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으론 부족하다
사랑만으론 부족하다
루이지애나주에 사는 힐러리 투시(32)는 아들 엘리(7)를 돌봐줄 수 있는 요양보호사(personal-care attendant)가 절실하다. 그런 도우미만 있다면 정말 살맛이 날 듯하다.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 허약한 체격을 가진 엘리는 건강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뇌성마비(cerebral palsy), 만성 소화장애증(celiac disease, 소아지방변증), 간질(epilepsy), 천식(asthma)에다 자폐증(autism)까지 있다. 투시는 아들의 자폐증이 “아주 심각하다(pretty severe)”고 말했다.
엘리가 하는 말은 알아듣기 힘들다(kind of garbled). 하지 보조기(leg braces)를 착용하고 휠체어를 사용한다. 야간에는 발작 때문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incontinent). 감각도 매우 예민해(acute sensory sensitivities) 스티로폼이나 크레용 낱개 포장지도 만지지 못한다. 큰 음악소리를 들으면 공황을 일으킨다. 지난 성탄절에 1학년 동급생들과 ‘케이준 호두까기 인형(The Cajun Nutcracker)’을 보러 갔지만 “우린 3분 만에 나와야 했다(we lasted three minutes)”고 투시가 말했다.
엘리는 엄마에게 극단적인 애착을 갖는다(extremely attached to his mother). 투시는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엘리와 보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이혼 후 근근이 먹고 사는(hand-to-mouth) 현실에서 탈출하려고 간호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2009년 11월 결혼 10주년 2주 전, 그러니까 투시가 갑상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지 나흘 뒤였다. 남편이 떠나면서 차까지 가져갔다. 투시는 언제 차를 살 수 있을지 막막한 심정이다.
엘리의 발작과 사회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아무 보모에게나 아이를 맡길 수도 없다. 투시는 “아이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there’s only a handful of people he can be with)”고 말했다. 주정부가 파견하는 요양보호사가 1주에 30시간씩만 와줘도 큰 도움이 된다. 요양보호사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주고, 양치와 샤워 같은 기본 생활습관을 훈련하고, 투시가 공부하는 동안 아이를 봐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엘리의 형인 열한 살짜리 조나와 동생인 아홉 살짜리 샬럿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다. 조나 역시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페르거증후군을 앓으며 곧잘 울음을 터뜨리고 친구가 거의 없다. 샬럿은 “아주 건강하고 우수한 아이”지만 관심을 받지 못해 빗나갈지 모른다고 투시는 걱정한다. “참담하다(I feel horrible)”고 투시가 말했다. “어떻게든 샬럿을 위한 시간을 내야 하는데 걱정이다(I really have to carve out time for her).”
투시는 주정부의 요양보호사를 활용하려면 그 절차가 복잡해 언제 승인이 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계속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승인 절차가 지연되지 않도록 채근한다. 요즘은 생활에 진짜 필수적인 일만 겨우 할 뿐이다. “내 인생은 없다(I have no life)”고 투시가 무덤덤하게(matterof-factly) 말했다.
이따금씩 우리 사회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special-needs) 장애 어린이를 키우는 어려움에 관심을 쏟는다. 2008년 세라 페일린(당시 공화당 부통령 후보)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 트리그 양육 문제로 대중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릭 샌토럼 후보가 에드워드증후군(Trisomy 18, 18번 염색체가 세 개라서 발생하는 선천적 유전병)을 앓는 세 살짜리 벨라를 돌보는 애달픈 이야기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또 우리는 새로운 진단법, 심각한 건강위기, 놀라운 치료법 발견 등 자녀 양육의 극적인 순간들에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아를 둔 대다수 부모의 경우 그런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일상적인 일(day-to-day stuff)이 진을 뺀다. 치료, 병원 방문, 돈 걱정, 또 그 모든 것에 수반되는 끝없는 불안과 걱정이 부모를 완전히 지치게한다. 험난하고 고독한 길이다. 요양과 간병이 더 복잡해지는 시대로 진입하면서 그런 부모의 삶은 더욱 힘들어질 전망이다.
의학적·사회적 발전으로 장애아들의 삶이 개선되면서 그들을 돌보는 부담(burden of caring)도 커졌다. 예를 들어 다운증후군 환자는 과거엔 30세까지 살면 행운이었다. 지금은 그런 환자의 평균 수명이 55세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수십 년 동안 ‘어른아이’의 요양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다운증후군 환자가 40~50대가 되면 100% 알츠하이머병으로 발전한다는 사실 때문에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사회에 큰 부담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자폐증이다. 지난 3월 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 어린이 88명 중 1명이 자폐증 환자로 분류된다. 이런 ‘유행병(epidemic)’의 뿌리를 두고 논란이 무성하지만 자폐증 환자의 증가는 의료, 교육, 사회복지 시스템에 부담을 가중시킨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사회가 자폐증으로 부담하는 연간 비용이 1260억 달러다.
2006년의 세 배 이상이다. 성인 의료가 이 비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미국 자폐연구재단(Autism Speaks)의 최고과학책임자(CSO) 제럴드 도슨은 이 상황을 “공중보건 비상사태(a public-health emergency)”라고 부른다. 지금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재의 십대 자폐증 환자가 몇 년 뒤 의무교육을 마칠 때를 생각해 보라고 도슨은 말했다. “국가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다(We as a nation are not prepared).”
마사지 치료사 사야 바크돌(32)은 테일러를 낳았을 때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엄숙한 표정의 신경외과의는 갓난 아기를 죽도록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테일러는 다발성기형(multiple malformations)으로 태어났다. 예후는 암울했다(prognosis was grim). “의사와 간호사 약 20명이 가득한 방으로 우리를 데려가서 MRI 결과를 보여줬다”고 바크돌은 돌이켰다. “심각했다. 그들은 우리를 앉힌 뒤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테일러는 뇌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였다.”
바크돌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직 안아 보지도 못했지만 아기에게서 생명이 느껴졌다(I had not even held her yet, but I could see life in her).” 부드럽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굳어졌다. “우린 말 그대로 그 의사를 해고했다.” 7년이 지난 지금 테일러는 매릴랜드주 실버스프링스의 공립 초등학교 1학년이다. 허약하며, 뛰지도 못하고 글을 명확하게 쓰지도 못하지만 인지 발달에는 문제가 없다(nocognitive delays). “우리 아이의 정신은 온전하다(She’s totally there)”며 바크돌이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바크돌은 지금까지 테일러를 키우면서 큰 대가를 치렀다(getting Taylor this far, however, has exacted a steep toll on her mom). 첫 몇 년 동안은 테일러가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 아이를 돌보는 일에만 매달렸다. 테일러의 아빠 케빈과 엄마 바크돌은 결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두 사람의 소득이 합쳐지면 정부의 양육비 보조를 받을 수 없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테일러가 세 살이 됐을 때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양육 부담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허물어졌다. “우리에겐 서로가 보이지 않았다(we lost sight of each other)”며 바크돌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흔히 인용되는 통계에 따르면 자폐증 자녀를 둔 부모의 이혼율은 80%다(투시도 인터뷰 도중 이 통계를 인용했다). 최근 연구에서 이 통계가 틀렸음이 밝혀졌지만(recent studies have debunked this figure) 부모들은 그게 너무도 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무조건 정설로 간주한다.
“나 자신과 친구들의 경험을 보면 그 통계는 딱 들어맞는다(Based on my and my friends’ experience, that stat makes complete sense)”고 언론인 해너 브라운이 말했다. 브라운은 자폐증을 앓는 십대 아들을 둔 어머니이자 그런 양육의 어려움을 담은 소설 ‘터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If I Could Tell You)’의 저자다. 그녀는 “그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 아들을 돌보는 일이 내삶을 송두리째 장악했다(I tried to fight it, but it completely took over my life)”고 말했다.
브라운은 남편과 헤어졌을 때 아이가 다니는 학교 직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쑥스러웠다. 하지만 기우였다며 그녀는 싱긋 웃었다. “그들은 그런 일을 늘 접하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they were really good at dealing with it because they deal with it all the time).”
파경까지 가지 않더라도(even when marriages survive) 그처럼 장기간의 힘든 보살핌은 부모의 삶을 망가뜨린다. 연구에 따르면 장애아를 둔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고 건강도 더 나쁘다. 2009년의 한 연구에서 나이 많은 자폐증 자녀를 둔 어머니의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의 수치가 전투 군인 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와 비슷하게 나타났다.
그런 부모는 보살핌이라는 실제적인 문제에 압도당할 뿐 아니라 ‘정상(normal)’ 자녀를 둔 부모와 공감하기도 매우 어렵다. 투시는 “친구들이 ‘디즈니 여행 계획이 취소돼 스트레스 엄청 받았어’라고 이야기하면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아이가 3주 전부터 음식을 먹질 않아 유동식(liquid diet)을 하고 있는데 영양공급 튜브(feeding tube)를 삽입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어’라고 말한다.”
행동에 문제(behavioral problems)가 있는 경우 상황은 더 꼬인다(the situation can be even trickier). 브라운은 “아들이 어리고 행동을 제어하기 힘들었을 때는 이웃이 우리를 초대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people didn’t invite us over that much)”고 말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And I can’treally blame them).”
특수한 도움이 필요한 아기가 태어나면 긍정적인 격려보다 위험과 한계에 관한 경고가 쏟아진다. “접하는 정보가 엄청난데 그 대부분은 부정적인 내용”이라고 캐시 맥모리스 로저스 하원의원(워싱턴주)이 말했다. 그녀의 네 살짜리 아들 콜은 다운증후군이다. 콜이 태어난 직후 의사는 이 부부에게 아들이 백혈병, 난청, 시각장애, 갑상선 문제에 시달릴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로저스는 청천벽력이었다고 말했다.
그레그 하퍼 하원의원(미시시피주)도 아들 리빙스턴(22)이 네 살 때 취약X 증후군(Fragile X syndrome, 가장 흔한 선천성 정신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그래도 하퍼 부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린 그런 예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하퍼의 아내 시드니가 말했다.
그런 자녀를 둔 대다수의 부모처럼 시드니는 아이의 상태에 완전히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의 삶 전체가 아이를 보살피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간다(Your whole life revolves around figuring out what to do to help him)”고 시드니가 말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시드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리빙스턴(그리고 그의 어린 동생 매기까지)을 데리고 이곳저곳에 치료 받으러 다녔다. 조기개입 프로그램에 등록했고 사회성을 기르기위해 특수 어린이집에도 데려갔다.
수영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시드니는 아이에게 수영 강습을 시켰고, 특수 제작된 자전거에 몸을 붙들어 매서 타는 법을 훈련시켰다. 이제는 거의 선수 수준이다. 시드니는 “아이가 무언가를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시키려고 노력했다(The more they told me he wouldn’t do something, the more I took him to do it)”고 말했다.
하퍼 부부는 아들의 발전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고등학교 졸업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시드니가 말했다. “12학년만 버텨내게 하자고 다짐했다.” 지금 리빙스턴은 미시시피 주립대에서 지적 장애 학생들을 위한 시범 과정에 다닌다. 그레그 하퍼는 “우리 아이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구내 식당에서 식사하며, 수업에도 들어간다(He’s living in a dorm, eating in the cafeteria, going to classes)”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다(He’s living the life)!”
그런 큰 발전에도 불구하고 리빙스턴의 미래는 여전히 미지수다(for all Livingston’s progress, his future remains a question mark). 대학 생활을 2~3년 한 뒤 큰 부담 없는 일자리를 찾고(가족 친구의 식당에서 일한 적이 있다) 독자적인 삶을 가꿀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아버지 그레그 하퍼는 “장기 목표를 세우기는 불가능하다(We don’t know what the long term is)”고 인정했다.
그런 아이의 양육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이 흐른다고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the load often does not lighten with time). 아이가 어느 정도 혼자 생활할 수 있는 날이 올 가능성은 없다. 대개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시절이 그래도 가장 낫다고 말한다.
미국 자폐연구재단의 도슨은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나면 받을 수 있는 도움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기분(falling off a cliff, because so few services are available after you exit high school)”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그런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집밖에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비율은 약 40%이며, 사회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비율도 마찬가지라고 도슨이 말했다.
특수한 도움이 필요한 그런 ‘어른아이’에게 적합한 숙소를 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돈이 많고 연줄이 좋은 가정도 특수 시설을 갖춘 집을 찾기는 어렵다. 피트 세션스 하원의원(텍사스주)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 앨릭스(18)가 있다. 앨릭스는 댈러스의 특수학교 10학년에 다닌다. 세션스에 따르면 앨릭스는 혼자선 도저히 살 수 없다. 앨릭스 같은 ‘어른아이’를 위한 생활 프로그램은 늘 만원이거나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세션스는 몇몇 가정과 함께 비공식적인 집단 주택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요즘 그런 추세가 늘어난다. “같은 필요성을 가진 부모들이 모여 공동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이라고 세션스가 설명했다. “앨릭스의 미래는 아주 밝다(Alex can have a bright, bright future).”
한편 힐러리 투시는 살아 있는 한 자신이 엘리를 돌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하기조차 싫어한다. “미래가 아주 무섭다. 지금의 바람은 내가 가능한 한 오래 살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Right now my plan is to be around as long as possible and to save as much money as possible).”
투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만 목을 매지 않게 되면(not struggling just to make ends meet)” 장기 계획에 몰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But for now, she has more pressing concerns). 엘리를 치료받게 하고, 학교 생활을 돕고, 자신의 간호사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일이다.
물론 주 정부의 요양보호사가 언제쯤 올 수 있을지 알려고 열심히 전화를 돌리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투시는 그때를 기다리면서 파산으로 내몰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And so she waits—and tries to keep her head above w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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