동유럽의 한직(a frivolous non-post)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1994년 사람들에게 잊혀진 채 조용히 사망했다(died in obscurity).
레이건과 오가르코프의 예리한 통찰력과는 상관없이 잘못된 통념은 널리 퍼졌다. 소련 정부가 레이건의 군비증강을 따라잡으려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서(over-stretched) 경제적으로, 그 다음엔 정치적으로 무릎을 꿇게 됐다(caved economically, then politically)는 통념이다. 하지만 소련 측의 기록을 살펴 본 미국 학자들과 CIA의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다. 소련은 레이건의 대규모 군비증강을 따라잡으려 한 적이 없다. 소련의 군사지출은 1980년대 내내 국내총생산(GDP)의 약 1% 수준을 유지했다. 또 소련 정부가 레이건의 미사일 방어체계 ‘스타워즈(Star Wars)’를 따라잡으려다 실패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역시 잘못됐다. 소련은 ‘스타워즈’ 계획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자국의 미사일 위력이 스타워즈 방어체계를 압도할 만큼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이후 미국은 외교에서 경제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말로는 인정하면서도(has paid mostly lip service to the centrality of U.S. economic strength) 실제로 정책에 반영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레이건처럼 확고한 결의로 악당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외교를 펼치려 들지 않았다. 레이건과 부시 1세, 해리 트루먼, 리처드 닉슨, 헨리 키신저, 제임스 베이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조지 슐츠 등 미국의 위대한 외교 전문가들은 협상과 전략적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의 국력이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고, 악당 국가와 협상한 후에도 미국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had the advantages to land on top)는 확신을 가졌다. 레이건이 소련을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으로 본 것은 옳았다. 하지만 레이건이나 미국의 다른 위대한 정치인들은 그런 악당 국가들을 상대로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 현명한 협상을 추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트루먼과 아이젠하워는 경제의 힘을 알았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으로 크나큰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과 일본을 도왔다. 그런 투자에 보상이 따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 두 나라는 미국의 가장 가깝고 강력한 우방으로 남아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끌던 쿠바는 미국 정부가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had Washington not feared to open up the economic spigots) 수십 년 전에 미국에 굴복했을 것이다. 카스트로가 미국의 경제협력을 원치 않았던 진짜 이유는 미국의 호의라는 덫에 걸릴까(being snared by American goodies)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미국이 경제협력을 미끼로 자신을 타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란과 북한의 독재자들도 똑같은 계산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계산은 틀리지 않다. 사실 그들이 미국이 제공하는 경제협력의 대가로 핵무기나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를 기대해선 안된다. 핵을 포기시키려면 핵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들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데는 뛰어난 외교력과 협상이 필요하다. 그밖에 다른 방법은 전쟁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9·11 테러와 이라크·아프간전을 치른 미국인들은 전쟁의 엄청난 비용과 한계(its prohibitive costs and limitations)를 안다.
중국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미국 군사 전문가라면 아시아에서 지상전을 지지하진 않을 것이다. 경쟁과 협력이 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지속될 것이다. 군사경쟁 역시 심화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 주도권 다툼에서 이기느냐는 경제력과 직결돼 있다.
냉전 종식 20주년을 맞은 지금 러시아와 미국 모두 상황이 좋지 않다. 러시아 정부는 다시는 되찾지 못할 과거의 영광(a greatness that it can never recover)을 회복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미국은 군사력과 강경한 정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잘못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inability to shake the myth). 러시아는 지도부가 새로운 세계의 권력으로 부상하려는 욕망을 극복하고 국내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 대도시들을 휩쓰는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볼 때 러시아 정부는 갈 길이 멀다. 한편 미국이 밝은 미래를 기대한다면 잘못된 통념을 버리고 외교와 경제의 활기를 되찾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미 외교협회(CFR) 명예회장이다.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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