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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점순의 키가 커야 결혼할 수 있는데…

Management - 점순의 키가 커야 결혼할 수 있는데…

김유정 『봄봄』의 불공정거래행위 개념 … 혼례 결정하는 우월적 지위로 무임금 노동 강요



‘산에 들에 진달래 피는’ 봄이 왔다. 봄이면 으레 떠오르는 소설이 김유정의 『봄봄』이다. 이 작품은 나른하고 늘어지는 노란 햇살이 내내 내리쬐는 듯한 여유로움을 담았다. 확실히 글과 글 사이에서 잠시 잠깐 웃음이 스며 나오게 하는 재주가 김유정에게는 있다. 그래서 그를 봄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김유정은 서른 편의 글을 남기고 스물아홉에 요절했다. 봄에는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역을 지나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춘천으로 가 보고픈 춘정이 인다.



나이가 결혼 조건이라면 공정한 거래이 작품은 어수룩한 머슴살이를 하는 ‘나’의 얘기다. ‘나’는 세경 한푼 안받고 일을 한다. 벌써 3년 7개월째다. 둘째 딸인 점순이와 혼인시켜주겠다는 주인 봉필의 말을 믿고서다. 나는 주인에게 “점순이의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주인의 답변은 “안 된다”다. 이유는 점순의 키가 미처 자라지 않아서란다. 미칠 노릇이다.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데는 할말이 없다.

속만 검게 타가는데 점순이는 화전밭을 갈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밤낮 일만 하다 말 테냐”고 불만을 터트린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주인을 끌고 구장댁에 찾아가 도움을 호소한다. 하지만 소득은 없다. 그날 밤 친구 뭉태로부터 내가 주인의 세 번째 데릴사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작년에 시집간 첫째 딸은 시집 보낼 때까지 10년 동안 나 같은 데릴사위 10명을 갈아치웠다고 한다. 아들이 없는 장인은 ‘유노동 무임금’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거다. 점순의 동생인 막내딸은 이제 여섯 살. 이 아이로 또 다른 데릴사위를 데려오려면 10살은 되어야 한다. 내가 4년은 더 일해야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점순이가 오늘 아침상을 가지고 나오면서 나를 ‘바보’라고 했다. 미래의 아내에게 병신 취급을 당할 수는 없다. 골이 난 나는 어떡하든 오늘은 장인이 될 봉필과 담판을 지으려 한다. 내 뒤에는 점순이가 든든하게 받혀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일터로 가다 말고 멍석 위에 드러누웠다. 죽이든 말든 알아서 하라. 장인은 과연 ‘성례’를 허락할까? 점순이도 비로소 함박웃음을 짓게 될까? ‘나’와 ‘주인’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계약이다. 나는 한참이나 지난 후 그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선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것만 알았지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혼례의 조건은 점순의 키였다. 점순의 키는 통 자라지 않는다. “내가 커질 말라고 했냐”는 장인의 말에는 할말이 없다. 하염없이 점순의 키만 자라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 때려치우고 싶은데, 그러려니 이번에는 법이 발목을 잡는다. 농사가 한층 바쁠 때 일을 안 한다면 토지 소유자에 대한 손해를 입혔다며 감옥살이를 할 수 있단다. 일을 해봤자 이득은 없는데 안 하면 벌을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본다면 주인과 머슴간 이런 계약관계는 “불공정거래행위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할 지 모른다. 불공정거래행위란 글자 그대로 공정하지 못한 거래행위를 한 것이다. ‘거래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이 부당한 방법으로 다른 한쪽에게 불이익을 강요한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강요하는 행위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1996년 공정거래법을 제정하면서 규정했다.

지금껏 잘되던 거래를 부당하게 일방적으로 거절하거나 경쟁사업자가 시장에 뛰어들려 할 때 상품을 터무니 없이 가격에 내놔 진입을 못하게 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또 끼워 팔거나 물건을 사도록 강매하는 행위, 허위과장 광고를 하거나 경쟁사를 비방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내부에 부당하게 자금이나 인력을 지원해도 불공정거래행위다.

주인은 나에게 무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주인은 점순의 아버지로서 혼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나는 아니꼽지만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공정거래법상 ‘지위의 우월함을 이용한 부당한 거래행위’다. 그렇다면 공정위는 나의 3년7개월 치 노동에 가치를 매겨 주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딸의 키가 커야 혼례를 성사시킨다’는 조항은 불공정약관이 될 수 있다. 공정위는 한쪽이 피해를 보는 터무니없는 약관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통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키’가 아니라 ‘나이’로 바꾼다면 좀 더 합리적이다.

답답한 나는 장인과 함께 구장님에게 간다. 나는 구장님께 말한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한마디로 계약이 잘못됐으니 구장님이 억울한 나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나는 ‘중소기업’, 장인은 ‘대기업’, 구장님은 ‘공정거래위원회’ 정도로 봐도 무방한 상황이다. 그런데 구장님도 실은 공평하지 않다. 구장님은 장인에게 땅 두 마지기를 얻은 이해관계자였기 때문이다.

대기업으로부터 뒷 돈을 받는 경쟁당국이 소비자 분쟁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주기는 어렵다. 구장님은 처음엔 내 편을 들더니 결국엔 ‘나’를 달랜다. 남의 농사를 짓다 말면 징역형인데다 법률적으로 스물하나는 돼야 결혼할 수 있는데 점순이는 이제 열여섯이라는 것이다. 뭉태는 “구장님이 장인님의 땅을 부치니 그리 꾀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뭉태의 말을 애써 외면한다.



결국 나와 장인의 몸싸움, 승자는…만약 불완전 약관을 작성하는데 주인이 나에게 충분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다면 금융권에서 말하는 ‘불완전 판매’가 된다. 불완전 판매란 물건을 파는 자가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않은 행위를 말한다. 2008년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사태는 불완전 판매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은행들은 환헤지 파생상품을 팔면서 위험을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소기업들의 반발을 샀다. 또 같은 해 벌어진 저축은행 사태도 후순위채권을 판매하면서 채권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두 사건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신설은 금융당국의 화두가 됐다. 금융권의 불완전 판매 여부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가린다.

불공정거래행위나 불완전 판매는 시장을 실패로 내몰 수 있다. 시장실패란 시장이 자율적으로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는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이 벌어질 때 종종 발생한다. 한쪽은 정보를 많이 갖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는 정부가 개입한다. 경쟁당국과 금융당국이다.

나는 드디어 장인과 몸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장인은 먼저 나의 바짓가랑이를 움켜쥐었다. “할아버지!”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까무러칠 정도다.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장인도 “할아버지”를 외친다. 백주 대낮, 미래의 장인과 사위는 이렇게 난장법석을 떤다. 미래의 마누라, 점순은 친정아버지 편을 들까, 남편 편을 들까? 소설 말미에 정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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