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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키우며 해뜰날 기다린다

덩치 키우며 해뜰날 기다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무엇에 한번 ‘꽂히면’ 좀체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2008년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준비했을 때가 대표적 예다. 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김 회장은 당시 본입찰을 앞두고 그룹전략회의에서 시장 예상가보다 높은 금액을 써내라고 지시했다. 그룹의 예상과 달리 법정 구속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김 회장은 미래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태양광 사업 확장에 다시 한번 승부수를 띄웠다. 한화그룹은 8월 27일 한화케미칼의 자회사인 한화솔라독일이 독일의 태양광 셀 제조업체인 큐셀과 자산양수도 계약을 하고 큐셀의 독일 본사와 생산공장, 말레이시아 생산공장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큐셀 채권단은 8월 30일 이사회에서 인수를 최종 승인했다. 현금 4000만 유로(555억원)를 지급하고 큐셀의 말레이시아공장 부채 8억5000만 링깃(3000억원)을 갚는다는 조건이다.

최종 인수금액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10월에 최종 인수대금 납입 전까지 실사를 거쳐 금액 관련 추가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큐셀의 현지 장기공급계약을 한화 측에서 유지해주는 조건으로 협상이 성사되면 최대 3000만 유로를 줄인 1000만 유로(139억원)에 인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한화그룹은 비교적 적은 돈을 주고 글로벌 태양광 업체를 인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 공장 부채가 관건이다. 한화그룹은 그러나 큐셀이 운영 과정에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태희 동부증권 연구원은 “3000억원의 공장 부채는 현지에서 장기적으로 벌어서 갚을 수 있는 금액”이라며“당장 들어가는 현금이 적다는 면에서 괜찮은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큐셀 인수로 셀 생산 세계 3위큐셀은 연간 1GW의 셀을 생산하는 업체다.지난해 매출액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한화그룹의 태양광 부문 핵심 계열사인 한화케미칼은 이번 인수로 기존 1.3GW(한화솔라원)에 1GW를 더해 총 2.3GW의 셀 생산능력을 갖추게 됐다. 이는 JA솔라, 선테크파워에 이은 글로벌 3위 규모다. 셀은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만드는 얇은 판으로 태양광 발전의 핵심부품이다. 큐셀은 1999년 설립돼 2008년 셀 생산 부문 세계 1위까지 올랐지만 올해 4월 법원에 파산신청을 냈다.유럽 재정위기로 독일 정부가 태양광 보조금을 축소하는 등 상황이 나빠지면서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큐셀은 250여명의 연구개발 인력과 2000여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 외에 호주·미국 등 11개 지역에 영업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한화그룹이 기대하는 건이 부분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큐셀은 셀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업체”라며 “인수 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유럽에서 중국산 셀을 사용하는 모듈에 대한 덤핑 규제가 강화된 때에 말레이시아산 셀로 규제를 피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수직계열화도 노릴 수 있다. 한화그룹은 큐셀 인수로 태양광발전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부터 잉곳·웨이퍼, 셀·모듈,발전시스템까지 아우르는 수직계열화 체계를 구축했다.

태양광은 김승연 회장이 2010년 그룹의‘미래 먹을거리’로 지목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다. 한화그룹은 2010년 8월태양광업체인 솔라펀파워홀딩스를 4300억원에 인수하고 사명을 한화솔라원으로 변경하면서 태양광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이 과정에서 김 회장은 “태양광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번 큐셀 인수에선 김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계약 체결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큰 차질없이 성사됐다. 4월부터 김 회장 지시로 100여명의 인수추진팀이 큐셀의 독일 본사와 말레이시아 공장을 여러 차례 실사하고 준비 작업을 벌인 결과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화그룹이 큐셀 인수로 당장에 큰 도약을 기대하기엔 세계 태양광 시장의 사정이 녹록하지 않다.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맞거나 부도설에 휩싸여 있다. 공급과잉 우려도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공급과잉이 가장 심한 폴리실리콘 가격은 최근 kg당 20달러 안팎에 머물러 제조원가인 30달러에도 못 미치고 있다. 김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경기 침체 여파로 태양광 산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는 이 위기를 더 큰 기회로 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큐셀 인수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NICE신용평가는 “태양광 업황이 조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추가 재무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한화솔라원은 지난해 1712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적자를 냈다. 큐셀의 실적도 당분간 전망이 불투명하다. 김선우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공격적 투자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큐셀의 주력 생산품인 셀의 경우도 ‘팔면 곧 손해를 보는 수준’이라 불릴 만큼 공급과잉 상태다.황유식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태양광셀·모듈의 글로벌 공급과잉 상태가 이어지면서 한화솔라원은 당분간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

긍정적 평가도 있다. 한화가 큐셀 인수를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실적도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김태희 연구원은 “태양광 산업은 중장기적으로 여전히 전망이 밝기 때문에 무리한 투자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정유석 교보증권 연구원은 “태양광 산업의 투자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상황에서 업체들이 이익을 못 내 부도가 나는 상황”이라면서도 “역으로 다른 외국 업체들이 부도가 나서 경쟁업체가 줄어들면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부도설이 많이 나오고 있는 중국의 일부 태양광 업체들이 경쟁에서 도태되면 공급과잉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변수는 김승연 회장의 법정 구속이다. 오너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그룹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회장이 올해 공을 들인 9조4000억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는 사실상 중단 위기다. 김 회장은 올해 5월과 7월에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를 만나고 태양광 설비 추가 수주 등을 논의하며 이 사업을 지휘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이라크 프로젝트는 초기 논의 단계에 머물렀다”며 “당분간 논의가 더 진행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3년째 꾸준히 추진한 태양광 사업은 큐셀인수를 기점으로 계속 규모를 키워나간다는 방침이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은 규모의 산업이며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선진국형 사업인 만큼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이 분야 톱클래스 자리를 굳힌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홍기준 한화케미칼 부회장 등 태양광 분야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이 김 회장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입장이다.


한화케미칼·한화솔라원 실적은 부진업계는 한화그룹의 태양광 올인 행보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화케미칼의 잉여현금흐름이 연결기준 작년 534억원 흑자에서 올해 1844억원 적자로 돌아선다고 전망하고 있다. 잉여현금흐름이 적자일 경우 영업활동에서 창출한 현금흐름이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보다 적다. 이는 재무 구조가 나빠지거나 외부 자금 조달 필요성이 커질 수 있음을 뜻한다. 한화케미칼의 차입금 규모도 1분기 말 연결기준 4조6000억원에 달했다.

다만 대한생명을 비롯한 알짜 계열사가 있어 그룹 차원에서 한화케미칼을 전폭 지원할 수 있다. 한화솔라원도 작년 4분기 영업적자가 1760억원이었지만 올해 1분기에는 410억원, 2분기 176억원으로 적자가 줄어들고 있다. 한화 관계자는 “태양광 확장을 위해 확보한 자금 규모를 구체적으로 공개할 순 없지만 투자 여력은 충분하다”며 “연내추가 투자 계획은 미정이지만 큐셀처럼 적당한 가격에 매물이 나타나면 인수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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