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ERN BLUE BLOOD] 프랑스 아르노 가문
[MODERN BLUE BLOOD] 프랑스 아르노 가문
베르나르 아르노(63) 회장은 프랑스 기업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최고의 부자다. 410억 달러 재산으로 포브스가 선정한 2012년 억만장자 순위에서 4위에 올랐다.
아르노는 파리에 본사를 둔 프랑스계 다국적 명품 그룹 LVMH와 패션·액세서리 그룹인 크리스찬 디올의 소유주다. 회장 겸 CEO를 맡아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아르노는 디올의 대주주이고, 디올은 LVMH의 주식 42.36%를 소유하고 있다.
LVMH란 이름은 패션·액세서리 업체인 루이뷔통과 명품 샴페인인 모에 샹동, 그리고 코냑 브랜드인 헤네시의 머리글자를 합친 것이다. 이 회사는 1971년 아르노 회장이 모에 샹동사와 헤네시를 합친 회사를 87년 루이뷔통과 다시 합병하면서 탄생했다. LVMH는 이후 여러 차례 인수합병을 거쳐 현재 60여 개의 브랜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재산 410억 달러로 세계 부자 4위
LVMH의 명품 브랜드들을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회사의 제품 하나만 가져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고가 브랜드가 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액세서리 브랜드로는 루이뷔통, 지방시, 마크 제이콥스, 겐조, 로에베, 셀린느, 펜디 등이 있다. 하나같이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고급 브랜드다. 향수 브랜드로는 겔랑, 크리스찬 디올, 불가리, 아쿠아 디 파르마 등이 있다. 세계 향수의 역사를 써 온 유명 브랜드 일색이다. 시계와 보석 브랜드도 빠질 수 없다. 세계적 보석 브랜드인 쇼메를 비롯한 위블로·제니스·태그호이어 역시 LVMH 소유다.
고급 술 브랜드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그룹의 모태가 주류기업인 LVMH만의 특징이다. 샴페인 브랜드인 모에 샹동·크뤼그·뵈브 클리코·메르시에, 와인 브랜드인 샤토 디켐, 코냑 브랜드인 헤네시, 위스키 브랜드인 글렌모렌지, 보드카 브랜드인 벨베드르를 포함한다.
아르노 회장은 유통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세계적 면세점과 럭셔리 제품 체인인 DFS 갤러리아, 전 세계 17개국에 750개 점포가 있는 화장품 체인점 세포라, 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알려진 파리의 르봉마르셰 등이 LVMH의 유통 라인이다. 이렇듯 LVMH는 브랜드 제품부터 유통까지 수직통합을 이뤘다. 이외에 세계적 패션그룹인 크리스찬 디올 그룹(향수 라인 제외) 역시 아르노 회장 소유다.
LVMH는 구찌로 대표되는 프랑스 다국적 명품그룹 PPR, 스위스 명품그룹 리슈몽과 함께 세계 명품 시장을 3등분하고 있다. 디올 그룹은 고용인이 7만 6000명에 이르고 2010년 매출 211억2000만 유로, 영업이익 41억7200만 유로를 기록했다. LVMH는 직원이 8만 3500명이고 2010년 매출 203억2000만 유로, 영업이익 41억6900만 유로를 올렸다. 이 둘을 합친 아르노 제국은 16만 여명을 고용해 매출 414억4000만 유로, 83억4100만 유로의 영업이익을 거둔 셈이다. 명품업계 최대 실적이다.
루이뷔통·모에 샹동 등 명품 브랜드 60여 개
기업인 집안 출신인 아르노 회장은 거대 명품제국을 혼자 손으로 세웠다. 청소년기 아르노는 공부 잘하는 수재였다. 1949년 토목회사를 운영하는 장 아르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 최고의 수재들이 다니는 그랑제콜의 하나인 명문 에콜 폴리테크니크을 졸업했다.
프랑스는 엘리트 사회, 이른바 ‘연줄’이 중요하다. 고교 때 우등생들은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카로레아를 마치고 2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쳐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진학한다. 나폴레옹이 세운 명문공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국립토목학교, 국립광산학교, 고등사범학교, 파리정치대학 등이 그랑제콜에 해당한다. 그랑제콜 진학 시 재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대학 평준화를 지향하는 프랑스에서는 그랑제콜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은 대개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배정받는다. 그랑제콜에 진학한 학생들은 졸업하고 상당수 공직에 진출한다. 대학원 과정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마치면 고급관료 진출이 보장된다. 그랑제콜 출신들은 서로 네트워크를 유지하며 프랑스의 엘리트 층을 형성한다.
프랑스 엘리트 교육을 소개한 것은 아르노 회장이 그랑제콜 사회에서 이단아이자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71년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마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사 페레사비넬에 입사했다. 74년 이사를 맡은 그는 76년 건설사업을 4000만 프랑에 정리하고 이 회사를 페리넬이라는 이름의 부동산 회사로 바꿨다. 79년 아버지에 이어 회장에 오른 아르노는 페리넬을 바캉스용 숙소를 개발하는 중견 부동산 회사로 키웠다. 레저 수요의 확대라는 시대 흐름을 본 그는 아버지의 건설회사를 밑천으로 재산을 모았다.
아르노는 그랑제콜 출신 가운데 드물게 관료의 길을 포기하고 개인 사업을 꾸렸다. 프랑스 엘리트들은 기업에 입사하더라도 안정적 국영기업이나 거대기업을 선택해 고용 기업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르노처럼 개인 기업을 운영하며 신규업종에 진출해 자수성가한 사례는 흔치 않다. 여기서 아르노의 배짱과 뚝심을 엿볼 수 있다.
그랑제콜 졸업 후 관료 대신 사업
아르노의 뚝심은 81년 미국으로 이민 간 데서도 드러난다. 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돼 좌파 정책을 펼치자 아르노는 ‘이런 프랑스에선 살 수 없다’며 미국 플로리다로 이민을 간 것이다. 그는 플로리다에서 같은 이름의 부동산 회사를 세우고 콘도를 분양하는 사업을 벌였다.
몇 년 뒤 사회당이 현실 자본주의를 인정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돌리자 그제야 귀국한 아르노는 새롭게 명품사업을 시작했다. 명품회사에 들어가 업계 생리를 익히던 그는 집안 재산에 정부 보조금을 더해 부실 섬유업체인 부삭을 인수했다. 정부 보조금은 1만6000개의 일자리를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는 관계에 진출한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그랑제콜의 위력을 사업에 활용한 것이다. 아르노는 크리스찬 디올을 바탕으로 명품 제국을 확장해 나갔다. 현재 그는 그랑제콜이 낳은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 받는다. 그랑제콜 출신의 어떤 관료보다 막강한 글로벌 파워를 자랑한다.
아르노 회장이 성공한 요인으로 명품산업의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봤다는 점을 꼽는 이가 많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으로 부실해진 명품업체 디올을 인수해 마케팅을 강조한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르노는 부삭 인수 후 크리스찬 디올과 르봉마르셰 백화점만 빼고 모두 팔아 재무구조를 튼튼하게 했다. 디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85년 디올 회장에 올랐고 87년 LVMH를 세웠다. 그 후 브랜드 인지도가 높고 품질이 좋지만 경영 능력 부족으로 부실에 빠진 명품 브랜드를 하나 둘 인수해나갔다. 인수한 명품 업체 대부분은 독립적으로 운영했다. 자질구레한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간섭을 최소화했다. 자율성을 인정하며 독립채산제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보유 브랜드들 가운데 상호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아르노는 시대의 흐름에 주목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중산층이 두터워지자 이들을 겨냥한 명품시장을 확대했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매력적이고 품위 있는 이미지 광고로 구매자의 욕구를 자극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LVMH의 제품은 누구나 한둘은 갖고 싶어하는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들은 한두 달 치 월급을 모아 명품 가방을 장만했다. 아르노 회장은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을 새롭게 개척했다. 그는 중산층 성장과 소비자의 욕망을 동시에 읽어 명품의 대중화를 선도했다.
그는 사업을 개인 취미와 자선사업에 접목했다. 그는 세계적 미술품 수집가로 알려졌다. 자선사업 역시 문화 부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르노는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장관의 보좌관을 지낸 장클로드 클라베리를 고문으로 두고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수집활동을 벌였다. 미술 전시회도 개최한다.
파리 그랑팔레 미술관에서 앤디 워홀전, 피카소와 여인전을 열었고 조르주 퐁피두 센터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전과 이브 클라인전을 열어 감각 있는 미술품 애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루이뷔통 현대미술 재단을 세워 2013년 상설 전시공간 개설을 앞두고 있다. LVMH 재단에서는 미술학도들에 장학금을 제공하며 젊은 음악가들에 악기를 대여해준다.
맥킨지 출신 딸 델핀, 2세 경영 준비명품제국을 건설한 아르노 회장은 이제 아르노 집안을 세계적 명품 가문으로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두 번 결혼해 5명의 자녀를 뒀다. 안 드와르팽과 첫 번째 결혼에서 1남 1녀를 얻었다. 딸 델핀(37)은 LVMH의 임원으로 활동하며 2세 경영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명문 EDHEC 경영대학원과 영국 명문 런던정경대에서 공부한 델핀은 맥킨지 파리 지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아버지의 제국에 입성해 28세의 나이로 LVMH의 이사를 맡았다. 델핀은 그룹 주식의 7.5%를 소유하고 있다. 2005년 이탈리아 와인 갑부인 알레산드로 간시아와 결혼해 2010년 개인 재산이 39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이다.
아들 안투안(35)은 루이뷔통의 홍보 책임자로 프랑스 인시아드(INSEAD)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델핀과 안투안 모두 아버지의 날카로운 감각을 빼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둘 가운데 한 명이 아르노 가문의 다음 황제가 될지 남매가 제국을 분할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르노 회장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자녀를 교육했다. 그의 아버지는 젊은 감각과 열정, 그리고 능력을 믿었다. 또 새로운 학문을 존중했다. 명문 대학을 나온 아들을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게 하고 전권을 위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아르노가 아버지가 키워온 건설회사를 팔고 부동산 개발회사를 새로 세웠을 때도 아버지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했다. 아르노 회장 역시 28세의 델핀을 LVMH의 이사로 일하게 함은 물론, 향수 부문을 이끌게 했다. 그는 프랑스는 물론 세계의 럭셔리 시장을 살피는 딸의 능력을 믿었다. 델핀은 아버지의 기대처럼 회사에 젊은 감각, 열정을 불어넣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아르노 회장의 자녀 교육은 자유방임에 가깝다. 앙투안이 프랑스 여배우, 러시아 모델과 염문을 뿌리고 포커에 빠져 거액을 날렸을 때 아르노는 오히려 아들에게 홍보 일을 맡겼다. 끼를 업무에 활용하라는 무언의 주문이었다. 앙투안은 자연스럽게 일에 몰두하며 복잡한 사생활을 정리했다.
둘째 부인 엘렌 메르시에와 사이에 세 아들이 있지만 이들은 아직 어려서 구체적 활동이 없다. 이 세 아들이 더 성장하면 아르노 가문이 풍파를 겪을지 업계는 주목한다. 지금으로선 아르노의 명품제국은 순항 중이다. 세계 최고의 명품그룹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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