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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LEADERS - 표에 아부하는 정치론 역동성 회복 못한다

THOUGHTS LEADERS - 표에 아부하는 정치론 역동성 회복 못한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려갈것인가. 향후 10년의 한국을 전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 앞으로의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지형도를 전망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말을 자주 쓴다. 올바른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는 나름의 관성이 생기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관성을 벗어나 놀라온 변신을 기록하는 사회가 드물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느 국가든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관성을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성숙사회 혹은 후발 개도국을 벗어난 나라의 앞날은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우리는 앞선 나라를 따라가는 것을 두고 흉을 보기 쉽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국가도 예외가 아님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예컨대 대다수 국가들이 걷게 되는 관성적인 궤적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무척 힘들다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대한 나의 초보적인 전망이다.

나는 10년 후 한국 사회를 전망할 때 단기적인 실적이나 유행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간이란 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근 내놓은 『진화심리학을 통해 본 5년 후 대한민국』도 이런 고민에서 비롯된 책이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10년 후 한국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 보려 한다. 어느 기관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기에 다소 대세와 다르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의례히 큰 기대감을 갖는다. 사람들 심성에는 선지자에 대한 갈구가 있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기적 같은 일을 수행하는 선지자 같은 존재에 기대감을 표한다. 그런 선지자는 현대 세계에서 특정 정치인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난마처럼 이해 당사자들이 얽히고 설킨 상황에서 정치인들이라고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겠는가. 이렇게 하면 이 집단이 들고 일어나고 저렇게 하면 저 집단이 들고 일어난다.

특히 수적으로 다수를 향한 개혁은 더욱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녹록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어느 정도 성숙 단계에 접어든 국가는 문제를 몰라서 점점 큰 어려움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앞선 나라들이 걸어간 그길을 ‘이렇게 가면 정말 안 되는데’라고 툴툴대면서 따라가게 된다.

10년 후 한국의 궤적은 일본이 걸었던 길을 보면 예측치가 나온다. 개인은 ‘우리는 절대로 저렇게 되지 않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익명의 다수로 구성된 한 국가가 그런 결심을 하고 진로를 수정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일본은 한국이 일어서는 데 반면교사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한국이 저성장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도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한국의 미래를 전망할 때 단기적인 숫자를 볼 수 있지만 훌륭한 이론이 정확도를 높이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이론은 세월을 통해 검증 받은 것이다. 기적을 바랄 수도 있지만 장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검증 받은 이론의 힘은 그 어떤 전망 방법보다 뛰어나다.

나는 이따금 CEO를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 “경영층과 함께 조직이 늙어가서는 안 된다.” 말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조직은 늙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사기업은 노력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젊음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국가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할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게다가 개혁을 추진해야 할 그룹이 등장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그것이 가진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젊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제대로 된 개혁을 만드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당장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쉬운 길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일본·영국, 이익집단에 치여 침체한국의 10년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이익집단의 부상과 국가의 흥망성쇠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한 맨슈어 올슨 교수의 혜안이다. 모든 국가는 세월과 함께 다양한 이익집단이 형성될 수 밖에 없고 이런 집단들이 경쟁적으로 자원배분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나서게 된다. 때로는 경쟁력 강화를,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모든 주장은 하나의 공통점과 만난다.

정치 과정에서 더 큰 힘을 갖거나 수적으로 우세한 집단에 유리한 자원배분을 하도록 정치인을 조종한다는 사실이다. 향후 10년 동안 한국은 이런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며 이런 궤적에서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한국에 대해 나는 이렇게 전망한 바 있다.

“근래 눈부시게 성장하고 그 힘을 더해 갈 이익집단은 수적으로 다수인 ‘잠재이익집단’들이다. 그들은 기존 사용자단체나 노동단체와 같은 특수이익집단처럼 사무국과 같은 상설조직을 두지 않고 특정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특성이 있다. 주로 선거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권자들을 움직인다.

그들은 조직은 없으나 표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알아서 이익을 챙겨준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권 각 정파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유발된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손쉽게 국가로부터 이전소득을 받는 잠재이익집단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런 추세는 유연성이 떨어지는 대부분 선진국들이 경험한 사례들이다. 일찍이 올슨 교수는 대작 『국가의 흥망성쇠』에서 영국의 몰락을 두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영국 사회는 너무 많은 강력한 단체들과 연합체들이 생겨 변화하는 환경과 기술에 대한 적응을 지연시킨 ‘제도적 경화증’을 앓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이야기는 일본과 지금 유럽 각국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기도 하다.

이런 추세를 역전시킬 주체는 누구인가. 깨어있는 정치인이 제대로 된 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그들은 변신을 시도할 수 있는 올바른 신념을 갖고 있어야 하고 국민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사회는 대단히 취약하다. 성장 잠재력이 낮아질수록 사회는 그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찾게 되는데, 그때 구성원들은 사실을 직시하기 보다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성향이 있다. 또 가능한 단기적인 고통을 피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미 그런 조짐이 우리 사회에 완연하고 박근혜 정부 또한 그런 큰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것은 부쩍 공동체주의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되고 그런 흐름이 정책과 제도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

하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보거나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 보면 공동체주의는 언제나 호소력이 크다. 훈훈한 정과 감정을 안겨주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악화될수록 공동체주의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이에 동조하는 지식인들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공동체주의는 유사한 생각과 가치를 가진 소규모 집단에서는 가능하지만 익명의 다수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생각과 신념은 그것에 합당한 정책을 낳는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진입장벽을 높이는 정책이 좋은 사례다. 진입장벽을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사람들은 때로는 기적을 바라지만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일자리든 성장력 복원이든 삶의 수준의 개선이든 모든 현상은 그것에 합당한 투입이 있어야 한다.

그 중심에 창조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 창조적 혁신은 시대 변화에 뒤떨어지는 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 즉, 파괴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그런 파괴는 단기적인 고통을 주는데 이를 용인할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할 수 있는가. 결국 한국 사회의 10년은 지적인 문제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구호는 대체로 따뜻한 정을 강조하는 성향이 있고 심정을 흔들어 놓는다.



국민 설득해 개혁할 용기를향후 10년 한국 사회가 다시 한번 역동성을 회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10년이 지나고 나면 한국 사회는 성장력을 복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저성장과 고령화에 따른 막대한 자원 소요다. 10년 동안 위급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어지는 대규모 재정 수요 증가와 늙어가는 사회가 가질 수 밖에 없는 국가 부채의 누적이 구조적인 경제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

내부 사정이 녹록하지 않을수록 나름의 경쟁력을 갖춘 곳은 기업이든 개인이든 바깥 시장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세계화는 그들에게 입지와 시장을 선택할 자유를 주었다. 정부의 각종 노력에도 경쟁력을 갖춘 주체들은 지속적인 성장 과실을 누릴 것이다.

한국이 가진 해묵은 과제들을 몰라서 개혁을 못하는 게 아니다. 구성원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개혁 과제들은 대부분 다수와 관련되기 때문에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일이 힘들다. 박근혜 정부도 나름 노력을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다수가 관련된 사안들은 전략적으로 터치하지 않는 노선을 선택할 것으로 본다. 듣기 좋고 보기 좋은 정책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가 문제를 과감하게 수술하고 한 단계 점프하는 것이 향후 5년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손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직함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당면한 현안들을 솔직히 직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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