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spects - 좌절된 복서의 꿈이 테리리스트 만들었나

4월 19일 새벽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외곽의 워터타운. 갑자기 울려퍼진 총성에 주민들이 놀라 잠을 깼다. 그 총격전에서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의 ‘용의자1’인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이 경찰에 의해 사살됐다. 주민들은 두려움에 떨며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다.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원하는 바로 그 테러를 피부로 느꼈다.
경찰은 19일 저녁 워터타운 봉쇄를 풀었다. 현장을 탈출한 ‘용의자2’는 여전히 행방이 묘연했다. 주민들이 큰 마음 먹고 집밖으로 발을 디디려 했을 때 또 다시 총성이 들렸다. 경찰이 ‘용의자2’를 포위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주민들은 초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마침내 경찰 무전기에서 낭보가 흘러나왔다. “체포했다!!! 수색작전은 종료됐다. 테러가 끝났다. 정의가 이겼다. 용의자가 잡혔다.” 보스턴 경찰이 그 무전 메시지를 트윗하기도 전에 워터타운 주민들이 먼저 환호성을 올렸다.
곧 주민들은 그 전날 밤 용의자들에 의해 사살된 경관과 심한 부상을 입은 경관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용감한 경관들과 폭탄테러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시민 3명, 그리고 부상자 170명을 기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제프 바우먼이 없었더라면 용의자들이 아직도 경찰의 포위망을 벗어나 날뛰며 더 많은 폭탄을 터뜨렸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바우먼은 양 다리의 무릎 아래 남은 부분을 절단하는 수술이 끝난 뒤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펜과 종이를 달라고 했다. 그는 종이에 이렇게 썼다. “배낭. 용의자를 봤다.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 메모가 전해지자 FBI 요원들이 집중 치료실로 바우먼을 찾아갔다. 바우먼은 요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정확히 설명했다.
자신이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한 여자친구가 결승선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글라스와 검은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다가왔다. 그 남자는 바우먼을 똑바로 쳐다 보고는 검은 배낭을 바우먼의 발 곁에 두고 그 자리를 떠났다. 몇 분 뒤 그 배낭이 폭발했다. 바우먼의 진술을 들은 FBI는 CCTV 영상과 시민들이 보내온 디지털 이미지를 샅샅이 뒤졌다. 결국 검은 모자, 검은 재킷, 검은 배낭 차림의 ‘요주의 인물’를 찾아냈다.
얼마 후 FBI는 그 용의자가 타메를란 차르나예프(26)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체첸인으로 가족이 정치난민 자격을 인정 받은 뒤 2003년 카자흐스탄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다. 처음 타메를란의 목표는 미국 올림픽 복싱 대표선수로 미국 시민권을 얻은 후 프로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9년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골든 글러브 챔피언십에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타메를란은 시카고 출신의 라마르 페너에게 판정패를 당해 준결승전에도 나가지 못했다. 그는 다시 선수권 시합에 나가려 했지만 그해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타메를란은 한동안 체육관에 나가지 못하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한때 정중하고 공손하던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그는 거칠고 무례했다. 자신에겐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실외화를 신고 버젓이 체육관 매트 위를 걸어 다녔다.
그동안 그는 이슬람 지하드(성스러운 전쟁) 운동에서 위안을 찾았다고 알려졌다. “타메를란 차르나예프’라는 이름으로 된 유튜브 계정에는 그가 ‘테러리스트’로 이름 붙인 플레이리스트와 ‘좋아요’로 표시된 이슬람 과격분자 비디오들이 올라 있었다. 그는 “더는 모든 것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신세를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FBI는 폭발 현장 주변의 영상에서 바우먼이 말한 문제의 ‘요주의 인물’을 찾아냈다. 그런 다음 그가 나타난 다른 장면도 계속 검색했다. 그 다음 단계로 그가 누구와 함께 행동했는지 추적을 시작했다. FBI 수사관들은 곧 그가 다른 젊은 남자와 함께 걷는 비디오 영상을 발견했다. 그 역시 야구 모자를 쓰고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들은 그 두 번째 용의자가 타메를란의 동생 조하르 차르나예프(19)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하르는 가족이 미국에 이민 갔을 때 아홉 살이었다. 그는 미국 사회에 완전히 동화된 듯했다. 아주 착실한 학생으로 2011년 명문 고등학교 케임브리지 린지 앤 라틴 스쿨을 졸업하면서 2500달러의 대학 장학금도 따냈다. 또 매사추세츠주 대표 레슬링 선수로 대표팀의 주장을 2년 동안 맡았다. 그는 주변에서 인기 있고 늘 침착했다. 한번은 하버드 수영장에서 안전요원으로도 일했다.
조하르를 안전요원으로 채용한 하버드 수상경기 조정관 조지 맥매스터(56)는 “착실한 아이였고 맡은 일을 잘 했다”고 말했다. 맥매스터는 2011년 매사추세츠 국가방위군의 하사로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된 이래 조하르를 보지 못했다. 조하르는 매사추세츠대(다트머스 캠퍼스) 해양생물학과로 진학했다. 그의 아버지는 최근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조하르를 우수한 학생이며 “진정한 천사”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하르는 고등학교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렸고 전도가 유망해 보였다. 그러나 꿈이 좌절된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형 타메를란은 언젠가 “내겐 미국인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고 인정했다. 조하르는 가끔씩 파티를 즐겼다. 그러나 타메를란은 진정한 무슬림은 술을 입에 대선 안 된다고 선언했다. 또 타메를란은 경망스러운 팝음악을 멀리하고 대신 ‘내 인생을 지하드에 바친다’ 같은 노래를 들었다고 알려졌다.

FBI는 용의자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 사진에서 조하르는 타메를란 바로 뒤에서 걷고 있었다. 조하르는 대개 학생이 그러듯이 모자를 뒤로 돌려 쓰고 오른쪽 어깨에 배낭을 메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형의 보조에 맞춰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곧 타메를란이 멈춰 서서고는 배낭을 내려다 놓았다.
조하르는 계속 걸어가 자기 배낭을 두 번째 폭탄이 터진 곳에 놓았다. 그는 휴대전화를 거느라 잠시 지체했다. 화면에서 그의 얼굴은 흐릿했지만 능글맞게 웃는 듯했다. 자신이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혹시나 억울함이나 분개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감정은 그가 아무런 의심 없이서 있는 무고한 시민들 사이에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폭탄이 터지고 난 후 매사추세츠대 다트머스 캠퍼스와 체육관 주변에서 조하르의 모습이 포착됐다. 타메를란은 그날 다게스탄에 있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중에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장남 타메를란이 학교를 중퇴하고 결혼한 사실에 실망을 표하면서 차남 조하르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생각을 잘 아는 타메를란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 결승선 부근에서 폭탄을 터뜨린 바로 그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조하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다고 안심시켰다. 두 형제는 자신들의 소행이 발각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타메를란은 폭탄을 담은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바우먼을 똑바로 쳐다봤을 때 그것이 또 다른 복싱 경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링에서 만난 어떤 선수보다 투지가 강한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큰 착각이었다.
타메를란은 바우먼의 발 곁에 폭탄을 내려 놓으면서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폭발의 연기가 사라지기도 전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한 시민이 자신의 스웨터를 찢어 압박붕대를 만들어 바우먼을 구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게 분명하다. 또 바우먼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펜을 달라고 해서 당국에 범인을 잡도록 도와주리라고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용의자들이 찍힌 영상이 공개됐을 때 그 형제는 ‘용의자1’과 ‘용의자2’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안 가 누군가 자신들을 알아보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친구가 조하르에게 전화를 걸어 용의자와 너무 닮았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들 형제는 케임브리지의 집 부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그들이 4월 18일 밤 케임브리지의 주유소에서 주유를 했지만 매사추세츠 공대 부근의 켄덜광장에 있는 편의점을 턴 용의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했다. 또 경찰은 그 형제들이 MIT 대학경찰관 숀 콜리어에게 다가가 차에 앉아 있는 그를 여러 발의 총격으로 사살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 다음 타메를란과 조하르는 벤츠 SUV를 탈취해 운전자를 인질로 잡았다. 그 운전자는 메모리얼 드라이브의 주유소에서 풀려났거나 탈출했다. 그 형제들은 그 다음 차를 몰고 탈주했다. 일부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추격하는 경찰 순찰차들에 사제폭탄을 던졌다. 당시 한 경찰은 “그들이 폭탄을 갖고 있다. 수류탄인 듯하다”고 무전기로 알렸다.
워터타운에서 SUV가 멈췄고 타메를란이 뛰어 내리며 경찰을 향해 총을 쏘았다. 매사추세츠주 교통경찰국(MBTA) 소속 경찰관이 그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그 과정에서 타메를란은 경찰을 향해 사제 폭탄을 터뜨렸다고 알려졌다. 그 폭발로 그가 다쳤는지 아니면 그들이 추격전에서 차창 밖으로 던진 사제수류탄이 SUV 안에서 터졌는지, 아니면 타메를란이 자살폭탄 조끼를 입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가 새벽 1시 10분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병원으로 실려 갔을때 그의 몸은 총알만이 아니라 폭탄 파편으로도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응급 상황에 대기 중이던 의사는 그 부근에 살고 있었다. 그는 총성을 들으며 병원으로 달려 갔다. 타메를란이 여덟 살짜리 남자아이를 포함해 세 명을 숨지게 했고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 폭탄테러 용의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 의사는 응급외상 치료팀과 함께 타메를란을 살리려고 애썼다. 타메를란은 새벽 1시 35분 사망 판정을 받았다. 시체 안치소에 있는 그의 몸에서 사제폭탄 폭파장치가 발견됐다고 알려졌다.
한편 조하르는 그 혼란 와중에 차를 타고 탈출했다. 엉겁결에 형을 대신해 차를 몰았다고 알려졌다. 당국은 보스턴을 완전히 봉쇄했다. 가게 문을 닫고 주민들의 외출을 삼가라고 권고했다. 워터타운의 상당 부분의 출입을 차단하고 경찰이 가가호호 수색을 시작했다.
맥매스터는 워터타운에서 집안에 머물라는 경찰의 권고를 따랐다. 아프가니스탄 전에 재파병되기 전에 조하르를 하버드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채용했던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 3월 귀국했다. 맥매스터는 상냥하고 잘 어울리는 젊은이가 폭탄테러 용의자로 동네에서 경찰에 쫓기는 상황을 창문밖으로 지켜봤다.
“SWAT(경찰 특수기동대) 팀이 우리집 뒷마당에 있다”고 맥매스터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자신이 수영장 안전요원으로 채용했던 조하르와 그의 형이 무차별 폭탄테러를 저질렀을 때 사망한 여덟 살짜리 아이 마틴 리처드가 살았던 집 부근에서 자신도 살았다. “진실은 허구보다 더 희한하다”고 그가 말했다.
4월 19일 저녁 당국이 보스턴 지역 봉쇄를 해제한 직후, 전날 총격전이 벌어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한 주민이 집에서 나와 뒤뜰에 나갔다. 그는 트레일러 위에 실어놓은 보트를 덮은 흰 방수포를 누군가 뒤집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쪽을 들여다보자 피를 뒤집어 쓴 남자가 보였다. 그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한 뒤 또 한 차례 총격전이 벌어졌다. 곧 경찰이 퇴각하고 전술팀이 후속 임무를 떠맡았다. FBI 인질구조팀도 도착했다. “선미 쪽 보트 중간”이라고 한 경관이 용의자 위치를 보고했다.
저녁 9시 직전, 마지막으로 굉음이 들렸다. 인질구조팀이 보트 안으로 던진 섬광수류탄이 터지는 소리였다. 곧 팀이 보트 안으로 진입해 용의자를 끌어냈다. 그들은 조하르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뒤로 수갑을 채웠다. 경찰은 그 전날 동료를 잃었지만 즉시 조하르의 목과 다리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용의자2’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그 주변에 모여든 주민들에게 알려졌다. 두려움에서 해방된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전술팀 대원들이 밖으로 나와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경찰은 차르나예프 형제의 집에서 사제 폭탄 상당량을 수거했다. 마라톤 대회 폭탄 테러에서 사용된 것과 비슷한 압력솥 폭탄도 거기에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결국 바우먼이 FBI에 신속하고도 정확히 증언을 한 덕분에 또 다른 테러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바우먼은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그는 두 다리를 잃었지만 폭발 직후에도 그의 반사신경은 멀쩡했다. 그는 챔피언의 정신을 잃지 않았다. 사실 미국인 모두가 그에게 큰 빚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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