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남권희 조선왕가 회장 - 돈 벌려고 하나, 그냥 좋아서 하는 거지

남권희 조선왕가 회장 - 돈 벌려고 하나, 그냥 좋아서 하는 거지

1988년 당시 약재상으로 한 해에 70억원을 버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차를 타고 가던 중 경기도 연천에서 폭포 하나를 발견한다. 이것은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위치한 현무암 주상절리 폭포였다. 그는 이것을 보자마자 마음이 확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옆엔 사람이 살지 않는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 야생화와 참나무 숲을 뒤로 한 이 남향 기와집도 탐이 났다. 앞쪽으로는 제인 폭포가 보이는 배산임수 명당이었다.

“당시 경기 북부에서 가장 잘 산다는 집주인에게 웃돈을 주고서야 겨우 그 집을 샀습니다. 한동안 묵혀놨죠. 20여 년이 지나서야 이 명당이 빛을 보네요. 여기에 한옥 호텔 ‘조선 왕가’를 세운 것이죠.”

그때 그 청년, 남권희 조선왕가 회장(51)이 말했다. 남 회장은 “조선왕가는 황족이 살던 한옥”이라고 소개했다.

2008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정문 앞 한옥이 기숙사 건립을 이유로 매물로 나왔다. 당시 이 대학 석사 과정을 밟던 남 회장은 이 소식을 듣고 전 재산을 털어 구입했다. 우선 손때가 묻어있는 헌 집인 게 좋았고, 조선 시대 선비를 닮은 단출한 모양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한옥의 진가는 구입한 뒤에서야 깨달았다.

2008년 8월 15일, 그는 건물 해체 과정에서 상량문을 발견했다. 이것은 집을 지으며 서까래를 올릴 때 짓는 글이다. 이 상량문은 홍문관 대제학을 지낸 정만조(1858~1936)가 지었고, 당대 명필 농천 이병희가 쓴 것이었다. 황실가를 상징하는 빨간 비단에 먹으로 쓴 상량문엔 집 주인이자 고종황제 영손으로 조선조 역대 왕의 종묘 제례를 관장하던 황족 ‘이근’의 소박하고 어진 성품을 칭송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혼탁한 물 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자라는 미나리 같은 기상을 표상하는 집이라는 ‘염근당’의 뜻도 담겨 있었다. 상량문은 금 세 덩어리에 은·동과 함께 비단보에 쌓여 있었다.

“제가 정말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었죠. 600년이 넘는 춘양목으로 건축한 이 한옥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죠. 수십 억을 준다 해도 안 팔 겁니다.”



스위트 룸으로 거듭난 사랑채이 황실가 한옥은 5개월간의 해체와 27개월의 보수 작업 끝에 2010년 9월 한옥 호텔 ‘조선왕가’로 탈바꿈 했다. 25톤 트럭 300대로 기와, 대들보, 서까래, 기둥, 주춧돌, 기단석 등을 연천으로 옮겨왔다. 복원 공사는 조선의 전통 건축 양식을 고수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벽체와 바닥은 황토로 마감했다. 방 안은 옛 방식대로 전통 장판지와 한지로 꾸몄다. 내부엔 에어콘, 비데, 샤워부스 등 편의 시설도 갖췄다. 99칸이던 이 한옥은 16개의 객실을 보유한 호텔로 재탄생 했다.

827㎡ 규모의 조선왕가는 사반정·염근당·자은정 3개의 별채로 이뤄졌다. 특히 자은정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머물던 별채로 알려져 있다. 남 회장은 “자은정은 노무현 정부 때까지 국내 유명 건설 업체 회장이 소유해 국빈들의 사랑채로 애용됐다”고 귀뜸 했다. 자은정은 유일하게 테라스까지 갖춘 스위트룸이다. 그는 호텔 경영을 맡고, 아내는 이곳에서 약선 요리를 연구한다. 고객들에게 제공할 메뉴로 개발 중이다. 서울 성북동에 살던 가족도 이 한옥 호텔로 거처를 옮겼다. 현재 서울 집은 비어있다. 서울 리라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은 얼마 전 이 동네 학교로 전학 와 신이 났다.



“호텔 비즈니스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수지타산이 안 맞죠. 요즘엔 가족과 함께 호텔의 모든 방을 돌아가면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조선왕가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1시간 30분~2시간이나 걸려 가기가 쉽지 않다. 그는 “돈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이 곳에 호텔을 세우지 않았다”며 “사람이 들끓기보다 누구든 황족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에서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약재상. 3대째 한약재 사업을 해오고 있다. 중국에 한약재를 수·출입 한다. 최근엔 개성홍삼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홍삼 건강 식품을 개발·판매한다. 어린 시절부터 한약재 냄새를 실컷 맡은 그는 “홍삼은 한국산이 최고”라며 “중국산은 질이 떨어지고 일본산은 맛이 없다”고 평가했다. 요즘은 한약 소비가 줄어 사업 규모는 줄었지만 90년대엔 큰 돈을 벌었다고 했다.

이 때 번 게 종자돈이 돼 현재의 한옥 호텔 비즈니스의 기반이 됐다. 그는 더 이상의 돈 욕심은 없다고 했다. “스물여덟에 제인 폭포 앞에 있던 이 부지 대신에 강남의 아파트 몇 채를 샀으면 큰 부자 됐겠죠. 그랬다면 염근당이 내게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소박하고 아름다워서 두 개 모두 갖고 싶었죠.”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

6 삼성전자, 10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 “주주가치 제고”

7미래에셋증권, ‘아직도 시리즈’ 숏츠 출시…“연금 투자 고정관념 타파”

8대출규제 영향에…10월 전국 집값 상승폭 축소

9“하루 한 팩으로 끝”...농심, 여성 맞춤형 멀티비타민 출시

실시간 뉴스

1트럼프 2기 앞두고…美, TSMC에 최대 9.2조원 보조금 확정

2종로학원 “서울대 의예 294점·경영 285점…눈치작전 불가피”

3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4‘5만 전자’ 탈출할까…삼성전자, 10조원 자사주 매입

5하나은행도 비대면 대출 ‘셧다운’…“연말 가계대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