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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되려면 월 1억은 받던 사람이라야 …

장관 되려면 월 1억은 받던 사람이라야 …

행안부 공직자윤리법 고치기로 … 공직 복귀 막는 게 근본 처방



서울 상도동의 작은 야채 가게. 가게 주인 김문경(58)씨는 김능환(62)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의 부인이다. 대법관을 거친 5부 요인의 아내가 야채가게라니 대단한 얘깃거리라도 있나 싶지만 그저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노후를 위해 남편의 퇴직금으로 연 가게다. 김 위원장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지나친’ 소탈함이 이해된다.

경기고교, 서울대 법과대를 졸업한 김 위원장은 전주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쳐 2006년 대법관이 됐다. 2011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다. 대법관 임기는 지난해 7월 끝났고, 중앙선거관리위원장직도 내놨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걸었지만 그의 마무리는 여느 법관들과 달랐다. 1월 말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총리로 지명됐다 자진 사퇴하면서 자신이 유력한 총리 후보로 떠오르자 그는 “사법부 최고위직을 지내고 공직선거를 책임지던 사람이 대통령 지휘를 받아 행정부를 관할하는 자리로 갈 수 없다”며 “제안이 와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법관 퇴임 후 막대한 연봉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 행도 거절했다. 변호사 개업 역시하지 않았다. 2006년 대법관 임명 당시 그가 신고한 재산은 불과 1억3800만원. 지금도 100㎡ 정도의 아파트 한 채를 제외하곤 별다른 재산이 없다.



전 대법관 부인 생계 꾸리려 야채가게김 위원장 같은 공직자가 흔치는 않다. 새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 공직자의 ‘전관예우형 재산증식’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는 2월 21일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정 후보자는 2006년 11월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퇴임 이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2008년 6월 사이 법무법인 로고스의 고문변호사로 일하면서 5억 4700여만원의 예금이 증가해 전관예우 의혹을 받았다.

민주통합당 이춘석 의원은 “장관급인 상임위원을 마치고 로펌으로 가는 것이나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마치고 개업한 것은 전관예우”라고 꼬집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변호사로 재직하면서 2006년 12월 1억1000만원, 2007년 12월 1억3000만원, 2008년 6월 1억1000만원 등 상여금 형태로 많은 돈을 받았다”며 “서민생활과는 동떨어진 전관예우 덕분”이라고 따졌다. 총리 지명 당시 “전관예우는 없었다”던 정 후보자는 이날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총리가 되면 전관예우 관행을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총리 후보자뿐만 아니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일부 장관 후보자도 전관예우에 따른 재산증식이 검증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고검장에서 퇴임한 뒤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7개월간 약 16억원을 받았다. 한 달 평균 1억원을 받은 셈이다.

2011년 감사원장으로 지명됐다 로펌에서 7개 월간 7억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져 낙마한 정동기 전 대검 차장과 비슷한 수준이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는 퇴직 후 무기 중개업체 고문으로 일하면서 2년 동안 2억8500만원을 받았다. 김 내정자는 이 업체가 수입한 독일산 부품이 K2 전차의 핵심부품으로 쓰일 수 있도록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내정자 역시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4년 동안 일하면서 5억2000만원을 받았다. 경제관료 출신도 예외가 아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는 2000년 세무대학장(1급) 시절 8억 6000만원이었던 재산이 2009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때는 35억4000만원으로 27억원이나 급증했다. 해마다 3억원 가량 재산이 늘었다. 이 기간 현 내정자는 금융권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전관예우는 예우를 하는 곳이나 받는 곳 서로에게 좋다. 공직자는 그동안 못 번 돈을 벌어 좋고 고용하는 로펌이나 민간기업은 전관이 공직 생활에서 얻은 정보와 인맥을 활용할 수 있어 좋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발표한 ‘퇴직 후 취업제한 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172명의 고위 공무원 중 약 60%(103명)가 퇴직 후 자신이 근무한 부처와 이해 관계가 있는 업체에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관예우가 법조계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공직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정동기 전 대검 차장의 낙마를 계기로 ‘판·검사가 퇴직 직전 1년간 근무한 법원·검찰청의 사건을 수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변호사법을 개정했지만 형사처벌 조항이 없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자체 징계를 하도록 했으나 실제 징계한 사례는 거의 없다. 2011년 저축은행의 줄도산 사태가 벌어지자 저축은행에 취업한 퇴직 공직자들이 퇴출을 막기 위해 로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에 법무법인과 회계법인을 추가하고,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민간기업 취업을 원하는 퇴직 공무원의 직무 관련성을 심사해 그 결과를 온라인에 공개한다는 내용의 전관예우 방지책을 내놨다. 그러나 심사를 하고도 공개를 못했다.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걸려있다는 이유에서다.

심사 역시 실효성이 없었다. 4급 이상 퇴직 공직자들이 민간기업(자본금 50억원, 매출액 150억원 이상)에 취업할 때 공직자윤리위의 심사(2011년 11월~2012년 10월)를 받도록 했지만 승인율이 95%에 달했다. 사실상 가고 싶으면 다 간다는 얘기다.



‘김영란 법’도 임용 자체 막진 못해억울하다는 공직자도 있다. “현직에 있을 때 박봉에 시달리지 않았나. 퇴직 후에 조금 더 버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가.” 3급으로 퇴직한 모 공직자의 말이다. 그는 “규정을 강화하면 근속기간이 짧은 판·검사나 하급 공무원의 재취업을 막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며 “인지상정이라는 한국 사회 특유의 문화를 뿌리뽑지 않는 한 아예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 또한 기업의 자유로운 이윤 추구 활동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관예우의 정도를 정해 얼마까지는 되고 얼마부터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관예우를 받지 못하도록 하는 것보다 다시 공직으로 돌아올 수 없도록 제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은 2월 20일 “조용히 (고액 연봉을) 받으시고 살아가셨으면 국민도 모르고 지나갔을 텐데 그런 분이 새삼 나서서 출세까지 하겠다고 하니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며 “스스로 판단해 고액 봉급자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지 공개 제안한다”고 말했다.

내각 후보자 일부의 전관예우 논란이 일자 행정안전부는 2월 21일 퇴직공직자에 대한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현행 법령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1년 6월에도 했던 얘기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마련한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도 주목 받는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시절 만든 이른바 ‘김영란법’이다. 현직 공무원이 퇴직자의 청탁을 들어주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김영란법 역시 관련 직무 수행을 제한하는 조항은 있지만 임용 자체를 막는 내용은 없다. 또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면 직전 2년 이내 재직했던 곳에서의 자문·고객 등 이해관계를 신고하고, 관련 직무를 2년간 수행할 수 없다고 규정하면서도 국가안보와 경제 등 공익 증진 또는 민간 부문의 전문성 활용 등이 필요한 경우 허용할 수 있도록 예외 규정을 둬 실효성은 의문이다.

정권 초 대통령이 ‘전관예우 차단’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법이 규제하기 전에 스스로 자제하면 가장 바람직하다. 김능환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일은 다른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대법관과 중앙선관위원장까지 했으니 소임을 다했다는 얘기로 들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되 무리하게 다른 자리를 욕심내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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