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타냥은 실존 인물이다?
빌레코트레는 파리 북쪽의 작고 우중충한 마을이다. 긴 대도로에는 회색 벽돌과 치장 벽토가 깔려 있다. 괜찮은 레스토랑 몇 곳과 퀴퀴한 냄새가 나는 호텔이 하나 있다. 300년 전 모든 손님이 알몸으로 참석한 만찬으로 유명했던 옛날 성도 있다. 몇 년 전 우리 일행은 다른 곳으로 가는 길에 이곳에 들러 하룻밤을 묵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마을 출신의 유명한 영웅 동상을 바라봤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청동 외투를 두르고 깃펜을 들고 있었다. 뒤마는 소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19세기 프랑스 소설가다. 하지만 이곳은 ‘삼총사’의 영광과는 거리가 멀다. 어째서 여기에 그의 동상이 서 있을까? 그 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한때 이곳에 배치돼 현지 여성과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훗날 장군이 된 아버지 뒤마가 애당초 어떻게 이 작은 마을에 흘러 들었는지는 또 다른 스토리다. 그 스토리는 아들 뒤마가 써낸 걸작들의 줄거리만큼이나 믿어지지 않고 흥미진진하다.
‘오리엔탈리스트(The Orientalist)’의 작가 톰 리스가 아버지 뒤마의 일생을 다룬 ‘흑인 백작(The Black Count)’을 출간했다. 리스는 아버지 뒤마의 흥미로운 일생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흔적들을 찾아내 솜씨 좋게 하나의 스토리를 엮어냈다(put together the lost traces of a curious life). 아버지 뒤마도 완전히 무명은 아니었지만 그의 아들뿐 아니라 코르시카 출신의 포병장교였던 나폴레옹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알렉스’ 뒤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아마 그에 관한 두 가지 정보를 알지도 모른다. 그가 흑인이라는 점과 나폴레옹의 휘하 장군 중한 명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팩트’ 중 사실은 한 가지뿐이다. 그는 프랑스 공화정 군대에서 장군이 됐고 이집트에서 그 미래 황제의 휘하 장수로 활약했지만 그때는 이미 승진한 뒤였다.
그는 나폴레옹에게 신세진 게 없었으며 그를 싫어하고 불신했던 듯하다. 하지만 아버지 뒤마는 실제로 흑인이었으며 아이티에서 노예 여성과 그녀의 주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1776년까지 그 자신도 노예였다. 14세 때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다.
스토리는 노르망디에서 앙트완 다비 드라 파유트리라는 가난한 귀족에게서 시작된다. 그는 한동안 군에 복무한 뒤 큰 돈을 벌겠다며 식민지로 떠났다(took himself to the colonies in search of a fortune). 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탕수수 재배는 18세기의 석유사업이었다.” 프랑스 제정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당시 생도미니크로 불렸던 아이티였다. “(노예제의) 엄청난 야만성으로 지탱되는 … 달콤하고 어마어마한 자산(sweetly staggering wealth ... supported by staggering brutality)”을 지닌 땅이었다.
앙트완은 결코 큰 돈은 못 벌었지만 마리-세세트 뒤마라는 노예 여성을 샀다. 그녀와의 사이에서 최소 4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는 가문의 저택과 직위를 되찾으려 프랑스로 돌아가면서 그 노예여성과 자녀 셋을 팔아 넘겼다. 맏아들 토마스 알렉상드르만 남겨뒀다. 그리고 그를 프랑스 상류계급 젊은이로 탈바꿈시켰다(whom he now turned into a young man of fashion).
‘흑인 백작’에서 리스는 프랑스법과 사회규범이 인종문제에 대처하는 복잡한 방식을 탁월하게 풀어낸다(does a superb job in showing the complicated ways in which French law and social mores dealt with the question of race). 아이티에서 앙트완이 살았던 지역은 당시 “자유로운 유색인종(free people of color)”의 번영으로 유명했다. 그들의 “교양과 속물근성(sophistication and snobbishness)”은 종종 백인 식민주의자들을 뛰어넘었다.
사실상 앙트완의 귀족 신분이 다른 모든 조건을 압도했다. 그의 아들은 파리로 건너간 뒤 펜싱과 승마, 그리고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날들을 호사스럽게 즐기며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리스는 그 청년이 극장에서 피부색 때문에 모욕당한 사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전반적으로 자신의 새로운 세계에 매끄럽게 녹아들었다(fit comfortably into his new world). 그는 키가 크고 근육질의 탄탄한 몸매를 지녔다. 패션 감각이 뛰어나고 잘 생겼으며 개방적인 성격이었다.
그의 미래를 결정한 요인은 출신 성분이 아니라 아버지의 재혼이었다(What determined his future wasn’t his birth so much as his father’s remarriage). 아버지가 가정부와 결혼하자 토마스 알렉상드르는 마치 반항하듯 엄마의 성을 따라 이름을 바꾸고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노예 출신인 그가 프랑스 공화정 군대에서 승진하는 과정, 그리고 그가 기병대의 진격과 산꼭대기 전투에서 장군으로서 선봉에 섰던 이야기를 여기서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그 스토리는 아들 뒤마가 쓴 소설만큼이나 사실 같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이야기가 훗날 아들이 쓴 작품들에 영감을 준 듯하다(in some ways the father does appear to have inspired the works that followed). 그는 대군을 능숙하게 이끌었지만 그보다 기동성이 뛰어난 소그룹의 선봉에 서는 쪽을 선호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삼총사’와 상당수 후속편의 달타냥을 연상시킨다. 요즘에라면 아마 특수부대원으로 활동했을 법하다.
하지만 진짜 연관성 있는 작품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다. 뒤마는 자코뱅 당원(프랑스 혁명의 과격한 공화주의자)은 아니었지만 혁명과 대의정치 이론을 믿었다. 그는 1798년 기병대 사령관으로 이집트로 건너갔다. 곧 나폴레옹의 개인숭배가 강화되는 데 환멸을 느꼈다(quickly grew disenchanted with Napoleon’s growing cult of personality). 그 사이 더 큰 문제가 터지지않았더라면 아마 그 때문에 곤경에 처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프랑스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한 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배의 수리를 위해 나폴리 항구에 들른 시점이 좋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왕정은 프랑스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 탄압하기로 작정했다. 뒤마는 포로로 잡혀 감방에 처박힌 뒤 사실상 잊혀졌다. 아들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에드몽 단테스만큼 오래 감방살이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 건강이 악화돼(it did break his health) 결국 1806년 세상을 등졌다. 나폴레옹은 그 큰 키의 흑인을 이집트 사람들이 프랑스 사령관으로 여겼던 일을 잊지 못하고 그의 미망인을 너그럽게 대하지 않았다.
‘흑인 백작’의 일부는 그 시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내용이다. 리스가 1780년대 파리의 초상화를 그리고 여러 장에 걸쳐 프랑스 혁명과정을 상술하며 스토리를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배경정보를 유익하게 여기는 독자도 많을 듯하다. 책은 알렉스 뒤마를 대단한 경외의 시선으로 우러른다. 따라서 그의 캐릭터가 그의 묘사처럼 정말 전혀 그늘지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one wonders whether the man’s character was so completely unshadowed).
하지만 리스는 영웅을 좋아하는 아들 뒤마를 평생 숭배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책을 썼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자신의 리서치 이야기를 책의 핵심 소재로 삼았다. 빌레코트레의 금고를 깨뜨리고 거기서 앞서 어떤 전기작가도 찾아내지 못한 장군의 개인 문서다발을 발견했다는 내용 등이다. 학술적 연구가 좀더 많이 이처럼 흥미진진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치가 담겨 있다. 프랑스 식민주의에 대한 수준 높은 설명, 대단히 공 들인 막대한 분량의 기록 작업 등이다. 그 모든 내용을 쉬워 보이게 만든 재주도 결코 사소한 업적이 아니다(Not the least of Tom Reiss’s achievements is to make it all look easy). 만만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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