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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AGE] 100만평 땅 찾는 중국인 계약금은 현장서 현금으로

[REPORTAGE] 100만평 땅 찾는 중국인 계약금은 현장서 현금으로


중국 부자들이 제주로 몰려오고 있다. 땅을 사거나 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상하이, 베이징뿐 아니라 칭다오·웨이하이·다롄 등에서 온 신흥 부호들이다. 2월 13일부터 이틀간 중국인의 제주 땅 투자 현장을 찾아 취재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맑은 물, 깨끗한 공기, 화산섬 ‘비양도’와 어우러진 쪽빛 바다, 자연과 소통하는 올레길.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라온프라이빗타운을 둘러싼 풍광이다. 주거형 복합리조트인 라온프라이빗타운은 최근 중국 부자들의 투자가 몰려 화제가 된 곳이다.

좌승훈 라온레저개발 홍보기획팀장은 “라온프라이빗타운은 사시사철 머물면서 레저와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대단위 주거형 복합리조트단지”라며 “1월말 현재 934세대 중 199세대를 외국인이 사들였고, 그 규모는 1102억8046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이 중 180세대는 중국인이 주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좌 팀장은 “지난 2월 10일에도 주말을 맞아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18세대에 대해 구체적인 상담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날도 분양사무실이 마련된 라온호텔 로비는 중국인들로 북적거렸다.

라온프라이빗타운은 291.9㎡(88평형) 단독형 10세대, 119.9(36평형)~179.4㎡(54평형) 연립형 934세대가 조성된 복합리조트다. 월 관리비가 30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며, 전용 골프장 뿐 만 아니라 19타석 골프연습장, 아쿠아풀, 노천탕, 수영장, 사우나, 피트니스센터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51실 규모의 객실을 갖춘 라온호텔도 운영하고 있다.

라온그룹에서 운영하는 라온골프클럽(27홀), 라온승마클럽, 라온요트클럽에서도 회원 우대 혜택이 주어진다. 좌 팀장은 “콘도만 구입하면 365일 골프와 승마, 요트 등 다양한 레저 활동과 휴식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체류형 리조트라는 점이 중국인에게 통하고 있다”며 “차이니스레스토랑, 메디컬센터, 명품 아울렛매장도 곧 개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인들이 라온프라이빗타운에 눈독을 들이는 진짜 이유는 제주특별자치도 관련법 개정에 의해 이곳에 투자 시 영주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0년 2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제주 부동산투자와 영주권취득에 관한 법률’은 미화 50만 달러 또는 한화 5억원 이상 투자할 경우 투자자와 동반가족에게 최장 5년까지 체류비자를 발급하며, 5년이 지날 경우 영주권을 발급하도록 하고 있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개발한 부동산 중 콘도·리조트·펜션·별장 등 휴양목적 체류시설 투자자가 대상이다. 이들은 내국인과 동등한 공교육을 받고, 국제학교 등록이 가능하며 의료보험 혜택도 받는다.

영주권 취득을 위해 중국 투자자들은 5억원 넘는 부동산을 주로 구입하고 있다. 라온프라이빗타운의 경우 중국인이 매입한 것은 모두 154.8㎡(47평형) 이상으로 분양가 5억원을 넘는다. 분양가 16억4000만원인 단독형 10세대 중 8세대의 주인도 중국인이다.

지난해 말 라온프라이빗타운의 179.4㎡ 세대를 분양 받은 리우 다오핑(44세·베이징)은 “주변 자연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레저시설과 함께 관리비용이 저렴해 장기체류에 따른 경제성이 뛰어나다”며 “특히 리조트를 구입하면 영주권을 주는 게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좌 팀장은 “리조트를 분양 받은 중국인들을 보면 젊은층은 인근 영어교육도시 등 교육환경에 관심이 많고, 중년층은 골프와 날씨 등 휴양환경을 더 중시한다”고 밝혔다. 중국 사회 상위 5% 안에 드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분양가가 비싸다는 반응은 거의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대단위로 조성되는 리조트 외에 펜션이나 소형콘도에 대한 투자 움직임도 감지됐다. 제주시 한림읍 H부동산 관계자는 “지난 1월 중국의 춘절 연휴 동안 예약된 10여명의 중국인들을 데리고 한림읍 일대 바닷가 토지를 둘러봤다”며 “중국인들은 현찰을 차에 싣고 다니며 좋은 물건이 나타나면 한국 대리인을 앞세워 가계약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매 의욕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자 지난해 3.3㎡ 당 17만원 하던 해변 나대지가 올해 20만원을 넘어섰다”며 “중국 사람들이 이곳 저곳 쑤시고 다녀 호가만 상승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시 부동산 시장에선 한때 모 대학교 기숙사 부지가 화제가 됐다. ‘중국 정계 실력자의 친구인 중국 모 방송국 대표가 대학 주변 땅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 제주 소재 대학의 경우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학생들의 유학이 늘고 있는 추세다. 이를 겨냥해 기숙사 시설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대학에서 걸어서 5분 거리로 1500명 수용 규모, 85억~105억 예산”이라는 구체적인 투자 규모까지 나돌았지만 성사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제주 현지법인 이용해 부동산 투자제주에는 중국 부자를 겨냥한 리조트 등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제주에 골프장이나 승마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국내 레저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존 리조트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중국인 투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중국 기업들의 투자다. 이들은 제주 현지에 부동산개발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부동산개발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법으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부동산 직접 투자를 규제하는 중국 외국환관리법 및 국경외 투자 관련 법 규정 탓이다.

현재 제주 개발사업을 진행 중인 중국 법인은 분마그룹, 백통그룹, 흥유개발, 시포트그룹, 소림사, 광요그룹, 팬차이나 등 7곳이다. 이 중 분마그룹, 백통그룹, 흥유개발, 소림사그룹은 제주 현지법인 설립을 마쳤다. 말레이시아의 버자야그룹도 화교 자본 기업이라 중국 자본으로 분류된다. 이들 5개 기업이 밝힌 투자예정액만 3조5400억원. 이 중 제주 현지법인을 통해 실제 들어온 자본은 올해 1월 말 기준 1912억원 가량으로 집계됐다.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제주분마이호랜드에 투자하고 있는 중국의 분마그룹이다. 이 그룹은 헤이룽장성 소재 민영 중견기업으로 2002년 설립됐다. 자산은 5300억원 정도이며 부동산 개발·자동차 판매·백화점 체인이 주업종이다. 지난해 6월 1차로 합작회사에 자본을 투입해 현재 설계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경관·인센티브가 투자 메리트장셴윈 분마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영주권을 받았다. 50만 달러 이상 투자하고 5명 이상 채용하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주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제주도 투자유치 국제고문이기도 한 장 회장은 2009년 8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 남산공원 안중근기념관 건립 성금으로 30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안 의사는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 나아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념해야 할 영웅”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제주시 이호1동 제주분마이호랜드 제주사무소에서 만난 박인수 본부장은 “제주시 일원 27만3000㎡와 매립지 9만9000㎡에 관광·숙박시설·마리나·해양생태관·해양박물관 등 다양한 형태의 휴양시설을 만들 계획”이라며 “이곳은 제주공항과 인접하고, 마리나 시설·골프장 연계가 가능해 제주에 투자하겠다고 온 외지인들은 꼭 한 번씩 들른다”고 말했다.

투자 규모 면에서는 버자야그룹이 눈에 띈다. 말레이시아 재계 5위의 대기업으로 시가총액이 5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 그룹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만든 합작법인 버자야제주리조트를 통해 1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버자야그룹이 투자하고 있는 서귀포시 상예동 예래휴양형 주거단지 공사 현장은 이미 개발 승인이 나서 토지 정리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이곳 74만4205㎡에 2015년까지 5성급 호텔과 레지던스호텔·휴양콘도·의료시설·카지노·상업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장사무소 관계자는 “호텔 설계 과정에 있으며 제주도 외자유치 1호답게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말했다. 인근 마을 주민은 “지역주민 고용창출이나 상가 활성화 등 기대감 탓에 주변 땅값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백통그룹은 칭다오시 부동산 건설 3위 기업으로 자본금이 44조8000억원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일대 55만5456㎡에 2016년까지 맥주박물관·관광호텔·휴양콘도미니엄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문영방 제주도청 투자유치과장은 “중국 투자 기업은 330만㎡(100만평)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주도 특성상 오름이 많아 큰 규모의 평지가 나오기는 힘들다”며 “지금까지 중국 기업들이 투자한 돈은 현지법인 설립, 환경평가심사 등에 쓰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재계 정보 조사기관인 후룬바이푸의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재산 1억 위안(약 186억원) 이상의 큰 부자가 6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경우 여성은 성형수술, 남성은 카지노 도박에 가장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인의 소비는 부동산을 시작으로 자동차, 패션과 여행, 음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연간 1000만 채의 집을 짓고, 1850만대의 차를 산 중국의 다음 소비는 바르게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 면세점의 70%를 싹쓸이하고 전 세계 명품의 27%를 소비하는 것이 지금의 중국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중국인들의 소비 성향에 딱 들어맞는 곳이 6개의 면세점, 8개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가진 제주라는 것이다. 제주는 항공편으로 상하이에서 40분, 베이징에서 50분 거리에 있다. 톈진·다롄·선양·항조우·수조우·엔타이·칭다오·난통·닝보·원조우·난징·지난 등 인구 500만명 이상 대도시가 1~2시간 비행 거리 안에 있다. 현재 제주와 중국 베이징·선양·다롄·창춘 사이에 정기노선이 개설돼 주 20편의 비행기가 운항하고 있다. 하얼빈·톈진·우한·스자좡 등에는 전세편이 운항 중이다.



지역경제 살릴 자본 옥석 가려야중국인들이 제주 투자에 적극적인 이유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 청정자연환경, 무비자지역, 카지노 등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30일 동안 무비자로 제주에 머물 수 있으며, 바다를 볼 수 있는 자연경관, 의료특구 등 인프라도 매력적이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의 영국계 사립명문학교인 ‘NLCS’와 캐나다 명문학교 ‘브랭섬홀아시아’도 중국인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제주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에 대한 제주도의 행정지원도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제주도는 5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개발사업에 대해 ‘투자진흥기구’로 지정해 관세와 취득세·등록세·개발부담금을 면제해준다. 또 재산세는 10년, 법인세와 소득세는 3년간 내지 않아도 된다.

중국 자본의 제주 투자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제주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높지만 중국 국내법 때문에 실제 투자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또 중국 자본을 통한 개발 프로젝트 중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도 있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변호사 출신인 장진보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 개인이 제주도 부동산을 취득한 예가 있지만 적법한 국내 절차를 거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연간 5만 달러 이상은 국외로 유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또 “중국법인 투자 프로젝트 중엔 비현실적인 것도 많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제주도 개발 사업에 투자키로 하고 지난해 제주 팸투어까지 벌인 모 협회는 당시 중국에서 심각한 비리에 연루돼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상하이에 있는 모 그룹 역시 제주에 투자하기로 했으나 중국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현지 개발프로젝트 지분을 양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문 투자유치과장은 “천편일률적으로 리조트, 콘도 등 휴양시설에만 투자하는 것에 대해 제주도에서도 우려하고 있다”며 “좋은 조건으로 투자는 끌어들이되 자본의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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