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외로운 배’ 신세 … 노후 대비 친구 만드는 ‘토모카츠(友活)’ 유행 일본 은퇴자 사이에 등산이 인기다. 일본 혼슈 군마현의 오제국립공원 출발지 휴게소.
‘대형 광고회사에서 이사까지 지낸 이이치로(威一郞). 정년 전에 회사가 자회사로 발령을 내자 끝내 퇴사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나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알았는데 회사인간으로 지낸 탓에 마땅한 취미조차 없다. 가족 서비스로 인생 후반전을 보내려 했지만 정작 가족의 반응이 차갑기 그지없다.
그에게 남은 건 지루하고 긴 하루를 보내는 일뿐이다. 이를 힘들어하던 아내는 재택 남편 스트레스증후군에 걸렸다. 결국 딸과 함께 집을 나갔다. 이이치로는 지역 모임에 가도 회사 간부 시절 몸에 익은 ‘갑의 태도’ 탓에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고립됐다. 곁엔 애완견만 남았다.’
와타나베 준이치가 2010년 가을에 내놓은 『코슈(孤舟)』란 책의 줄거리다. 정년 퇴직 이후의 인생살이를 엮은 소설이다. 인생 후반전에 적응하지 못한 고민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소개됐다. 정년 이후 가족의 역습도 구체적으로 기술돼 화제를 모았다. 연애소설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정년 이후 ‘외로운 배’의 신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성 샐러리맨은 물론 여성 직장인과 전업 주부에게도 갈채를 받았다.
‘회사인간’의 비극, 집에선 왕따 신세남의 일이 아니다. 은퇴자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우려한 내용일 것이다. 회사 인간인 가장의 가정 복귀는 결코 녹록하지 않은 숙제다.
집에서 남편의 공간은 예전에 사라졌다. 어릴 적 아빠를 찾던 자녀는 아빠의 낯선 출현에 ‘투명인간’ 취급한다. 큰맘 먹고 가족 봉사를 위해 부엌을 서성댄들 되돌아오는 건 잔소리뿐이다. 세탁기 작동 방법은 애초부터 까막눈이다.
와타나베 준이치의 소설 발표 이후 아사히신문은 ‘고족(孤族)’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무연(無緣)사회에 사는 무연가족을 뜻한다.
2010년엔 ‘고슈족(孤舟族)’이란 말도 나왔다. 한자 의미처럼 외로운 배에 비유되는 그룹이다.
은퇴 이후 제2 인생살이를 힘겨워하는 남성을 주로 지칭한다. 정년 퇴직 후 가정에선 정 붙일 공간이 없고 아내에겐 바이러스 취급 받는 중년 남자들이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정도 절망적이다. 많은 전업 주부가 책에 공감한 이유다. 그만큼 은퇴 이후 부부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오죽하면 듣도 보도 못한 ‘재택 남편 스트레스증후군’이란 병명까지 일반화됐을까. 이런 아내를 위해 남편이 요리를 하면 아내는 자신의 공간인 부엌을 엉망으로 만든다고 투정한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아내의 전용 터전인 부엌을 침범하는 건 용서할 수 없다. 황혼 이혼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관심사는 연령별로 갈리는 법이다. 나이에 따른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학생은 취직을, 젊은이는 연애와 결혼을 떠올리는 게 당연지사다. 이런 이유로 고령자의 뜨거운 공통 관심사는 금전 문제를 뺀다면 사실상 고독 치유다. 은퇴 이후 부여된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라는 절대시간을 즐겁게 보낼 고독 방어용 카드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해법은 결국 장기적이고 주기적인 커뮤니케이션 확보다. 예컨대 친구 교제가 대안일 수 있다. 어떤 관계든 친구야말로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고 노후를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대비책이다.
실제 퇴직 이후 중년 남성은 갈 곳이 별로 없다. 물론 의지할 곳도 드물다. 회사 인간으로 30~40년을 내리 달렸으니 회사 말고는 아는 곳, 아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그렇다고 지역사회에 복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사회 대신 같은 취미·가치를 공유하는 동년배와 모임을 시도할 만하다. 이미 생활 주변에선 특정 연령의 노인 대상의 모임과 관련된 정보가 넘쳐난다.
생활 반경에 친구가 있다는 건 삶의 중요한 지지기반이다. 친구야말로 언젠간 홀로 살아가야 할 노후를 만끽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다. 배경은 핵가족화와 장수 추세에서 찾을 수 있다. 가족 관계 변화와 수명 연장으로 절대수명이 늘어서다. 남편은 은퇴 이후 시간이 많아졌고 아내 역시 양육 종료, 자녀 출가로 여유가 늘어났다. 맨션아파트 거주로 단절·고립화된 주거환경도 친구의 존재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런 수요의 결과물이 ‘토모카츠(友活)’다. 취직 활동의 ‘슈카츠(就活)’니 결혼 활동의 ‘콘카츠(婚活)’니 하는 유행어의 연장선상에 있다. 생활 반경에 여러 명의 친구를 만드는 활동과 마음의 준비를 일컫는다. 좁게는 직장 이외에 친구가 없는 사람이 은퇴 이후 생활 주변에서 친구를 만드는 걸 뜻하기도 한다. 종류는 많다. 아침의 쓰레기 분리수거 때 동년배 이웃과 사귀거나 근처 상점의 단골이 되는 게 비교적 손쉬운 토모카츠 방법이다. 혹은 다양한 커뮤니티가 주최하는 모임에 참가하는 것도 방법이다. 인터넷 동호회가 대표적이다.
토모카츠는 특히 남자 고령자가 주된 공략 대상이다. 여성이야 원래부터 처음 보는 동년배라도 말을 섞는 게 자연스럽지만 남자는 그렇지 않아서다. 고령 여성이 수퍼에서 줄을 서다 앞뒤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건 자연스러워도 초면의 중년 남성이 얘기를 주고받는 건 드물다. 남자는 평생 명함 교환이 아니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쉽지 않다. 이들에게 친구를 사귀는 방법과 기회를 제공하는 건 일종의 틈새 아이디어다.
고령자의 친구 확보는 단순한 개인 만족을 뛰어넘는 생존 차원의 목적이 크다. 늙으면 노환이 생기고 자신감이 약해진다. 그렇다고 멀리 사는 친척을 부를 정도로 불편하진 않다. 이럴 때 생활 반경에 친구가 있으면 의지가 된다. 결국 친구 확보는 은퇴 이후를 살아갈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친구가 많고 모임 참가에 적극적일수록 건강한 삶을 살아갈 확률이 높다. 설사 노환이라도 치유가 빠르거나 진행을 늦출 수 있다. 토모카츠는 사회 병폐도 줄여준다. 은퇴 이후 사회의 ‘불순 세력’으로 전락한 ‘망주(妄走) 노인’과 ‘폭주(暴走) 노인’의 양산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친구가 있다면 소외 상태에서 왜곡된 형태의 분출구를 찾을 확률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다.
친구는 고령화 사회 병폐 줄여가령 사회 문제로 떠오른 파친코에 탐닉하는 소외 노인도 구할 수 있다. 파친코의 최대 고객은 중년 이상의 고령 고객이다. 이들은 대부분 출퇴근하듯 파친코에 몰두하는 탓에 중독 환자가 끊이지 않는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택시를 불러 매일 파친코에 드나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50년대에 이미 ‘엄지족(親指族, 파친코 레버를 엄지로 당긴다는 뜻)’이란 유행어까지 나돌 정도로 대중화됐다.
이런 노인에게 친구가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공유할 수 있는 건전한 취미활동을 찾으며 좀 더 풍족한 노후 생활을 기대할 수 있다. 각종 사회 비용도 줄어든다. 은퇴 세대의 친구 교제를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공원 데뷔’다. 집 주변의 공원에 나가 같은 처지의 친구를 사귀면 토모카츠의 확대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정보교환 등으로 좀 더 진전된 친구 교제도 가능해진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윤측 "팔다리 잡고 영장 강제집행…반드시 법적책임 묻겠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박시후 가정파탄 의혹…문자 속 女 해명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혐의 소명됐나…특검, 소환 하루만에 김건희 구속영장 청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마켓인]애경산업 이달 본입찰…‘큰손’ 태광산업에 쏠리는 눈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대규모 기술수출에도 주가 원점 바이오벤처들…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