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혼 없는 공무원은 대통령 책임

고관(高官) 그거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아무나라니! 턱도 없는 소리다. 그 감투를 따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웃어른의 심기를 헤아려야 하는가. 개각 소문만 돌면 변비 증세를 보이는 자리가 고관이다. 당연히 고관이 되려면 여러 덕목을 고루 갖춰야 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 덕목에 새로운 게 하나 추가됐다. 바로 ‘영혼 없음’이다. 정권이 바뀌면 180도로 달라지는 철학과 정책에 오장육부 다 내던지고 거기에 맞춰야한다.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혼신을 다해 옹호했던 전(前)정권을 격렬히 비난하는 건 물론 현 정권의 나팔수 노릇도 해야 한다.
얼마 전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무원론’이 화제다. 그는 사회적 기업을 예로 들었다. “사회적기업 지원정책은 지난(노무현) 정권의 역점사업이었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 정권이 막아서가 아니라”며 “공무원들이 사회적 기업 하면 좌파 색깔이 있는 거라고 보고 (알아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면 자신의 입장을 확 바꾸는 공무원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영혼 없는 공무원’의 어원부터 그렇다. 처음 만들어진 건 2008년 1월 국정홍보처 업무보고 때였다.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원들이 홍보처가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하자, 홍보처 고관이 “대통령 중심제하에서 국정 홍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자백’했다. 홍보처 폐지를 막기 위한 충정이었겠지만 그 가상한 노력은 무위로 끝났다.
세종시도 그 한 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의 건설교통부는 세종시를 기획하고 집행했다. 세종시를 왜 건설해야 하는지, 건설하면 무엇이 좋은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홍보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바로 표변했다. 세종시를 전면 부정한 건 물론,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강조했다. 오해 없기 바란다. 세종시 건설이옳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단지 공무원들의 그런 자세를 탓하는 것뿐이다. 심지어 노무현 정권 때 비서관을 했던 사람은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고위직을 맡자 “세종시는 사회주의 도시”라고 혹평했다.
참 고관되기 쉽지 않다. 이는 지방도 마찬가지다. 오세훈 시장 시절의 고관들은 박원순씨가 시장이 되자 전임 시장을 부정하느라 바빴다. 무상급식 지원에 결사 반대하던 이들이 박 시장이 출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상급식 예산 지원안을 준비했다가 결재를 받았다.
임 전 실장이 지적한 건 이런 부분이다. 충분히 공감 가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정말 중요한 걸 빼먹었다. 바로 ‘자기 잘못’이다. 공무원을 영혼 없는 사람으로 만든 건 대통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인 그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생각해보라. 고관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웃어른을 잘 모시는 것 아닌가. 이런 판에 어른의 심기를 거슬려서야 되겠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관이 못되기 때문이다. 과문인지 모르겠지만, 예외는 거의 보지 못했다. 물론 이 정부만은 아니다. 대통령과 국정 철학이 같은 사람,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사람을 고관 자리에 앉혔던 건 역대 정권의 인사 관행이었다. 지자체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의 서울시도 오세훈 전임 시장때 고속 승진했던 1급 간부 5명을 한꺼번에 인사 조치했다.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면 인사의 인센티브 구조가 그렇게 돼있다는 거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야 고관이 될 수 있는 구조라면 누군들 영혼을 팔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임 전 실장은 자기 책임은 쏙 빼놓고 ‘옳은 말’만 했다. 말에 공감을 얻으려면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을 탓하기 전에 내 눈의 대들보부터 치워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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