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아버지 세대를 향한 씁쓸한 공감
-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 아버지 세대를 향한 씁쓸한 공감

무작위 대중의 시선을 잡아채고 호기심을 증폭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보고 싶다”라는 호감을 이끌어내는 것. 모든 영화 포스터의 목표겠지만,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 포스터들은 안일하게도, 스타 파워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클로즈업하고, 예쁘게, 멋지게, 근사하게 만져놓은 고만고만한 포스터 가운데 정반대의 전략을 내세운 포스터 한 장이 시선을 끈다. 다소 촌스러운 양복을 쫙 빼입고, 기름진 장발과 번쩍이는 금 목걸이를 휘날리며 거리를 가득 메운 한 ‘떼’의 남자들. 그 안엔 한국 영화계 ‘카리스마’의 신구세대 대표주자 최민식과 하정우를 포함해 충무로 진국 배우들이 잔뜩 포진해있지만, 시선을 빼앗는 건 그들의 얼굴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 시대의 공기다. 경제 성장을 이루기 시작한 1980년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못 할 게 없었던 시대가 뿜어내던 달콤하고도 쾌쾌한 공기. 윤종빈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는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나쁜 놈’들의 그림자를 좇는다.
암울한 시대의 치부 그려만약 ‘폼 나는 포스터’를 보고 ‘대부’(1972) 식의 근사하고 화려한 ‘패밀리 연대기’를 상상했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윤종빈 감독은 그런 식의 ‘포장’과는 거리가 먼 감독이다. 화풍에 비유하자면, 그는 세밀화에 능하다. 윤종빈 감독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2005)는 대한민국 (정상적인) 남자라면 누구나 겪은 몸서리쳐지는 경험, 하지만 누구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말하지 못했던 ‘군대’라는 끔찍한 시스템에 현미경을 갖다 댄 수작이다. 두 번째 영화 ‘비스티 보이즈’(2008)에선 밤을 주름잡는 화려한 꽃들의 비루한 초상을 낱낱이 물 위로 끄집어낸 바 있다. 세 번째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전작에 비해 스케일이 훨씬 커졌다.
이번엔 한 시대를 통째로 꺼내 샅샅이 복기한다. 벌써 ‘아련한 추억’ 속에 묻어두고 싶어 하는, 그 시대의 치부가 스크린 위에 전시된다.
영화는 1990년 10월, 대한민국의 ‘밤 세계’를 들쑤셔 놓았던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문을 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국가적 사안인 만큼, 온 국민의 시선이 검찰과 경찰에 쏠려있었고, 검경은 ‘실적’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 이때 부산을 주름잡는 조직의 우두머리 최익현(최민식)이 체포된다. “네가 어떻게 깡패 두목이 되었는지 낱낱이 쓰라”는 검사에게 익현은 “같은 공무원 출신끼리 왜 이러느냐”고 능글맞게 눙치고 든다. 공무원 최익현이 ‘반달’ 최익현이 되기까지의 10년의 변천사가 곧 범죄와의 전쟁의
줄거리인 셈이다.
영화는 시간을 거슬러 1982년, 부산 세관 공무원 최익현의 시절로 돌아간다. 자잘한 밀수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소소하게 수수료를 받아 챙기고, 불법 물류를 ‘삥땅’치며 평범한 세관 공무원으로 살던 그는 뇌물 수수로 부서 전체가 감사를 받게 되자 “직계 가족 수가 제일 적다”는 이유로 책임을 지고 옷을 벗게 된다. 퇴직 마지막 날, 그는 우연히 밀수 필로폰 10kg을 발견하고 배포 크게도 마약을 몰래 팔아 크게 한 몫 챙기려 든다. 동업자가 필요했던 최익현은 야쿠자와 연이 닿은 부산 깡패 최형배(하정우)를 찾아간다. 족보상 먼 친척이었던 최익현과 최형배는 오래지 않아 부산 ‘밤 세계’에서 환상의 짝패로 부상한다. 공무원 출신 익현이 ‘족보’를 밑천 삼아 혈연 로비로 빽과 줄을 만들고, 형배가 힘으로 경쟁자들을 청소하는 협업으로 부산 유흥가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깡패 세계에 영원한 ‘식구’는 없다. 점차 밤 세계 돈과 권력의 맛에 길들여진 익현의 독자행동이 형배 눈에 나면서 갈등이 생기고, 건달도 일반인도 아닌 ‘반달’ 익현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다른 빽과 줄로 갈아탈 꿍꿍이를 세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시대의 공기다. 때문에 몇몇 주인공들의 영웅담에 기대지 않는다. 전체적인 줄거리의 맥을 잡아주는 것은 ‘최익현의 격동 30년’이지만, 그가 한 일이라곤 시대의 격랑에 몸을 맡긴 것 밖에 없다. ‘주는데도 못 받아먹는 놈이 바보’라는 시대의 분위기가 익현의 등을 받쳐주지 않았다면, 일개 세관 공무원이 ‘안기부’를 등에 업고 카지노를 주무를 순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범죄와의 전쟁’은 최익현을 비롯한 그 시대의 인간 군상을 차갑게 비난하지 않는다. 부제의 ‘나쁜놈들’은 일종의 연민이다. ‘나쁜 놈이 잘 산다’는 비뚤어진 세계관을 공공연히 주입 받아 온, 1980년대의 가장, 그러니까 아버지 세대를 향한 씁쓸한 공감이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영화에서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 간 모든 이들의 삶도 그러하다. 자칫 무겁고 침울하게 흘러갈 수 있을 이야기지만, 윤종빈 감독은 시대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한 발 떨어져 비극 속에서 희극의 조각들을 찾아내고 솜씨 좋게 버무려 놓았다. 인간의 나약함과 비열함과 치졸함과 그 모든 것을 감추기 위한 허세가 맞부딪힐 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다. 치밀한 윤종빈 감독의 연출력도 훌륭하지만, 이런 미묘한 감정의 결을 정확하게 전달해내는 배우들의 연기에 빚지는 바가 크다. 최민식 하정우의 연기는 놀랍도록 정교하다.
두 배우가 한 화면에 있을 때는 마치 펜싱 경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매섭고 우아하다. 얼마 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선제일검’ 무휼 역을 맡아 듬직한 카리스마를 선보였던 조진웅은 배우로서 넓은 스펙트럼을 유감없이 과시한다. 더불어 낯선 두 배우가 관객을 매료시킬 태세다. 대체 ‘정의로운 검사’인지 ‘깡패보다 더 악질 검사’인지 도통 헷갈리는 독특한 ‘조 검사’ 역의 곽도원과 형배의 오른팔 ‘박 실장’ 역의 김성균은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더불어 우리가 과거의 망령으로 치부하고 싶은 그 시대의 쾌쾌한 공기가 우리의 현재를 휘감고 있음을 뚜렷하게 확인시키는 마지막 장면이 던지는 질문도 꽤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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