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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일본은 지금 러닝슈즈 전성시대

[World] 일본은 지금 러닝슈즈 전성시대

정월이면 많은 일본인의 관심 속에 하코네에키덴이 열린다. 하코네에키덴은 관동지역 20개 대학팀이 참가하는 연례 마라톤 대회다. 1월 2일부터 3일까지 이틀에 걸쳐 열리는데 올해로 88회를 맞이했다. 도쿄 요미우리신문사 건물을 출발해 가나가와현 하코네의 아시노코 호수까지 왕복 10개 구간으로 나뉘어 총 217.9㎞를 달린다. 올해는 도요대학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MVP를 차지한 가시와바라 류지를 비롯해 도요대학 선수들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이 장면을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저렇게 눈에 잘 띄는 걸….” 아식스의 후쿠이 요시모리 마케팅 부장의 시선은 도요대학 선수의 유니폼과 러닝화에 새겨진 로고를 향해 있었다. 라이벌인 나이키의 마크였다. 나이키 재팬은 도요대학 외에 고마자와대학, 와세다대학 등 참가팀들에 러닝슈즈와 유니폼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고마자와대학과 와세다대학은 도요대학과 함께 이번 시즌 ‘3강’으로 주목 받았다.

나이키측이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3강 대학에 대한 특별한 지원은 일본 러닝화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나이키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후쿠이 부장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반격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본 전체가 주목하는 하코네에키덴의 최우수 선수가 나이키 제품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일본에 러닝(마라톤) 붐이 일고 있다. 2월 26일 열린 ‘도쿄 마라톤 2012’에는 약 28만 4000명이 응모했으며 작년 10월에 처음 개최된 오사카 마라톤에는 약 3만 명에 가까운 참가자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사사카와 스포츠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일본 러닝 인구는 883만 명 정도다. 도쿄 마라톤 개최 전인 2006년과 비교하면 278만 명이나 증가했다.



도쿄 마라톤, 러닝슈즈 시장 확대 기폭제‘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비즈니스 찬스가 있다’는 말처럼 경기 침체에 시달리는 일본에서 러닝 시장은 몇 안 되는 성장 분야 중 하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착실하게 성장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러닝슈즈다. 야노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일본의 러닝슈즈 시장(출하금액 기준)은 2009년 대비 8.4% 증가한 465억엔으로 늘었다.

스포츠 슈즈 시장 전체가 1% 증가한 것에 비하면 상당히 큰 폭의 성장이다. 야노 경제연구소는 2011년에도 러닝슈즈 시장이 전년 대비 5% 정도 신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4년 전에 비하면 시장 규모가 약 30% 확대된다는 계산이다. 노지마 수석연구원은 “지금까지 수도권 중심이던 러닝 붐이 서일본 지방으로도 급속히 파급되고 있어 올해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는 이 분야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점유율 조사는 각 마라톤 대회 참가자의 슈즈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오차가 큰 편이지만 약 50% 정도가 아식스의 러닝슈즈를 신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라이벌인 미즈노의 점유율은 약 15%다. 물론 올해 하코네에키덴 참가 선수의 브랜드별 슈즈 선택을 살펴보면 아식스와 미즈노가 각각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의 톱 레벨 선수를 기준으로 하면 용호상박이지만 매출의 대부분을 점하는 초·중급자용에서는 아식스가 크게 앞선다.

야구나 골프 용품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미즈노에 비해 아식스는 물집이 잘 생기지 않는 획기적인 마라톤 슈즈를 만드는 등 1959년부터 러닝슈즈 시장을 이끌어왔다. 미즈노의 미야케 히로시 러닝슈즈 기획과장조차도 “장기간에 걸쳐 쌓아온 신뢰감에서 차이가 있다”고 아식스의 오랜 노력을 인정한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어쨌든 양사 모두 시장확대에 따른 수혜를 누리고 있다. 2012년 3월 한달 동안 아식스의 매출은 2500억엔에 이를 전망이다. 제 1회 도쿄 마라톤 대회 직후인 2007년 3월과 비교하면 30% 정도 성장한 것이다. 미즈노의 매출 역시 지난 5년간 1.5배 상승했다. 러닝슈즈가 효자역할을 하며 야구나 골프 용품의 판매부진을 메우고 있다.

일본 시장의 빠른 성장에 주목하고 있는 곳이 있다. 글로벌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독일의 아디다스와 미국의 나이키다. 양사 모두 스타 선수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제품을 알리는 ‘톱다운(Top-down)’ 방식의 마케팅이 특징이다. 마라톤 분야에서 아디다스는 남자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패트릭 마카우 선수와 계약했다. 나이키는 여자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폴라 래드클리프를 자사 모델로 기용했다.

이에 대항하는 일본의 아식스와 미즈노 마케팅 방식은 ‘바텀업(Bottom-up)’ 형식이다. 도쿄 마라톤이나 오사카 마라톤과 같은 대규모 시민 마라톤 대회에 협찬사로 나서고 러닝 교실 개최 등을 통해 대게 서서히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가토 집행간부는 “러닝은 축구 등과 달리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에 톱다운 방식은 통용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코네에키덴’에서 공격을 펼친 나이키의 전략은 아식스와 미즈노에게 위협적이다.

아디다스 또한 지난 겨울부터 공격을 시작했다. 1월 30일에 ‘아디제로 다쿠미’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내놨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35년 이상 일본 톱 러너들을 대상으로 특수 주문제작 슈즈를 만들어온 미무라 히토시가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미무라는 아식스에서 일하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다카하시 나오코, 노구치 미즈키 등의 슈즈를 만든 업계의 전설이다. 아식스에서 정년 퇴직한 후 2010년 1월부터 아디다스 재팬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다. 미무라가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성은 충분하다.

러닝슈즈는 노하우가 없는 기업이 하루아침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디자인이나 소재의 좋고 나쁨으로 승부할 수 있는 의류 업계와는 달리 제작에 필요한 기능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착지 시 체중의 2~3배에 달하는 충격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 힘을 추진력으로 바꿔야 하고 복잡한 움직임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통기성·경량성·안정성·내구성 등을 함께 갖춰야 한다. 러닝 업계가 사실상 일부 대기업이 독점하는 시장인 이유다.

더 난해한 숙제는 자동차의 연비처럼 일정한 성능기준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러너마다 개인차가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슈즈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랜드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 왕자 아식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려는 도전이 시작된 가운데 일본 러닝 시장은 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승자는 누구일까.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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