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ck - DJ 정부 이후 반짝 상승에 그쳐
Stock - DJ 정부 이후 반짝 상승에 그쳐
박근혜 테마주도 급등역대 정권에서 정책 수혜주는 과연 기대만큼 좋은 성적을 냈을까. 현 정부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녹색기술, 첨단융합산업, 고부가 서비스산업 등 3개 분야 17개 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지정해 3년간 37조원을 들여 집중 육성에 나섰다. 하지만 정권 말기인 현재 이들 산업 중 절반가량은 증시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다.
17개 산업의 대표주 가운데 8개는 2008년보다 오히려 주가가 하락하며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였다. 현 정부가 취임 초기부터 집중 육성 정책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급등했던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산업인 태양광산업은 현재 총체적인 난국에 빠졌다. 2012년 11월 국내 2, 3위 태양광 핵심소재 업체인 한국실리콘과 웅진폴리실리콘이 부도 처리됐으며 4위 업체인 KCC폴리실리콘은 1년째 공장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2010년 초 최고 64만원까지 올랐던 태양광 대표주 OCI 주가는 현재 15만원대로 떨어졌다. 정부가 육성해 온 다른 녹색성장 관련 산업이나 로봇응용 산업, 정보기술(IT)융합시스템, 차세대 무선통신 등도 상당수 부진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다. 당시인 1980년대 후반은 한국 경제 개발연대의 전성기였다. 3저(저유가, 저금리, 저원화 가치)라는 경제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는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마이카 시대가 막 열리기 시작했고, 한국인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 양적 성장의 시대였다. 양적 성장을 대표하는 분야는 토건이다.
노태우 정권의 경제 공약 중 가장 중요한 정책은 2‘ 00만호 주택건설’이었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수도권의 인구는 과밀화됐고, 늘어난 소득은 좋은 주거 환경을 요구했다. 한국 최초의 대규모 계획 도시인 분당과 일산이 이때 건설됐다. 노태우 정권 때의 최대 정책 수혜주는 건설주였다. 1980년대 후반은 한국 증시 역사상 가장 뜨거운 활황장이었다.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됐던 1988~89년 종합주가지수는 73.2%나 급등했다. 같은 기간 동안 건설업종지수는 144% 상승했다.
주식시장도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렸지만 그중에서도 건설주의 상승은 단연 돋보였다. 당시 건설주의 호황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업종지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88~89년 건설업종 지수의 최고점은 581포인트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12년 말의 건설업종지수는 155포인트에 불과하다.
1992년 김영삼 정권은 출범 후 ‘신경제 100일 계획’ 등과 같은 경기 부양책을 쓰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경제에 시장 논리를 주입시키기위해 노력했다. ‘개방화’와 ‘규제완화’는 관치경제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저평가 가치주’가 김영삼 정권 최대의 정책 수혜주로 떠올랐다. 1992년 1월 한국 증시는 외국인에게 개방됐다. 완전 개방된 시장은 아니었지만,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 상장된 종목들을 부분적으로 매수할 수 있었다. 외국인들의 시장 참여는 한국 증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한국 증시에 가치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됐다. 개방화 이전 한국 증시에는 밸류에이션(평가가치)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업종별로 동반 상승과 동반 하락의 모습이 반복됐을 뿐 주가는 개별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이 한국 증시에 뛰어든 외국인들의 종목 선별 기준은 달랐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증시에서는 이익 지표에 근거한 주가수익비율(PER)이 저평가된 종목들을 사들였다. PER은 증시 개방 이전에도 존재했던 개념이었지만 실제 투자의 지침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저PER주들이 외국인의 집중 매수 속에 급등하자 PER이 가지는 중요성이 높아졌다.
1990년대 초저PER주의 대표 기업이었던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의 전신)은 1992~94년의 강세장에서 1778%나 급등했고, 역시 저 PER주로 각광을 받았던 태광산업과 대한화섬 등도 각각 1627%와 1236%씩 올랐다. 1993~94년에는 자산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현재 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비율인 주가순자산비율(PBR)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1993년 국회에서는 규제 완화의 맥락에서 주식의 대량소유를 제한하는 ‘증권거래법 200조’의 폐지가 논의됐다. 주식 대량소유 제한의 폐지는 인수합병(M&A)이 한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했고, 이는 자산가치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성창기업은 1105%, 만호제강 1070%, 전방 875% 등 당시의 대표적 자산주들이 급등했다.
1997년 대선의 승자는 김대중 후보였다. 헌정 사상 야당에 의한 최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대단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 출범했다. 대선이 열리기 직전인 1997년 11월 외화 유동성 위기로 인해 한국은 IMF 구제금융을 받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포괄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의 개발연대 과정에서 노정된 양적 성장의 부작용이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폭발했다고 볼 수 있다.
구제금융을 받기 전 이미 한국 사회에 총제적 부실의 징후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외환위기 3년 전 성수대교가 붕괴됐고, 2년 전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 빨리빨리로 만들어진 한강의 신화는 그렇게 무너졌다.
코스닥 시장 투기판으로 전락김대중 정권은 총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재벌의 중복과잉 투자가 문제라고 봤다. 앞서 김영삼 정권은 규제 완화를 (수단이 아닌)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삼았다는 점을 논의했다. 삼성그룹에 자동차 산업 진출이 허용됐고, 한보철강의 대규모 공장 증설도 인가됐다. 이런 과잉투자는 김대중 정권 시절 빅딜(big deal)이라는 인위적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빅딜만으로는 부족했다.
재벌 중심의 선단 경영을 넘어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자 했고, 그 고민에서 부각된 시장이 코스닥이었다. 코스닥 시장은 1990년대 후반에 불어온 IT 붐을 타고 부각됐다. 벤처기업이 중심이 된 IT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글로벌하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정권 차원의 정책적 배려도 더해졌다. 김대중 정권 정책의 최대 수혜주는 코스닥이었다.
1990년대 말 코스닥 시장은 놀랄 만한 급등세를 나타냈다. 코스닥 지수는 1999년부터 2000년 3월의 고점까지 299%나 급등했다. 무료 인터넷 전화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나온 새롬기술은 6개월 사이에 30배나 급등하기도 했다. 벤처 중심의 코스닥 시장 육성은 한국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험이었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코스닥 시장의 급등은 국제적인 IT 버블과 정책 특혜가 더해진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투기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많은 벤처기업이 파산했고, 2012년 말 코스닥 지수는 2000년 3월의 고점 대비 82.4%나 급락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외 변수가 더욱 중요김대중 정권 이후의 노무현, 이명박 정권에서 정책 수혜주는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종목들이 수혜를 보기도 했지만, 극히 지엽적이었고 이전 정권에서 나타났던 것과 같은 강력한 시세 분출도 없었다.
2000년대 들어 과거와 다른 주가 등락 패턴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정치권력에 대해 시장(기업)이 가지는 자율성이 증대됐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삼성과 현대차 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정부 정책이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축소되고 있다. 정부 정책이 글로벌화가 진전된 대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2000년대 들어 한국 경제의 수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정부 정책은 기본적으로 내수에 영향을 주는 변수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내수를 대표하는 두 가지 지표인 민간소비와 기업투자는 기조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민간소비는 2002년 카드버블 붕괴 이후, 기업투자는 외환위기 이후 위축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의 정책보다 대외수요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수출 의존도는 사상 최고치까지 상승하고 있다.
개방화의 진전도 정치권력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1998년 5월 외국인 투자 한도 완전 폐지를 기점으로 한국증시의 개방화는 빠르게 진전됐다. 개방화의 진전은 한국 증시와 글로벌 증시의 동조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내부적인 정치 이슈보다 글로벌 증시의 추세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증시 개방화 이후 한국 증시와 세계증시의 상관계수는 1에 근접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정권 때는 딱히 정책 수혜주를 찾기 힘들었다. 노무현 정권 자체가 정경분리를 통한 시장 불간섭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뚜렷한 정책 수혜가 없었음에도 노무현 대통령 집권 5년(2003~2007년) 동안의 코스피 지수 상승률(202.5%)은 5년 단임제 대통령제가 실시된 1987년 이후 다섯 명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높았다. 중국 경제의 고성장으로 한국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을 봤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약만으로 정책 수혜주나 피해 주를 명확히 가리기는 어렵다.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 업종, 복지 관련 내수주가 일부 수혜를 입을 수 있겠지만 지나친 정책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또 선거 결과보다 대외 요인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증시에는 외국인의 움직임과 미국·중국의 경제지표 등이 더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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