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olf - 1년에 30만 달러는 벌어야 안심

“대회 조직위원회가 제공하는 무료 숙소를 이용하고 차를 얻어 타고 다녔다. 대회가 없을 때는 지인 집에 얹혀 지냈다. 그래도 투어 경비는 늘 모자랐고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난 적도 있었다.” 꿈은 그를 궁핍한 선수로 만들었다. 대회에 참가할 땐 제일 싼 이코노미 클래스 티켓을 구입해 혼자 비행기를 탔다. 호텔 대신 ‘하우징’을 하면서 직접 음식을 해 먹었다. 한때는 미국 골프 무대를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올 생각도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데뷔 4년 만에 첫 우승을 달성한 이일희(25·볼빅)의 이야기다.
이일희는 5월 27일(한국시간) 바하마 파라다이스 아일랜드의 오션클럽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퓨어 실크-바하마 클래식에서 합계 11언더파로 우승했다. 아이린 조(29·미국)를 2타 차로 꺾었다. 이일희는 이번 우승으로 생애 최고액인 19만5000달러(약 2억1600만원)의 우승상금을 챙겼다. 그는 “이제 미국에 거처를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꿈의 무대 아닌 궁핍의 무대이일희의 얘기를 듣고 있자면 미국 LPGA 투어는 모든 선수에게 꿈의 무대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어느 프로 무대나 상금랭킹이 있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부익부 빈익빈의 시장 논리가 존재한다. 이일희는 그동안 빈익빈 쪽에 속하는 선수였다. 무엇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은 고생을 의미했다.
국가대표 상비군 등 화려한 주니어시절을 보내고 2007년 데뷔한 KLPGA 투어를 박차고 2010년 미국행을 택하면서 그의 고단한 투어는 시작됐다. 가족도, 매니지먼트사도 없었다. ‘나홀로’ 미국 LPGA 투어에 뛰어든 것이다. 자신이 원한 무대로 진출했지만 첫해인 2010년에는 상금으로 겨우 6만7000달러(약 7500만원)를 벌었다. 그 이듬해인 2011년에는 수입(시즌 상금 5만3000달러·약 5900만원)이 더 줄었다. 더군다나 그해에는 한 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었다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사기를 당했다.
그나마 그를 지켜준 건 ‘꿈’이었다. LPGA 투어 무대에서의 우승이란 그의 간절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일희는 “선수로서 어느 순간 최악의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단 1승이라도 하자며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LPGA 투어에서 우승 없이 하위권 선수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해 LPGA 투어에서 뛴 150명의 선수 가운데 자동으로 투어카드를 받을 수있는 상금랭킹은 80위까지다. 상금액수로 치면 9만4000달러(약 1억400만원)였다. 선수로서 이 랭킹 안에 들어 투어카드를 잃지 않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상금랭킹 80위권 밖으로 밀려나면 다시 퀄리파잉 스쿨(Q스쿨)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정도 상금을 벌어들이면 1년 동안의 투어 경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니다. 턱없이 모자란다. 1년 동안 LPGA 투어의 경비로 지출되는 금액은 아끼고 아껴서도 최소 12만 달러(약 1억3500만원) 정도가 든다. 때문에 지난해 A 선수가 10만 달러 정도의 상금을 벌었다면 단순 계산법으로는 2만 달러가 적자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실상은 아니다.
상금으로 10만 달러를 받았다면 세금으로 약 30%가 빠져나기 때문에 순수하게 A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은 7만 달러 밖에 안 된다. 또 매주 캐디에게 지급하는 주급(약 1000달러~1200달러)을 제외하고 나면 A가 실적으로 벌어들인 순수입은 5만 달러 이하로까지 확 떨어진다.다시 말해 명색이 세계 여자 골프 무대에서 80번째로 공을 잘 치는 선수이지만 그의 경제적인 사정은 이렇듯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메인 스폰서가 있다면 형편은 좀 낫다. LPGA의 투어카드가 있는 선수는 기업으로부터 최소 연간 계약금으로 1억원은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선수가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받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 개인의 희소가치가 없으면 무적 선수로 활해야 한다. 현재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선수는 40명이 넘는다. 그러나 1억원 이상의 메인 스폰서가 있는 선수는 열 손가락으로 셀 정도다.
과거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처럼 ‘연간 20억원+α’의 대박 신화는 이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박세리의 아메리칸 골프드림을 꿈꾼 1988년생 세리 키즈 가운데서는 신지애(25·미래에셋)와 최나연(26·SK텔레콤) 정도가 대박을 쳤다. 가장 최근에는 KB금융그룹과 메인 스폰서십 계약을 한 박인비(25·KB금융그룹)를 대박 선수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박인비는 지난해 LPGA 투어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수상하고도 메인 스폰서가 나타나지 않아 속을 태웠다.
이일희는 지난해 국산 골프공 제조업체인 ㈜볼빅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다소 궁핍한 생활을 면했지만 절친한 친구인 신지애 등과 비교하면 어렵게 투어 생활을 했다. 이일희는 LPGA 투어 진출 초기에는 “친구 (신)지애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것도 친구에게 부담이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투어 상황을 살펴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먼저 서로의 티타임이 다르다. 티타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동선이 틀려진다는 얘기다. A는 오전 조 출발이고, B는 오후 조 출발이라고 하자. 차를 얻어 타는 경우라면 정말 애매해진다. B는 굳이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야 할 필요가 없는데 A 때문에 자신의 하루 플로차트(Flow chart)가 모두 엉클어지게 된다.
또 A는 컷 탈락을 하고 B는 본선에 진출했을 경우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물론 이럴 때 A는 다른 탈락자와 함께 다음 대회 장소로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예정돼 없던 누군가와 불쑥 동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LPGA 투어에서 제대로 된 자기 동선을 확보하고 투어에 몰입하려면 연간 30만 달러의 상금을 획득해야 한다. 상금랭킹으로 치면 40위권이다. LPGA 투어 사무국의 션 변(31·변진형) 토너먼트 비즈니스 매니저는 “최소 연간 30만 달러 정도는 확보해야 세금 내고 캐디의 주급을 해결하고 좀 휴식을 취하면서 투어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톱 10에 들어야매년 톱 10위 이내의 성적을 거두면 스폰서가 저절로 따라붙고 상금만으로도 10억원에 가까운 소득을 올리기 때문에 미국에 큰 집을 구하는 등 특급 스타로 군림할 수 있다. 최나연은 지난해 미국 올랜도에 100만 달러짜리 새 집을 샀다. 단층집이지만 방이 4개에 수영장 등이 딸려 있다. 신지애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2층집을 마련했다. 골프여왕 박세리는 미국에 집이 두 채인데 올랜도에 있는 3층 집은 엘리베이터와 수영장, 영화관 등이 완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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