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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미개척지 검은 대륙이 부른다

마지막 미개척지 검은 대륙이 부른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꼽은 올해 세계 10대 고속성장 예상국 리스트에 아프리카의 5개 나라가 올랐다.한국 기업도 앞다퉈 아프리카로 진출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삼성전자·현대차 등이 이미 호평을 받고 있다. 6월 21일에는 아프리카의 새로운 허브로 떠오른 케냐에 대한항공이 직항을 개설한다.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아프리카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본지는 다음호부터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는 해마다 5%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경제전문기관 글로벌 인사이트는 2020년까지 아프리카의 경제성장률이 매년 5.8%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 평균성장률(3.9%)보다 높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은 2060년 아프리카 전체 국내총생산(GDP)이 15조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5600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현재 GDP 1조70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667달러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수치다. 이런 전망의 배경에는 아프리카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이 있다. 아프리카 인구는 10억명 이상으로 세계 인구의 약 14.6%를 차지한다. 아프리카 대륙은 세계 대륙 면적의 20.4%에 이른다. 역동적인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미 유럽, 중국, 일본, 인도 등이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기 위해 아프리카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새천년이 시작된 해인 2001년 7월, 아프리카 남부 내륙국가 잠비아의 수도 루사카(Lusaka)에 검은 대륙 지도자들이 대거 모였다. 아프리카통일기구(Organisation of African Unity, ‘아프리카 연합’의 전신) 정상회의 자리였다.나이지리아의 올루세군 오바산조 대통령,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 세네갈의 압둘라예 웨이드 대통령, 알제리의 압델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 등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회의가 끝날 무렵, 깨끗하게 타이핑된 문서하나가 그들 앞에 놓여졌다. 표지엔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The New Partnership for Africa's Development,NEPAD)’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안에는 아프리카를 부흥시키기 위한 야심 찬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아프리카가 21세기 도약을 위한 변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장엄한 선언이었다.


21세기 도약 위한 변화NEPAD는 우선 아프리카 국가 간에 경제협력과 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비전과 정책 틀을 제시했다. 개별 국가 차원을 뛰어넘는 대륙프로젝트로 아프리카의 미래를 개척하는 플랫폼을 제공한 것이다.NEPAD는 네 가지 목표를 천명했다. 가난을 척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며, 세계경제 속에 아프리카를 통합시키고,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은 앞다퉈 NEPAD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G8정상들도 박수를 보냈다.유럽연합(EU)과 중국·일본 등 다른 국제개발 파트너들도 이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선언은 거창했으나 시작부터 막막했다. 아프리카에는 급한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했다. 질병퇴치와 분쟁 해결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였다. 하지만 그들이 도출해낸 결론은 대륙에 만연한 부패부터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본이 없는 아프리카로서는 외부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썩은 곳에 투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NEPAD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아프리카가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투명한 국정운영 체계와 민주주의, 인권, 그리고 갈등 해결이 그것이다. 아프리카 정상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경제성장과 투자 유치에 필요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아프리카의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후 NEPAD는 야심찬 미래 청사진도 그려냈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수단의 카르툼과 콩고민주공화국의 키상가니를 거쳐 킨샤사까지 연결하는 전기선 건설공사다. 세계에서 전기보급률이 가장 낮은 아프리카 대륙에 동력선을 연결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우선 순위를 부여한 것이다. 사하라 사막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횡단도로(다카르~은자메나~카르툼)의 보수와 확장도 NEPAD가 추진 중인 뉴 아프리카 건설의 주요 축이다.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대륙이다. 인구도 아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우기(雨期)와 건기(乾期)에 따라 사람 이동이 잦아 정확한 인구통계를 내기가 쉽지 않지만 유엔은 2011년 현재 대략 10억4600만 명이 이 대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지만, 경제적으로는 가장 뒤쳐져 있는 대륙이다.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The World Factbook 인터넷판에 따르면, 세계226개국 1인당 구매력 평가(PPP·Purchasing-Power Parity) GDP를 기준으로 볼 때, 200위 이하 27개국 중 22개 나라가 아프리카 국가다.

200위를 차지한 아프리카 서부국가 베냉의 경우, 2011년 1인당 구매력 평가 GDP가 1500달러 수준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3만1700달러(40위), 북한이 1800달러(193위)로 평가된 것과 비교하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빈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있다.




세계에서 둘째로 인구 많은 대륙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빈곤이 심각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1981년 이 지역 인구의 약 50%(2억 명)가 하루 1달러 이하의 수입으로 사는 빈곤층이었다. 이 비율은 1996년 58%까지 올랐다가 2005년에 다시 50%(3억8000만 명)로 떨어졌다. 이 지역 빈곤 인구는 평균 하루 수입이 70센트 밖에 되지 않았다. 2003년 수치는 1973년보다 더 악화돼 일부 지역에서 빈곤이 오히려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류의 발상지인 아프리카가 이렇게 뒤쳐진 것은 오랜 수탈과 식민지배라는 굴곡진 역사 탓이 크다. 일찍이 지구촌에 인류를 퍼뜨린 아프리카는 7세기부터 다른 대륙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인력 발상지’로서의 기구한 운명을 되풀이한다. 노예가 바로 그들이다. 아프리카에는 고대부터 노예제도가 존재했다.

주로 전쟁에서 승리한 부족들이 정복한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지금의 카메룬에 거주하던 반투족은 남부 아프리카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노예 노동력을 토대로 농경문화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8세기 이후 아프리카 대륙은 1000년 이상 노예사냥터였다. 초기에는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페르시아에서 온 이슬람 상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들을 중동으로 데려가 팔았다. 이들 노예들은 멀리 서남아시아와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까지 팔려갔다.

15~16세기를 거치면서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유럽인들에 의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세네갈은 유럽인들이 대거 배를 타고 들어오면서 노예를 매개로 한 삼각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유럽 상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온 상품을 세네갈에서 아프리카 흑인 노예와 교환했다.

그들은 넘겨받은 노예들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데리고 갔고, 거기서 카카오·커피·사탕수수·담배와 맞바꿨다. 노예를 넘겨주고 받은 이러한 물품들은 다시 유럽시장에 내다팔았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거치느라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짭짤한 이익이 돌아오는 ‘훌륭한’ 사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를 ‘흑색 다이아몬드’라 부르기도 했다.

대서양을 통한 유럽인들의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500년이 넘게 성행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노예수요가 급증하면서 더 많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로 몰려왔고, 노예무역은 호황을 누렸다. 절정을 이룬 18세기에는 매년 최고 10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선에 실려 아메리카로 보내졌다. 19세기까지 대서양간 노예 무역으로 신대륙으로 보내진 노예는 대략 1000만~1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노예사냥이나 수송 도중 숨진 아프리카인들만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세기 들어 세계 각국이 노예제도를 금지하면서 아프리카의 인력유출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폭동을 통해 노예제를 폐지한 하이티(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름은 생 도미니크)가 독립을 선언하고 자치공화국을 선포(1804년)한 것도 이즈음이다. 하지만 노예거래는 쉽게 근절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불법적인 노예 매매가 계속 됐다. 20세기까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 교역로를 통하여 수백만 명의 노예가 추가로 아프리카를 떠난 것으로 추정된다.

노예사냥이 수그러들었지만 평화는 잠깐이었다. 이번에는 유럽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아프리카 영토 쟁탈전이 시작됐다. 19세기를 지나면서 이미 아프리카 대륙 대부분이 유럽 강대국에 병탄됐다. 수많은 식민 국가가 생겼으며, 독립국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일부 정착하여 세운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 정도였다. 유럽의 식민 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아프리카의 독립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국가들의 힘이 약해지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51년 이탈리아 식민지 리비아가 독립의 첫 신호탄을 쏘았다. 1956년 튀니지와 모로코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며 뒤를 이었다. 가나는 그 이듬해 사하라 이남에서 최초의 독립 국가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이후 10년 동안 식민지로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거 독립을 성취했다. 상당수는 평화적으로 독립했지만, 알제리처럼 폭력 투쟁을 거쳐 독립을 이뤄낸 나라도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일찍이 독립했지만, 1994년까지 아파르트헤이트로 불리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이 계속되면서 흑인들은 실질적인 독립국가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석유·철광석 풍부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지난해 독립한 남수단까지 포함해 모두 54개의 독립 주권 국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은 대부분 유럽 식민 지배 시대에 유럽인들의 통치 편의에 따라 정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경선은 두고두고 아프리카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이질적인 종족들이 한 나라를 이루게 됐고, 독립후에는 본격적인 ‘땅 주인’ 논쟁이 불거지면서 무력 갈등(armed conflict)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대개 쿠데타가 되풀이되면서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정권은 대부분 장군 출신으로, 교육 수준도 낮고 민주적인 통치를 외면했다. 1960~80년대까지 아프리카에서 70번 이상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13명의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정정 불안으로 아프리카에는 21세기가 되도록 총성이 멈추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 아프리카에서 가장 파괴적인 군사 충돌로 꼽히는 제2차 콩고 전쟁이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와 반군 간에 치러진 이 싸움은 주변국들이 가세하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앙골라·짐바브웨·나미비아가 콩고민주공화국 정부를, 르완다·우간다가 반군을 지원하면서 ‘제1차 아프리카 대전’으로도 불렸다. 이 전쟁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사망자만 540만 명, 난민은 2000만 명 이상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아프리카판 ‘킬링필드’로 불리는 수단 다르푸르 분쟁도 2003년 시작돼 지난해 겨우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불씨를 잡았다. 다르푸르지역의 매장 원유와 물과 목초지 때문에 시작된 이 분쟁으로 30만명이 숨지고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유엔은 추산한다. 수단에서는 이와는 별도로 남부 수단이 지난해 독립국가로 탄생하면서 또 다른 불씨가 점화되고 있다. 남수단 지역의 석유개발권을 둘러싸고 지금도 두 나라간 총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가 분쟁의 대륙이 된 데는 미·소 냉전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 국가가 어렵게 독립을 이뤄냈더라도 두 강대국 중 어느 한 곳과는 ‘동맹’을 해야 하는 상황이 ‘강요’됐기 때문이다.북아프리카 국가들은 주로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았다. 중부와 남부의 경우 미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면 21세기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대륙 내 무력 분쟁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거의 30년을 끌었던 앙골라 내전도 2002년 종식됐다.때를 맞춰 많은 아프리카 나라들이 공산주의식 통제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개혁을 시작했다. 조금씩이나마 체제가 안정되고 경제 개혁이 성과를 발휘하면서 외국투자도 몰리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투자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의 투자를 받은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수십 년간에 걸친 침체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몇몇 아프리카 국가는이제 ‘세계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나라’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연말 펴낸 『2012 세계경제대전망』은 올해 세계 10대 고속성장 국가를 예상하면서 절반인 5개를 아프리카 국가로 채웠다.

3위에 랭크된 리비아(GDP 성장률 13.6%)는 권위적인 정권을 폭력으로 전복시킨 후 재건과 안정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것으로 예상됐다. 앙골라와 니제르도 각각 5위와 6위에 꼽혔다. 이들 두 나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원자재 가격으로 덕에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됐다. 에티오피아와 르완다(공동 8위)는 농업 경제의 점진적인 상업화를 통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외국인 직접 투자 급증세계 각국의 기업과 경제전문가들이 아프리카의 미래를 밝게 보는것은 아프리카가 이른바 ‘생산의 3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의 3요소란 생산의 필수 불가결 요소인 토지·노동·자본을 말한다. 토지에는 토지 자체 외에 광석이나 석유와 같은 자연자원이 포함된다. 아프리카에는 석유와 철광석 등 인류가 필요로 하는 자원이 무한하다. 그동안 분쟁지역이 많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개발도 덜된 상태로 잘 보존돼 있다.

아프리카의 노동력은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엔은 최근 발표한 ‘세계도시화 전망보고서’에서 향후 지구촌에 나타날 인구변화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로 ‘아프리카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꼽았다. 유엔은 2000년 8억 명을 돌파했던 아프리카 인구가 2100년에는 36억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2011년 현재 지구촌 인구 7명중 1명이 아프리카 사람(10억 명)인데 비해, 2050년이 되면 22억 명으로 늘어나면서 4명중 1명이 아프리카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 나아가 2100년이 되면 지구촌 인구 3명중 1명이 아프리카 사람이 될 것이라고 유엔은 덧붙였다.

마지막 남은 요소인 자본은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공적개발원조(ODA) 등 각종 형태로 대륙에 유입돼 아프리카 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00년 90억달러 수준이었던 아프리카 유입 FDI는 4년만인 2004년 18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2008년에는 88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은 지난해 562명의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2015년에는 아프리카 FDI가 15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부흥 선언인 NEPAD가 발표된 지 11년이 지났다.2002년 OAU를 계승한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AU)은 NEPAD의 출범 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아 아프리카 경제개발프로그램의 기본 틀로 삼고 있다. 지난 11년 동안 지구촌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와 유럽발 재정위기(2009)를 겪으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침체기에 아프리카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세계 각국에 꿈과 희망을 던져 주고있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요청하면서 위기 극복의 동력을 아프리카에서 찾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인류의 고향인 아프리카가 과연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후면 우리는 이미 그 대답을 들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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