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캐릭터 산업의 숨은 제왕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아이언맨3’이 4월25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이를 앞두고 이 영화의 주연인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한국을 방문해 홍보 활동을 펼쳤다. 2008년 개봉한 1편은 1억4000만 달러(추정)를 투자해 북미 시장에서만 3억184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2010년 개봉한 2편은 2억 달러를 투자해 북미 시장에서만 3억1240만 달러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해외 판매를 포함하면 투자대비 곱절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영화뿐이 아니다. 아이언맨 콘텐트와 캐릭터는 광고·게임·뮤지컬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엄청난 수입을 추가로 올렸다.
특이한 것은 이 캐릭터가 원래 만화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아이언맨은 물론 ‘스파이더맨’ ‘헐크’ ‘판타스틱4’ ‘X맨’ 등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인기를 끈 수퍼 영웅 캐릭터 모두 만화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 모든 캐릭터와 스토리를 한 개인이 창조하고 다양한 미디어에 응용했다. 그 주인공이 유대계 미국인 만화 스토리 작가이자 편집장이자 미국의 만화출판사인 마블 코믹스의 회장을 지낸 미디어 경영자 출신의 스탠 리(91)다.
본명이 스탠리 마틴 리버인 그는 평생 스탠 리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미국 캐릭터 산업의 숨은 제왕이다. 5000개가 넘는 개성 넘치는 만화 캐릭터를 창조했으며 성인까지 보는 본격 미디어로 만화를 키웠다.
1922년 루마니아계 유대인 부부의 아들로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리는 대공황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재단사였던 아버지는 대공황 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삼촌의 도움으로 만화회사에서 일했다. 1939년 미국의 유명한 만화 출판인 마틴 굿맨이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창업한 회사다.
이 회사는 1950년대 후반 경쟁사인 DC코믹스가 수퍼 영웅 캐릭터로 재미를 보자 이에 맞설 팀을 꾸렸다. 이 팀에 차출된 리는 완벽한 수처 영웅 캐릭터를 추구하는 대신 인간적인 고민과 매력이 있는 햄릿형 캐릭터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부인 조앤의 충고가 한몫 했다.
조앤은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 같은 캐릭터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캐릭터가 가장 성공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조언한 것이다. 이에 리는 이 충고를 따라 당시까지는 없었던 기묘하고 창의적인 수퍼 영웅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 이전까지 만화 캐릭터는 모두가 이상적이고 완벽했다. 심각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고 문제점도 없었다. 하지만 리는 아주 복잡한 성격에 충동적이며 고민이 많고 때로 우울하거나 공허함을 느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들은 심지어 같은 수퍼 영웅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다투고 여자친구의 마음을 얻으려고 고민하며 하는 일에 지루해 하고 병을 앓기까지 한다. 수퍼 영웅에 인간적인 매력을 심은 그의 시도는 큰 성공을 거뒀다. 팬들의 호감을 산 것은 물론 좀 더 인간적으로 성숙한 캐릭터의 성격 묘사를 통해 10대 초반에 머물던 만화 팬을 성인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스토리 작가인 그는 극화가 잭 커비와 스티브 닷코와 공동 작업으로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 팀의 첫 작품이 1961년 내놓은 ‘판타스틱 4’다. 이 작품이 시장에서 성공하면서 수퍼 영웅 팀은 마블 코믹스라는 브랜드 이름을 갖게 됐다. 4명의 돌연변이로 이뤄진 수퍼영웅 팀의 활약을 다룬 만화 ‘판타스틱 4’는 지금도 작가를 바꿔가며 계속 후속편이 나온다. 애니메이션과 비디오 게임으로도 나왔다.
공전의 상업적 히트를 친 것은 2005·2007·2009·2012년 영화로 만들면서다. 2005년 폭스가 영화화로 만든 첫 작품은 1억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돼 북미에서 1억5600만 달러, 전 세계에서 3억29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울렸다. 크리스 에반스와 제시카 알바 등이 출연했다. 2007년 나온 속편도 북미에서 1억3200만 달러, 전 세계에서 2억88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2015년에 다섯 번째 영화가 나올 예정이다.
만화를 성인도 보는 미디어로 키워아이언맨과 함께 수퍼 히어로 영화 흥행 보증수표가 ‘스파이더맨’이다. ‘판타스틱 4’의 탄생 이듬해인 1962년 만들어진 이 만화는 1960년대 후반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 2002년 소니가 처음 극영화로 만든 이래 2004년, 2007년에 걸쳐 3부작이 나왔으며 2012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까지 나왔다.
1부가 1억3900만 달러를 들여 북미 시장에서만 4억 37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북미 시장에서만 2부가 3억7350만 달러, 3부는 3억3650만, 4부는 2억6000만 달러의 수입을 각각 올렸다. 해외 시장에서는 그 2배 정도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스파이더맨 영화로 전 세계에서 4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린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2011년 록그룹 U2의 보노 등이 곡을 붙인 ‘스파이더맨 : 어둠을 꺼라’라는 제목의 뮤지컬로 만들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인 뮤지컬로 기록됐다. 매주 들어가는 비용이 120만 달러에 이르는 초호화 공연이다.
리는 1962년 그 유명한 ‘헐크’ 캐릭터를 만화로 내놨다. 1980년대 한국에서 TV 시리즈로 방영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1990년대에 애니메이션이 나온 데 이어 2003년과 2008년엔 영화로도 제작됐다.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눈길을 끈 영화 ‘헐크’는 비록 흥행에선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리는 만화 출판인으로서도 대단한 인물이다. 창의적 예술가이자 출판인이다. 하지만 그가 여기서 그쳤다면 만화 황제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캐릭터와 콘텐트를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비디오 게임, 영화, 뮤지컬에 이르는 다양한 미디어 장르에 적용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이전까지 없었던 독특한 인간미의 캐릭터를 지닌 리의 만화 작품은 이같이 영화, 뮤지컬, 비디오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로 제작되면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리가 창조한 캐릭터 만화 작품들은 미국 캐릭터 산업과 콘텐트 산업의 밑바탕이 됐다. 특히 리는 ‘원 캐릭터 멀티 유즈(One character multi use)’의 개념을 창안해 캐릭터 비즈니스를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일군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특히 존경 받는다.
리는 마블 코믹스에서 만화로 낸 캐릭터와 콘텐트의 글로벌 판권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에 공급하는 마블 엔터테인먼트사의 가치가 무려 40억 달러에 이른다. 그는 2004년 이 회사를 42억4000만 달러에 월트디즈니사에 넘겼다. 디즈니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캐릭터·콘텐트 사업을 벌여 성공했다. 영화·방송·게임·장난감·캐릭터 사업 등 실로 다양한 고부가가치 사업을 운영한다.
원래 디즈니 캐릭터는 귀엽고 우아하다. 디즈니 작품의 콘텐트는 주로 권선징악형이다. 결말의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은 주로 통제 불능의 아웃사이더다. 그런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디즈니는 캐릭터와 콘텐트를 보강해 엔터네인먼트계의 강자로 다시 부상했다.
경쟁사인 워너 브러더스는 마블 코믹스와 숙명의 라이벌인 DC코믹스를 인수해 같은 사업을 벌였다. 경쟁사인 DC코믹스가 없었다면 마블코믹스가 그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내놓지 못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스탠 리라는 천재 스토리 작가를 자극해 세계 최고의 캐릭터와 콘텐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가 창조경제의 관건스탠 리는 미국을 먹여 살리는 주요 산업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이렇게 진흥시킨 주인공이다. 미국 창조산업의 히든 챔피언인 셈이다. 그런데 이 인물을 지원하고 이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로드맵, 산업 정책이 마련됐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다만 소비자가 있고, 이 소비자를 늘리고 지속적인 고객으로 유지하기 위한 업계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이를 선도한 스탠 리라는 창의적인 인물이 있었을 뿐이다. 창조산업을 준비하는 한국에서 반드시 벤치마킹을 해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창조산업에는 당연히 문화산업,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포함돼야 한다. 가장 창조적이고 소비자 지향적이며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미국인이 오래 전부터 즐겨본 공상과학(SF)·판타지는 물론 범죄·공포·미스터리·로맨스·전쟁·서부극 등 다양한 대중 장르의 만화가 수십 년이 지난 뒤 다양한 캐릭터·콘텐트 사업의 원천으로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축이 되고 있다는 점을 눈 여겨 봐야 한다. 한국에도 이런 건 많다. 이를 받아들일 영화·방송·뮤지컬 산업도 있다. 다만 구슬을 어떻게 꿰느냐가 문제다. 그게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할 창조경제가 아닐까.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툭 쳤더니 사람처럼 '화들짝'…교감하는 로봇 나온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힘들어” 김보라, 이혼 후 근황..결국 떠났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李 대통령, 정무·홍보·민정 수석 임명… “국민통합과 소통 중심”(상보)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새정부 출범에 불확실성 해소…대체투자 탄력 붙는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진단 전성시대]①체외진단 대표 분자진단, 액체생검으로 ‘날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