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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그런 빈 고궁은 죽은 것 세월·삶의 ‘켜’ 있어야 문화유산

덩그런 빈 고궁은 죽은 것 세월·삶의 ‘켜’ 있어야 문화유산

국립중앙박물관장·국립민속박물관장을 역임한 김홍남(64)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대표를 만났다. 그는 문화유산 보존에 열심이다.



“쟈(쟤)가 나중에 박물관에서 일할라꼬 저러는갑다.”집안 어른들은 수학여행에서 골동품 항아리를 보느라 대열에서 이탈했다는 열 세 살 아이를 신기하게 바라봤다.어머니 선물로 산 뚜껑 달린 항아리는 아이의 첫 수집품이 됐다. 46년 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김홍남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공동대표는 어려서부터 우리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문화유산 보존운동을 벌이는 김 대표를 6월26일 서울 삼청동 자택에서 만났다.

끼익, 묵직한 나무 대문을 열고 안마당에 들어서자 오른쪽에 툇마루, 정면에 발코니를 연상시키는 쪽마루가 보였다. 아래층, 위층 두 채를 연결해 지은 현대식 한옥이다. 안쪽 계단을 내려가니 모던한 가구와 하얀 벽면이 눈길을 끄는 현대적 공간이 나타났다. 5월2일자 뉴욕타임스는 ‘Connecting the Centuries(수 세기를 이어주는)’란 제목으로 이 집을 소개했다. 전통미와 현대미를 고루 갖춘 공간이라는 내용이다.

인터뷰는 위층 안채에서 진행됐다. 양쪽에 큰 창호 문이 있어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었다. 창 밖을 보면 저 멀리 인왕산 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김 대표가 이 집을 지은 것은 2000년대 초. 이전에는 소격동 길가 양옥에 살았다. “이화여대 박물관장이었을 때 전남 영암의 구림마을 보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어느 날 창 밖을 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도 보존해야 할 문화 현장이었어요. 북촌(종로구 제동·가회동·삼청동에 걸친 마을)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주거지역으로 보존할지 늘 고민하죠.”

정미숙 한국가구박물관장 등과 함께 북촌문화포럼을 창설한 200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동에 참여했다.내셔널트러스트는 환경을 보호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민간단체로 1985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김 대표는 문화유산 관련 지식과 노하우를 전한다.

그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미술관·스미소니언 동양미술관·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 이화여대 박물관장·국립민속박물관장·국립중앙박물관장 같은 굵직한 직책을 맡으며 문화계 유력 인사로 이름을 알렸다. 현재 ‘직업’은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지만 아름다운재단 이사, 동물보호단체 카라이사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박물관장 물러난 후에도 활발히 활동“교수, 큐레이터, 행정가, 사회운동.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문화유산이라는 한 길에서 만나게 됩니다. 박물관에서 유물을 보존하는 것 못지 않게 문화현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해요. 정부가 챙기지 못하는 역사문화의 현장을 보존할 책임을 느낍니다.” 속한 단체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문화를 보살피는 것이 그의 일이라는 얘기다.

내셔널트러스트의 활동은 크게 자연보호와 문화유산보존으로 나뉘지만 김 대표는 둘을 따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유산은 유·무형의 요소가 공존하기 때문에 자연과 어우러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마을이다. “마을에는 산천이 있고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있잖아요. 그게 바로 문화유산이죠.”

요즘 보존에 힘을 쏟는 분야는 근대 문화유산이다. 특별한 역사적 유례가 없는 근대 유산은 대개 정부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김 대표는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고(故)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을 예로 들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 아시죠?

한국 근대기에 전통문화 찾기 운동을 하신 분입니다. 역사 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한국 문화계에서는 영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분 심미안의 산실이 바로 유품이 보관된 성북동 옛집입니다.” 근대 인물들의 삶의 흔적을 보존하고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게 하는 게 김 대표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교육이다.

그는 최순우 옛집을 ‘켜’가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표현했다. 도시에 텅 빈 고궁만 덩그러니 있는 것은 켜가 없는 죽은 문화라는 것. “종묘만 지키면 뭐합니까. 제사 때 연주하는 종묘제례악을 함께 보존해야지요.” 김 대표는 외국에서 베토벤, 톨스토이 같은 대가의 생가를 보존하듯 최순우 옛집 보존이 새로운 전통을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고 있다.

2002년 최순우 옛집에 이어 한국 근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권진규 작가의 서울 동선동 아틀리에를 비롯한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전남 벌교 보성여관, 나주 도래마을 옛집 등이 시민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이런 근대 문화 유적지는 내셔널트러스트가 매입하거나 소유자가 기증, 위탁관리 하는 방법으로 보존된다.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지원 없이 도심의 십 수억원 대 부동산을 어떻게 사들이겠어요. 최순우 옛집만 해도 연립주택을 지으려고 계약을 한 상태라 급하게 기금을 모아야 했어요. 평소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이 많은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홍라희 관장 도움으로 최순우 옛집 보존김 대표는 기금 모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무턱대고 돈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후원 받기 참 쉽지 않습니다. 또 언제 바뀔지 모르는 윗사람의 말 한마디에 보존 여부가 결정 나니 지속성이 약하지요.” 그는 일부 기업이 원칙보다 여론이나 감정에 이끌려 선심 쓰듯 후원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최근 프랑스 명품 회사 구찌가 5년 동안 매해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마운 일이다.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회장이 먼저 제안했어요. 한국문화유산 보존에 도움이 되면서 구찌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오늘 아침에도 회의를 했습니다. 영국 역시 찰스 황태자를 비롯한 부유층이 보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운동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그렇지 않죠. 상호보완 관계를 원하는 구찌 같은 기업이 한국에서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에 그는 기존의 시민문화유산을 잘 운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소유자들의 신뢰를 높여 기증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회원들의 기금으로 최순우 옛집에서 축제를 열고 작가들에게 권진규 아틀리에를 제공하는 등 꾸준히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문화유산 보존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앞장서는 이유가 뭘까. “제 전공이 미술사입니다.미술사는 곧 문화사입니다. 연구해야 할 대상이 문화유산이라는 얘기죠. 문화의 현장은 살아있는 역사입니다.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남아 있기 때문에 청동기시대 우리 선조가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요.

” 김 대표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일할 때 한국관 개관 기념으로 청동기 붉은 토기를 기증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그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중국이 무엇 때문에 아리랑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고 저렇게 애를 쓰겠습니까.

요즘 K-POP이 인기지만 아무리 해외에서 성공해도 문화의 켜가 없는 나라는 외국에서 무시당합니다.” 김 대표는 현대 미술작가들 역시 외국 작품을 흉내내거나 트렌드만 좇으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어렵다고 했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미술사 교수들과 갤러리에 갔습니다. 한국 근현대미술실의 김종학 작가 작품 앞에서 걸음을 딱 멈추더군요. 한국적이라는 거죠. 그래서 역사문화의 현장이 중요한 겁니다.”


자연과 문화유산 따로 생각할 수 없어현장을 중시하는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길에 오른다. 얼마 전에는 터키에 다녀왔다. “트로이의 유적, 히타이트 왕국의 유적, 모세가 태어난 곳,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의 발원지…. 다 보고 왔어요. 직접 가 본 곳에 대해 강의할 때는 더 신이 나요.”

현재 그의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명함’은 이화여대교수다. 국립중앙박물관장까지 지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직책으로 이화여대 박물관장을 꼽았다. “목숨 내놓고 했어요. 오기가 생겨 대학 박물관의 역할을 꼭 확인시켜주고 싶었죠.” ‘애쓴 만큼 관람객 수가 늘었느냐’고 묻자 표정이 굳어졌다. “박물관은 10명이 앞사람 머리만 보고가는 ‘뒤통수 관람’을 하는 것보다 한 명이 제대로 느끼고 가는 게 중요해요. 수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양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죠.”

다시 행정직으로 돌아갈 생각도 있을까. 조심스레 묻자 답이 명쾌하다. “뭘 하면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지금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요.”

2남3녀 중 차녀로 태어나 서울대에 입학한 그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몰래 책을 읽던 어머니를 닮았다고 한다. 냉정하면서도 인자해 보이는 인상이 곡선과 직선이 적절히 배열된 그의 집과도 비슷했다. 인터뷰가 끝을 보이자 김대표는 푹 끓인 콩나물 국밥을 권했다. “한 그릇 후룩 들고가요. 한옥집에 오면 구수한 맛이 있어야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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