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
[SPECIAL INTERVIEW] 조현민 대한항공 상무
“완전 피곤하지만 승무원 교육 확정! 아자 아자! 나비 한 마리가 더 멀리 날수 있도록!”
지난 3월 12일 조현민 대항항공 상무는 진에어 승무원 교육이 확정되자 자신의 트위터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이어 조 상무는 2주간 진에어 신입 승무원들과 함께 승무원 안전 교육을 받았다. 항공기 시스템 등 기본적인 이론부터 비상장비 사용, 비상구 탈출 실습 등 승무원이 갖춰야 할 항공기 안전 교육이다.
지난 4월 10일 만난 조 상무는 “7월부터 직접 진에어 유니폼인 청바지를 입고 객실에서 고객 서비스에 나설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룹 3세 후계자들이 주로 해외지사 파견 등을 통해 경영수업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조 상무의 현장수업은 이례적이다. 재벌가 막내딸이 승무원으로 변신한 이유는 뭘까.
7월 청바지 입고 진에어 승무원 변신
조 상무는 “승무원의 첫 번째 역할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 때문에 비상착륙 훈련과 심폐소생술 실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비상상황 발생시 승객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쳐야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애먹었던 일, 동기들과 함께 수업 중에 졸다가 강사에게 꾸중을 들은 것도 잔잔한 추억이다. 그는 “진에어 11기 27명 동기생들이 착수훈련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뿌듯했다”고 말했다.
조 상무는 진에어의 서비스 품질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승무원 교육을 자청했다. 현장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대한항공 입사 당시에도 인천공항에서 한 달 동안 OJT교육을 받았다”며 “고객과 직접 시선을 맞추면서 배운 게 많았다. 객실 서비스 경험이 진에어 마케팅 전략을 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진에어 티켓을 구입하고 탑승했을 때 어떤 기대를 가질까, 대한항공과 어떤 차이를 느낄 것인가 등에 관심이 많아요. 통계와 리서치 자료 등이 있지만 직접 경험해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봐요.”
특히 기업의 첫 번째 고객인 직원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 객실 서비스를 하면서 승무원들의 근무환경과 마인드를 파악할 예정이다. 조 상무는 “현장수업을 통해 직원들의 프라이드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진에어에 대한 조 상무의 애정은 남다르다. 2008년 진에어 출범 당시 로고와 유니폼 디자인을 지휘한 그는 2009년부터 그린콘서트, 진에어 스타리그 등 진에어의 크고 작은 행사를 적극 챙기고 있다. 서울대 MBA 과정 졸업논문 주제도 ‘진에어의 중장기 마케팅 전략’이다. 그는 올해 1월부터 진에어 마케팅 부서장(전무)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최근 저비용항공사(LCC) 이용객이 늘면서 업계는 무한경쟁 시대로 돌입한 분위기다. 이 때문에 오너 가족이 전진 배치돼 직접 챙기는 양상이다. 조 상무는 “대한항공에서 쌓인 노하우가 진에어의 인프라”라며 “김재건 진에어 대표께서 동남아항로 전문가이
기 때문에 향후 LCC의 동남아 항로 경쟁에서 선두를 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제 역할은 지금까지 진에어의 임직원이 이뤄낸 성과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겁니다. 진에어는 경쟁사에 비해 홍보와 마케팅이 소극적이었지만 앞으로는 다를 겁니다. 마침 진에어의 영업실적이 좋아 제 활동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진에어는 조 상무의 행보로 언론 노출이 크게 늘었다. 경쟁사의 공격적 마케팅에 밀렸던 진에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조 상무가 마케터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결과다. 업계에선 진에어가 ‘저비용 항공사는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고 출범 2년 만에 업계 최초로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조 상무의 공이 크다고 평가한다.
광고·마케팅에서 실력 인정받아
최근 1년 새 조 상무의 경영 보폭은 부쩍 넓어졌다. 2011년 1월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장(상무)으로 승진한데 이어 올 1월엔 진에어 마케팅 부서장(전무)에 임명됐다. 2010년 정석기업·진에어 등기이사에 올랐으며 지난해 4월엔 한진에너지 등기이사로도 이름을 올렸다. 대한항공에선 브랜드커뮤니케이션을, 진에어에선 마케팅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조 상무는 최근 몇 년간 감성광고를 잇따라 히트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가 입사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한항공 광고는 취항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조 상무는 스토리텔링 기법이 접목된 광고를 선보이며 관심을 끌었다. 중국편 광고인 ‘중국, 중원에서 답을 얻다’를 비롯해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동유럽에 귀를 기울이며’ ‘그때, 캐나다가 나를 불렀다’ 등의 광고가 대표적이다. 특히 지난 2010년 뉴질랜드를 소개한 광고에 조 상무가 직접 번지점프를 하는 모습이 담겨 화제를 모았다. 업계에서는 “대한항공 광고는 ‘조현민 이전’과 ‘조현민 이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재계에서는 조 상무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광고·홍보·마케팅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시너지를 내면서 대한항공의 이미지를 젊고 역동적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요즘 대한항공 광고는 공급자가 아닌 여행자, 즉 소비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고객이 생각하는 것을 미리 파악해 원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브랜드마케터의 역할이죠.”
조 상무는 부장 시절 ‘스타크래프트 마케팅’으로 주목받았다. 평소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그는 2010년 6월 서울 공항동 대한항공 격납고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이미지를 씌운 ‘래핑 항공기’를 공개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5월에는 격납고에서 대한항공이 후원한 ‘대한항공 스타리그 2010’ 결승전을 열었다. 이 행사는 1만2000여 명의 관객이 모여 대성황을 이뤘다.
주변에서는 조 상무가 재벌가 자녀답지 않게 개방적이고 소탈하다고 말한다. 때문에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거리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사교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소통한다. SNS 회원들과 함께 ‘일일카페’를 열어 수익금을 아프리카 어린이 구호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광고를 주제로 사내외 강연에 나서는 등 대외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11년 이후 문화부·KT&G·NHN·카이스트·성균관대·병무청 등 두 달에 한번 꼴로 외부강의에 초청받아 나서고 있다. 지난 3월 초 병무청 강연에서는 “대한항공 채용 시 군대 가산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규정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끄는 부서 직원들은 군필자 위주로 받겠다”고 재치 있게 답변해 박수를 받았다. 회사 안에서는 잦은 노출이 내심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조 상무는 “저는 선천적으로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연말 ‘2011 대한민국 e스포츠 대상’ 공로상 수상식과 ‘올해의 홍보인’ 수상식 때 그는 어깨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 “점잖은 게 덕목으로 인식하는 재벌가 딸 치고는 다소 파격적인 드레스코드였다”고 말하자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스타일을 입을 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벌가 막내딸을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언론보도에 따라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리고 그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해졌다면 오버일까요?”라며 웃었다.
창업주에 부끄럽지 않은 경영자 될 것
재계 일각에서는 향후 진에어의 경영권과 조 상무를 연결하는 분석이 많다. 그는 “언니인 조현아 전무는 기내식과 호텔분야에서, 오빠인 조원태 전무는 노선개척과 경영전략에서 전문성을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 저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린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아직은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얘기다.
“저는 모든 일을 대한항공과 진에어를 중심에 두고 고민하며 실천합니다. 우리 회사는 주식회사이고, 때문에 저는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게 당연하죠. 이런 생각이 변치 않도록 노력할 거예요.”
부친 조양호 회장은 그의 ‘교과서’다. 조 상무는 “무뚝뚝해 보이시지만 아버지로서 참 자상한 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에서는 항공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모시기 힘든 CEO’라는 게 그의 평가다. 그는 “사진을 취미로 하셔서 앵글에 대한 안목이 높아 광고를 담당하는 실무자로서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일에 있어서는 자식들에게 칭찬을 잘 안 하신다. 늘 숙제검사를 받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 상무는 ‘오너 가족이기 때문에’라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답은 오직 하나, 실력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신입사원들과 함께 객실 서비스를 진행하고, MBA 과정도 밟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막내딸’이란 수식어를 떼고 조현민이란 이름만으로 인정받아야겠죠. 또 ‘조중훈 회장 손녀답다, 조양호 회장 딸답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이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이자 에너지입니다. 아마도 다른 기업의 3세 경영자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창업주가 세워놓은 기업을 잇고 있는 후세들로서 책임감이 클 것입니다.”
올해 서른 살. 젊은 나이지만 그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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