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프라다를 벗고 싶다
이제는 프라다를 벗고 싶다
지난 3월 파리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 고급 기성복을 선보이는 패션쇼) 패션 위크 기간의 어느 날 저녁 포부르 상토노레 거리 41번가.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관저에서 유망한 미국 디자이너 11명이 샴페인을 홀짝였다.이번 쇼의 전시회에 참여하려고 파리를 찾은 젊은 디자이너들이다. 미국 스포츠웨어 업계의 거물 토미 힐피거의 후원을 받았다. 물론 국제 패션의류 업체와 편집자들에게 자신들의 콜렉션을 선보이려는 목적도 있다. 이들 패션 관계자들은 세계의 패션 수도 파리에 정기적으로 모여 우리가 앞으로무엇을 입을지를 구상한다.
찰스 H 리브킨 미국 대사가 앞으로 나서 건배를 제안했다. 떠오르는 샛별들의 앞날을 위해 축배를 들고 국가간 문화·경제적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미국 패션 업계에 경의를 표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파리 대사로 임명한 리브킨은 한때 머펫 인형을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제국을 이끌었다. 그는 2008년 대선 선거운동 중 오바마의 최고 자금 조달자였다.오바마 캠프의 캘리포니아주 자금조달 위원회 공동 의장을 맡기도 했다. 리브킨의 부인 수전 톨슨은 투자은행가 출신으로 날씬한 금발이다. 파리의 새로운 공직사회에 자리를 잡자마자 재빨리 자신의 스타일을 한단계 높였다. 예를 들면 샤넬 쇼의 앞 좌석에 앉는 식이다.
완벽하게 마련되고 간결하게 타이밍을 맞춘 저녁이었다. 정치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도 뿌렸다. 이 모든 과정을 주도한 여성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안나 윈투어(62)였다.내성적인 성격의 윈투어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패션지(fashion’s most prestigious glossy) 보그 편집장 취임 25주년을 앞두고 있다. 그녀는 이 ‘파리의 미국인들(Americans in Paris)’ 전시장 외에도 잡지,업계, 그리고 나아가 문화 전반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윈투어는 드레스의 환상적이고 고급스러운 측면을 외면하지는 않았다(has not ignored the fanciful and rarefied aspects of frocks). 하지만 어떤 전임자보다 패션을 화려함, 글로벌 상거래, 그리고 대단히 흥미롭게도 정치권력의 수익성 높은 혼합으로 규정했다.
1988년 윈투어가 편집장에 취임한 이후 보그지는 대략 120만 부의 발행부수를 유지했다. 잡지발행자협회출판정보국(the Publishers Information Bureau)에 따르면 2011년 매출액이 3억9000만 달러에 육박해 패션 잡지계의 제왕으로 군림한다(sits at the top of the fashion-glossy heap). 보그 창간 120주년 기념호인 2012년 9월호는 역사상 가장 페이지 수가 많다. 광고 면수가 658쪽으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모두가 선망하는 디자이너 자리를 채우려 할 때 패션업계의 큰 손들은 윈투어의 말에 귀 기울인다(Wintour has the ear of the industry’s top moneymen). LVMH 모에 헤네시 루이 뷔통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PPR 최고경영자 프랑수아-앙리 피노같은 사람들이 그녀의 의견을 묻는다. “그녀는 몇몇 디자이너의 선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퓌그 패션 사업부의 랠프 톨레다노 사장이 말했다. 장 폴 고티에와 니나 리치가 그의 사업부에 속한다. “그녀의 조언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와는 상관 없이 그녀를 존경한다. 그녀는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지녔다.”
윈투어는 J 크루와 갭 같은 대형 상업 브랜드도 다른 고급 브랜드와 다름 없이 보그지에 받아들였다. 그런 관계는 디자이너들과의 협력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이름을 날리며 추가로 보수를 받기도 한다.윈투어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와 함께 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미국의 차세대 디자이너들을 후원하는 ‘CFEA/보그 패션 펀드’다. 9·11 테러 이후 패션 업계는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피해가 가장 막심했다. 펀드는 테러 공격이후 몇 주 사이 조성됐다. 이제 9년째를 맞은 펀드는 프라발 구룽, 조셉 알투자라 같은 신성들을 후원했다. 윈투어는 2009년에는‘패션스 나이트 아웃(FNO, Fashion’s Night Out)’을 시작했다. 침체된 100억 달러 규모의 뉴욕 패션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쇼핑 축제다. 로드&테일러 한 업체만 해도 매출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FNO는 현재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소매 매출 증가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윈투어는 또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 상연구소(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s Costume Institute)를 위해 85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조달했다.
연례 갈라 쇼를 지휘하고 패션·영화·음악·스포츠, 그리고 물론 정치계의 유수한 초대손님들을 선정해 초대했다(curating a high-profile guest list).실상 최근 가장 관심을 끄는 일은 윈투어의 정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다. 그녀는 오래 전 보그를 여성 정치인들의 해방구로 만들었다. 그들은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캐슬린 시벨리우스 보건복지부 장관,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미국 대사가 보그의 지면에 등장했다. 워싱턴 정계에선 여전히 패션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엘리트주의와 겉치레를 연상했다(any association with fashion automatically implies elitism and superficiality). 그들은 그런 편견에 과감히 반기를 들었다. 보그지는 당파성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는 듯하다.
그러나 편집장은 그렇지 않다. 윈투어는 개인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을 지지한 오랜 전력이 있다. 존 케리의 대권 도전, 힐러리 클린턴과 커스텐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의 선거운동을 후원했다. 뉴욕 1지구를 대표하는 티머시 비숍 하원의원도 지지했다. 윈투어의 여름 별장이 있는 롱아일랜드가 1지구에 속한다. 2009년 빌 화이트의 텍사스 주지사 선거운동 캠프에도 정치자금을 기부했다.그녀의 오랜 남자친구 셸비 브라이언의 고향 주 민주당 후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정치적 관심은 주로 오바마에게 집중됐다.
“보그나 콘데 나스트와는 무관하다. 우리가 분명히 선을 긋는 문제가 있다. 콘데 나스트는 어떤 정치 후보도 밀어주지 않는다(I’m not going to throw the weight of Condé Nast behind any political candidate)”고 콘데 나스트 CEO 찰스 타운센드가 말했다.“내가 그녀의 정치적 취향에 영향을 미치지 않듯이 그녀도 내 성향을 좌우하지 않는다(She doesn’t guide my political preferences any more than I do hers).”윈투어는 2008년 초반부터 오바마를 후원했다. 자금 모금행사를 주최하며 상당히 유능한 모금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emerging as a highly effective bundler). 열성적으로 선거운동 상황을 추적했다. 적극적으로 경선 관련기사를 분석하고(eagerly parsing horse-race stories) 인종문제를 다룬 필라델피아 유세 등 오바마의 대담한 연설일부를 검토했다.
올해 윈투어는 더 탁월한 모금책으로 부상했다. 오바마를 위해 최소 50만 달러를 조성하고 개인적으로 수만 달러를 더 기부했다. 그녀의 적극적인 행보에 언론이 의문을 품게 됐다. 그녀는 무엇을 원하는가? 지난 대선 기간 중 불거졌던 루머가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대사 자리에 관심이 있다는설이었다. 정치적 답례가 답지하면서 그 가십을 더욱 부채질했다(The gossip has been fueled by her growing collection of political thank-yous). 여러 차례 공식만찬에 초대되고 대통령 직속 예술·인문과학 위원회 위원에 선임됐다. 그리고 우연찮게 타이밍도 맞아 떨어졌다. 런던이나 파리 대사는 대체로 직업 외교관보다는 정치적 연고로 채워진다. 25년간 패션계 정상을 지킨 윈투어에게 그런 대사 자리는 훌륭한 인생 2막이 될수 있다. 어쨌든 미디어 업계 경영자 출신이 불-미 외교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패션계 거물 출신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외교관 일을 좋아했다”고 야구 구단주 출신으로 2005~2008년 프랑스 주재미국 대사를 지낸 크레이그 R 스태플턴이 말했다. “아주 환상적인 직업이다.” 하지만 은퇴하고 우아하게 즐길 만한 일은 아니라고 그는 경고했다.“대사는 여왕과 차를 마시거나 경마장을 다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스태플턴이 말했다. “주재국 정부에 경량급인사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You don’t want to be painted as a lightweight by the host government). 그들이 가장 중시하는 문제는 대사가 대통령과 가깝느냐, 그리고 대통령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외교관에게 필수 불가결한 차, 칵테일 파티, 만찬 모두 외교정보 수집에 유리한 환경이다. “사람들은 정장 입은 바보들이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한가하게 노닥거린다고(here are these pinstriped fools tootling around with champagne in hand) 생각한다. 사실 그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1997~2003년 주미 영국대사를 지낸 크리스토퍼 메이어가 말했다. ”필수적인 인맥형성 과정의 일부다 … 엄청 힘든 일이다.”윈투어는 그런 역할을 맡을 능력이 충분하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친구들은 믿는다. 그녀가 자신의 정치활동에서 어떤 보상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그들은 말한다.“그녀가 대통령을 믿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고 할리우드 프로듀서인 하비 웨인스타인이 말했다. 그는 오바마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윈투어와 손을 잡은 적이 있다.“그녀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보그지 편집장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웨인스타인이 덧붙였다. 대사직은 “레임덕 일자리다. 4년 뒤에는 물러난다. 그 뒤에는 어쩔 셈인가?”
윈투어는 이 기사를 위한 취재에 응하지 않았지만 대변인을 통해 대사직에 관심이 있다는 루머를 일축했다. 하지만 특히 패션계에서 영원한 건 없다. 윈투어는 수십 년 동안 보그지 브랜드를 키우며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이제 그녀에게 잠재적인 플랜B가 있는가? 정치가 아니라면 무엇인가?보그지 편집장들은 잘 돼서 또는 조용하게 잡지에서 은퇴하는 일이 드물다. 대체로 해고당하는 편이다. 다이애나 브릴랜드는 1963~1971년 편집장을 맡아 보그를 세계 각지에서 촬영한 환상적인 화보집으로 만들었다(turned Vogue into a repository of fantastical postcards from around the world).
그녀의 해고는 콘데 나스트가 “다른 유의 잡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고 자신의 일생을 다룬 방영예정 다큐멘터리(‘The Eye Has to Travel’)에서 그녀가 말했다. 브릴랜드의 뒤를 이은 그레이스 미라벨라는 더 절제되고 지적인 잡지를 만들었다.그녀도 결국 해고되고 윈투어가 그 자리에 올랐다.보그의 역사에서 윈투어는 역대 2위의 장수 편집장이다(has been the secondlongest-serving editor). 1위는 1914~1951년 잡지를 이끌며 대공황과 양대 세계대전을 모두 겪은 에드나 울먼 체이스다.
윈투어는 90년대 중반 워싱턴에 첫발을 내디뎠다. 캐서린 그레이엄과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였다.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전 발행인이자 워싱턴 사교계의 대모였다(doyenne of Washington society). 두사람은 뉴욕의 한 디너 파티에서 만났다. 그 자리에서 그레이엄이 ‘수퍼 세
일(Super Sale)’을 언급했다. 워싱턴 포스트가 매년 개최하는 유방암 연구 후원행사다. 윈투어가 돕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정말 죽이 잘 맞았다(They really clicked)”고1996년 그 모금행사를 기획한 버지니아 로드리게스가 돌이켰다. 방대한 디자이너 상품을 할인 판매하는 행사였다. “그들은 상대의 지위와 업적을 상호 존중했다.”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좋아하는 취향도 같았다.
윈투어는 뉴욕 7번가를 동원했다(marshaled Seventh Avenue). 뉴욕 7번가는 전 세계 브랜드가 집결되고 세계 패션 동향을 선도하는 뉴욕의 대표적인 패션거리다.그레이엄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수퍼 세일 갈라 쇼의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곧 의회와 로비업계의 실력자들이 앞다투어 티켓을 구매했다(members of Congress and K Street movers and shakers were jockeying for tickets). 이 행사에서 100만 달러가 넘는 자금이 조성됐다. 어림잡아 전년도의 다섯배에 달하는 액수다. 그레이엄은 200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윈투어와 친구 관계를 유지했다. 종종 자신의 조지타운 자택으로 그녀를 초대해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권력 실세들 사이에 조용한 밀담이 이뤄지는 곳이다(the setting of quiet tête-à-têtes among power brokers).
그레이엄을 만난 뒤 몇 년 동안 윈투어는 보그를 아름다움과 권력이 만나는 곳으로 탈바꿈시켰다(transformed Vogue into a place where pretty meets powerful).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하키 맘이 핏불개와 다른 점은 립스틱을 발랐다는 점뿐”이라는 말로 전국 무대에 오르기 오래 전에 그녀의 기사를 실었다. 백악관 의전 비서관 데 지레 로저스의 ‘오바마 브랜드’ 홍보가 실패로 끝나기 전에 그녀를 보그지에 소개했다. “정계 여성의 입장에서 보그는 더 전인격적으로 묘사될 수 있는 곳(it’s a place where you can be depicted in a more holistic way)”이라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전 부공보관 캐런 핀니가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가 계속 생각난다. 그녀의 사진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녀 인생을 더 큰 맥락에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섹시한 이미지는 아니다. 라이스가 무도회 드레스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은 자세였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시나리오 작가 애런 소킨이 상상했을 법한 여성 권위의 이상적인 초상화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의 2004년 사진은 강하고 아름답다”고 그녀의 전 비서실장 애니타 맥브라이드가 말했다. “보그지의 역사 그리고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역사적으로 오래 기억되는 불변의 특질이 있다(there’s an enduring quality that’s captured for the ages).”
가장 기억에 남는 정치적 이미지로는 1998년 힐러리 클린턴의 사진이 있다. 빌 클린턴당시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가 연루된 성추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메를로 포도 색깔의 오스카 드 라 렌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애니 리보비츠가 촬영했다. 힐러리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looked regal and confident). “1년 내내 그녀의 자세에 몹시 탄복했다”고 당시 윈투어가 내게 말했다. “그녀가 촬영한 해를 돌아볼 때 얼마나 많은 여성이 그런 위엄 있는 자세를 취할 수 있었겠는가? 보그의 관점에서 볼 때 그녀는 훨씬 더 훌륭해 보인다.”오바마의 대통령 취임 이후엔 새 퍼스트레이디 미셸이 보그지의 사진촬영에 응했다. 일면 미셸 오바마의 의도가 엿보이는 결정이었다. 상징적인 여성지의 표지에 자신의 사진이 실리면 젊은 흑인 여성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던져주리라고(would have particular resonance for young women of color) 믿었던 듯하다. 퍼스트레이디의 보그지 촬영이나 보그지 편집장과 그녀의 관계를 두고 백악관은 아무런 논평도 하지 않았다.
글래머의 눈부신 광채가 때로는 정치적인 실착을 낳기도 했다(Sometimes the blinding glow of glamour has led to a political misstep). 보그지는 2011년 3월호에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부인 아스마 알-아사드의 야한 프로필 사진을 실었다(published a gauzy profile of Asma al-Assad). 시리아 정권이 시민 봉기에 맞서 대학살을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이 기사로 인해 보그지는 외교정책 세계에 순진한 매체로 낙인 찍혔다. 결국 윈투어는 그 스토리가 실수였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논란에도윈투어의 정치 모금활동이 둔화되거나 인기가 줄지는 않았다. 3일 뒤 윈투어는 뉴욕에서 오바마를 위한 자금모금 만찬을 공동주최했다. 장소는 여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의 저택이었다. 대통령은 윈투어의 지속적인 지지에 찬사를 보내는 연설을 했다.
다큐멘터리 ‘9월호(The September Issue)’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에 윈투어에 관한 진실과 신화가 상세히 묘사됐다. 영국 패션지 업계에서의 부상, 상사로서의 완벽주의, 바지보다 드레스, 편안함보다 하이힐, 정치적 이상주의(political correctness)보다 털을 좋아하는 취향 등이 설명된다. HBO에서 또 다른 다큐멘터리도 제작 중이다. 하지만 그녀와 관련된 신화는 누구보다 윈투어 자신이 가장 많이 만들어냈다(Yet no one has been better at enabling the fabulists than Wintour herself). 나는 보그에서 부편집장으로 잠시 일할 동안 윈투어를 알게 됐다. 현재 보그지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는 테리 에이진스를 위한 칵테일 파티를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윈투어는 패션쇼 시즌 동안 가장 활발히 활동한다. 그녀의 출현은 항상 약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her appearance always stirs low-level anxiety). 혹시 의상이나 배경이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다. 두 명의 경호원이 그녀를 대동한다.경호원들은 영양 속의 코뿔소들처럼 어색하게 근처를 배회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들 근육남은 1990년대 후반 윈투어가 동물보호 운동가들의 공격을 받을 때 처음 등장했다. 요즘은 주로 군중 속에서 그녀의 앞길을 터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7월 크리스티앙 디오르 쇼가 열렸다. 그 프랑스 일류 패션 하우스의 신임 디자인 책임자(creative director) 라프 시몬스가 자신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장소는 파리의 번화한 16구에 있는 호텔 파티큘리에. 오후 2시 30분 쇼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손님들이 걸어서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곧 레게 머리를 한(with a ponytail of dreadlocks) 건장한 신사가 서서히 움직이는 검정색 벤츠 세단의 앞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이어 윈투어가 차 문을 열고 내렸다.무대 뒤쪽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쇼를 준비하던 시몬스가 직접 나와 그녀를 맞았다. 디오르의 근대사 전반에 윈투어의 체취가 배어 있다(Wintour’s influence is woven throughout the modern history of Dior). 디오르의 전 디자인 책임자 존 갈리아노도 그녀가 추천했다. 그는 한동안 그 브랜드를 대단히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지난해 파리 선술집에서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뒤 해고됐다.
윈투어의 예술적인 발언보다 사업적인 조언이 훨씬 더 영향력을 지닌다. 콘데 나스트는 새뮤얼 어빙 뉴하우스 회장의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사내에서 윈투어의 역할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콘데 나스트의 타운센드 CEO가 말했다. 아니면 그녀가 자신의 역작인 ‘CFDA/보그 패션 펀드’에 집중할지도 모른다(perhaps she’ll choose to focus on her brainchild). 젊은 디자이너들이 한때의 화제거리가 되기보다 수익성 있는 회사를 설립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향후 5~10년 뒤 시장에서 사라질 사람에게는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CFDA의 최고경영자 스티븐 콜브가 말했다.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싶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 이름을 거론한다(If she believes in you, your name is on her lips)”고 디자이너 타쿤 파니크굴이 말했다. 그녀는 2006년 패션 펀드 후보 오디션에서 2위에 올라 미셸 오바마가 선호하는 디자이너가 됐다. “누군가 같이 일할 디자이너를 원할 경우 그녀는 항상 그 패션 펀드에 속한 디자이너를 찾는다. 그녀의 자식들이나 다름없다(It’s her baby).”이 모든 디자이너 양성 노력은 물론 윈투어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가져다 준다. “그녀는 보그가 계속 살아남는 데 최상의 생태계를 조성한다”고 스테파니 페어가 말했다. 한때 보그지에서 일했던 페어는 지금은 온라인매장 아웃네트를 운영한다. 기부액이 1200만달러로 많지 않지만 이 펀드는 윈투어의 유산이 될 수 있다. 그녀의 전폭적인 지원을 감안할 때 영세사업체에 융자를 제공하고 대형브랜드에 유망 디자이너를 공급하는 막강한 재단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가족의 발자취를 따라 자선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로 결심할 수도 있다. 그녀의 모친이 자선사업을 벌였고 동생두 명도 런던에서 공익사업에 전념한다. 이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산하 의상연구소의 대표 전시품으로부터 갈라 쇼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그녀의 손때가 묻어 있다(Her fingerprints already are everywhere). 윈투어는 미술관 자금을 조성할 때 돈을 많이 모으는 일뿐 아니라 정직한 돈을 받는 데 초점을 맞춘다(but also on making sure it comes from the right people). 그런 냉철한 방식의 자금조달로 전시실들을 재단장하면서 전체 회원과 관람객 수가 증가했다(sparked upticks in overall membership and attendance). 2011년에는 이사로도 선출됐다.
지난 8월 윈투어는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서 열린 오바마 정치 후원금 모금행사에 참석했다. 장소는 웨인스타인, 그리고 마르케사 브랜드 드레스의 공동 디자이너인 그의 부인 조지나 채프먼의 자택이었다. 대통령은 60명의 만찬 손님을 맞이하며 그 영화계 거물과 부인의 지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후원회 위원들의 이름도 거명하며 사의를 표했다(gave shout-outs to the host committee).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의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연기를 칭찬하고, 배우 조안 우드워드의 여전한 미모에 황홀함을 표현하고, 시나리오 작가 애런 소킨의 문장에 경의를 표했다.소킨의 옆에 앉아 있던 윈투어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색안경이 그녀 앞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외교계에서는 윈투어 대사 지명설이 여전히 조심스럽게 회자된다(within diplomatic circles, the idea of an Ambassador Wintour retains modest currency). 대체로 그녀가 줄기차게 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루이스 B 서스먼 현 주영 미국 대사는 전직 시카고 투자 은행가였다. 오바마캠프에서 무지막지한 정치자금 모금 활동으로 이름을 날렸다(was so renowned in Obamaland for his fundraising ferocity).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훗날 외교력을 인정받았지만 처음에는 수표를 써주고 자금을 끌어대 자리를 얻었다는(earned his job through check writing and bundling) 조롱을 받았다. 부도덕한 정치적 보은인사 전통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는 비아냥이었다(derided as just the latest in a scurrilous tradition of political appointees).
“‘정치적 임명’은 그들이 능력을 검증받을 때까지는 도박에 더 가깝다(is more of a gamble until they’re put to the test)”고 메이어 전 주미 영국 대사가 말했다. “일부는 대단히 큰 성공이었지만 기대에 못 미친 경우도 있었다.” 메이어는 진정한 외교관답게 실패 사례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대사 역할에는 외교정책 배경이 필요하지 않다. 전문가들을 보좌관으로 두면 된다. 대신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수완(a knack for creating a network of influence)”이 필요하다.“빠른 두뇌, 냉철한 머리, 두둑한 배짱, 따뜻한 미소, 그리고 예리한 눈이 필요하다(You need a quick mind, hard head, strong stomach, warm smile, and a cold eye)”고 메이어가 말했다. “소심한 사람은 이런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The shy do not prosper in this environment).”
인맥형성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는 막대한 개인 재산이 도움이 된다(Immense personal wealth is helpful for meeting the social obligations). 콘데 나스트에서 받는 월급과 보그지의 의상수당이 아니라 거액의 투자로 얻는 금융자산 소득 말이다. 배우자도 있어야 유리하다. 그리고 파리에선 언어능력은 필수다(language skills are a must).윈투어는 프랑스어로 “대화가 가능하다(conversational)”고 전해진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기준금리 인하에도 한동안 ‘겨울바람’ 전망
2연간 1000억? 영풍 환경개선 투자비 논란 커져
3 야당, '예산 감액안' 예결위 예산소위서 강행 처리
4‘시총 2800억’ 현대차증권, 2000억원 유증…주가 폭락에 뿔난 주주들
5삼성카드, 대표이사에 김이태 삼성벤처투자 사장 추천
6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 서포터즈 '업투' 3기 수료식 개최
7빗썸, 원화계좌 개설 및 연동 서비스 전면 개선 기념 이벤트…최대 4만원 혜택
8페이히어, 브롱스와 ‘프랜차이즈 지점 관리’ 업무협약
9'97조원 잭팟' 터진 국민연금, 국내 아닌 '이곳'에서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