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venture] 현존하는 인디애나 존스
“나는 분명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지는 않는다(I’m sure not going to die in a hospital bed).” 포레스트 펜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의 나이 82세지만 실없는 약속이 아니다(his is not an idle promise). 그는 평생 동안 보물을 찾아 다녔다. 현존하는 인디애나 존스다(a real-life Indiana Jones).역사 유물을 사고 팔고 거래하고 발굴하며 비할 데 없는 컬렉션을 수집했다. 이제 그는 그 자신이 “역사의 유물(the leftovers of history)”이 되는 일만은 피하겠다고 작정한듯하다. 그리고 최근 하나의 계획에 착수했다. 앞으로 1000년 뒤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소개되리라고 믿는 계획이다.
샌타페이에 있는 그의 저택 어도비 벽돌담 안쪽에 철제금고가 하나 있다. 식료품 저장실 크기의 붉은 색 금고 안에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소장품 일부가 보관돼 있다.그는 자물쇠로 잠그는 골동품 보관함을 열어 100만 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보물들로 채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대의 작은 조각상들, 17세기 스페인 반지 한 개, 메사 버드(Mesa Verde) 국립공원 부근의 혈거 유적지(cliff dwelling)에서 발굴한 터키옥 구슬들을 넣었다. 미국 이글 기념 금화, 금덩어리들(gold nuggets), 사금병 하나(a vial of gold dust), 황금 원반 두 장, 그리고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 “다수의 보석”도 추가했다.
이들 보물 속에 자신의 자서전 한 부도끼워 넣었다. 그것을 둘둘 말아 고대 올리브병 속에 넣었다. 그 뒤 “샌타페이 북쪽의 산속으로” 가서 그 보석함을 숨겼다고 펜은 말한다. 누구든지 24행의 시에 담긴 단서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주인이 된다. 시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그러니 내 말을 모두 귀 기울여 들어라/ 너의 노력은 추위를 견딜만한 가치가 있다(Your effort will be worth the cold)/ 용감하고 숲에 있는 사람이라면/그 금의 소유권을 주겠다.”하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 보물들과 함께 한 가지 요소를 더 추가할 생각이다. 자신의 사체다. “사람들이 그 보물을 찾을 때 내 유골도 함께 발견하게 된다(When people find the treasure, they’ll find my bones)”고 말하는 그의 모든 음절에 고향 텍사스의 억양이 묻어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도록 내 약력도 함께 넣어둘 예정이다.” 병원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눈을 감지 않을 사람인 건 거의 확실하다.
기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펜의 임종계획은 그가 살아온 방식을 말해준다(As bizarre as it sounds, Fenn’s plans for his death mirror the way he has lived). 그는 20년 가까이 세계 최고 수준의 갤러리를 운영했다. 워싱턴과 할리우드의 최상류층 사람들을 상대했다(catering to people atop the totem pole in Washington and Hollywood).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존 웨인, 재키 케네디, 가수 셰어 등. 그들은 프레데릭 레밍턴,찰스 러셀, 또는 조지아 오키프의 주요 미술 작품들을 찾았다. 또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을 능가하는 미국 원주민 인디언유물들, 아니면 그 모든 신기루 같은 체험들을 원했다. 전용 비행기와 기사 딸린 리무진, 황금 비품들이 설치된 영빈관(the guest houses with gold fixtures), 주문배달 고급요리, 전속 마사지 서비스. 또는 펜이 자신의 애완동물에게 손으로 먹이를 주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베어울프라는 이름의 루이지애나 악어였다.
펜은 혼자 힘으로 유명인사가 됐다(became a celebrity in his own right). 포브스와 피플지가 그의 삶을 세상에 알렸다. 그의 스토리를 소재로 한 대중시장 스릴러물 ‘필사본(The Codex)’이 출간되기도 했다. “악명높은 보물 사냥꾼과 고분 도굴꾼(a notorious treasure hunter and tomb robber)이 대단히귀중한 예술품·보석·유물을 수집한 뒤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두 건의 영화화 계약도 맺었다(was twice optioned for film). 하지만 그는 법과 규제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버릇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never lost his rogue’s way with rules and regulations). 그의갤러리에 걸린 안내문은 관람객에게 모든 물건을 만져보고, 과거를 손으로 느껴보라고 권한다. 펜이 처음 화살촉을 발견한 뒤 미국사회에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began his great American climb) 이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집에도 똑같은 정신이 흐른다(The same ethos is on display in his home). 그의 집도 박물관처럼 운영된다. 다만 경비원이
없고 소장품이 더 많으며 가격표가 붙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최근 이곳을 둘러볼 동안 나는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미라화된 매의 딱딱한 표면을 두드렸다(비매품). 예수보다 더 오래 된 비취 가면 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기도 했다(1만2500달러). 미국 인디언 수족 추장 ‘시팅 불(Sitting Bull)’한다(펜은 나중에 잘못 말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그렇다고 엄밀히 말해 숨지도 않았다. 2010년 ‘추적의 짜릿함(The Thrill of the Chase)’을 자비 출판했다. 에피소드 위주의 얇은 회고록이다. 보물을 숨겨뒀다고 알리고 그가 나중에 한 말을 빌리자면 “내가 오랜 세월 동안 그것들을 수집하면서 그랬던 만큼 보물을 찾으며 많은 재미를 느끼도록(as much fun finding it as I have had all these years collecting it)” 사람들에게 권장한 책이다.
보물을 찾으려면 자신의 시만 있으면 된다고 펜은 말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펜의 보물을 찾아나선 사람들로 하나의 커다란 공동체가 형성됐으며 그들은 무서울 정도로 열성적이다. 최근 한 참가자가 “당신은 내 마음 속에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You have attained mythical and hallucinogenic proportions in my mind)”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펜은“내가 받은 수천 통의 e-메일 중 전형적인 메시지”라고 평했다. 펜은 자기 이웃의 땅뿐아니라 자기 부모·형제의 묘, 그리고 자기집 뒷마당을 파지 말아달라고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다. “내가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그는 말한다.그러나 그의 시는 한 보물 사냥꾼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쓰여진 글 중 가장 의미가 불분명한 내용(the vaguest damned thing ever written)”이다. 그것을 해석하려면 펜의 눈을 통해 서부를 바라봐야 한다.
바로 내가 샌타페이를 방문한 목적이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보물찾기도 겸해서 말이다. 한 주의 대부분을 그 백발의 은퇴자와 함께 보냈다(spent the better part of a week with the white-haired retiree). 그는 버터밀크(버터의 부산물로 얻어진 우유)를 마시는 동안 자신의 미래 매장지가 어디인지 힌트를 흘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가택수색 이후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수집한 방대한 유물의 출처와 자신을 역사 기록에 포함시키려는 기이한 계획에 관해 장시간 이야기했다.함께 발굴작업을 하러 가기도 했다.매장된 보물에는 모두 배경 스토리가 숨의 평화의 담뱃대(peace pipe, 북미 인디언들이 화해의 상징으로 돌려 가며 피웠다),미군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장군의 최후의 저항(Custer’s Last Stand) 때의 영적인 유물(평가액 110만 달러)을 구경했다(이 전투에서 시팅 불이 이끄는 인디언 부족이 커스터 장군이 이끄는 부대를 전멸시켰다).
2009년 한 비밀 수사요원이 관람객으로 위장해 비슷한 투어를 한 뒤 연방 당국이 펜의 집을 일제 수색했다. 케르베로스 액션이라는 암호명의 이 작전은 사상 최대 고분 도굴사건 수사의 일환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Cerberus)를 찾기 위해서였다. 구체적인 논평을 거부한 FBI에 따르면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펜이 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는 모든 범죄 혐의를 단칼에 부인한다(He denies all wrongdoing in one breath). 그러고는 곧바로 자신의 무용담만 늘어놓는다.
자랑이 도를 넘어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한다(swaggering toward self-incrimination in the process). 예를 들어 FBI 조사 건에 관해서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입을 열면 질 수 있다”고 변호사가 입단속을 했기 때문이라고겨져 있다. 하지만 펜의 보물이 모두가 찾고자 하는 보물의 전당에 오른 지금(as Fenn’s treasure passes into the pantheon of findable millions) 사냥꾼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이 숨겨둔 보물(그리고 그 배후인물)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는 다른 대다수 보물보다 더 기이하고 더 저주받았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샌타페이에 있는 펜의 갤러리는 전성기 때 직원이 16명에 달하고 연간 매출액이 600만 달러를 웃돌았다. 유명인사들과 관련된 일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Every floorboard told a story).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조각한 골동품 천장보를 달라고 졸랐다. 배우 스티브마틴은 여자친구가 집에서 만든 수제 바나나빵을 들고 나타났다. 중국 문화부장관은 토글(막대단추) 스타일의 전등 스위치 꼭지를 부러뜨렸다. 샌타페이 사회에는 고급스런 취향을 가진 텍사스 출신 침략자에 관한 이야기가 무성하게 나돌았다. 하지만 그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펜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신비스런 존재였다. 1972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무명인사였다(He had arrived in 1972 as nobody). 적당한 액수의 은퇴자금,고등학교 졸업장을 지닌 중년의 공군 퇴역군인이었다.
그리고 미술계 경험은 눈곱만큼도 없었다(not a lick of experience in the art world). 그 직후 그는 백만장자가 됐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어떻게 보면 타이밍이 좋았다. 그는 사람들이 선벨트(미국 남부의 따뜻한 지대)로 몰려들며 카우보이와 인디언 장식 모티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확실히 영리했다. 그의 마지막 군 복무시절 근무고과표(military efficiency reports) 하나를 보면 호평으로 도배된 영화 포스터 같다(reads like a movie poster decorated with critical raves). “수완 좋은(high caliber)” “정말 놀라운” “무엇이든 할수 있는.”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 더 많은 걸 알아내려 했다. 1981년 한 친구가 서부 미술계를 다룬 책에서 썼듯이 “그의 광범위한 성공을 더 적절하게 설명할 만한 어떤 비결(some secret which would more adequately explain his far-reaching success)” 말이다.
또 다른 친구는 펜을 ‘오즈의 마법사’, 추종자들을 끌어들이는 “사기꾼 출신(a former flim-flam man)”으로 즐겨 불렀다. 연방 및 주 당국자들도 호기심을 보였다. 그들은 펜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그런 귀한 물건들을 그렇게 많이 빨리 입수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수십 년 동안 요주의인물로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His name has come up as a person of interest for decades)”고 은퇴한 국립공원관리청 조사관 필 영이 말했다.어느 정도는 펜이 이런 관심을 자초했다. 그는 자칭 “사기꾼(hustler)”이었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음모는 좋은 말이 아니니까 그냥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scheming isn’t a good word, but just planning)”고 그가 말했다.
“나는 모노폴리게임(부동산을 거래하는 보드게임)을 하고 싶었다. 나는 하나를 둘로, 넷을 아홉으로 불리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의 바람대로 됐다. 그림을 싼값에 사들여 몇 년간 그 그림들에 관해 과장되게 선전한 뒤(mouthing off about them for a few years)높은 값에 되팔았다. 그가 애당초 어떻게 이일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는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발굴이 성공의 발판이었다(He dug his way in).
펜은 원래부터 주어진 환경에서 우위를 점하는 재주가 뛰어났다(has always been unusually good at giving himself advantages). 어렸을 때 그는 요요나 구슬치기용 구슬을 만들어 팔았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군것질을 할 만큼 돈을 충분히 벌었다. 펜은 종종 비행을 저지르는 청소년이었다. 교사와 교장으로 평생을 바친 아버지에게 큰 수치심을 안겨줬다. “나는 아버지를 실망시켰다”고 그는 출판되지 않은 가족사에 썼다. 그러나 텍사스 중부 지역은 야외 박물관이다. 포레스터와 그의 아버지는 함께 야외로 나가 뭍으로 올라온 물건은 무엇이든 주웠다. 화살촉, 구슬, 도기 조각 등등. “모든 바나나를 손에 쥐어라(Grab every banana).” 함께 물건들을 수집하러 다닐 동안 아버지는 이 알쏭달쏭한 말로 펜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 의미를 설명했다. “아버지는 ‘아들아, 기차는 그 바나나 나무 옆을 한번밖에 지나가지 않는다(doesn’t go by that banana tree but one time). 그러니 팔을 최대한 멀리 뻗어라(so you reach as far out as you can). 네가 잡지 않은 바나나는 모두 영영 갖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 뒤 우리는 계속 진흙 속을 걸으며 화살촉을 주웠다.” 펜은 자신이 처음 주운 화살촉을 아직도 갖고 있다. 아홉 살 때쯤 발견한 그 화살촉이 유물 발굴의 짜릿한 세계로 그를 이끌었다(starting him on the thrill of the chase).펜이 1950년 공군에 입대한 뒤 50년대 후반 독일 비트부르크로 전출되면서 유물 사냥에 가속도가 붙었다. 전투기 조종사였던 그는 재미 삼아 제트기를 몰고 나갈 수 있었다.
펜은 역사적 배경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나는 폼페이에서 세 번이나 쫓겨났다(I was thrown out of Pompeii three times)”고 그는 79년 재와 진흙 속에 파묻힌 그 로마 도시를 방문했던 일을 자랑했다. “하지만 올리브 오일과 와인이 가득한 단지를 발견했다(found amphora full of olive oil and full of wine).” 또 다른 주말에는 리비아로 날아가 사르바타 해안에서 수영을 했다. 어림잡아 기원전 500년에 창설된 페니키아의 항구다(a Phoenician port). 그는 물 속의 발 밑에서 뭔가를 발견해 로프와 지프차를 이용해 끌어올렸다. 또 다른 항아리였다. 그것을 깨뜨렸더니 짠물로 인해 달라붙은 동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펜이 가장 즐겨 탐험하는 곳은 사하라였다. “사막이 밀밭이었을때 만들어진 8000년 된 창 끝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옆에는 독일인 해골 또는 수류탄 또는 불타버린 전차가 있었다.”
1960년에 접어들었을 때 펜의 유물 수집은 일종의 집착으로 발전했다(Fenn’s collecting flowered into a kind of obsession).“집요한(Relentless)” “충족되지 않는(Insatiable)” “과도한” “광적인(Rabid).” 펜자신이 선택한 어휘들이다. 그는 애리조나주 루크 공군기지에 교사로 취직했다. 미국의 “고고학 메카”인 애리조나주는 수세기에 걸쳐 인간이 점유하며 최소 50만 개 이상의 무덤을 남겨 놓았다. 오늘날 그 묘지의 대다수가 약탈당했다고 여겨지지만 펜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그 지역의 상당부분이 여전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상태였다(much of the area was still pristine).“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자신이 근사한 물건을 수집하는 데는 항상 세계 최고였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선인장의 패턴을 보고 유적지를 찾아내는 요령을 터득했다(From the sky, he learned to spot ruins by the pattern of cacti).
어떤 때는 감춰진 혈거 유적지와 동굴을 찾아 계곡을 누볐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지역은 지프차를 타고 조사하곤 했다. 그때 파트너들을 만났다. 키가 크고 주걱턱인 (lantern-jawed) 카우보이 빌 로빈슨은 지금의 66번 도로 인근에서 야영 생활을 했다. 2대째 고속도로 건설 근로자로 일하는 존 휘태커는 도로를 놓는 동안 발굴한 유물을 평가하는 법을 터득했다.펜은 자신의 무용담을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휘태커의 두 딸과 또 다른 친척은 펜을 잘 기억한다.
당시 십대였던 그 친척은 때때로 발굴작업을 따라갔다.사춘기의 두 소녀 마릴린과 바버라에게 펜은 열혈남아였다(Fenn was dashing to the two adolescent girls). 그들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F-100기를 몰고 아버지 휘태커의 셰비 픽업트럭 위를 스칠 듯이 저공 비행하다가(buzzing the top of their father’s Chevy pickup) 음속폭음을 터뜨려 사막을 뒤흔들곤 했다(unleashing a sonic boom that shook the desert). 그 뒤 그들의 주방에 나타나 드라이브를 가자고 아버지를 불러냈다.이들의 발굴작업이 합법인지는 불분명하다(The legality of these digs is murky).오래된 법규, 수십 년 묵은 법원 판례, 지리에 관한 구체적인 의문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다.
그러나 1906년부터 무엇이든 허가 없이 국공유지에서 반출하는 건 불법이었다. 역사적인 고분의 훼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고분에는 종종 대단히 소중한 보물들이 묻혀 있기도 했다. “발굴하다 보면 묘지를 파헤치는 일은 피할 수 없다(You can’t dig out there without digging up some graves)”고 그 그룹을 따라다니는 한 십대가 털어놓았다. 펜 자신도 사법당국이 조사 중 녹음한 테이프에서 애리조나주에서 발굴작업을 하던 중 바위에 깔려 죽은 한 인디언 유해로부터 돌도끼를 가져간 일을 진술했다.
펜과 그의 파트너 두 명은 온갖 코미디같은 곤경에 처했다(got themselves into all kinds of slapstick trouble as well). 동굴을 탐사하다가 방울뱀이나 지네가 벽에서 기어 나와 기겁해 도망쳐 나오기도 했고(Scampering out of an exploratory hole after a rattlesnake or a centipede squirmed through the wall), 무너져 내린 동굴에 거꾸로 처박혀 발목부터 끌어올려진 뒤 입에서 모래를 뱉으며 투덜대기도 했다. 어느 날 일행이 동굴속에서 “닥치는 대로 발굴하고(digging to their hearts’ content)” 있을 때였다. 바버라 휘태커가 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말을 회고했다. 그때 헬리콥터 프로펠러도는 소리가 갈수록 크고 가까워졌다(they heard the whomp-whomp of a rotor blade growing louder and louder). 동굴 안에 있던 일행은 너나 없이 “우리는 끝장났다(We’rescrewed),” 저항해도 소용 없다고 절망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동굴 밖 햇빛 속으로 걸어나갔다. 녹색 제복을 입은 삼림경비대원이 자신들을 기다리겠거니 생각했다고 바버라는 전했다. 대신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을 체포하러 온 게 아니었다.
그도 그저 발굴작업에 참여하기를 원했다. 펜은 이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워터가 워싱턴 정치인 그룹에게 발굴작업 체험을 시켜주고 싶다며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말은 했다. 그는 그탐험대를 공군 헬리콥터로 실어 날랐다고 돌이켰다. 그것이 불법인지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이들은 미국 상원의원들이었다”고 펜이 말했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 조직은 1960년대 중반, 펜이 텍사스주의 다른 기지로 전출되면서 해체됐다. 휘태커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전언으로 짐작한 바에 따르면 그러잖아도 그들은 갈라서는 중이었다. 펜이 보물 한 두 점을 가져가는데 그치지 않고 동굴로 다시 돌아가 싹쓸이를 했기 때문이다(because Fenn wasn’t just taking a treasure or two but returning to caves and stripping them clean).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의 수자원 관리자로 취직한 존 휘태커는 지나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셋 중 “그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은 펜뿐이었다고 바버라가 말했다. “그는 거기에 돈을 벌 기회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실제로 큰 돈을 벌었다(He saw something that he could cash in on,and he made his family fortune on it).”펜은 자신이 바나나를 모두 손에 넣은 뒤 그것을 거래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팔찌 한 개를 반지 여섯 개와 바꾼 뒤 반지 세 개를 팔찌 하나, 목걸이 하나와 바꿀 계획”이라고 1978년 포브스지에 말했다. 또한 동상을 주조해 돈을 벌었다고도 했다. 공군에서 “슬쩍한(scrounged)” 도가니, 그리고 텍사스 공대 미식축구 훈련장에서 “심야 징발(a midnight requisition)”한 스프링클러 네 개를 이용했다고 한다. 1972년 무렵 그는 충분한 현금과 물건을 확보해 샌타페이로 건너갔다. 현지의 인디언 공예품 거래상과 손을 잡았다. 1년도 안돼 그 거래상이 손을 떼고 싶어했다.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이 나빠질까 우려했다. 하지만 그때는 펜이 이미 기반을 닦은 뒤였다(had his footing by then). 앤젤 투자자를 만나 펜 갤러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 뒤 17년에 걸쳐 공예품을 사고팔고 거래하며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보물 구상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펜의 아버지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는 수면제 50알을 먹고 텍사스주의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펜이 조종하는 단발기 로크웰 커맨더가 착륙하기 두세 시간 전이었다. 다음해엔 펜이 신장암에 걸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후세에 무엇을 남기고 떠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뒤의 세상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그는 자문했다.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담은 동종(bronze bells)을 묻어두는 게 한 가지아이디어였다. 지금까지 여덟 개의 종을 땅속에 묻었다.또 다른 아이디어가 보물상자(treasure chest)였다. 이 구상은 20여 년이 늦어졌다.
펜이 암을 물리쳤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덤으로 얻은 두 번째 인생을 첫 번째와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살았다(has used his second lease on life very much like he used his first). 자신의 갤러리를 팔아 넘기고 옛 샌타페이 길(the Old Santa Fe Trail)에 저택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인디언 유적지를 매입했다. 미국은 땅 주인에게 역사 유물의 소유권을 주는(gives land owners title to archeology)유일한 부국이다. 유물을 석유나 금과 같은 항목으로 분류한다.펜이 매입한 유물은 산 라사로 푸에블로 인디언 유적지(San Lazaro Pueblo)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곳이다. 1964년에 국가역사문화재(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됐다. 어림잡아1200~1800년대 후반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이다.
이 지역에 유럽 군대가 처음 침입했을 무렵을 전후해 인디언들이 황급히 버리고 떠난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펜이 그 유적을 사들였을 때 “그는 노다지를 발견했다(He hit the mother lode)”고 주정부의 문화재 담당관이 말했다. 하지만 펜은 그것을 취미활동에 활용한다. “내게는 휴양지, 현실도피의 공간(It’s a retreat for me, a place to get away)”이라고 그가 말했다. “이곳을 찾아 메디신 바위 위에 앉아서 코카콜라 같은 음료수를 마신다. 그러면 멀리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가 갑옷과 투구를 쓴 13개 군단을 이끌고 델 차르 강을 따라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그리고 발굴도 한다. 그는 수천 점의 유물을 보유한다.
깨진 스페인 교회종(mission bell), 불가사의한 남근 모양의 종교적인 물건, 불에 그을린 화살, 상당히 오래된 탈춤가면 등. 모두 밀폐용기, 주석 깡통, 벨벳을 덮은 보석함에 깔끔하고 꼼꼼하게 정돈돼있다. 그는 발굴을 숨쉬기, 수집을 타는 듯한 갈증 해소에(to slaking a burning thirst)비유한다. 뉴멕시코주의 현 문화재 담당관인 에릭 블린먼이 산 라사로에 초대받아 펜이 발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seen Fenn in full dig). “마치 마약에 취한 듯했다(It’s like a drug high)”고 블린먼이 뉴스위크에 말했다.여기서도 펜의 발굴이 법의 한도를 넘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22년 전 뉴멕시코주는 펜 소유의 푸에블로 유적지에 있는 묘소들을 훼손했다고 그를 고발했다. “사람의 유골로 보이는 물체들이 마구 쌓이거나 흩어져 있었다(obvious human remains that were piled and scattered)”고 주장했다.
펜은 주 당국이 그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불법 침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내 고발을 원인무효로 만들었다(got the complaint thrown out when he learned that the state had trespassed to collect its evidence).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는 묘소를 찾았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법률상] 키워드는 ‘확인(discover)’”이라고 펜이 말했다. “우리는 유골이었을지 모르는 뼈를 찾았지만 그것이 뼈라는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다시 덮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산 라사로 푸에블로 인디언들의 후손들은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미국아메리칸인디언협회(the National Congress of the American Indian) 회장이 내게 말한 바에 따르면 펜 같은 수집가는 저주를 받게 된다. 하지만 펜의 역사 탐구를 저지하는 건 멀리 보이는 철조망 담장과 ‘연방 소유지(Federal Property)’라는 안내문뿐인 듯하다. “이곳과 저곳의 차이는 뭔가?” 펜과 함께 하루 종일뼛조각, 구슬, 도자기, 고대의 조개 및 터키옥 펜던트를 발굴한 뒤 내가 물었다. 그는 정확한 답을 알고 있었다. “18개월 징역형과 1만 달러의 벌금형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펜과의 아침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보물을 찾는 그룹 중 하나와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물 포럼, 펜이 받은 e-메일, 그의 회고록 판매로 짐작하건대 수천 개의 그룹이 보물찾기에 나섰다. 펜은 자신의 책을 모두 샌타페이 시내에 있는 한 서점에 기증했다. 서점은 책의 판매액 중 일부를 암 재단에 기증한다.펜은 “픽업 트럭 한 대와 여섯 자녀를 뒀지만 최근 일자리와 아내를 잃고 모험을 충분히 하지 못하는 모든 시골 노동자를 위해(for every redneck out there)”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보물찾기에 나선 사람들은 그보다 더 다양한 집단이다. CNN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던 촬영감독 달 네이첼은 ‘스릴 오브 더 체이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는 녹색 장화를 신고 1950년대 빨간색 픽업트럭을 탄 수수께끼 같은 여성,그리고 검정색 험비 지프를 탄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두 젊은 남성과 마주쳤다고 블로그에 기록했다. 또한 그의 블로그 객원 기고가인 중서부 출신의 두 아이 엄마는 지금까지 일곱 차례나 보물 탐사여행을 했다.
펜 자신도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애교 있는 실패담이 담긴 메시지를 받았다(has heard from a lovable cross-section of bumblers). 한 대학생은 강으로 보물을 찾아 나섰다. 로프, 장갑, 잠수복, 잠수용 신발(booties), 마스크, 오리발(fins) 등을 모두 챙겼는데 산소통을 빠뜨렸다. 또 다른 지원자는 겨울에 호수를 찾아갔다. 초소형 렌터카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눈사태로 흘러내린 어둡고 시꺼먼 얼음과 눈더미(a dark blackened landslide of ice and snow)” 속에 빠지고 말았다. 가장 내 마음에 든 메시지는 가장 간단한 내용이기도 하다. “모르겠다,졌다(Stumped, Defeated).”내가 연락한 그룹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분위기도 그와 비슷했다. 그 네 명은 아이오와주 평야지대에서 차를 몰고 내려왔다
(had driven down from the Iowa flatlands).
고등학교 동창 세 명에 소시적 친구 한 명이었다. 부동산 중개인인 마크 드라이어가 사촌인 채드 클로드를 끌어들였다. 글로벌 냉동식품 회사에서 물류를 담당하는(runs logistics) 클로드는 다시 구급의료대원(a paramedic)인 게리 메릴과 가축사업체에서 일정관리를 담당하는 스콧 래스를 참여시켰다. 그들은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갈까도 생각했다(They considered Vegas together).하지만 이것이 더 재미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그들은 6개월 동안 준비를 했다. 피자집에서 만나 회의를 했다. 마침내 클로드의 SUV 자동차 GMC 유콘에 짐을 실었다. 쇠고기 육포(beef jerky), 총탄, 남성잡지, 비상약품 상자(a first-aid kit), 그리고 40세 남성네 명이 숲 속에서 5일간 지내는 데 필요한 온갖 필수품 등을 준비했다.
그들이 시를 해석한 바로는 뉴멕시코주의 시마론 협곡과 이글 네스트 호수 주립공원, 그리고 카슨 국립공원 안팎의 약 4km에 이르는 지역에 보물이 있었다. 하지만 허탕이었다. 대신 발목이 접질리고(a rolled ankle), ‘곰’을 만났으며(알고 보니 낚시하던 소년이었다), 고급 자동차 행렬이 지나칠 때는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그 안에 펜이 앉아 만화 속의 악당처럼 사악하게 웃는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내가 메릴에게 만나자는 e-메일을 보냈을 때 그들은 어느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하루 더 머물도록 그들을 설득했다. 내가 시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알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이 무렵 나는 보물찾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취재한 정보가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순전히 기사만을 위해 기꺼이 보물을 나눠줄 용의도 있었다(happy to split treasure for the sheer story alone). 하지만 그들은 다시 시마론 협곡을 찾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펜의 시가 적힌 구겨진 종이조각을 손에 들고 숲 속을 돌아다니며 나무덤불을 살폈다(regarding the underbrush).
그러다가 삼림경비대원으로부터 도보여행 허가가 필요하다는 경고를 들었다.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그들에게 펜의 이력 중 논란이 되는 부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자동차 사고 현장과 유적지가 뭐가 다른가?”라고 메릴이 물었다. “아니면 인디언들을 공격한 스페인 침략자들은(Or a Spanish galleon)?”라고 래스가 덧붙였다.“펜이 코카인을 밀매하는 사람은 아니다”고 드라이어가 말했다. 그들은 그날 밤 떠났다.펜에게 감사 e-메일을 보내며 한 번 더 찾으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클로드가 말했다.나는 마지막 날 비행기에 오르기 몇 시간전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펜의 집을 찾아갔다. 유물 가방을 가져갔다(brought a bag of artifacts with me). 펜 소유의 유적지에서 주운 물건들이었다.
크게는 그것을 가져간다는 데 죄의식을 느꼈고 구체적으로는 그것을 휴대하고 비행기에 오르는 게 불안했다.“믿지 못하겠다(I don’t believe you)”고 펜이 쏘아붙였다. “그것을 파낼 때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던데.” 나는 그에게 저주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디언 부족과 연방 당국에 매일 소포가 날아드는데 그 안에는 인디언의 유물과 함께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애원과 사죄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었다. 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저주받은 사람처럼 보이는가?” 나는 어쨌든 유물을 남겨두고 돌아섰다. 최근 펜으로부터 그 유물들을 산 라사로의 땅 속에 다시 파묻었지만 그들도 그 속에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유물들은 어둠 속에 묻혔다”고 그가 말했다. 그의 보물상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오래 남아 있지는 않을 듯하다(only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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