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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회장] 20년 전 쥐에서 희망을 찾고 이제 영장류 사육을 꿈꾼다

[장재진 오리엔트바이오 회장] 20년 전 쥐에서 희망을 찾고 이제 영장류 사육을 꿈꾼다



찌는 듯한 날씨 속에 찾아간 경기 성남의 오리엔트바이오 본사는 조용했다. 전(前) 임상 실험에 쓰일 많은 실험 동물이 이곳에 있다. 그럼에도 동물 소리는 물론 어떤 냄새도 없었다. 장재진(51) 오리엔트바이오 회장은 “실험실이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료 하나, 공기 하나 그냥 들어가지 않는다. 동물들에게 감염되지 않도록 직원들 역시 철저히 관리한다. 예방접종은 물론 직원들 간 접촉에도 신경을 쓴다. 때문에 전직원이 모이는 체육대회조차 열지 못한다.

오리엔트 바이오는 2001년 실험동물을 국제 기준에 맞춰 공급하는 것을 의미하는 IGS(국제유전자표준) 인증을 받았다. IGS인증을 받은 기업은 한국에선 오리엔트 바이오가 유일하다. 아시아에는 일본 업체를 포함해 두 군데, 세계적으로도 9곳뿐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때 실력 키운다사업을 시작할 때 그의 전공은 수의학이 아니었다. 수의학 박사 학위도 회사를 운영하면서 땄다. 바이오, 제약 붐이 일 때도 아니었다. 어떻게 실험동물 사업을 할 생각을했냐는 물음에 장 회장은 “10년 동안 성공이 힘든 분야였기 때문”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남들은 바로 돈 벌것을 찾는데 10년을 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1990년 장 회장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손에는 살던 집 전세금과 200만원이 전부였다.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15일 동안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온갖 책을 펴봤다. 지갑이 얄팍했기 때문에 자본이 별로 들지 않는 업종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단기적인 아이템 보다는 미래에 뜰 사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기업과의 경쟁은 물론 해외에서 통할 기술적인 노하우가 있는 업종을 찾는 것도 중요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아이템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당시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가 쓴 『실험동물 의학』이라는 책을 봤다. 장 회장은 “이게 뭔가 하고 읽었더니 너무 재미있었다”며 “생소한 분야라 책을 쓴 분을 직접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면식도 없던 이 교수를 찾아갔다. 사업계획에 대해 이 교수에게 설명하고 “이게 사업성이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교수는 “안 된다”고 대답했다. 당시는 우리나라 제약회사들 대부분이 복제약을 만들어 팔던 시절이라 많은 제약회사에서 신약개발은 엄두도 못냈다. 그래서 수요가 없을 거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었다.

이 교수는 “10년이 지나면 혹시 사업이 될지 모르겠다”며 장 회장을 말렸다. 장 회장은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고 눈이 번쩍 띄었다. “사업성이 없으니 10년 동안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 아니겠어요? 그 동안 부족한 자금도 마련하고 기술적인 노하우를 쌓으면서 기다리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처음에는 직접 키우지 않고 실험동물을 유통하는 일을 했다. 서울과 경기 쪽에는 두 세 명의 업자들이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충청 이남 지역을 공략하기로 하고 대구에 사무실을 얻었다. 방과 홀이 딸린 공간에서 살림과 일을 같이 했다. 코란도 패밀리를 타고 광주·포항·대구·부산 등을 쉴새 없이 왔다 갔다 했다. 운전하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토막 잠을 자며 돌아다녔다. 코란도 패밀리는 1년에 14만km를 뛰었다. 그렇게 1년 동안 공을 들였더니 신뢰가 쌓였다.


10억 들여 키운 쥐 묻고 영국으로1991년 10억원을 들여 직접 실험동물을 키우기로 했다. 최고의 위생 시설을 갖췄다. 당시 실험동물은 일반적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사육’하는 수준이었다. 실험용 쥐를 KIST에서 분양 받았다. 대구에 20만 마리 규모의 시설을 만들어 실험용 쥐를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모 제약회사 연구소를 찾아갔다. “거기 연구원이 ‘이건 못써요’라고 하는 겁니다. 나도 화가 나서 ‘안 사면 말지 정성껏 키운 걸 못쓴다고 할 건 뭐냐’고 되받아 쳤죠.”연구원은 장 회장에게 이유를 설명해줬다. 장 회장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분양용 실험 쥐를 들여 와 유전적 관리를 하면서 교배하고 길러야 한다는 겁니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쥐를 실험에 사용할 경우 그 결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거죠.”

장 회장은 “키운 쥐들은 다 묻어버렸다”고 했다. 잘못된 사실을 알고도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 회장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국내에는 실험동물의 유전적 관리 개념이 희박했다. 그는 정부에 이런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장 회장은 사업을 접고 영국의 실험동물 회사 B&K 유니버스에 가서 5년 동안 기술을 배웠다. 생산 인프라와 컨트롤 방법까지 꼼꼼하게 익혔다. 한국에 돌아와 보건복지부에 실험동물의 유전적 문제에 대해 다시 건의했다.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1997년드디어 바이오제노믹스(오리엔트바이오의 전신)는 신약개발업체로 선정됐다.

98년 경기도 가평에 실험동물 생산 센터를 60% 정도 지었을 무렵 농협 대출이 갑자기 중단됐다. 농협중앙회 회장이 구속된 게 원인이었다. 대출이 끊기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죽고 싶은 마음에 한강도 여러 번 갔다. 마음을 다져먹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갔다. 담당자가 거들떠보지도 않고 거절을 하자 장 회장은 직접 이사장을 만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초저녁부터 이사장

집 앞에서 기다렸다. 이사장의 집 문을 두드리며 “안에 계신 거 다 안다. 좀 만나달라”고 소리쳤다. “밤새 그렇게 진을 빼고 아무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왔더니 TV 뉴스에 그 이사장이 구속됐다고 나오더라고요.” 허탈했지만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바뀐 이사장을 찾아갔다. 이사장은 심사역들에게 “이 회사가 안 되는 이유를 대보라”고 말했다. 심사역들은 그이유를 64가지나 적었다. 장 회장은 B&K의 벤튼 회장에게 이 문제를 의논했다. 벤튼 회장은 세계적 석학들에게 의뢰해 64가지의 이유가 틀렸다는 내용을 기술신보 이사장에게 전달했다. 장 회장은 “자금에 숨통이 트여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장 회장은 세계 1위 실험동물 업체인 찰스리버가 국내에 진출할 것이란 소문을 들었다. 그렇게 되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찰스리버와는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인을 통해 찰스리버의 한국 진출 의향을 물었다. 찰스리버 측은 장 회장이 만든 시설을 둘러보겠다고 했다.가평 시설을 보고 장 회장의 설명을 들은 찰스리버 관계자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했다. 자신들의 노하우도 알려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찰스리버 관계자는 “우리가 이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 회장은 “내 청춘을 다 바친 건데 그렇게 팔 수는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찰스리버 측에서 업무협약을 맺자고 제의했다. 1999

년 두 회사는 실험동물 생산과 관련한 협약을 맺었다.

오리엔트바이오가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정부에서도 일부 실험용 동물을 길러 공급하고 있었다. 정부가 공짜로 제공하는 실험동물이 있는데 민간 업체의 경쟁력이 있겠냐고 의문을 갖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 1위 업체와 함께 생산한 오리엔트바이오의 실험동물을 찾는 곳이 차츰 늘어났다.


임상실험 분야에도 진출실험동물 외에 장 회장은 CRO(임상시험수탁기관) 업무도 하고 있다. 오리엔트제니아라는 별도의 법인을 통해서다. 여기서 전 임상 실험한 발모제는 지난해 2월 미국 FDA의 임상실험 승인을 받았다. 장 회장은 “국제 수준의 CRO라는 것을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실험장비와 실험시설을 만들어 주는 전문 엔지니어링 회사인 오리엔트ENG도 있다. 장 회장은 “우리나라가 신약개발 국가가 되려면 먼저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영장류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덧붙였다. 지난 6월 돼지와 원숭이의 장기이식에 사용됐던 원숭이도 오리엔트바이오에서 제공한 것이다. 장 회장은“어려운 일을 여러 차례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

지 왔다”며 “앞으로도 신약개발에 도움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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